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42) 서윤호, 평생에 감사하고 그리고 아직도 소망을 놓치 않다.

작성자
담당
작성일
2020.02.09
서윤호.

 

(집안적으로)

서부교회와 공회는 시작부터 다른 점들이 많다. 그래서 그런지 참으로 예사롭지 않은 분들도 많다. 어떤 분들은 좋지 않으면 면으로 참 기이하다. 대개 그런 경우가 많다. 그런데 몇몇 분들은 황금 보석처럼 참으로 귀한 인물들이 있다. 서윤호 목사님, 집안도 참 귀하고 형제분들도 한 눈에 참 귀인들이다. 공회와 서부교회의 잣대 때문에 역적처럼 되어 버렸으나 기독교의 일반 기준으로 보면 한국 사회에 첫 손 꼽으며 자랑할 기독교인 가정이다. 형제들이 다 위대한데 나는 그 중에 서윤호 목사님과만 특별한 사이다. 서영호 목사님이 얼마나 공회 기준에서 좋지 않은 인물인지 나는 서윤호 목사님께 들어서 알고 있다. 그 서 목사님도 공회의 편협한 기준에서나 문제가 있을 뿐이다. 한국 교계의 최고 실력자들만 모인 곳에서는 서영호란 이름은 독보적이다.

 

(처음 만날 때)

1979년으로 기억 되는 어느 날, 나는 집회 때문에 휴가를 나왔다가 서부교회 4층으로 막 옮겨 져 새 집 냄새가  배어 있는 임시 청년방에서 처음으로 만났다. 시력이 너무 좋지 않아서 두 눈 중에 한 쪽 눈을 초대형 성경에 바짝 붙여야 글을 읽는다. 그 시력마저 이후에 잃어 버리고 길을 갈 때 밝고 어두운 정도로 대략 짐작만 하는 정도가 된다. 이 시점에 좋은 분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되어 평생 좋은 부부로 살며 합천군 봉산면에 있는 봉천교회를 1984년 4월에 맡아 이제 36년을 채우고 있다. 서 목사님은 내게 162장을 가르친 분이다. 서부교회의 저녁 설교를 맡았을 때 이 찬송을 택했다. 그 분의 찬송이고 그 날의 설교가 계3:7의 거룩, 구별하고 구별하라는 말씀이었다. 공회와 서부교인의 상식이며 암송할 정도의 내용이다. 그러나 그 분의 설교는 녹음기의 재생이 아니었고 사무친 자기 책망이었다. 설교자가 자기 책망을 제대로 하면 성령은 듣는 교인에게 직접 책망을 하신다. 이 설교 후 백 목사님은 돌아 가실 때까지 그 설교를 재론했다. 그 설교는 위로 백 목사님도 또 아래로 나도 같은 은혜를 끼쳤다. 어떻게 하나의 설교가 위와 아래를 동시에 향할 수 있을까? 사장이 좋아하면 종업원이 싫어 하는 법이고, 설교가 남자를 두둔하며 여성들이 돌아 앉는 법이니 상반 된 전부를 붙들었다면 이는 사람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다. 성령의 역사는 인격이 기울어 질 때마 가능하다.

 

(나에게는 가브리엘 천사)

1945년생으로 백 목사님의 백도충 세째 아들과 친구다. 나보다 12세 위가 되는 연령차가 문제가 아니라, 이 분은 서부교회에 백 목사님의 부임을 기억한다. 그리고 당시를 두 눈으로 촬영을 했고 나는 그 분의 기억을 관람했다. 서부교회에 오기 전의 목사님은 그 분이 전혀 모른다. 오신 순간부터는 제일 잘 기억한다. 서부교회에 오기 전의 목사님은 경남의 거창 쪽에 아는 분들을 통해 재구성을 하는 데 불편이 없다. 또 서부교회에 오신 뒤에 유명해 진 다음에는 기록과 함께 증언이 많다. 1952년부터 1965년은 서부교회가 고신 시절로부터 공회 고유의 시기로 옮겨 지던 격변기다. 나는 그 분을 통해 공회의 발전 과정과 새 사명을 위해 마련 된 과정을 잘 파악할 수 있었다. 내게는 공회와 백영희 연구의 보배들이 모두 제공 되어 졌다. 그 중에 가장 정확한 기록들은 거의 이 분을 통해 나온다.

 

이 분은 형제 집안의 생일과 학교 입학 졸업 일자까지 모두 머리에 넣고 있다. 그 분의 모든 기억력과 기억 된 자료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닐까? 아니라면 다른 곳에 활용이 되었을까? 최소한 나보다 더 귀하게 사용된 곳은 아직은 모른다. 주님이 부족한 나를 위해 마련한 분이니 내게는 천사다. 1979년, 이 분이 한양대 사학과와 총신을 끝내고 서부교회로 왔을 때 나는 서부교회 4층의 청년방에서 처음 만났다. 앞을 보지 못하는 소경이다. 그는 머리에 모두 담고 있어 불편이 없다. 성경 어디를 읽으면 그 다음 구절은 그냥 보지 않고 읽는다. 성경을 거의 다 머리에 담고 있다. 시력의 불편 때문에 우수한 두뇌가 더욱 좋아 졌다고 봤다. 이 분을 만나면서 내 속에는 다른 사람이 성경을 읽으면 그 구절을 함께 암송하다 그 다음 구절을 계속 보지 않고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목표가 생겼다. 머리가 보통밖에 되지 않는 내게는 너무 큰 소망이었고, 이 소망 때문에 이후 덕을 많이 보게 된다. 1980년 7월에 제대를 하면서 나는 고향에서 시간만 보내던 동생들을 불러 함께 자취를 했지만 서 목사님과는 제일 가깝게 지냈다. 1991년 1월 서영호 목사님이 서부교회 3대 목회자로 부임할 때까지는 그 분도 인생 중에 내가 제일 아까왔을 것이고 나 역시 그러했다. 둘은 서영호 비판에 열을 올렸다. 서영호 박사는 총공회 사람이 아니다. 총공회 사람이 될 가능성도 없다. 우리의 대화는 기본적으로 이러했다. 그 이유는 서 목사님이 내게 더 잘 설명했다.

 

(훗날의 나를 위해 나를 꾹꾹 다져 놓은 분)

그리고 내가 제대 후 노동을 할 때, 첫 고비의 어려운 순간마다 현장에 나가는 내게 또는 현장에서 돌아 온 내게 한 마디씩 던짐으로 내 마음을 멀리 가거나 옆으로 가지 않도록 말뚝을 박아 놓았다. 이 분은 총신대를 다닐 때 차영배 같은 시대의 조직신학 교수들이 절절 매도록 만들었다. 이런 점은 나도 이해가 된다. 나는 막 신앙생활을 하던 고등학교 때 훗날 총신대 부총장을 지내며 총신대의 1990년대 최고의 차세대 지도자가 될 분과 성경으로 대화하는 중 가르치던 분이 계속 막히게 된 일이 있다. 공회의 초보적 학생의 상식적 성경 지식도 그 정도인데 백 목사님께 직접 배운 서윤호 목사님이 총신대의 학생으로 재학을 했으니 과목마다 교수들이 해외 신학 박사인데도 모두 간담이 서늘했을 것이다. 이 분이 외부 신학도 제대로 거쳤고 공회 내부를 제대로 알면서 당시 공회적으로 공회의 신학은 서영호 송용조 목사님이 세울 것이라고 할 때 서윤호 목사님은 나를 기대하며 내 손에서는 되어도 그들 손에서 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조목조목 날카롭게 풀어 갔다. 나는 모르는 것이 있으면 백 목사님께 직접 질문을 했다. 그러나 백 목사님께 묻지 못하거나 물을 수 없는 부분들은 이 분을 통해 챙길 수 있었다. 이 분과께 배운 것들은 오늘까지 내가 걷는 이 길을 펼치게 했다. 내게는 하나님이 보내 주신 가브리엘이다.

 

1983년 5월, 백 목사님이 세인트루이스교회의 후임을 맡으면서 카버난트 신학교를 가도록 했다. 영어 공부는 혼자 하는 것이지 신세 질 일이 없었으나 영어 공부를 하는 과정, 중간의 거쳐야 할 단계들은 서윤호 목사님으로부터 한 마디씩 듣는 것이 내게는 참으로 컸다. 또한 당시 토플시험은 연세대까지 가야 했다. 서부교회 편집실에서 백 목사님 설교를 들여다 보는 것 외에는 주일학생 심방과 노동과 국제시장 장사밖에 모르던 나에게 유학 과정에 필요한 외부 모든 것은, 급할 때마다 해결해 주셨다. 심지어 필수 서류 하나가 빠지면 헛일이 될 때 그 서류까지 부산에서 서울 대사관 대문까지 날라다 준 분도 그 분이다. 자기가 가고 싶었던 길을 내가 가게 된다면 모든 사람들은 뒷발을 잡거나 팽개친다. 백 목사님이 잘 되는 길을 자기 일처럼 밀어 준 분은 주남선뿐이다. 주남선의 위대하고 위대한 점, 출옥성도들에게서도 볼 수 없는 점을 하나만 꼽으라면 나는 늘 이 점을 든다. 자기 제자요 후배를 자기 앞에 세워 두고 뒤에서 죽을 때까지 힘껏 밀었다. 자기 중심이란 복음운동조차 내게 유리해야 좋지 내게 불리하면 외면해 버린다. 서윤호 목사님의 자세가 그러했다. 자기가 가고 싶었던 길, 장차 자기 형님을 비판하고 막아 버리고 매장할 인물, 그런데 그는 서영호 형님에게 질책을 받아 가면서도 내 편을 들었다. 나를 길렀다. 나를 위해서는 내 가족이 하지도 못했고 할 줄도 모르는 일까지 도맡았다. 그 이상을 다 적으려면 너무 개인사가 많이 나올 듯하여 이 정도로 그친다.

 

(다시 소망을 살려 본다.)

나는 1991년 1월에 서영호 목사님이 서부교회를 부임하게 되면, 나의 갈 길은 서영호 목사님 때문이 아니라 서영호 목사님을 서부교회로 불러 서부교회와 총공회의 본부를 주저 앉히는 서부교회 4층과 부공1과 모든 면에서 다시 볼 일이 없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서윤호 목사님은 끝까지 나와 함께 오늘까지 내가 걸어 온 이 길의 원로가 되고 선배가 되어 나를 위해 수고해 주실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서영호 목사님이 서부교회로 부임하자 서윤호 목사님은 그 동안의 입장을 바꾸었다. 이 날 이후 나는 오늘까지 서윤호 목사님과 다시는 얼굴을 보지 않았다. 오늘까지 내가 가장 아끼고 아쉽고 안타까운 인물을 생각할 때마다 서윤호 목사님이다. 우리는 서로가 말하지 않아도, 지금쯤 이런 일이 생기면 이런 표현을 이렇게 하면서 마음은 이럴 것이고 다른 사람에게는 이렇게 저렇게 연락할 것이라고 손금 보듯 서로를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와 함께

이 시대 가장 복 된 이 길을 함께 하며 정말 주님 안에 베드로와 바울처럼 함께 할 수 있었던 인물, 고마움을 10개 정도 추려서 적어 본다. 마지막 아쉬움 하나를 적어 놓는다. 이 글은 누구를 통해서든지 들어 갈 것이다. 연세와 현재 건강과 형편에 상관 없이 1991년 1월 이전으로 돌아 왔으면 좋겠다. 그 분을 그 분이 원래 말한 복된 길에 서서 이 노선의 역사에 그 분의 이름이 좋은 역할로 올릴 기회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이 문제로는 먼저 구걸하지 않았다. 그 분이 돌아 와야 한다. 회개하고. 부공2를 그 분이 비판하면 공중 분해 시킬 수 있다. 그 분은 그렇게 하는 것이 그 분에게 주신 보배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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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2-12 11:24
    서윤호목사님...

    정확한 연도는 기억나지는 않으나 25년전쯤에 서부교회 2층과 4층의 다툼이 격렬할 때 서부교회 밤예배에 서윤호 목사님이 설교하신 적이 있다. 서윤호목사님은 백목사님 설교에 언제 서윤호목사님이 거룩에 대한 설교를 하신 적이 있는데 구별이라는 설교에 대해 백목사님이 반하셨고 이 설교로 인해 목회를 보냈다는 말씀을 자주하셔서 개인적으로는 몰라도 설교록을 통해서 공회 교인들이 서윤호목사님을 많이 알고 있다.

    그날 밤 내가 본 서목사님은 완전 실명 상태였으며, 말에 거침이 없었다. 성구를 많이 외우고 계셨으며, 합천에 있는 교회에 교인은 사모님외에는 한 명도 없고, 마을에 장례가 있으면 주관해 주신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런데, 설교시 신임투표에 불복한 서영호목사님에 대한 말씀은 전혀 없고 오히려, 서목사님을 보호하지 않고 4층에 끌려가는 2층 교인들을 책망하였다. 서윤호 목사님이 주장하는 구별은 무엇이며, 그 양심은 형님에게 속한 양심인지 그날 설교를 듣고 무척 실망한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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