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22) 교회 경영론으로 본 백영희 (거창고 전영창과 비교하며)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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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0
(출산과 자녀, 그 교육)
아이를 아예 낳지를 않아서 한국의 인구가 급감하고 이대로 더 가다 보면 한국인이 멸종 될까 온 나라가 떨고 있다. 이미 한국인의 혼혈은 피할 수 없으니 외국 여성을 유치하며 세계화라는 이름 뒤에 숨으려 하나 사회의 발전 과정에 인구 감소가 따르면 이를 혼혈로 채울 때 상향이나 평균 유지가 아니라 하향 평준화가 되는 경향이 있다.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해도 속으로는 모두 고민인 듯하다. 그런데 이런 사회적 문제는 교회에게 교인과 교회의 감소를 의미한다. 이미 한국 교회 3분의 1은 주일학교가 없다고 한다. 백영희의 주일학교 운영이 그토록 그리워 지고 정말 이 시대를 향한 복음 중의 복음이었다는 감탄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의 주일학교안은 당대 가장 찬란한 교회 운영의 진수였고 오늘의 이런 재앙을 여유있게 상대할 수 있는 지도였다.

아이의 출산 문제도 심각하나 일단 아이를 낳아 기르는 부모는 자녀의 진학과 진로에 모든 것을 건다. 우리는 자녀들이 모두 모세가 되거나 여호와의 군대가 되었으면 한다. 이런 소망이 정말 있다면 우리는 아동 교육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 공회는 백영희 지도로 공회에 필요한 인재와 교인을 주일학교로부터 마음껏 받을 수 있었다. 지금 이런 시대에서조차 그렇다. 그런데 아동 교육이라는 방법론에서 본다면 우리는 백영희 당대와 비교할 수 없는 적수를 만났다. 다윗 때는 바벨론의 위협은 없었다. 솔로몬 때는 그리스의 알렉산더나 로마제국은 존재하지 않았다. 오늘 우리는 그리스 철학이 석권하던 시대처럼 이제는 전교조라는 고유명사가 교육철학과 시스템이 장악하면서 이 시대의 보통명사가 된 시대를 살고 있다. 눈치 있는 사람들은 아이들을 위해 학교를 피하고 있다. 이해를 한다. 우리는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지만 심각한 상황을 느끼고 있다.

심지어 공회 내에서 최고의 신앙과 지성을 가졌다고 자부하는 이들이 전교조의 정치와 철학과 운동에 깊이 감명을 받아 전교식 언행에 앞서는 사례도 있고 그들 중에 공회 분위기를 좀 아는 이들은 공회 내부인들끼리 대화할 때는 마치 전교방식을 비판까지 한다. 그러다 한 번씩 일이 발생하여 속에 든 것이 나올 기회가 되면 역시 골수 전교조다. 그런 이들이 공회에 앉아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인내력이거나 고도의 자제력을 갖춘 듯하다. 우리는 이런 이들이 결정적인 기회가 되면 손양원을 잡아 줬거나 백영희를 넘겨 줬거나 주님을 십자가에 넘기게 된다고 보고 있다. 적지에 들어 앉아 때를 기다리는 고첩들이다. 위장하고 잠복하고 때를 기다리는 이들, 이들을 성경은 가만히 넘어 온 자라고 한다. 그들이 이 글을 읽고 있을 줄 안다. 이런 글을 접할 때, 바로 그런 때가 돌아 설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자존심과 이 땅 위에 둔 소망을 접고 니고데모처럼 밤에라도 와서 나의 사무실 문을 두드리면 참 좋겠다.



('전교조'라는 교육계의 보통명사)
남녀를 구별하지 말고 섞어서 기르자는 것이 전교조다. 참 좋은 말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만들 때 아들만 두지 않고 딸도 함께 만들었다. 그런데 그 딸들을 우습게 안다면 딸들의 아버지가 되는 하나님께서 진노하실 일이다. 그런데 전교조의 남녀 차별 금지라는 사상이 훗날 교육 정책에 정체를 드러냈다. 알고 보니 초등학교 여자 아이들을 여교사보다 더 성인스럽게 꾸미게 만드는데 자기를 책임 지는 좋은 성인이라면 찬성을 하겠으나 밤 거리의 여성처럼 만들고 있다. 여성에게 자유와 인권을 보장하고 그들의 개성을 살려 주자는 좋은 말이 이런 결과를 만들었다면 이 듣기 좋은 말은 사람을 꾀는 간사였다.

전교조란 학교에 시험을 없애자 한다. 교사 그들은 시험을 치고 이 나라 최고의 직장을 잡았다. 최근에 아무나 교사가 되게 하자는 정책이 나오니 전교조는 시험을 치고 고생해서 교사가 되었다며 비정규직의 교사 임용을 반대하고 나섰다. 이렇게 나오면 그들의 좋은 말은 무슨 말을 해도 그들의 행동 때문에 모두 거짓말이 된다. 현재 이 나라의 교육은 전교조가 석권했다. 전교조 1세대가 정권을 상대로 투쟁에 나선 첫 순간 전국의 TV와 일간지가 일제히 보도한 그 인물이 거창고 동창이다. 함께 공부했다. 현재 한국의 초중고교는 학생들이 공부하지 않을 자유를 보장한다. 그 학생들이 훗날 철이 들었을 때 후회할 일들을 오늘 열심히 저질러 놓고 있다. 한국의 교육계가 한국의 청소년들을 인격적으로 실력면으로 바닥에 주저 앉히고 있지 않을까? 예전과 지금의 학생들을 가지고 수학 시험 성적을 보면 단번에 결론이 나온다. 그들은 학생을 공부하는 기계로 만들면 안 된다고 할 듯하다. 그렇다면 학교가 왜 필요한가. 학교 자체를 없애면 공부 자체를 하지 않을 터인데.

교육을 두고 이런저런 넋두리를 하다 보면 항상 '거창고, 전영창' 이름이 나온다. 전교조 성향의 인물들은 입에 침을 발라 가면서 거창고는 학생들의 자율을 최대한 보장하고 공부 외에도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밀어 주지만 성적은 오히려 탁월하게 좋아 진다고 한다. 새빨간 거짓말이다. 거창고의 성적 향상은 매로 만들었다. 매가 전부는 아니었으나 무자비하게 치는 그 매에 쫓기다 보면 성적이 그렇게 나오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 언론이 그 학교를 인터뷰 하는데 차마 기자 앞에서 그런 비법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을까? 학교 관계자들이 거짓말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때렸다는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자율을 줬다는 말만 했을 듯하다. 그렇다면 그 학교에 대한 글을 읽는 사람들이 그 학교를 모르면 때리지 않고 자율을 준 것으로 알 것이고, 나처럼 그 학교를 잘 아는 사람은 무자비한 폭행을 하지 않았다고 말하지는 않았으니 거짓말은 아니나 의도적으로 왜곡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1976년 2월에 내가 졸업하고 5월에 전영창 교장 선생님은 돌아 가셨다. 나의 3년 학교 생활은 1978년부터 시작 된 군대 생활보다 더 매를 사용했다. 그래서 나는 군 생활 3년이 어렵지 않았다. 고등학교 시절보다 덜 맞았다. 이 번 이야기는 그런 이야기다.


공회는 흔히들 강압적 분위기라고 한다. 내가 아는 공회는 그렇지 않다. 너무 단편적이고 편협된 기준으로 말을 한다. 좀 냉정하게 비교를 해 보면 바로 알 수 있는데, 공회는 실제 개개인의 자율과 개성과 자유를 마음껏 보장한다. 다른 교회들은 거의 그런 경우를 보지 못했다. 거창고 전영창의 경우도 남들은 개개인에게 자율과 개성, 자유를 마음껏 보장했다 하나 실제로는 종교 탄압까지 서슴치 않았다. 그 학교는 기독교 학교인데도. 그런데 이런 학교가 전교조의 배후처럼 원조처럼 또는 사상적 실증적 샘플이 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런 글을 적는다. 그들의 말은 참 좋다. 그런데 왜 '자율, 자유, 개성'을 보장하는 인간 교육이라는 말이 나오는가? 그 배경은 일제 때부터 이어 진 국가와 사회가 요구하는 병영식 학풍을 타파하고 현대 사회의 발전 된 방향에 맞는 행복을 추구하자는 것이다. 말이 좋다. 이상은 더욱 좋다. 그렇게 되는 것이 나쁜 것도 아니며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그렇게 만드려고 한다고 쉽게 만들어 지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사는 곳은 타락한 죄악 세상이다.


(전교조의 우상이 된 전영창과 백영희를 비교해 본다.)
'교회의 경영'은 목회다. '청소년 교육'은 주일학교와 중간반이다.
나는 백영희를 살피고 있다. 내게 준 기회로 내가 알게 된 것을 가지고 공회 이 노선 우리 전부에게 준 기회를 살피고 있다.

백영희 평생과 그 설교와 기록을 철저히 뒤져도 일반인이 거의 알 수 없는 면들, 그런데 꼭 눈여겨 봐야 할 부분을 살피고 있다. 청소년 교육을 두고 공회의 주일학교를 떠올리면 이 글을 읽는 분들은 거의 다 잘 안다고 생각할 듯하다. 그런데 백영희의 청소년 교육을 현재 한국 교육계를 장악하고 있는 전교조의 배후가 되는 거창고와 전영창으로 비교를 하면 모두에게 새로울 듯하다. 대부분의 사람은 두 인물을 비교하는 상황 자체를 좀 무리라고 보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 공회의 청소년 교육과 함께 교회 운영의 방법론을 잘 파악하도록 공회의 반대 편에 거창고와 전영창을 미리 대비 시키고 그렇게 길러 놓았던 것 같다. 빛은 그림자가 없는 사막의 대낮보다, 큰 건물과 나무가 그늘을 만드는 곳에서 빛이 더욱 빛으로 드러 나며 그 성질을 실감할 수 있다.

하나를 살필 때 관찰하는 위치와 기준에 따라 또 하나의 새로운 세계가 펼쳐 질 수 있다. 백영희를 지금까지 설교록과 교회 안에서 살펴 봤다면 한국의 교육계, 한국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계 측면에서 살피고자 한다. 청소년이라는 말은 보통 10대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청소년 법령에서는 9세부터 24세 이하다. 초중고 대학을 포함한다. 공회는 13세가 되는 초등학교 6학년까지를 주일학교라 하고, 중고교 학생을 중간반이라 하며 중간반은 대학 초년생을 포함하기까지 확대한 적도 있으며, 공회의 주일학교는 타 교단의 고전적 표현으로 말하면 '유년주일학교'만을 말한다.

공회는 '청소년의 교육'과 '교회의 운영'론에 대해서 체득적으로 잘 안다. 이 분야를 우리 사회의 일반 세상으로 가지고 나가면 최근 '전교조'가 말하는 교육론과 겹치면서 그 속에 들어 있는 내용은 극단적으로 다르다. 방법론으로 말하면 공회 외의 일반 교회의 청소년 교육론은 전교조와 같다고 보면 된다. 전교조가 평양 정권에 앞잡이 노릇을 하고 또 남한 사회를 붕괴 시킨다는 정치적인 면 때문에 한국의 보수 교계가 비판을 하고 있으나 본질적으로 보면 공회 외의 모든 교회들은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전교조와 철학이 같다. 공회의 교육 모습은 구 시대의 전통 교육법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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