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34) 연보를 들고 주일에 가게로 갔던 첫 죄, 이어진 죄들

작성자
담당
작성일
2020.01.21
공회는 의인들이 많다.
타 교단의 인물들을 접해 보면 더 나은 의인들이 더욱 많다.
그들의 내면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과 말을 볼 때는 의인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럴 때마다 나는 죄인이 된다.

나는 교리의 정확성을 두고는 다른 교회나 다른 사람을 평가한다. 객관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나는 노선을 두고도 역사적 걸음에 점수를 매긴다. 점수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인간성을 두고는 점수화 객관화가 어렵다. 그런데 내가 워낙 수준이 낮다 보니 내 주변 모든 사람을 평가할 때 인성 부문만큼은 내가 모두에게 최대한 점수를 후하게 준다. 연구소 사이트에 적은 지난 20여년의 수만 개 글이 그럴 것이다. 공회가 절대 최고의 인물로 보는 서영호 박사님의 노선과 교리를 두고는 나는 평생 나쁘다 틀렸다 저질이라고 평가해 왔다 그러나 그 분의 인품 인성은 내가 감히 우르러 보기도 어려울 만큼 높고 귀하다고 적어 왔다. 내가 가진 교리와 노선의 정확성은 높다. 그러나 나의 인간성은 어릴 때부터 좋지 않았고 지금은 나이가 들었으니 더 악화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다시 나의 인성을 돌아 본다.

(주일학교 입학)
나는 주일학교를 공회 출발 교회인 거창의 창동교회에서 1962년에 처음 다닌 기억이 있다. 63년일 수도 있다. 확실한 것은 나는 학교를 입학하기 전에 '유치반'에 다닐 때가 되었다고 교회를 가라 해서 간 기억은 있다. 유치반 시절을 얼마나 다녔는지 기억은 없다. 그런데 1963년 3월에 거창초등학교를 입학했다. 그렇다면 한 해 일찍 학교를 보낼 계획 때문에 유치반을 1년 전에 보냈을까? 그렇다면 1962년이 된다. 만일 1964년의 정상적인 나이에 초등학교를 보내려고 생각했다면 1963년에는 유치반을 보냈을 수도 있다. 이 기억이 없다. 나 위의 형은 1954년생인데 한 해 일찍 학교를 보냈다. 나는 1학년을 재수하는 바람에 나와 학년은 4개년 차이다.


(연보를 들고)
집은 부자였다. 자가용이 있었다. 거창군 전체의 차량 중에 화물차와 버스 외에 승용차는 짚차 2대였고, 1대는 경찰서장의 백차였고 1대가 바로 나의 아버지 차였다. 돈은 많았다. 돈을 많이 봤다. 마루에 있는 큰 금고에 현금을 밀어 넣는 것을 매일 저녁 봤다. 그런데 용돈이라는 개념은 없었다. 잘 먹고 잘 살았다. 그런데 아이가 잘 먹고 잘 살면 이웃집과 비교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것은 일상사가 되고, 용돈이 잘 살고 못 사는 느낌의 기준이 된다. 용돈을 받아 본 기억은 없다. 아이니까 용돈이 늘 관심이었다. 어떻게 하다 1원이 생기는 경우는 있지만 그 것은 명절 돌아 오는 정도로 희귀했다.

주일학교 유치반을 가라 해서, 정식으로 집 밖에 처음 다니는 곳이 생겼다. 집이 도로변에 있었으나 집 앞의 대로는 어린 나이에 '신작로'라 하여 너무 넓었고 거리도 멀었다. 바로 앞에서만 노는 정도였다. 그런데 주일학교를 다니며 길 건너 조금 위에 만화 가게라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대문에서 왼 쪽으로 내려 가면 거창교회를 가는 중간 길이 나오는데 그 길을 막 돌아 서면 오른 쪽에 또 다른 만화방이 있었다. 거창의 중심인 나의 집에서 북쪽으로 100미터가 거창초교, 200미터가 창동교회다. 남쪽으로 100미터가 만화방이고, 200미터가 거창교회다. 어떻게 돈이 1원 생겨 만화방에 가서 1권을 읽고 왔다. 그 때 1원에 1권인 기억이 있다. 그 한 번은 나에게 너무 깊은 인상을 새겼다. 어떻게 해서든 다시 가야 했는데 다음 주일에 연보를 주시며 교회를 가라 했다.

나는 대문을 나와 위로 가야 하는데 대문 앞에서 잠깐 망설였다. 내 심장은 내 귀에 소리가 들릴 만큼 쿵쾅거리고 있었다. 교회로 가나, 만화방으로 가나. 아마 몇 초였을 듯하다. 분명한 것은 교회와 만화방을 두고 잠깐 마음이 왔다 갔다 했다. 그리고 바로 눈을 지끈 감고 왼 쪽으로 방향을 틀어 만화방으로 갔다. 주일학교를 다닌 지 몇 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이미 교회에서 거짓말하지 말라는 말들을 들었다. 교회를 다니기 전에는 믿는 가정에 자랐으나 그런 도덕이나 신앙 교육을 받은 기억이 없다. 아버지는 공장 운영 때문에 밥상에서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는 분위기를 가진 적이 없다. 언제나 잠깐 집에 들어 오면 먹고 씻고 공장으로 달려 가는 것이 전부다. 어머니는 부지런히 살림을 살거나 시간 나면 교회를 간다. 늘 전도나 심방이다.

연보를 손에 쥐고 주일학교 예배 시간 내내 만화를 봤다. 그리고 시간이 되어 집에 돌아 왔다. 만화를 본 그 예배시간은 너무 좋았다. 그런데 갈 때도 돈을 줄 때도 만화를 볼 때도 그리고 집에 들어 와서도 내 심장은 감당하지 못하게 뛰고 있었다. 내 평생에 그런 죄책감은 다시 없었다. 다른 죄를 짓지 않아서가 아니라 첫 죄여서 그렇게 컸다. 그 다음은 더 큰 죄를 지어도 가속도로 익숙해 져 갔다.


(이런 고백을 할 때마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할 때마다 이런 이야기가 지난 날 철이 없을 때 한 번의 죄를 회고하며 마치 멋 있게 돌아 선 치장으로 보여서, 내가 지도하는 주변의 어린 사람들이 시험에 들어 죄를 지을 때 훗날 돌아 서면 오늘의 죄가 자기를 멋 있게 만들 수 있다는 귀신의 속삭임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심각하게 느낀다. 그렇지만 한 번씩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죄에 대한 회개가 진정한 회개가 되려면 그 죄에 대하여 때려 죽이고 싶은 증오감이 불 타 오라야 한다. 신사참배를 해 놓고, 해방이 되자 어물쩡 넘어 가다가, 세계 최고의 의인이 되던 노년에야 아득히 먼 일제 때 신사참배를 했노라고 고백을 함으로, 그 고백이 들어 자기를 더욱 의인으로 만드는 사례들을 본다. 그 노년의 회개는 그를 더욱 빛 나게 만드는 훈장이 되지만 그 회개는 회개일 수 없다. 신사참배로 지은 죄보다 해방 후에 회개하지 않은 죄가 더 큰 죄일 것이고, 노년에 회개를 한다면서 그 회개가 자기에게 아픔이 되지 않고 오히려 자기를 더욱 치장하게 했다면 그 노년의 죄가 젊은 날의 신사에 실제 머리를 숙일 때 죄보다 크다고 생각을 한다.


나는 연보 1원으로 만화방에 갔던 나를 돌아 보며 신앙의 철이 든 이후 최소한 교회 돈을 가지고는 어떤 죄도 짓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그 때 나를 가지고 회계 집사님들의 심리와 교회 돈을 집행하는 각종 사례와 목회자들까지 비추어 본다. 나보다는 의인들이나 나와 같은 죄의 성향은 없을 리가 없다. 나보다 의인인 나의 주변 사람들을, 그들보다 더 죄인인 나의 심리를 돌아 보며 그들에게 나 같은 연보 돈에 죄를 짓지 않도록 막아 보려고 노력해 왔다. 어떤 때는 가장 가까운 동료이며 백 목사님이 가장 큰 돈을 맡긴 사람이 연구소와 공회 역사에서 가장 큰 경제 부정을 할 때 나는 그와 어울리며 연보 돈에 손을 댈 수 있는 기회가 무수했으나 끝까지 1원 하나에도 후회가 없다. 나를 믿고 연보했던 분이 절규한 적이 있다. 덕유산 그 추위에 한 겨울에 난방을 하지 않고 전기 장판 하나로 버티며 연보한 돈을 그런 인간에게 그렇게 뺏겼다니 너무 억울하다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쉽게 뺏기고 뜯기는 사람이 아니다. 그가 돈을 가져 갈 때 나는 이 노선의 자료와 연구와 노선과 정통성을 모두 가져 왔다.

옛날 개들은 먹을 것이 없어 길을 가다 보면 사람들이 몰래 두고 간 ㄸ을 찾아 먹는다. 그래서 한국의 개들을 ㄸ개라고 한다. 주인과 개가 들판을 걸어 가면 개는 주인이 먼저 먹을까 싶어 몰래 여기저기 묻혀 있는 ㅂ을 찾아 얼른 먹어 치운다. 주인은 그런 개와 그 ㄸ을 두고 다투지 않는다. 개는 그 것을 먹고 사람은 자기 할 일을 한다. 서로 사람이 다르면 서로 좋아 하는 것이 다르다. 최근 나를 상대로 수 없는 고소를 하는 분들이 계신다.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소위 정의와 진리다. 내가 추구하는 것은 ㄸ인가? 그들은 그렇다고 비판한다. 나는 반대 입장이다. 나는 그들이 마구 먹어 치우며 좋아하고 그들이 건졌다며 좋아 하는 것들이 내게는 모두 ㄷㅂ이다. 준다 해도 냄새가 나서 고개를 돌릴 것들이다.



어린 시절의 첫 죄, 내 평생의 첫 죄.
그 전에 다른 죄가 많았겠지만 나에게 기억 나는 죄들 중에 내 평생의 첫 죄, 그런데 내 평생에 가장 큰 죄, 나의 신앙 양심을 사정 없이 두드려 댐으로 내 평생에 죄를 제대로 파악하고 겪게 만든 그 죄. 그 1원짜리 죄를 가지고 이후 나는 나의 죄의 무게와 그 책임을 계산한다. 그렇게 해 보면 저울에 달아 본 것처럼 명확해 진다. 내가 실수로 교회 물건을 사면서 1천원을 더 지출했고 그 돈은 구매의 실수일 뿐이지 내가 몰래 가진 돈이 아니라도, 어릴 때 그 1원의 1천배가 된다. 이 죄가 내 심장을 그 어릴 때처럼 나를 쳤다면 심장미비가 바로 와야 한다. 그런데 그냥 내 실수로 교회 돈 1천원이 손해가 되었다는 계산상의 아쉬움만 남는다. 1천원의 죄가 작기 때문일까, 나의 양심이 그렇게 무디어 져 그럴까? 이 상태로 내가 나를 계산해 들어 간다면 1천원의 실수가 그 1원의 죄에 1천 배가 되고, 죄를 지은 다음에 느끼는 양심의 가책은 1원자리의 1천분의 1밖에 되지 않으니 그 때 1원의 죄와 오늘 1천원의 실수를 둔 나를 문책하려면 1,000 X 1,000 = 1,000,000. 즉, 1백만배라는 계산이 나온다.

그 때보다 지금의 나는 신앙의 위치와 제반 지식이 너무 크다. 이 변수를 다시 곱한다면 1백만배에 다시 10을 곱하고 다시 10을 곱해야 할 일이 몇 번인지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믿어 갈수록 더욱 죄인 중의 괴수 죄인일 수밖에 없다. 이런 계산을 면밀하게 하다 보면 다른 사람 앞에 고개를 숙일 때 그냥 숙이지 못하고 진심으로 고개를 숙이게 된다. 나는 이런 계산법을 백 목사님에게 배웠다. 1원짜리에 대한 나의 죄책감은 그 때 그냥 그렇게 느꼈다. 그런데 이후 그 죄를 가지고 오늘의 다른 죄를 계산하는 방법은 백 목사님을 만나지 못했으면 알지 못했다. 연구소를 운영했던 이유가 이런 것을 함께 가지면 우리가 죄와 싸울 때 더 유리하고, 회개에 더 밝아 질 것으로 생각했다.

이런 계산법으로 나는 동역자들에게 '내가 죄인'이라고 하는 수가 종종 있다. 그럴 때 맞은 편에서 '그래 이 ㅅㄲ야. 네가 그런 ㄴ이다. 내가 ㅋ로 네 배를 ㅆ셔 줄께'라는 말까지 직접 들은 적이 있다. 집회 마지막 날, 남녀노소 모든 교인들이 몰리는 곳에서. 그는 나보다 의인이다. 그래서 그렇게 분노했을 것이다. 그런데 적어도 그에게는 죄에 대한 계산법만은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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