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성탄행사를 폐지할 시점 - 1980년 8월의 주교 야외예배 폐지

작성자
담당
작성일
2019.12.25
(백영희의 서부교회 부임)

백영희는 1952년 부산의 서부교회로 부임했다. 지게 지며 목회하던 덕유산의 깊은 골짝에서 성경 하나로만 걸어 가던 그의 모습은 교인들에게 너무 촌스러워 실망을 안겼고, 기독교의 상식을 몰라 무시를 당했다. 6.25 전쟁으로 정부가 서부교회 길 건너로 피난을 왔고 북한과 서울과 전국 교회의 최고 신앙 지도자들이 부산으로 피난을 왔기 때문에 백영희는 그들과 너무 대비가 되었다. 그렇다 해도 백영희는 산 속에서 믿어 온 그대로 서부교회에서 걸어 갔다. 자신은 그대로였으나 교회의 기존 모습을 직접 손대지는 않았다. 광범위하게 자치권을 허락했다. 주일학교, 중고등부, 전도회, 성가대의 체제와 운영이 그러했다.

 

(백영희 식 교회 운영의 개혁)

1959년에 백영희는 고신에서 제명이 되어 교단의 지도자들로부터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고 또 제명 과정에 백영희를 반대하던 이들이 자연스럽게 없어 지게 되자 1960년부터는 저절로 모든 제도들이 백영희 식으로 모습까지 바뀌거나 바뀌기 시작했다. 주일학교는 남녀반의 학년 편제를 반사 단위로 소교회가 되었고, 중고등부 학생회와 성가대는 없어 졌다. 그리고 주일학교의 성탄절과 여름성경학교는 불신 학생들을 전도할 기회로 남겨 뒀으나 행사의 내용은 말씀 위주에 간단한 선물 하나 주는 정도로 축소해 갔고 장년반 성탄절은 별도 행사 없이 단순히 성탄절 예배만 드리고 점심을 떡국으로 먹고 바로 전 교인이 전도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이런 변화에 힘입어 서부교회는 가파르게 부흥이 되고 있었다. 다른 교회들은 교회의 체계와 운영을 활성화 시켜서 부흥이 된다는데 백영희는 전혀 반대로 걸어 갔는데도 부흥이 되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공회 노선의 부흥은 갈수록 내실이 튼튼해 지고 다른 교회의 부흥은 거의 세상식으로 바뀌어 가는 속화 방식이어서 대형교회치고 교회다운 교회는 없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성탄절조차 전교인 전도행사로 바꾸었고 연애나 문예활동에 치중하던 학생부 성가대를 주일학교 반사 생활에 전념 시키자 주일학생의 전도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주교의 부흥은 중고등학생의 부흥으로 이어 지면서 장년반까지 온 예배당을 가득 채워 버렸다.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 되었다.

 

(1980년 7월의 여름 성경학교)
1970년에 주일학생이 1천명을 기록한 후 매년 가파르게 부흥하던 주일학교가 1980년에 8천명의 평균 출석수를 기록하면서 전체적으로 정체 현상이 뚜렷해 지고 있었다. 주일학교만은 12월 25일의 성탄절과 여름 방학이 시작되는 7월 하순이 되면 3일간 여름성경학교를 특별 행사로 진행했고, 이 때는 빵 하나를 주는데 이 때는 오전 8시 30분의 행사에 12,000명에서 13,500명까지 학생들이 모여 들었다. 전국 어느 교회나 이런 행사는 반드시 하게 되어 있고 이런 행사를 하고 나면 이런 행사 이전의 평균 출석수보다 이후의 주일 출석수가 증가하는 것이 상식이다. 물론 몇 주 이상 계속 가지 않는다. 서부교회의 경우도 과거는 그러했다. 그런데 1980년 당시를 기준으로 서부교회는 최근 계속하여 여름 성경학교라는 특별 행사를 하고 나면 학생수가 오히려 줄어 들었다.

 

1980년 여름성경학교는 70년대까지 이어 지던 서부교회식 성경학교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평소 주일과 예배의 순서는 같다. 단지 찬송을 부르는 시간에 아주 간단한 주일학생용 복음성가를 몇 곡 가르쳤다. 요즘처럼 낯 간지러운 동화식 복음성가가 아니라 당시의 복음 성가는 어린이 찬송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여름성경학교 때만 그런 어린이 찬송에 해당 되는 찬송을 몇 곡 가르친다. 그런데 성경학교 마지막 날은 야외소풍이 있었다. 서부교회 주일학교가 1년에 예배당 밖으로 나가는 단 1회의 기회다. 요즘과 달리 그 때는 가난한 아이들이 많았고 그들에게는 빵 하나가 그렇게 굉장했고 또 이런 외부 행사는 하나의 꿈이었다. 학교의 봄 가을 소풍과 온 나라가 들뜨는 설과 추석 외에는 아이들에게 아무런 재미를 주지 못할 때였다.

성탄 행사는 불신자들까지 명절로 보내고 여름성경학교는 모든 교회가 요란스럽게 최선을 다하는데 서부교회만 행사를 하지 않으면 행사 때문에 다른 교회에 아동들을 뺏기게 되고 그 후유증은 예상 외로 깊었다. 그래서 백영희 방식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겨울의 성탄절과 여름의 성경학교 행사를 축소하여 진행을 하는데  이 행사 뒤에는 오히려 학생이 줄어 드는 현상을 백영희는 이상하게 여겼다. 그리고 핵심 반사 10여 명을 따로 불렀다. 백영희는 맡긴 체계를 통해 일을 하다가 그 체계로 되지 않거나 현장의 문제점을 파악해야 할 때는 교회 내 직분에 상관 없이 파악에 나선다.

서부교회 예배당의 3층에 반사들을 모아서 왜 성경학교를 하고 나면 오히려 다음 주간에 학생의 출석수가 줄어 드는가? 서문행 2층 부장이 야외 예배 때문이라고 짚었다. 참석한 반사들은 미리 말을 짜맞추고 온 듯이 그 순간 표정과 말이 꼭 같았다. 누구에게 물어도 누가 발언을 해도 그럴 일이었다. 벌써 현장 반사들로서는 그 문제점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다.

 

(서부교회 주교의 야외예배)
1만 3천명 학생이 버스로 움직이려 한다면 1대에 1백명을 밀어 넣어도 130대가 필요하다. 어디로 가겠는가? 무슨 행사를 할 수 있을까? 평소 체계가 완벽하게 잡힌 군대나 학교라면 몰라도, 아무나 끌어다 놓는 가난한 동네의 아이들로는 해결이 없다. 서부교회 뒤의 구덕산 수원지가 2km가 되고 걸어 가는 수밖에 없다. 아이들을 업고 안고 걸어 가면 40분으로는 되지 않는다. 결국 1시간을 잡아야 한다. 그리고 14,000명이 첫 반이 소풍 장소에 도착하면 마지막 반은 1시간을 기다렸다가 이제 출발을 한다. 마지막 반이 도착을 해야 전체 예배를 드리고 이제 야외 예배를 드릴 수 있다. 더구나 서부교회 반사들은 예배당에서 예배 방식 외의 행사는 본 적도 없고 할 줄도 모르는 노동자나 보따리 장사 수준이 대부분이다. 잔뜩 기대를 했던 아이들은 성경학교의 야외 예배를 한 번 하고 나면 실망에 고생한 기억만 남는다. 그래서 다음 주일의 교회 출석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한 마디를 듣자 백 목사님은 그 자리에 앉은 반사들의 표정을 보며 바로 1980년 7월 마지막 주일을 지난 직후 회의에서 앞으로 서부교회의 주일학교 야외 예배는 폐지한다고 결정을 했다. 정확한 수치는 당시 기록을 봐야 안다. 그런데 이후에도 성경학교나 성탄절이 지나면 학생들은 감소했고, 이를 회복하는 데는 늘 시간이 필요했다. 야외 예배는 너무 문제가 많아서 단번에 폐지를 했으나 성경학교 자체와 성탄절 행사란 교계적으로 너무 상식이었고 이런 행사 자체를 하지 않으면 서부교회 학생들이 출석하는 골목의 타 교회에 현란하고 선물 많은 행사로 넘어 가버리는 문제 때문에 최소한으로 계속 유지를 해 왔다.

 

 

(부공3의 성경학교)
백 목사님 사후 신풍교회는 성탄절을 그해부터 없앴다. 이로 인해 대구공회 성향의 교인들이 목회자 제명의 사유로 성탄절을 범한 죄를 다른 죄에 추가한 정도다. 그리고 성경학교도 그 다음해를 지나면서 없앴다. 신풍교회 목회자는 1989년 백 목사님 생전 마지막 해까지 서부교회 주일학교 부장을 했다. 주일학교의 속성을 잘 안다. 그리고 소신이 있고 교리와 공회사를 전담한 인물이다. 1980년 서부교회가 야외야배를 없앨 때 회의에도 주력이었다. 성탄절은 장년반 예배에 특송으로 한 순서 포함하는 정도였다. 물론 불신 학생들이 갑자기 많이 출석할 때는 주교 행사도 가끔 한 적도 있다. 신풍교회로 출발한 부공3은 대부분 그런 식이다.

 

(이제는 모두가 '성탄절' 행사를 생각할 때로 보인다.)
춥고 헐 벗고 배고플 때는 빵 하나가 전도의 기회였고 그 때 빵 하나로 목회자들이 나오고 이 나라 오늘의 교계 지도자들을 만들었다. 그 때는 전기가 없어 온 세상이 어두웠기 때문에 교회의 성탄 츄리는 그 반짝이는 불빛이 주님 없이 살아 온 나라와 인생들을 복음과 진리로 끌어 당겼다. 또 우리 나라의 성격상 남 앞에 설 기회가 없는데 교회의 성탄절에는 무대 위에 설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괜찮게 사는 가정의 좋은 아이들도 교회로 불러 들일 기회가 되었다.

 

오늘은 학교로부터 사회의 각종 시설과 프로그램이 아이들을 쉴 새 없이 먹이고 입히고 천하는 밤을 대낮으로 밝혀 놓았으며 아이들의 숫자까지 적다 보니 어디를 가도 공주가 되고 왕자로 환영을 받으며 무대에 설 기회가 수도 없이 주어 진다. 이런 상황에 교회가 아무리 성탄 선물과 행사로 아이들을 유치하려 해도 이미 잘 믿는 가정이면 몰라도 안 믿는 가정의 아이들을 불러 온다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불가능으로 보인다. 오히려 역효과가 확실해 보인다. 그래서 성탄의 교회 행사는 교회 주력들의 내부 잔치로 진행이 된다. 그렇다면 다른 교회들에게는 그런 성탄의 행사가 그들의 방식이므로 여전히 효력이 있겠지만 공회처럼 예배만 중심이고 예배는 찬송 기도 말씀으로만 진행하는 모습에 만일 다채로운 행사를 한다면 이는 신앙의 발전이 아니라 신앙의 퇴보와 속화를 재촉하게 될 듯하다.

불신 아동의 전도를 이유로 여름성경학교의 여러 행사가 있고 선물이 있으며, 또한 성탄절의 선물과 행사도 그런 연장선이다. 그런데 새로운 학생의 전도에는 전혀 상관이 없고 잘 믿는 가정이 평소에 멀리 하던 교회 내 세상식 이벤트로 행사를 한다면, 이는 공회 신앙의 근본과 내용을 변색 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목사 장로와 중심 교인과 반사들의 가족 잔치를 벗어 나지 않을 듯하다. 가족 단위로 조용히 성탄의 참 의미를 나누는 것이 오늘의 공회답지 않을까? 평소 해 보지도 않았고, 또 체질도 아닌데, 그리고 어떤 선물을 줘도 웬만한 것은 선물답지 않게 된 오늘에도 무조건 과거에 했으니 또 밀고나간다면, 수정 노선의 대구공회가 보수 노선의 부산공회를 향해 '비디오파'라고 모욕적 이름을 붙인 바로 그 욕을 스스로 뒤집어 쓰는 꼴이 되지 않을까?

 

오늘 우리의 환경에서는 그 어떤 시골 교회라 해도 여름성경학교와 성탄절의 행사란 이제 그만 하는 것이 공회의 신앙 내면을 아는 교회라면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전체 2

  • 2019-12-25 16:18
    공감합니다. 애초에 성탄절의 유래자체도 성경에서 기원한 것이 아니며 각종 이방 미신과 섞여 세상의 명절이 된 것을 그동안 해 오던 것이라하여 계속하는 것은 신앙이 아니니 이제 누구 눈치 볼 것도 없이 완전 폐지했으면 좋겠습니다.

  • 2019-12-25 19:00
    폐지가 문제가 아니라 심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의 울타리 역할을 했고 현장에서 보면 단속과 겸하여 전도의 기회도 됩니다. 한 면만 보지 마시고 양면, 다면으로 살펴서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대안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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