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37) 공회의 인재 양성은 고전1:27, '미련한 것들'을 주목한다.

작성자
담당
작성일
2020.01.28
(백영희의 인재 양성)
백 목사님이 평생 인재를 양성한 과정을 보면 고전1:27~28이 기준이다.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며'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밀어 낸다는 말씀을 실제 평생 시행했다.
물론 1950년대와 60대 초반에는 세상에 지혜롭고 강한 사람들도 함께 기대해 본 적이 있다. 그런데 결론은 마찬 가지였다.
사람은 초기에 아무리 강해도 세월 속에 물러 진다. 교회도 의인도 그렇다. 백 목사님은 갈수록 강해 졌고 좁아 져 갔다.
그 중에 인재를 길러 내는 면으로 봐도 확실했다. 여러 면을 두루 살피고 노력은 했다. 그러나 명확하게 한 길로 달려 갔다.

나는 이런 말씀 때문에 백 목사님에 의하여 알게 모르게 길러 진 줄을 몰랐다. 알면서 나쁜 짓을 하고 못난 짓을 했다면 불신자보다 더 악했을 것이나 적어도 그냥 모르고 살았다. 모르고 막 가는 생활을 했고 못 난 짓을 했으며 천하게 멸시 받을 만했다.
그런데 앞에서 중학교 3학년의 소풍을 통해, 몇 달 뒤의 고교 입학 시험을 통해 나는 신앙의 박해를 겪어 봤고 기도를 해 봤다.
다른 사람 신앙 체험에 비추면 참으로 보잘 것 없지만 내게는, 나의 주관 나의 기억, 나의 지난 날로만 말하면 역사적이었다.

어느 교파, 어느 지도자, 어떤 신학교, 어떤 교회라 해도 인재를 눈여겨 보고 우대하고 기를 때는
일류 대학, 우수한 집안, 성장 과정의 탁월한 경력, 좋은 성격, 모두에게 호감 가는 좋은 인물 인품 사회성을 선호한다.
백영희는 이렇게 좋아 보이면 신앙의 사람이 될 확률을 아주 낮게 본다. 사람이 된다 해도 아주 치명적 장애가 있다고 본다.
그렇다고 나쁘고 험하고 바보라고 다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모두가 버리는 인물들 중에 숨어 있는 보배를 찾아 본다.
공회의 최우수 인물들은 우선 목회자들로 살피면 쉽다. 막 가는 사람, 그렇게까지 그런 과거가 있는 사람들이 즐비하다.
그 대신 세상에서 초우수 인재들로 주목 받는 사람들은 거의 좀 그렇다. 그래서 막 뒤섞여 있다.
결론적으로 백 목사님은 현재를 통해 그의 과거를 읽는다. 그리고 그의 미래를 짐작한다. 그 예측은 짐작을 넘고 예언이 된다.


(그 것이 사람이 되었고? 그 것이 목회자가 되었다고!!!)
나는 최근까지 이런 소리를 들었다. 김영웅 목사님은 나와 직접 대화를 하면 극진하다. 그런데 뒤로 돌아 들어 오는 이야기를 들어 보면 나를 제일 낮추어 표현하는 듯하다. 공석에서는 00이... 라고 어릴 때 부르던 이름을 예사로 표현한다고 한다. 내게는 친근하게 들린다. 친하니 그렇겠지, 내게 직접 전화할 때 나를 극진히 대하는 그 분이 이중으로 그럴 분은 아니다. 그런데 나와 그 분을 이간 시키려고 그러는지 아니면 그 분이 이중적인지 단정은 못하겠으나 내게 전하는 이들은 아주 사람 같지 않게 여긴다는 분위기라 한다. 그렇다 해도 나는 이해가 된다. 그 분의 부모 형제 집안 전체와 한 식구처럼 살았던 시절, 나는 실제 그러했기 때문에 나를 과거로 보면 걸레처럼 던져도 별 이의가 없다. 그러나 은혜 생활을 제대로 한 이후의 나를 안다면 그 분은 나를 극히 존중한 태도가 맞다고 본다. 그 분은 연구소의 나의 직책을 소원했다고 한다. 이진헌 목사님과 두 분이 1982년에 서부교회 편집실의 설교록 교정을 지원했다고 당시 책임자에게 들었다. 내가 그 자리를 들어 갔다. 그렇다면 우리는 내가 앉은 이 자리가 백영희 목사님 소속에 최고의 자리임을 아는 3인 중에 1인이다. 나와 이진헌 김영웅, 그 중에 그 자리는 내가 1982년부터 지금까지 39년을 독점해 왔다. 그렇다면 바울의 불신 때와 바울의 신앙 이후를 두고 극진하게 존경하거나 지극히 비천하게 상대를 한다면 그 것은 이중이 아니라 변화 된 인격을 아주 잘 표시한 것으로 보인다.

1970년 2월에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43명이었다. 1994년에 38세 목사가 되어 그 친구들 중에 동창 결혼한 사람이 있었는데 대구 영대병원의 병실에서 사고가 나서 누운 남자 친구를 알아 봤고 전도를 했다. 순간인데, 그 옆에 부인인 듯한 분이 일어나서 동창이란다. 그러면서 나를 아래 위로 훑어 보고 '너! 사람 됐네...'라고 했다. 6인실이라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 여학생 출신 부인은 나의 모습에 자기도 모르게 실례를 한 것이다. 그리고 이어 나간다. 그 때 너 때문에... 그리고 몇 마디를 덧붙인다. 나는 과거 나를 아는 이들에게 이런 상황을 자주 듣기 때문에 '예... 제가 목사가 되는 바람에 좀 조심을 하다 보니 좋게 보였나 봅니다.'

이 것이 나의 진심이다.
그리고 나는 이 것이 우리 공회 거의 모든 목사들에게 해당이 된다고 본다.
나는 공회 거의 모든 분들의 과거를 잘 아는 위치다. 나는 나만이 그렇다고 보지 않는다. 대부분이 앞서고 뒷서고 비슷하다.
나를 고소한 사람들의 뒤를 이야기 한다면 아마 몇 권의 책으로 적어 내지는 못할 것 같다. 나와 반대 편에 서면 그들의 인간적인 면이나 약점을 업무 때문에 말할 때도 있으나 일단 아예 피해 버린다. 내가 나의 단점을 중심으로 말을 하니까, 못난 이들은 나의 단점을 들고 떠든다. 내가 내 단점을 들고 외치는 것은 내게는 장점이 된다. 내 단점을 상대가 떠들면 그 사람은 바보가 된다. ㄸ인지 된장인지도 모르고 찍어 바르고 다닌다. 그래도 그냥 내 버려 둔다. 그 것은 그가 선택할 그의 자유다. 내가 선택할 나의 자유는 나의 단점과 나쁜 점을 찾아 떠드는 것이다. 떠들면 씻겨 진다. 많이 씻어 놓으면 괜찮은 사람이 된다. 어떤 사람은 중학교만 나오고 노가다만 해놓고 어느 날 Ph.D를 땄다고 한다. 그 사람의 사기성은 내가 그의 평생을 다 꿰고 있다. 그 아들의 실적 만들기 과정도 다 안다. 그런데 나는 내게 있는 오해 소지만 밝히고 떠든다. 이 것이 나의 장점이고, 내 단점은 없는 것도 만드는 것은 상대방의 단점이 된다.




(고2 때 반사를 하다)
중3에 다니던 창동교회에서 주일학교 서기를 잠깐 했다. 초등학생과 키가 비슷했던 후배 한 사람은 학생들을 실어 날랐다. 나는 그런 후배를 보며 속으로 신기했다. 부러웠다. 그런 것이 좋은 줄은 알았다. 그런데 나는 그럴 용기도 신앙도 또 마음도 없었다. 그래도 부럽기는 했다. 남들이 반사할 때 그 반사들의 요절지나 연보를 거두어 보고하는 정도의 잔 심부름이 나의 일이었다. 1973년 고교에 입학을 하면서 반사를 시작했다. 교회에서 반사를 시키려고 교인 가정의 학생을 3명 정도 붙여 줬다. 학생들이 착해서 나보다 나은 정도다. 그런데 이제 분위기를 파악한 나는 적어도 말썽을 부리는 일은 그쳤다. 그래서 반사를 시켰던 듯하다.

1년은 아마 그냥 오가기만 한 것으로 기억한다. 1974년 2학년이 되면서 어느 날 갑자기 신앙이 들기 시작했다. 오전 예배를 마치고 나면 모두 일어 나서 나가는데 어줍잖은 표정과 자세로 괜히 혼자 울었다. 워낙 뭐 같던 것이 최근에 조용해 졌기 때문에 교회가 안도를 하던 차에 이 번에는 또 병이 도지는지 걱정이 되었나 싶다. 보통 예배 때 은혜가 되어 눈물을 보이면 옆에서 모두 부러워 하고 또 좀 그냥 놔 두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은가? 여러 사람이 나를 흔들며 무슨 일이냐고 걱정을 한다. 신앙 있는 분들이. 그 말은 정상으로 보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렇게 여러 주일이 지나 가고 있었고 나는 반사답게 이제 밖으로 나가서 토요일에 몇 명이라도 전도하려 했다. 걸음마 정도였다.

그리고 매월 시험을 치던 어느 봄날? 지금 삼성그룹 어느 회사의 사장을 거쳐 대표이사를 했던 반 친구가 당시 전학년 몇 손을 꼽던 최우등생인데 '너, 이 번에 몇 등을 했던데...'라고 부럽게 쳐다 본다. 워낙 실력이 좋고 교사들이 모두 챙기는 정도였고 경쟁심이 남 달랐기 때문에 이 친구는 학교의 내막과 최우수 학생들의 성적을 꿰고 있었다. 그 친구의 그 말이 떨어 진 후에 나의 성적은 전학년에서 10등 이내를 계속 돌았다. 공부에는 수준 차이가 있다. 되는 단계와 안 되는 단계가 있다. 거창고의 시험 출제와 상위 몇 등의 자리는 입학 때와 달리 그 때도 대단했다. 내가 졸업하고 좀 지난 뒤의 그 정도 실력은 서울대 입학이 가능했다. 1년 동안 함께 공부를 해 봤기 때문에 서로가 잘 안다. 내게는 이 소식이 중3의 가을소풍과 고입 시험에 이어 또 하나의 하늘에서 직접 내려 준 특전이었다. 모두가 나를 경이롭게 대했다. 나는 속으로 반사 몇 번 한 것을 보고 주님이 주신 격려로 알아 차렸다. 내가 달라 진 것이 없었으니까. 학교가 과목별 성적을 백분위로 적용하던 고2 끝까지 성적은 참 우수했다. 고2를 올라 갈 때 전교생의 영어 수학을 전반적으로 평가를 하면서 1등이 30점 나오기 어렵게 고난도로 시험을 출제한 적이 있었다. 이 학교는 1970년대부터 일반 수업의 영어 수학은 A B C 반으로 나누고 평소 수업 시간을 실력 별 이동 수업을 했고 학년 초에 수준을 나누기 우해 서울대 교양학부의 문제나 일본 문제를 주관식으로 출제하기 때문에 난이도가 고교 수준을 넘어 섰다. 내 점수가 너무 좋게 나왔다. 나는 그 결과가 주님이 주신 격려이지 나의 학습력과는 상관이 없는 줄 알았기 때문에 A반에 배정이 되었지만 B반으로 들어 갔다. A반을 맡은 선생님이 직접 불러서 왜 B반으로 내려 갔느냐고 물은 정도다. 나는 운이 좋아 잘 나왔을 뿐이라고 했다. 이미 나는 내가 바로만 걸어 가면 결과는 주님이 알아서 마음껏 그려 준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체험하고 있었다.


바로 이런 연장선에서 고교 3학년이 되고 나는 1년동안 수업에 거의 들어 가지 않고 졸업했다. 성적이 좋은 학생은 학교가 1교시부터 시작되는 학교의 정규 수업을 도서관에서 혼자 하고 싶은 대입 과목을 공부하라 했기 때문이다. 수업을 1년간 거의 다 빼 먹고 고3을 도서실에서 보낸 친구는 나 외에 2-3명으로 기억 된다. 5명이 넘지 않았다. 나는 공부가 체질에 맞지 않기 때문에 앉아 있어 봐야 성적 오를 것도 아니고, 또 열심히 신앙 생활만 하면 최종 합격이든 결과는 내게 필요한 대로 알아서 해 주실 것이니 굳이 수업에 들어 가 앉고 싶지를 않았다. 영어와 수학은 중 3년간 소홀히 했기 때문에 뒤늦게 하려니 체질도 맞지 않고 또 공회는 그런 것으로 신앙 생활에 도움 될 것 없다는 반지성적인 설교가 많다 보니 하기 싫은 공부를 포기할 때 핑계가 좋았다. 영어 수학을 빼고는 거의 학년의 1등 정도였던 기억이 있다. 이 때 소문 때문에 내 주변 나를 아는 사람들은 거창고 1-2등이니 서울대는 확실하다고들 했다. 나는 2류 대학만 갈 수 있으면 좋고 영어 수학 위주로 시험을 칠 때여서 사실 2류 대학도 어렵게 봤다.

대학 원서를 낼 때 전성수 조사님은 내가 목회에 소망을 가진 줄을 알았기 때문에 부산대 법학과를 지원하라 했다. 내게는 너무 높에서 원서 낼 엄두도 내지 못했다. 부산의 동아대 법학과는 해 볼 만 하지만 후기 대학이다. 전기 대학에 원서조차 내지 않으면 집에서 시끄러워 질 수 있다. 부친은 뭔가 조짐이 이상하면 '백영희'라는 이름을 고함 지르고 욕을 한다. 그래야 내가 조심을 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나를 고소한 이들이나 그 협조자들 중에는 경찰서나 법원이나 검찰에만 가면 나를 향해 '목사야!' '네가 총공회냐!' '서부교회에서 쫓겨난 가짜 목사야!'라고 소리를 질러 난리를 부리는 이들이 있다. 하나님의 멱살을 잡고 욕을 해야 이 땅 위에 뭔가를 얻을 때 훨씬 쉬워 진다는 것은 내가 부친을 통해 일찍 알았다. 인사불성이 되어 평생을 살았는데 믿는 사람과 부딪힐 일이 있으면 일단 교회를 잡는다. 그리고 공회 내 인물이나 그런 문제가 되면 백 목사님 이름부터 찾는다. 그래서 동아대 법학과와 과목이 같은 학교 중에 전기 시험을 치는 학교를 찾아 보니 서울의 건국대가 있었고 합격을 했다. 법학과 행정학과 정외과의 90명 모집에 36등으로 합격을 했다. 1학년을 마치고 법학과 36명을 뽑을 때 1등으로 배정을 받았다. 90명 중에 10명은 학교가 고시용으로 특별 선발해서 해외 유학까지 약속한 서울대 입학권 학생들이었다. 이 이야기는 이 번 이야기의 초반 어디쯤 백 목사님의 '공부는 1등을 해야 한다'는 말씀을 듣고 학교에 서류를 떼러 가보니 결과가 그렇게 되어 있더라고 했다.

그 때 나는 백 목사님이 내게 던진 말은 어떤 말이든지 현실에서 실제 그렇게 된다는 것을 알아 가게 되는 순간이었고, 고교 입학 시험부터 사전에 뭔가 공부에 관한 한 주님게서 내게 필요하면 결과를 그냥 주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대학 2학년 때 동아대학교로 편입을 했고 2학년까지는 학교를 다니고 3학년과 4년학년 때는 교재를 단 2권만 구입했고 학교를 2년동안 거의 출석하지 않고 노동현장과 국제시장 장사만 하고 지냈다. 지방의 2류대지만 모두 고시에 매달린 학과여서 공부 열기는 대단했다. 그러나 수석 졸업을 했고 2등 학생과 학점 차이가 컸다. 우연히 학교에서 발급 받은 4년의 성적표 전체를 친구들이 열람해 버리는 일이 생겼다. 1학년 교양과목 49학점이 평균 A였고, 내 기억에 2등조차 1학년 평점이 C였던 기억이 있다. 당시는 지방 2류대의 학점은 써먹을 데가 없고 이 학교의 법학과는 고시가 전부였기 때문에 학점을 고시 채점처럼 엄하게 했었다. 불가능한 점수를 본 친구들은 내게는 주님이 성적에 관한한 그냥 따로 적어 내려 보내는 세계를 몰랐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나, 그 바람에 나는 내가 받은 성적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49학점 중에 12 학점은 내가 수강 신청을 한 적도없었고, 수업을 들은 적도 없고, 시험을 친 적도 없는 과목들이었다. 그리고 전부 A 학점으로 나왔다. 그러니 수석이 됐고 나와 경쟁할 친구들은 없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불법이었다고 또 고소가 수십 건이 들어 갈지... 한 과목은 교수가 자기 일정 때문에 평일 과목을 토요일 오후로 돌렸다. 나는 주일학교 심방 때문에 토요일 오후는 수업을 참석하지 않았다. 국제법 과목은 한 번도 출석하지 않고 시험만 쳤다. 시험 치는 날 기도를 그렇게 했다. 반사 하느라고 출석하지 못한 것을 친구들이 모두 아니 주님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5분 정도 간절히 기도하는데 문제가 눈에 보였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그 문제 하나에 해당 되는 몇 페이지만 읽고 갔다. 그리고 최고의 점수가 나왔다.

이 과정은 나와 같은 학교 같은 과를 함께 다니고 서부교회로 함께 나온 몇몇 친구들 중에 성적표를 일일이 비교한 경우가 있어 헛말이 아니라는 정도를 적어 두고 싶다. 그 친구는 3학년으로 올라 갈 때 전공과 영어 2과목을 종합시험으로 쳐야 하는 과정에 함께 공부를 했다. 그 친구는 내가 공부를 하지 않고 또 영어는 아예 백지 상태인 줄 안다. 그는 자기가 종합시험 1등일 듯하다며 시험을 친 후에 점수 확인을 하러 함께 가자고 했다. 나는 워내 이 시험에서 낙제만 아니었으면 했었다. 이 시험도 그 친구 때문에 기도를 특별히 했고 시험 치기 전에 두 과목에 출제 될 문제를 기도 중에 받았다. 나는 통과만 자신이 있었다. 그 친구의 성적은 그 친구의 큰 소리처럼 좋았다. 내 성적은 비교되지 않게 더 좋았다. 이후 그 친구는 나를 따라 서부교회를 출석했고 그 친구의 식구들이 전부 교회를 출석하는 바람에 나는 대학을 다니면서 서부교회 150개 구역장들 중에서 구역장도 하지 않으면서 내 성적이 20등급이 되었다. 내 성적 때문에 나 권사님은 4등 구역장이 되면서 권사님은 나의 모든 말과 행동을 5층 목사님께 일일이 알려 드렸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당시에 몰랐다.

이런 과정을 지켜 본 목사님은 나를 목사님 평생에 단 한 번, 목사님 손으로 미국에 신학 공부를 보낸다. 그리고 향후 교리를 맡겼고, 1988년부터 양성원에 교수를 시켰다. 백도영 고소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그 분은 나의 양성원 제자다. 그런데 그 분은 법원에 나를 고소하면서 미국에 유학을 갈 때 백 목사님과 전혀 상관이 없다고 주장을 했다. 그런 주장이 밑받침 되어 승소를 하고 고소자가 얻고자 하는 것을 모두 얻는 시작이 되었다. 나라는 인간은 원래 백영희 목사님과 아예 상관도 없고 신학을 맡기거나 할 그런 게재가 아니라는 것이 고소인의 주장이다. 나의 주장에 따르면 나는 조상 때부터 백 목사님이 기도로 관리해 왔고 나의 성장 과정은 목사님께 보고가 되었고 관리가 되었다. 내가 몰랐을 뿐이다. 결과적으로 볼 때 또한 설교록과 공회의 각종 기록으로 볼 때, 나는 본디 출생과 어린 시절은 나 스스로 적은 것처럼 참으로 못났고 나쁜 인간이었으나 어느 순간 나는 이 노선의 모두가 피하고 도망 가게 되며 비어 있는 최고의 자리에 앉아 버렸다. 그런데 고전1:27~28을 보면 못나고 나쁘고 보잘 것이 없기 때문에 높은 곳에 올려 놓아 봐야 교만해 지려 해도 워낙 출신과 수준이 그러니 교만하기는 어려울 인간이라 그래서 귀하게 사용하고 있나... 이 것이 공회의 인재관이다.

부러 나쁜 인간이 됨으로 인재가 되려는 사람은 막아 놓지만
멋 모르고 수준 낮게 산 우리 평범한 못난 사람이라면 이 노선에서는 소망이 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겉 보기에 좋아 보이면 고전1:27-28 말씀 때문에 훗날 잘 되기가 아주 어렵게 본다. 모두가 하찮게 보면 나를 돌아 보면서 적어도 나보다는 낫지 않을까 소망을 가져 본다. 나의 짐작과 소망에서 끝이 났을까? 아니다. 내가 속한 부공3 공회 내에는 세상 어디 내놓아도 괜찮을 최우수 인재들이 신아까지 최고로 갖춘 경우가 더러 있었다. 하나도 빠짐 없이 모두 세상 깊이 가 버렸다. 이제 다시 돌아 서도 평범한 신앙 되기가 빠듯할 듯하다. 그 대신 이미 부공3 안에는 나와 함께 목회하는 세대를 이을 이들이 더러 보인다. 한결같이 전혀 그럴 정도가 되겠다고 미리 내다 볼 수 없었던 이들이다. 그래서 이 노선이 감사하다. 그래서 이 노선이 신앙의 노선답다. 이 노선 만세! 이렇게 부르고 싶다. 그래서 이렇게 당하면서도 오늘도 또 적어 본다. 나를 반대하고 비판하는 이들은 한결같이 위대하며 훌륭하다. 인격과 신앙적으로 고귀하다. 그래서 고전1장 때문에 우려가 된다. 나와 부공3 내 주변에 일반 사람들, 그런데 나나 너나 참 딱한 이들이 많은데, 그래서 탄식을 하면서도 늘 소망 속에 다시 돌아 본다. 진흙탕 속에 던져 진 보석이 있나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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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공회의 인재 양성은 고전1:27, '미련한 것들'을 주목한다.
담당 | 2020.01.28 | 추천 0 | 조회 164
담당 2020.01.28 0 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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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공회 신앙의 정상적 모습들, 나도 공회인이 되었다.
담당 | 2020.01.29 | 추천 0 | 조회 185
담당 2020.01.29 0 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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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군 생활의 실패, 백영희 사후를 준비하게 되다
담당 | 2020.01.30 | 추천 0 | 조회 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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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아무리 생각해도 감사하고 대견한 일들 - 1 (1)
담당 | 2020.02.01 | 추천 0 | 조회 268
담당 2020.02.01 0 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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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1980년, 다시 시작한 주일학교 - 2
담당 | 2020.02.03 | 추천 0 | 조회 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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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서윤호, 평생에 감사하고 그리고 아직도 소망을 놓치 않다. (1)
담당 | 2020.02.09 | 추천 0 | 조회 234
담당 2020.02.09 0 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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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WCC 동성 ... 귀신의 복병전, 논점 돌리기
담당 | 2020.01.05 | 추천 0 | 조회 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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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행사를 폐지할 시점 - 1980년 8월의 주교 야외예배 폐지 (2)
담당 | 2019.12.25 | 추천 0 | 조회 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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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 가진 반발심, 북조 이스라엘부터 오늘까지 (1)
담당 | 2019.12.15 | 추천 0 | 조회 357
담당 2019.12.15 0 3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