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36) 고교 입학 시험 - 첫 기도와 그 서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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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작성일
2020.01.27
1972년의 가을 소풍에 주일 문제로 나는 신앙의 첫 경험을 제대로 했다. 그런데 훗날 다시 짚어 보니 주님은 그 손으로 능력을 친히 직접 뜨겁게 내밀었기 때문에 내게 청구한 것이 있었다. 이제 제대로 믿고 살라는 요구였다. 그런데 나는 그 큰 체험에도 불구하고 공회의 모태 가정에서 덧 없이 세월을 보내는 일반 아이들처럼 그냥 습관적으로 교회를 다녔다. 다만 교회 주일학교의 서기 보조를 맡았다. 예배 때 나와서 간단하게 심부름하는 일이다. 나 스스로 신앙을 위해 노력한 적은 없다. 창동교회는 1971년 가을에 이진헌 목사님이 부임하고 1972년 봄에 가셨는데 그 6개월 기간에 과거 남녀 학년 별 담임제였던 주일학교를 서부교회 주일학교 식으로 완전히 전환을 해 버렸고 몇십 명 수준의 주일학교가 몇백 명까지 치솟았다. 교회는 뜨겁게 변화되고 있었으나 나는 서기부 심부름이나 할 정도였다. 이도찬 후배는 키가 작아서 중학생인데도 초등학생 속에 묻히는데도 자전거로 아이들을 실어 날랐다. 나는 신기하게 쳐다만 봤다. 그 가정은 뒤에 서울로 올라 가면서 동문교회의 주력이 된다. 그 가정 식구들이 이 글을 읽는다면 '그 친구 사람 됐네... 많이 컸어...' 라고 나를 내려다 볼 듯하다. 그들은 공회 안에서 잘 자란 신앙의 사람들이고 나는 훼방꾼이었다.

 

가을 소풍을 갔다 오고 매서운 겨울이 찾아 왔다. 12월로 기억 되는 어느 날, 학교에서 고교 진학 원서를 내라고 했다. 나는 샛별초교를 나왔고 현재 거창중학교를 다니니 그 다음에는 당연히 거창고교로 간다고 생각했다. 나는 45명 샛별초 성적도 항상 10등 주변에서 맴돌았고, 중학교 성적도 10등 주변이었다. 거창고의 입학 성적은 반에서 10등이면 안정권이라고 했다. 13등 정도가 합격 통과선이었다. 나는 집안 경제가 좋았기 때문에 담임 선생님들 집에 가서 직접 과외를 받은 적이 많다. 계속성도 없고 공부 체질도 아니어서 조금 다니다 말았지만 과외비를 낼 수 있는 가정은 많지 않다. 나는 시내 한복판에 공장을 하는 아버지와 15세 위의 큰 누님이 거창 사회의 주류층을 잘 알기 때문에 그 연줄로 늘 덕을 보고 살았다. 부모 그늘이 아니라 누님 그늘이 내게는 컸다.

 

1학년 때 담임은 과학 교사다. 그 집에서 가서 몇몇 친구와 과외를 받았다. 2학년 때 담임은 영어교사였다. 그 집에 가서도 과외를 받았다. 지금도 은밀하게 남아 있지만 합법적으로 교사에게 과외를 받던 때 시골의 분위기였으니 성적에 확실한 도움을 느꼈다. 과외를 한다고 실력이 무조건 늘지는 않는다. 학생의 의지가 있어야 한다. 나는 그렇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성적은 눈에 띄게 괜찮아 졌다. 대충 어느 정도의 효과가 있는지 점수로 계산이 되었다. 샛별초는 거창고가 운영했기 때문에 정직에 대해서는 칼날처럼 확실했다. 그러나 5학년 때 담임은 거창교회 바로 옆에 있던 집으로 불러 과외를 했다. 교장은 교사를 내보내고 이하수 선생님이라는 분을 모시고 왔다. 훗날 교장이 된다. 신용인 목사님이 초등 3학년 때 부임하자 김명자 사모님이 사택에서 몇 명을 과외했다. 이 문제는 백 목사님께 보고가 되어 바로 중단이 되었다. 사택 마당에 닭을 몇 마리 키웠다는 것도 보고가 되었다. 목회자는 부업이 금지란다. 어린 마음에 어리둥절했으나 내게는 많은 면으로 깊고 깊은 통찰력을 길러 주는 일화들이었다. 이래저래 주변과 비교하면 부럽지 않은 여건에서 공부를 했으나 놀든 열심히 하든 나는 항상 반에서 10등 정도다. 고등학교에 가서도 그랬다.

 

1973년 1월 초, 조금 있으면 고교 입학 시험날인데 어느 날 얼음이 얼고 추운 날이었다. 그지 없어 집 안에만 있다 무슨 일이 있어 길에 나가자 친구가 지나 가면서 '너 거고 원서 냈지?' '그런데...' '이 번에 학교에서 학생 유치에 열을 냈고 좋은 학생들이 몰리면서 커트라인이 134점이 될 수 있다더라'

그 친구는 훗날 고대 상대를 들어 가는데 평소에도 정말 공부에 전력했다. 나는 샛별초를 나왔고 이제 중3년을 돌아 다시 고거로 가는 것이니 집으로 가는 것처럼 그냥 가게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컷이 134점이면 나는 합격을 자신할 수 없었다. 원래 입학시험의 분포도는 커트라인 근처에 많이 몰리는 것이고 나는 예전의 컷이 127점, 그 정도로 들었기 때문에 안정권이라고 생각했었다. 그 친구의 말은 내 머리를 사정 없이 강타했다. 재수를 하게 되나?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낙제 걱정은 하지 않을 안정권, 반에서 10등이 내가 늘 숨어서 편히 놀던 나의 안식처다. 나는 이 때의 경험 때문에 평생 학생들의 학습과 진학 진로를 할 때 소중하게 써먹는다. 나는 최우수 학생들은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한다. 어중간한 학생이 원래 많다. 그런 학생들을 지도할 때는 내가 걸어 온 경험 때문에 열심히 강의를 한다. 실제 많은 효력이 있었다.

 

친구에게 그 말을 듣고, 바로 집으로 왔다. 시험 날까지 주일을 빼고 딱 7일 남았다. 공부할 기회는 6일이다. 시험에 떨어 질 확률 50%, 합격할 가능성 50%. 내 주변에서 나 정도 공부하는 사람들이 그냥 대수롭지 않게 들어 가던 학교를 들어 가지 못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 때는 합격을 해놓고도 5% 정도의 학생들은 학비가 없어 합격을 포기한다. 그래서 입학생을 발표할 때 거창중학교는 360명 모집에 50명 정도를 보궐 명단에 적어서 발표한다. 거창고의 숫자는 기억에 없지만 형제 중에 그렇게 들어 간 경우가 있다. 돈으로 들어 갔다는 말을 두고두고 듣는다. 참 창피한 일이다. 그 것이 더 아찔했다.

방에 앉아 잠깐 계산을 해봤다. 딱 6일. 10개 과목의 200개 문제로 200점 만점이다. 190점을 넘기는 학생은 거창중에서 2-3명 있다. 그들은 부산의 경남고 부산고, 아니면 마산고 진주고라는 명문으로 간다. 1980점대 중후반은 그런 곳에 응시를 했다가 떨어 지면 재수를 해서 들어 간다. 한 해에 그런 명문에 들어 가는 숫자는 1-2명, 많으면 3-4명이다. 거창고는 170점대가 되면 수석 차석을 생각한다. 장학생은 기본이다. 180점대면 거뜬하다. 나는 130점대를 살짝 넘긴다. 최소한 5점에서 10점을 높여야 안정권이다. 6일에 할 수 있는 일은 간단했다. 기출문제만 풀어 보는 것이다. 어머님께 책 한 권 산다고 돈을 받았다. 평소 같으면 책 값에 얼마를 더해야 10원이라도 용돈을 챙길지 계산을 할 것인데 시험을 한 주간 남긴 상태니 어머니도 반갑게 얼른 돈을 주고 나는 바로 서점에 가서 기출문제 10년치 책 한 권을 샀다.

 

 

그리고 집에 와서 안방에 앉은뱅이 책상을 놓고 어머니께 부탁을 했다. 이 시간부터 시험 날까지 화장실 가는 것 외에는 앉은 자리에서 먹고 자고 공부만 하고 주일만 책을 덮겠으니 무조건 도와 달라고 했다. 비장한 얼굴에 한 번도 하지 않던 공부 부탁을 하니 바로 그렇게 해주셨다. 책상에 앉아 먼저 기도를 했다. 미리 좀 했더라면 합격 걱정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먼저 나왔다. 믿는 가정에서 기도라는 것은 눈을 감으라 해서 질끈 감고 시간만 계산하다 눈을 뜬 것이 전부다. 이 번 기도는 난생 처음으로 나의 마음으로 내가 필요해서 간절하게 기도를 했다. '이 번에 한 번만 합격을 시켜 주시면, 평소에 할 일을 착실하게 잘 하겠습니다.' 이 말뿐이고 이 마음뿐이었다. 그 대신 그 기도는 간절했다. 내 평생에 기도치고 그 때만큼 그렇게 간절히 기도한 적은 없다. 남들에게는 대수롭지 않아도, 기도하는 자신에게 절박하면 그 기도는 뜨겁게 되고, 그렇게 만들어 놓은 주님은 남 몰래 그 기도를 통해 거래를 하신다. 태어 나서 처음 기도를 해봤다. 1주일, 이 번에는 죽도록 공부를 하겠습니다, 이 노력을 기도로 받아 주시고, 합격만 시켜 주시면 다음에는 이렇게 외상으로 기도하지 않고 미리 준비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기도의 내용과 성격을 분명히 했다. 이 때의 기도 때문에 평생 기도해야 할 사람에게 나는 하나님을 설득 시킬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하며 기도하라고 부탁을 한다. 무조건 주문처럼 반복하지 말고, 주님이 속아 주실 수 있고 설득을 당할 수 있고 한 번은 기회를 주실 수밖에 없는 조건. 너무 높게 잡아서 뻔히 불가능할 조건으로 높이지 말고 그렇다고 하찮은 것을 걸지 말고, 하면 할 수 있는 것으로 그리고 그렇게 한다면 주님이 한 번 들어 줄 수 있겠다고 자기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조건을 제시했다.

 

이 기도를 생각해 보면 믿는 가정에서 교회를 습관적으로 다니는 것조차 얼마나 큰 복인지 모르겠다. 백 목사님은 평생 부러워 해 본 것은 불신자 때 내 나라의 군인이 되어 보는 것, 믿은 이후에는 믿는 가정에서 자라는 것을 든다. 나는 모태 신앙이다. 그렇게 싫었으나 이미 내 속에는 정말 다급하게 되자, 기도가 나왔고 그 기도는 타 교회의 일반적 기도나 타 종교의 주문이 아니라 공회의 수준 높은 기도를 배운, 마치 잘 배워 써 먹는 것처럼, 그런 기도가 나왔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내게는 놀라운 집중력이 생겼다. 10개 과목의 두꺼운 책, 기억에 4~5백 페이지는 되지 않았을까? 그 책을 6일로 나누고, 다시 하루 분량을 시간 별로 나누어 표시를 해 두었다. 하루 20시간은 공부를 했던 것 같다. 한 번 읽으면 두 번 읽을 시간이 없다. 구경만 하고 넘어 가면 소용이 없다. 이 문제가 나오면 답을 맞출 수 있어야 했다. 영어와 수학 과목은 아예 빼버렸다. 그렇게 한 주간을 쏟아 부었다.

 

시험을 치고, 그 친구가 다시 내게 말을 건넸다. 그 친구는 학교에 아는 사람이 있는 듯했다. '너 점수 잘 나왔던데!' '어떻게 알아?' '나는 몇 등을 했어. 장학생이야. 그런데 너는 장학생 명단에는 들어 가지 못해도 바로 그 다음 성적이야.' 그 때 그 친구가 알려 준 점수는 167점이었던 듯하다. 영어 수학을 완전히 포기한 점수다. 영어 수학이 그 등수의 일반 점수로 나왔다면 수석이 가능했을 정도였다. 영어 수학 외에는 거의 만점이었다. 그 순간 내게는 앞에 적은 가을 소풍 때 느꼈던 그 체험으로 하늘을 나는 듯 했던 때와 정확하게 같았다. 합격이나 높은 성적이 아니라 나는 태어 나고 처음으로 기도라는 것을 해봤고, 그 기도의 효력을 봤다. 이로서 나는 하나님을 이제 확실하게 만난 사람이 되었다. 이 것이 기뻤다. 소풍 때의 체험은 습관적 신앙 때문에 불쑥 내다 질렀는데 친구 때문에 그렇게 그렇게 된 것이다. 이 번에는 신앙의 분야가 다르다. 또한 안정권으로 합격만 할 줄 알았는데 아예 하나님께서 내게 확신을 주시려고 표시를 아주 확실하게 했다.

 

나는 이 날 이후 나의 하나님과 내가 급할 때, 그리고 그 급한 것은 30세가 되도록까지 계속해서 공부를 떠날 수 없었던 세월 속에 주로 시험과 관련 해서, 그런 식으로 늘 오가는 결과가 있었다. 나는 반에서 그냥 10등 정도하는 평범한 학생이다. 나보다 학습력이 떨어 져도 조금 열심히 하면 나를 앞 설 수 있고, 나보다 머리가 좋은 친구는 별 신경 쓰지 않아도 내 앞에 있다. 나는 그 어중간한 그 정도였다. 그런데 시험만 치면 나를 아는 나의 주변 사람들이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결과로만 계속 이어 졌다. 나는 잘하지는 못해도 내 평생 학생이었고 또는 가르치는 선생이었다. 공부가 나의 전문 분야다. 나의 기적과 능력과 체험과 내가 하나님을 만난 이야기에 가장 깊고 뜨겁고 많은 분야는 공부였고, 그 중에서 시험의 결과였다.

 

 

사업을 하는 사람은 사업에서 주님을 만나야 하고, 사업에서 말씀으로 살아 본 능력을 가져야 한다.

가정에서 활동하는 주부는 가족과 가정 울타리 안에서 성경의 모든 기적을 가질 수 있다고 본다.

목회하는 사람은 목회에서, 정치하는 사람은 다니엘과 요셉의 경험을 그 정치 현장에서...

내가 자신이 있는 분야에서 주님을 만났더라면 세월이 지나면서 슬그머니 나의 선후천의 실력과 노력이 고개를 들 수 있을 듯하다. 나는 체질적으로 공부가 싫다. 맞지 않는다. 그런데 남들이 하니까 했고 나중에는 목사님 때문에 할 수 없이 계속했다. 그리고 나는 그 공부라는 울타리 안에서 공회 노선이 안내하는 모든 체험은 모두 다 겪어 봤다. 이 글도 이 노선의 교인들에게 이 노선이 기적과 능력을 선전하고 강조하지 않는다 해서 이 노선의 교인들이 순복음교인들처럼 방언하는 감리교인들처럼 뜨겁지 않고 그냥 미지근한 신앙으로 보지 않도록 적고 있다. 그리고 시시해 보이는 공회 사람들은 그들 속에 나와 같이 각자의 다른 분야 다른 생활에서 뜨거운 세계를 가졌고 또 지금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 나는 나의 체험 때문에 이후 어떤 공회 교인을 만나도 또 목회자들과 대화를 해도, 저 분 속에도 나와 같은 그런데 나와 다를 수 있는 그런 기적과 능력을 가졌겠지... 라고 기본 인식을 가지고 대화를 한다. 나의 장점 중에 하나는 내가 만나 보는 사람들 중에 그들이 신앙의 체험을 했다면 그 체험은 자기만 체험한 줄 알고 다른 사람은 그런 체험을 하지 않은 듯이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나는 내가 가진 체험은 다른 사람도 그런 체험을 가졌을 것이라고 짐작하는 것이다.
전체 4

  • 2020-01-28 04:34
    내부 안테나 90%. 외부 안테나 10%.
    사도 바울을 따르다가 헤어지고 사도 베드로 밑에서 제자로 살다 다시 사도 바울과 합류했던 마가복음의 저자 마가.
    마가의 부르심은 무엇이었는가?

    유대인의 구원을 위해 부르심을 받았던 사도 베드로.
    이방인의 구원을 위해 부르심을 받았던 사도 바울.
    두 사람 밑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원을 동시에 고민했던 마가.
    우리의 부르심은 무엇이겠는가?
    또한 나의 부르심은 무엇인가?

    공회는 노선으로 존재한다.
    공회가 사도 바울 노선이라면 그 반대편 사도 베드로 노선을 탐지하라고 외부 안테나 10%를 열어, 앞으로 외부에서 내부로 봇물 터지듯 유입될 사람들, 말씀을 듣지 못해 기갈로 허덕이는 수많은 사람들을 맞을 준비를 하라.

    이북땅 북한에도 봄의 기운이 싹트고 있는 이때, 70년의 눈물의 기도가 지하에서 꽃을 피우다.

    한 사람에게 한 공회에 모든 것을 주지 않았다면... 신앙세계는 우주 만큼 넓어서 수많은 신본의 노선이 잠재적으로 존재한다.

    부공3이 진정 정통을 이어가는 1등 노선이라면 2등 노선을 찾아 공회에 없는 면, 취약한 면을 찾아 가서 보고 배우라. 사람을 보내라. 탐방을 시켜라. 답변자의 미국 유학 생활처럼.

    어디 가서도 속화, 타락하지 않고 살아 남을 사람을 선택하여 보내라.
    온실 속 화초보다 광야 속 가시밭의 백합화 같은 정예 요원의 추수할 일군들이 더욱 절실한 말세지말입니다.

  • 2020-01-28 05:51
    토마스 선교사의 피가 대동강에 뿌려져 산정현교회 초석이 되었듯이 변선생의 피로 인해 북한에도 공회 신앙이 전해져 70년간 후손들에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스데반의 순교의 피로 사도 바울이 새 길을 걸어갔듯이 누군가는 죽어야 누군가는 악이라는 자기 감옥에서 살아납니다. 십자가 대속의 주님처럼 누군가는 돌맹이에 맞아 죽어야 다음 세대에는 화평의 봄날이 오려나 봅니다.


    변판원 선생이 6·25 때에 인민군들이 저 구덤재 에다가 잡아다 놓고 믿는 사람들 안 믿는 사람들 모두 다 반동분자들이라 하면서 잡아다 놓고 몇을 죽이는데 변판원씨는 이렇게 이래 나무에다 이래 달았어.

    이래 달아 놓고 옷을 홀딱 벗겨서 달아 놓고 이래 놓고 칼로 가지고 성경을 가지고 `이놈의 새끼 이거 믿느냐? ' 인제 예수님의 대속 믿느냐 하니까 믿습니다. 하니까 칼로 쿡 찌르고 이놈의 새끼 믿기는 뭘 믿어? 또 성경 찾아 가지고 `이것도 믿느냐?' `믿습니다.' 또 찌르고, 뭐 찌르니까 그 피가 흐르고 그러니까 뭐뭐 피가 나서 그거 안 그렇습니까? 그래도 `또 믿느냐?' `믿습니다.' `지금도 네가 못 내놔?' `예수님을 내가 내놓을 수 없습니다.' 이라니까, 아무리 해 봤자 그 사람이 꼭 예수님의 대속을 믿는다고 그 증거를 하고 안 내놓으니까 나중에는 이놈의 새끼 속에는 뭐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하면서 배를 딱 칼로 가지고 그려서 둥그러이 헤벼 파 가지고 그래 죽였어

    그 사람들이 그래 갔는데 그게 모릅니다. 그 사람들이 `야, 참 이래도 그런 거 보니 예수 믿는 거 이거 공연한 것이 아니구나.' 그이의 충성된 데에 하나님이 감탄돼서 동행했을 것이니까 그때에 그 심문한 사람들이 가 가지고 예수 믿어서 목사가 됐는지 뭐이 됐는지 모릅니다. 이게 빛이오.

  • 2020-01-28 12:37
    탈북민의 심정을 대신해 봅니다


    그 곳. N.P.

    나 다시 돌아 갈래.
    그 곳으로.

    압록강을 건너
    죽음의 고비가 수십 번.
    사선을 넘어
    자유의 몸이 된 지금.

    탈북할 때는
    지옥 같은 그 곳이었건만...
    현실관을 바로 깨닫고 보니
    지옥 같았던 그 곳이 바로
    지상낙원, 천국이었더라.

    나 다시 돌아 갈래.
    태어나고 자란 그 곳.
    죽음이 날 기다린다 해도
    나는 돌아가야만 하네.

    내 어깨에 매어진 대 사업
    누가 알랴.
    어디에도 낄 수 없고
    머리 둘 곳 없는
    이방인 철새와도 같은
    나그네 신세.

    주님 오라 하시면
    단숨에 맨발로 달려가
    부모님 묘소 옆에 잠드리.

  • 2020-01-28 18:26
    공회의 신앙은 '긴장' '준비'로 그 심정을 표시합니다.
    '긴장'이란 과거 일제와 6.25 점령기의 고문과 고형을 앞에 둔다는 뜻이고
    '준비'란 그 고문과 그 고형을 과연 이길 수 있을까, 이긴다면 어떤 수준으로 이길 수 있을지를 두고 말합니다.

    윗글을 읽고 문득
    우리는 늘 일제 때와 전쟁의 점령기를 모델로 삼고 자신을 돌아 봤는데
    탈북민이 겪는 지금 상황은 과거 일제와 점령기를 오늘에 가져 올 것도 없이 그냥 현재 우리에게 지나 가고 있습니다.

    신사참배를 교회사적으로 보면 당시 전부에게 지나 간 일로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박해의 대상을 총독부가 선별했습니다. 그들은 경제적 효율적 통치를 아는 이들입니다.
    그래서 무명의 일반 교인은 재주껏 피해 갈 수 있었습니다. 즉, 많은 이들에게는 그 박해가 남의 일이 될 수 있었습니다.
    6.25 전쟁 때도 1949년까지는 북한 내에서 공산당의 박해는 일부 지도자 외에는 연기가 되어 피할 수 있었습니다.
    점령 된 남한도 북한의 순차적 점령 때문에 신앙이 어중간한 사람들은 피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대부분은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냐는 오판 때문에 피난하지 않았지 점령 치하에 박해를 실제 각오한 이는 적었습니다.

    오늘 탈북민 중에 안전 지대에 도착하기 전에 믿게 된 분들 중에 확실하게 자기 신앙을 가진 분들은
    우리와 함께 사는 오늘 이 순간에 일제 말기와 6.25 점령기의 교인들 중에 박해를 직면한 분들과 입장이 같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글을 적고 이 글을 읽는 우리 대부분은 우리가 사는 이 순간 이 현실 이 시간에 역사적 박해를 겪는 교인들을 옆에 두고 또는 지켜 보고 있는 중입니다.

    일제 때 한국에 있던 선교사들은 일본 경찰이 그들의 국적 때문에 송환이 될 강대국 시민이었기 때문에 비록 고생은 했지만 선교사들 때문에 믿게 된 조선 사람들의 위험은 없었습니다. 일본인은 자국민이니 법적으로 최대한 보호를 받고, 선교사들은 포로 교환의 대상이어서 고난에 한계가 있었고, 죽여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 한국 사람은 총독부의 박해가 무조건 목숨 걸어야 하는 극단적 경우였습니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한국 교회의 순교적 신앙가들은 선교사들에게 이런 속절 없는 말을 해 볼 수 있습니다. '당신들에게 신사참배 환란은 큰 박해가 아니지만, 우리는 극단적이었다. 따라서 한 시대 한 교회에 함께 믿고 살면서 선교사들은 한국 교회의 지도자였으나 기본적으로 박해라 하기는 곤란하고 고난 정도만 있었다. 우리는 끝장을 봐야 했다. 이런 우리의 입장을 체휼적으로 느끼며 신사참배 반대를 외쳤는가?'

    한부선 등 몇 명은 체휼적으로 함께 고난을 겪었고, 거의 대부분 선교사들은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바로 오늘 우리에게 이 질문을 던져 본다. 대가 끊어 진 이북민들에게 복음을 전한 이들은, 국적이나 후원을 배제하고 본다면 남한 교회가 전도를 했고 그들을 신앙으로 지도했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한국 사람이 일선에 섰고 그들은 국적을 떠나 한국 교회의 일원이다. 한국인은 중국에 잡혀도 불편 이상은 별로 없다. 북한에 잡히면 정치적 담보가 되어 고난은 겪으나 풀려 나는 것이 거의 대부분이다. 그러나 북한 주민은 북한에 있든 중국에 있든 잡히는 날에는 극형이 기다리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전도를 할 때 나는 이 전도 때문에 위험할 수는 있어도 저 분들과는 기본적으로 박해의 차원이 다르고 위험의 정도가 다르며, 그리고 공회처럼 선교를 거의 하지 않거나 아예 하지 않을 정도의 오늘 우리는 북한 교인을 위해 앞에 선 분들에게 무조건 고개 숙이고 고맙고 죄송하다 해야 할 것이고, 북한 교인에게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죄책감을 느껴야 할 것 같다.

    같은 시대, 같은 나라, 같은 교인인데
    한 사람은 역사 최악의 평양 정권 앞에 내던져 졌고
    한 사람은 그들을 그렇게 믿도록 하기는 했지만 너무 안전하고
    우리는 일제 박해 때 미국에서 언론을 통해 한국 소식을 들었던 미국 교인들과 같은 형편이다.

    주님이 우리에게는 왜 현재 이런 상태를 주시는 것일까?
    우리에게 다음 순서를 미리 보여 주는 상황일까,
    우리에게 현재 상황을 감사하며 우리에게 다른 형태로 들이 닥친 더 고난도 환란의 성격을 보여 주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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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깬 주일과 예배, 세상이 깬 들 무슨 말을 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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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46
예배의 불변성과 가변성 - 공회의 '정한 예배' 원칙을 중심으로 (1)
연구 | 2020.02.29 | 추천 0 | 조회 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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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32
장군은 남의 아들을 전쟁에 내몬다. 그리고 자기 아들에게는?
회원 | 2020.02.27 | 추천 0 | 조회 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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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89
'시대 > 교계 > 이 노선'을 비교 시키는 주님
담당 | 2020.02.14 | 추천 0 | 조회 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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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77
E. 사후 30년을 돌아 보며 - 연구소의 역사적 고찰
담당 | 2020.02.11 | 추천 0 | 조회 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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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78
(43) 백영희와 가족, 나의 기억들 (진행 2)
담당 | 2020.02.11 | 추천 0 | 조회 301
담당 2020.02.11 0 301
2923
(44) 중국폐렴과 교회 출입 금지
연구 | 2020.02.22 | 추천 0 | 조회 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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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27
(45) 우한 폐렴이 '제20회 총공회'를 정죄하고 있는데, 알고나 있는지
담당 | 2020.02.25 | 추천 0 | 조회 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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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57
(46) 스쳐 지나 간 분들, 평생에 남겨 준 것 - 2차
" | 2020.03.22 | 추천 0 | 조회 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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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82
D. 사후 30년을 돌아 보며 - 연구소의 역사적 고찰
담당 | 2020.01.21 | 추천 0 | 조회 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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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86
(34) 연보를 들고 주일에 가게로 갔던 첫 죄, 이어진 죄들
담당 | 2020.01.21 | 추천 0 | 조회 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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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02
(35) 간간히 비추며 인도하신 순간들, 능력의 체험이라 하고 싶다.
담당 | 2020.01.26 | 추천 0 | 조회 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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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09
(36) 고교 입학 시험 - 첫 기도와 그 서약 (4)
서기 | 2020.01.27 | 추천 0 | 조회 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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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20
(37) 공회의 인재 양성은 고전1:27, '미련한 것들'을 주목한다.
담당 | 2020.01.28 | 추천 0 | 조회 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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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22
(38) 공회 신앙의 정상적 모습들, 나도 공회인이 되었다.
담당 | 2020.01.29 | 추천 0 | 조회 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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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29
(39) 군 생활의 실패, 백영희 사후를 준비하게 되다
담당 | 2020.01.30 | 추천 0 | 조회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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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47
(40) 아무리 생각해도 감사하고 대견한 일들 - 1 (1)
담당 | 2020.02.01 | 추천 0 | 조회 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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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52
(41) 1980년, 다시 시작한 주일학교 - 2
담당 | 2020.02.03 | 추천 0 | 조회 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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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73
(42) 서윤호, 평생에 감사하고 그리고 아직도 소망을 놓치 않다. (1)
담당 | 2020.02.09 | 추천 0 | 조회 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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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7
천주교 WCC 동성 ... 귀신의 복병전, 논점 돌리기
담당 | 2020.01.05 | 추천 0 | 조회 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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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86
성탄행사를 폐지할 시점 - 1980년 8월의 주교 야외예배 폐지 (2)
담당 | 2019.12.25 | 추천 0 | 조회 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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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51
감정이 가진 반발심, 북조 이스라엘부터 오늘까지 (1)
담당 | 2019.12.15 | 추천 0 | 조회 349
담당 2019.12.15 0 349
2522
C. 사후 30년을 돌아 보며 - 연구소의 역사적 고찰
서기 | 2019.11.12 | 추천 0 | 조회 341
서기 2019.11.12 0 341
2526
(23) 교회 경영론으로 본 백영희 (거창고 전영창과 비교하며) - 2
서기 | 2019.11.14 | 추천 0 | 조회 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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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36
(24) 사후 30년을 돌아 보며 - 연구소의 역사적 고찰
서기 | 2019.11.17 | 추천 0 | 조회 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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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77
(25) 전교조가 그린 1964년의 꿈, 그 실패와 실체
서ㅣ | 2019.11.22 | 추천 0 | 조회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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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88
(26) 타 교단과 같았던 시절, 총공회의 성장 과정
서기 | 2019.11.27 | 추천 0 | 조회 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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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3
(27) 전국의 공회가 한 가족으로
담당 | 2019.12.10 | 추천 0 | 조회 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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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7
(28) 교회를 방문하는 타 교회 목회자와 교인들
담당 | 2019.12.22 | 추천 0 | 조회 267
담당 2019.12.22 0 267
2703
(29) 개별 교회의 사경회, 공회의 인재를 실제 길러 내던 기회 (계속2)
담당 | 2019.12.31 | 추천 0 | 조회 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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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1
(30) 서부교회 4층, 강하기만 하다 실패
담당 | 2020.01.03 | 추천 0 | 조회 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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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44
(31) 내게 각인 시킨 목회자의 고난
담당 | 2020.01.09 | 추천 0 | 조회 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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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53
(32) 나는 적어도 의리는 있다. 나는 신앙의 의리를 본 적이 없다.
담당 | 2020.01.11 | 추천 0 | 조회 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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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55
(33) 공회의 굉장한 인재들, 그 어릴 때와 훗날
담당 | 2020.01.12 | 추천 0 | 조회 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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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최종 판결 (1)
이영인 | 2019.10.18 | 추천 0 | 조회 603
이영인 2019.10.18 0 603
2452
'이 말씀 전하다 이 말씀 때문에 죽는 것' - 종교인의 상식이 아닐까?
부공3 | 2019.10.27 | 추천 0 | 조회 517
부공3 2019.10.27 0 517
2481
연구소 정체성에 대한 참담한 시비 (6)
담당 | 2019.11.02 | 추천 0 | 조회 477
담당 2019.11.02 0 477
2509
화산, 지진, 전쟁이라는 파란이 주는 선물
서기 | 2019.11.09 | 추천 0 | 조회 319
서기 2019.11.09 0 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