남단에서

예배의 불변성과 가변성 - 공회의 '정한 예배' 원칙을 중심으로

작성자
연구
작성일
2020.02.29
국가적 비상 상황 때문에 예배를 전면 중단하는 교회들이 급증하고 있다. 천주교와 불교는 교당에서 무조건 행사를 해야 하는데 전면 중단을 하는 상황이다. 보수 교회는 형식적 예배 대신 신령한 예배 원칙 때문에 시간과 장소와 방법의 변화는 가능하나 한국 교회는 역사적으로 일제 신사참배와 6.25 점령 때 예배의 중단과 포기와 고수를 두고 오랜 세월 정통성 분쟁과 논쟁이 있었기 때문에, 평소 예배를 아주 우습게 변형을 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주목을 받게 되자 모두들 고민하는 모습이다.

공회는 어느 교단보다 예배의 형식보다 내용을 중심에 두고 내려 왔다. 그러나 그 내용이란 하나님 앞에 정성을 다한다는 원칙이 있어 외형이 자유롭게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거의 잘 바꾸지 않는 편이다. 공회 교회가 예배를 두고 일단 성경과 함께 '관례'를 따르는 노선이므로 사례를 여러 면으로 살펴 본다. 바꾸지 않아도 알고 지켜야 신앙이고, 바꾼다 해도 바꿀 수 있는 사안임을 알고 바꿔야 변질이 아니라 대처이기 때문이다.


(공회의 사례)

* 건축, 건물 문제로 장소를 바꾸는 경우
예배는 '정한 장소'가 원칙이다. 그런데 예배당을 건축하는 과정에 구 예배당을 헐어 버리고 새 예배당을 짓게 되면 원래 정한 장소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한다. 서부교회는 1970년에 일제식 2층 주택을 철거하고 현대식 예배당을 짓는다. 건축 기간에는 공터를 빌려 천막을 치고 예배를 드렸다. 정한 장소를 변경할 수 있는 사례다. 굳이 예를 들지 않아도 되는 사안이다.

* 투표소나 사회 행사로 용도 변경은 거부
국가나 주변 사회에서 예배당을 주민 교육이나 투표장 등으로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는 강제로 뺏긴다면 밀려 나오지만 자발적으로 제공하거나 협조하지는 않는다. 예배당 건물의 용도에 대한 문제다. 다만 화재나 수해로 오갈 곳이 없는 주민이 생기면 예배당에 응급 환자나 주민을 모실 수는 있다. 안식일에 짐승이 구덩이에 빠졌을 때는 구하는 원칙이다.

* 생활 환경에 따른 예배 시간은 변경
교인 대부분이나 상당수가 농사나 현장 노동을 하던 시절, 1970년대까지 서부교회는 하절기 동절기에 예배 시간을 30분 정도 조절했다. 그러나 사회 전체가 일출과 일몰의 영향을 적게 받고 시간제로 바뀌어 갈 때 서부교회는 선제적으로 예배 시간을 고정 시켰다. 한 여름에 평일의 저녁 예배를 7시에 시작하게 되자 교인 대부분이 지각을 하지만 7시를 고수해 왔다.

주일학생들이 8천 명씩 출석하던 1980년대에 주일 오전 8시 30분의 주일학교 오전 예배를 9시로 변경해 본 적이 있었다. 70년대까지는 부모들의 직업 환경이 주일에도 일찍 출근을 했고 TV 있는 가정이 적었다. 80년대가 되면서 주일에 쉬는 가정들이 늘고 휴일을 편히 쉬느라고 늦게 일어 나기도 하고 TV가 늘면서 아동 인기 프로그램과 겹치게 되자 출석수에 큰 영향을 끼쳤다. 주교생 대부분이 불신 가정이기 때문이었다. 예배 시간을 변경했으나 출석에 실제 큰 영향이 없자 환원했다. 일단 예배 변경 자체는 가능하고 신앙에 확실히 효과가 있다면 변경해 볼 수 있다는 사례다. 그런데 편의 위주로 가면 괜찮을 듯하나 실제는 별 차이가 없음도 함께 확인한 경우다.

* 더 깊은 예배를 위해 시간과 장소 변경
정한 장소, 정한 시간, 정한 방법은 교인들이 평소 겪어 보면 공회는 마치 구약 제사처럼 또 천주교나 불교의 석고화처럼 느껴 질 수 있다. 그러나 1년 2차례의 전국 사경회와 각 지역별 2-3회의 겨울 사경회, 총 4-5회의 집회 때가 되면 대구 노곡동이나 거창 도평 기도원으로 예배의 장소를 옮기고 예배 시간도 모두 변경한다. 예배의 순서 방법 모습도 달라 진다. 이 때 변경하는 것은 더 깊은 예배를 위한 것이다. 구약은 더 깊고 더 많게 하고 싶어도 장소와 시간과 방법을 손 대지 못한다. 공회는 신약의 예배를 알기 때문에 더 은혜를 위해 불가피하면 변경은 쉽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마치 바꾸지 못할 것처럼 고수한다. 집회 때는 수요일 오후에 예배가 있고 저녁 예배는 없다. 애양원 교회는 교인들의 병환 때문에 손양원 목사님 생전부터 수요일 예배를 늘 저녁이 아니라 오후에드렸다. 공회의 사경회 주간에 수요일 밤 예배는 없는 것이 원칙이었다.

* 예배를 두 교회 원칙을 유지한 경우
부산의 지교회들이 주일 오후와 금요일 저녁에는 서부교회로 참석했다. 부산 지방 공회 교회들은 주일에 '시내 버스'를 타고, '서부교회'라는 다른 예배 장소로 갔고, 본 교회 예배는 저녁 시간으로 밀어 냈다. 부산 지방의 일반 교인은 주일 오전과 저녁에 본 교회 예배를 드렸고, 신앙이 있는 교인은 오전에는 본 교회에서 오후는 서부교회에서 드렸다. 그리고 아주 신앙이 좋은교인은, 주일 오전은 본 교회에서 오후는 서부교회에서 그리고 저녁 예배는 본 교회에서 드렸다. 그리고 금요일은 아예 본 교회 예배는 없거나 일부 교인들이 예배를 드렸고 목회자와 신앙 있는 교인들은 서부교회 예배로 대신했다. 두 교회 원칙을 유지했다. 시간과 장소를 신앙의 유익을 위해 더 엄하게 더 희생하고 수고하는 방향으로 변경을 했었다. 비록 자주 변경하지 않았으나 1960년대는 그러지 않았다. 1970년대에 거제동교회 홍순철 목사님이 시작했다. 이후 부산지방은 모두 그렇게 되었다. 1990년대가 되면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더 나쁜 결과를 가져 오기 시작했다. 정한 장소와 시간과 방법으로 신앙에 유익이 되면 장소와 시간과 방법을 달리 할 수 있다는 사례다.

부산뿐 아니라 전국의 공회 교회 목회자들은 금요일 저녁을 서부교회와 본 교회로 나란히 진행했다. 교인들도 목회자와 함께 서부교회를 고정 참석할 수 있었다. 1교인 1교회 원칙은 마치 1부부 1가정 원칙처럼 기독교의 상식이며 절대 원칙이다. 교인은 입교 문답에 본 교회 공적 예배 출석의 의무가 있다. 공회는 평생 2교회 출석을 병행 시켰다. 볼 수 없는 불가견교회는 교리상 존재한다. 불가견교회는 단일교회다. 불가견 단일교회는 우리의 이상이며 목표치다. 이를 위해 가견교회는 반드시 보이는 예배당과 확인이 가능한 교인들이 함께 예배를 드려야 한다. 공회는 이런 교회론의 근본이 구약적이며 너무 외형에 붙들려 있다고 봤다. 그래서 1교인 2교회 예배를 구조적으로 항구적으로 채택했다. 반대로 1교회 1목회자. 1목회자의 1교회 원칙이 있다. 마치 1가정의 1남편 1아내와 같이 교회도 목회자와 교인은 2중 소속을 갖지 않는다. 공회는 1목회자 2교회 담임도 흔했다. 1목회자 4교회도 있었다. 그래서 부공3의 연구소 직원은 여수에 본 교회를 두고 부산과 세종과 서울에 제2교회를 개척했고 운영한 사례가 있다. 분리가 좋으면 언제든 분리하고, 합하는 것이 좋으면 합하되, 병행이 좋으면 병행도 한다. 합하는 것이 좋을 때 예배의 방법은 고정적으로 실시간이 된다. 이렇게 교회론과 예배론이 자유롭고 가변적인 것은 자유주의적 진보 신앙에서나 가능하다. 보수적 정통교회는 철저히 금지한다. 공회는 그 신앙과 내용은 철저하지만 그 형식은 꼭 필요할 때 자라 가는 과정에 다양성이 있다. 이렇게 보수와 진보, 고수와 변화를 함께 가지고 나가면 반드시 속화가 되어 예배의 경건과 조심을 잃는 것이 기독교사인데 공회는 갈수록 더 엄해 졌고 어느 교파보다 예배의 경건이 뛰어 나다.

* 천재지변에서 예배를 변형한 사례
서부교회 주일학교가 매주 8천명이 출석하던 시절, 믿는 가정과 걸어서 오는 학생이 많아야 2천명을 넘기지 못했다. 멀리서 시내버스를 타고 오는 상황에서 폭설이나 태풍이 오게 되면, 교회는 천재지변을 뚫고라도 본당에 오는 것을 원칙으로 삼지만 건강과 가정 환경과 아이들의 신앙이 준비 되지 못하여 무리가 되는 경우, 반사가 아이들의 집에서 주변 아이들을 모아 놓고 따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했다. 이런 경우 본 교회 출석으로 모두 보고 된다. 이 번 전염병의 경우, 바람소리에 놀라서 천재지변이라고들 하니 이 문제를 두고는 논쟁할 일은 아니지만 일단 원칙만으로 말한다면 전염병은 천재지변이며 예배는 각 가정에서 드릴 수 있다. 주일 아침에 빙판이 되어 차량 운행이 위험할 때 우리는 교통사고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교회 차량을 운행해야 할까? 이 것은 교리로 획정할 수 없다. 운전자와 탑승 교인이 순교를 넘어 설 신앙이면 당연히 해야 한다. 그 정도가 아니면 아나니아와 삿비라의 연보처럼 자기 실력과 신앙을 넘어 서서 희생하다 오히려 죄로 망한다. 그런데 빙판은 운전자와 탑승자만 목숨을 걸면 된다. 중국 폐렴처럼 차량에 따라 붙어서 온 동네에 흩날리게 되는 전염병이 문제라면 이 것은 예배당으로 가는 내가 죽으면 되는 문제가 아니라 죽기 싫은 다른 사람들에게 질병을 흩날리는 셈이 된다. 사망이란, 나의 생명을 내가 포기하는 것은 나의 자유지만 죽기 싫은 다른 사람에게 내가 죽어도 된다고 병원균을 흩날리고 다니는 것은 나의 자유가 아니며 나의 권리도 아니다.

* 일제와 6.25 점령 기간
흔히 백 목사님은 일제와 점령 기간에 예배당을 고수했다 하나, 목사님의 일지와 설교 내용을 보면 기도 하러 산에 간 적도 있다. 주일을 포함해서. 인민군의 경우 정규군이 점령했을 때는 예배당을 고수했지만 미군의 폭격과 빨치산의 대공습이 있을 때는 위천교회가 양측의 중앙에 위치하여 전투 현장이 되었다. 이 때는 장소를 피한 적도 있다. 또 일제가 예배당을 일본어 강습소로 징발했을 때 예배당을 내어 주고 바로 밑에 있던 교인 집으로 옮겨 예배를 드렸다. 내어 줬다는 의미는 맞아 가며 예배당을 진입하려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좋아서 내어 준 것이 아니라 국가가 하겠다니 예배당의 건물을 지킨다고 싸울 일은 아니라는 뜻이다. 밀려 난 것이었다. 독립운동가는 이런 경우에 총을 들어야 하고 돌이라도 들어야 한다. 그리고 감옥에 가기까지 해야 하고 불이라도 질러서 건물을 사용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교회는 독립운동을 하지 않는다. 건물을 뺏으면 예배당의 건물 때문에 싸우지는 않는다. 예배 순서에 천황에게 절을 하라 할 때 그 것은 거절했다.

* 신학교의 국가 승인 문제
교회들이 교회만 교회라 한다. 우리는 신학교도 교회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이렇게 말한다면 다른 교회들도 맞다고 할 듯하다. 목사를 만드는 곳이 목사가 활동하는 교회만 못할까? 교회의 종류 중에 하나다. 신학교만 근무하는 교수들이 있다. 신학교 강의와 예배는 다를까? 보통 다른 줄 안다. 박윤선 목사님의 신학강좌는 예배로 진행 되었다. 그래서 모두 그를 그렇게 존경한다. 그렇게 되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게 되기가 어렵다. 고난도 차원이기 때문이다.

다른 교단은 능력 부족으로 교육부 승인을 받지 못하여 무허가 신학교를 운영했다. 과거 석원태 목사님만은 공회와 입장이 같았다. 능력은 되나 국가의 통제를 받게 되면 교회보다 더 중요한 신학교가 바로 운영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면 어떤 분들은 교회의 머리는 주님이고 신학교의 머리는 총장이라고 한다. 이런 분과는 영어나 히브리어로 대화를 해야 의사소통이 될 터이니 별건으로 하겠다. 문을 닫고 들어 오라 할 때, 문을 먼저 닫고 그 다음 그 문을 발로 차고 들어 오는 사람과는 대화가 불가능하다. 행동의 순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의 순서는 서로 알지만 문을 잘 닫지 않기 때문에 강조를 한 것이다. 영어도 우리 말도 앞에 갖다 놓으면 강조가 된다.

신학교를 교육부에 승인 받으려면 교육법을 준수하겠다고 서약을 한다. 교육법은 단군종교인 홍익인간으로 교육하는 것이 입법 목적이다. 안호상이 깔아 놓은 기묘한 덪이다. 지금은 이런 의미가 퇴색 되었다. 지금도 남아 있는 더 무서운 낚시 바늘은 국가에서 신학교를 감사할 수 있고 필요하면 운영진을 교체할 수 있다. 고신대 총신대의 주인이 불신자로 바뀌는 사례가 바로 문제다. 그래서 공회는 능력이 있어도 신학교를 무허가로 운영한다.

공회는 양성원이라는 목회자들의 교육 기관, 또 하나의 교회의 예배 장소와 시간과 방법을 다양하게 운영했다. 유심히 들여다 보면 백 목사님은 서부교회의 모습을 겉으로는 철저히 보수만 한 것처럼 보이나 그 내용을 보면 한 해도 과거와 같이 한 적이 없다 할 만큼 지속적으로 변경 시켰다. 더 좋고, 더 옳게, 더 낫게. 아이가 자라 가면서 옷과 활동과 학습을 바꾸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더 낫게 한다는 것이 아이를 아주 버리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 1977년, 순복음교회 예배 때문에
서부교회는 저녁 예배 시간이었는데 1키로 떨어 진 구덕체육관에서 순복음교회로 기억 되는 예배가 있었다. 목사님은 설교를 중간쯤 하고 바로 교인들과 걸어서 체육관까지 가서 순복음교회 설교를 들었다. 다른 교회의 복음 운동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 해산 조리의 한 달
서부교회의 철칙 중에 하나가 아이를 해산하면 1개월 동안에는 이불 밖에 손도 내놓지 못하게 시킨다. 목숨 걸고 주일을 지키고 예배를 참석하라고 가르치는 목사님이 그 1개월 동안에는 교회 법으로 산모의 출석을 막는다. 1개월 조리가 잘못 되면 평생 신앙 생활에 건강 문제가 따른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래서 입원 수술 또는 건강 문제가 생기면 예배의 참석은 각자의 자유에 맡긴다. 각자 자유라고 해놓고 강단에서는 늘 예배 시간과 장소 때문에 목숨을 지킨 이야기를 하고, 일제 때는 예배의 방법 때문에 죽을 각오를 했던 이야기를 한다. 이 사례는 산모의 1개월 불출석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의 자기가 내일의 자기를 미리 당겨 사용하지 말라는 것이다. 한 사람을 시간 순서로 배열하면 어제의 자기와 오늘의 자기, 그리고 내일의 자기로 나뉘어 진다. 일반 교회는 건설구원을 모르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말하면 벌소리부터 한다. 공회는 건설구원과 심신이 물질이므로 복합 요소로 현실마다 다른 자기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안다. 육체의 안일을 위해 신앙이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인도를 위해 오늘의 자기를 어느 정도 어떻게 사용할지를 분할하고 배정하는 것이다. 최종적인 결정은 각자가 할 수밖에 없다. 다만 이 자리에서 글을 적는 것은, 예배의 장소와 시간과 방법은 구약과 달리 무조건 불변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인간적 안일과 세상을 향해 썩어 지는 속화를 위해 교회가 지켜 내야 할 정한 장소, 정한 시간, 정한 예배의 방법을 허무는 유혹을 개성 있는 자유의 예배니 은혜 시대의 교회 자유니 하는 말에 속지도 말아야 한다.

결론적으로,
예배를 쉽게 생각하여 연애 할 때도 더 나은 분위기를 위해 장소와 시간과 방법에 최선을 다하면서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자기를 기우려야 할 예배를 아이들 장난처럼 좌파들 대한민국 흔들기처럼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예배를 쉽게 바꾸려 할 때는 마치 바꾸면 안 되는 것처럼 지켜 내는 것이 맞다. 차가 좌로 치닫게 되면 핸들을 우측으로 꺾는 것이다. 그런데 예배를 무조건 바꾸지만 않으면 좋은 것처럼 정통 보수 교회들이 석고화를 시도하면 그 때는 예배란 변경 가능하다며 핸들을 좌로 꺾으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않는 신명기 5장의 한 길을 가려는 것이다.

국가는 건강 문제를 강제할 수 있다. 로마서 13장에서 하나님이 맡겼다. 교인은 이 문제를 하나님께 순종하듯 해야 한다.
예배 자체는 국가에 맡긴 적이 없다. 그래서 예배당 문과 예배 자체는 교회가 주님의 뜻에만 따라 진행한다.
교회는 예배당 문을 열고 예배를 드리는 곳이다. 국가는 그 교회 교인들에게 전염병 때문에 가면 안 된다고 막아야 한다.
교인들은 예배당에 가고 싶은데 국가에게 막히면 그 곳을 예배당 삼아 예배를 드리면 된다.
교회는 소속 교인이 1명도 오지 않을지라도 국가에 항의하지 않는다. 그리고 문은 열어 둔다. 자물쇠를 푼다는 말이 아니다.
이 때 교회와 예배와 문이라는 뜻은 볼 수 없는 신령한 교회, 단일의 교회, 주님이 머리 된 불가견 교회라는 뜻이다.
실제 어느 교인이 어떻게 해서 교회를 찾았을 때 정작 그 교회 목사는 숙소 대문에 막혀서 교회를 오지 못할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그 어느 교인이 혼자 예배를 드리면 된다. 대문이 막혔으면 대문 앞에서 예배를 혼자 드리고 가면 된다.



어쨌든
우리의 몸과 예배당 건물은 로마서 13장에서 하나님께 세상에게 맡겼다. 전염병 대처로 교인의 출입을 통제하는 것은 국가가 하나님의 심부름으로 하는 일이다. 그래서 목사와 교인들은 이런 천재지변의 생존 문제로 국가에 맞설 수 없다. 그런데 예배와 교회는 하나님께서 세상에 맡긴 적도 없고 맡길 수도 없다. 교회의 예배는 교인과 교회가 알아서 결정한다. 교회는 예배당 문을 닫지 못한다. 이 때 '문'이란 건축물의 입구를 말하는 것이아니라 교회의 예배는 닫을 수 없다는 뜻이다. 목사도 교인도 모두 통행금지에 묶이면 예배당은 텅 빌 수 있다. 문이 자물통으로 잠길 수도 있다. 열려 있는데 혹시 어느 교인이 우연히 어떤 마음으로 들어 가면 혼자 예배를 드린다. 닫혀 있으면 문을 부수고 들어 갈 것인가? 그 문 앞에서 혼자 예배를 드리면 된다. 기도 10초를 해도 하나님은 예배로 봐 주실 수 있다.


이 모든 일에 하나를 더하고 싶다. 성구를 함부로 인용에 신중해야 한다. 공회는 성경 100독을 하지 않으면 목사로 안수도 하지 않는다. 주일학생 시절에 20독을 하는 경우도 예사로 본다. 그렇지만 성경의 해석만은 신중에 신중을 거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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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3-01 08:32
    * 정한 장소의 이동 문제
    신풍교회는 1952년에 애양원 바로 앞의 마을 입구에 예배당을 건립했다. 1968년경 여수공항 개설이 있었고 교회는 활주로 한 가운데 위치했다. 보상금과 이주비를 받고 여수공항 건너편에 1970년경 이주를 했다. 그리고 교회 증축이 불가능 하고 예배당이 비좁아 2015년에 100미터 뒷편으로 옮겼다. 정한 장소를 옮길 수 있다.

    애양원교회는 원래 광주시에 있었다. 전염의 위험이 있다면 광주 시민들은 폭동을 일으켰고 총독부가 신풍리 1번지로 애양원 시설 전체를 이주했다. 이 때 애양원 시설 내에 있던 교회도 함께 이주를 했다. 전염병 때문에 교회를 이주한 문제였다. 이런 경우, 환자들이 정한 장소를 사수하겠다고 일제 총독부나 광주 시민들의 폭동에 목숨을 걸고 버틸 그런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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