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화산, 지진, 전쟁이라는 파란이 주는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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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작성일
2019.11.09
공회의 교리와 교훈에는 많은 특색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보배 중의 보배로 첫 손에 꼽을 교훈은 '현실에서 실제 환란을 당했을 때'를 일목요연하면서도 정밀 분해를 해 놓았다는 점이다. 너무 자세하여 누가 봐도 실제 그렇게 생각하고 걸어 갈 수 있게 되어 있다. 더하여 이런 점을 강조하고 싶다.



평화시보다 전쟁이 신앙에는 유익이 많다. 그러나 어린 신앙을 위해 우리는 평화를 먼저 기도하면서 전쟁을 준비한다.
부요보다 우리는 가난이 신앙에 유리하다. 그렇지만 가난해 지려고 노력하거나 가난 제일주의나 가난 유일주의는 배격한다.
몸이 아프면 신앙에는 너무 유리하다. 그러나 우리는 평강 가운데 충성하고 사명을 감당하라고 축복하는 것이 늘 먼저다.
자기 몸을 베어 버리면 자학이며, 괜히 돈을 없애면 물질개악설의 이단이며, 전쟁을 야기하고 다니면 십자가의 원수가 된다.
말씀으로 살면서 도저히 피할 수 없이 닥치는 것이 가난 전재 질병이라면 우리는 내심으로 횡재를 했다면서 계산을 한다.

어떤 횡재를 하는가? 그냥 쉽게 말해서 어떤 면으로 유익이 있는가?

지진은 고통이며 혼란이며 피하고 싶다. 그런데 지진은 평소 몰랐던 지표 내를 쏟아 낸다. 또 쌓였던 응어리를 풀어 준다.
그래서 보이는 겉만 계산하면 사람을 못 살게 구는 천재지변이지만 잘 계산해 보면 감추어 있던 보배들이 마구 드러 난다.
질병도 참으로 피하고 싶으나 평생 믿은 신앙이 헛말인지 실제인지 또는 어느 정도로 만들어 졌는지 미리 점검하게 해 준다.
국가적 전쟁이 발생하면 교회는 예배당까지 파괴된다. 그런데 교회는 가견교회 속에 기르던 불가견교회를 점검할 기회다.


2013년에 부공3의 연구소에는 6.25 전쟁과 같은 돌발 사태가 발생했다. 6.25의 가해자는 누군지 지금도 논란이 많으나
우리는 그런 세상 일을 가지고 교회를 살피는 하나의 사례로만 사용한다. 어느 쪽이 북이며 누가 남쪽인지는 관계가 없다.

전쟁이 나자 남북을 막론하고
일부는 도망을 갔다.
일부는 적이 이길 것으로 생각하고 미리 투항을 해 버렸다.
일부는 적이 질 것 같지만 적이 이기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적을 도왔다.
일부는 지든 이기든 목숨 걸고 최선을 다했다.

3년을 통해 남쪽 끝까지 밀려 왔고 또 북쪽 끝까지 올라 갔다. 그 바람에 남과 북에는 억지로 남북에 각각 남아 있던 사람들이 남과 북을 선택할 기회를 받았다. 남쪽에 있었으나 북쪽 편을 들고 북쪽을 위해 싸우거나 북쪽으로 올라 간 사람이 참으로 무수하다. 반대로 북쪽에 있다가 전쟁통에 피난을 왔거나 구월산과 38선 이북의 동해안을 무대로 게릴라 활동을 한 이들도 많다. 최소한 당시 전 국민의 표정만은 감출 수가 없었다. 밀고 내려 오니 웬지 얼굴이 밝아 지는 사람도 있고 밀고 올라 가니 어깨가 들썩인 사람도 있었다. 깃발을 들고 환영을 해 버린 사람은 나중에 남북이 자리를 잡은 뒤 자자손손 위험 인물로 관리 되었다. 영광군 신안군에는 한 교회에 65명, 66명, 70명이 집단 학살을 당했다. 해방이 된 줄 알고 며칠 일찍 태극기를 들었다가 지방 좌익들에게 당한 것이다. 북한은 오죽 하겠는가?



백 목사님의 사망,
총공회와 서부교회 전체를 뿌리까지 흔들어 버린 광풍이 불었다. 가견교회는 여지 없이 찢기고 뽑혔다. 폭격이 지나 간 원산과 같다. 가견교회를 두고 '하나님만 머리요 어떤 기관도 인간도 개입할 수 없다'는 교리를 얼마 전에 들었다. 그 교리에 의하면 백영희 장례식으로 서부교회와 총공회는 머리가 날라 갔고 온 몸이 갈갈이 찢겨 져 응급실을 통해 지금도 중환자실에서 대부분 호스로 연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완전하신 주님이 지금 그렇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서부교회와 총공회는 1989년까지 마귀 집단이었다는 말이 된다. 그 이후는 입에 담을 필요도 없다. 수류탄을 던졌는데 몸이 다치고 죽는 것은 당연하나 그 파편에 중생된 영이 죽거나 부상을 입었다면 그 영은 우리가 아는 영이 아니다. 영이 다르면 모든 것이 다 달라 진다.

1989년 백영희 장례라는 핵폭탄이 떨어 졌을 때 변동이 된 것은 전부 잘못 알고 잘못 만들고 잘못 붙들고 있던 가견교회의 부실 건축 부분이다. 장례식이라는 폭탄에 부서지고 날라 가고 찢겨 진 것은 '보이는' 면으로 교회처럼 보였을 뿐이지 실제로는 교회가 아니었다. 불가견의 실제 교회는 백영희 돌발 사망이라는 핵폭탄이 터진 뒤에도 변하지 않고 다치거나 없어 지지 않고 남아 있는 부분들이다. 부공3이라는 이 연구소를 운영한 교회들은 더 강해 졌고 발전을 했다. 핵폭발 한가운데 있었으나 거의 손해가 없었다. 서울공회는 100% 없어 졌다. 대구공회는 그런 줄 알았는데 지금 아주 견실한 편이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우리는 대구공회가 서울공회에게 붙들려 함께 죽은 줄 알았다. 부산공회1과 2와 4는 응급실을 통해 중환자실에서 지금 30년째 누워 있다. 심장은 멎지 않았으나 한 번씩 괴성을 지르고 팔다리가 요동칠 때가 있다. 살아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회생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보인다. 총공회를 비밀로 개최하는 정도면 지금 대뇌의 오른 쪽이 거의 날라 갔다는 것이고 지난 7월에 노곡동에 수백 개 시설을 하루아침에 몰래 다 없애 버린 것은 좌뇌의 타격이 심대하여 감정 기복이 도저히 통제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1997년에 설교록을 출간했다는 죄로 10여건을 고소 당한 적이 있다. 1975년 월남이 함락 된 후 한국은 6.25 후 최대의 위기를 맞은 적이 있다. 공회는 1975년 초의 함락을 보면서 5월 집회를 통해 아직은 공회 교회가 신세지는 남한의 사회를 더 지켜 달라고 기도했다. 그 때도 총공회 내의 좌익은 드디어 월남처럼 남한이 함락되면 백영희와 총공회 핵심 분자들을 전부 넘길 수 있다면 기대가 컸다. 백 목사님이 이런 식으로 설교할 때마다 나는 신경 과민이라고 생각했다. 1989년에 백 목사님이 당하고 그 이후 소련이 없어 지면서 그들 세계의 비밀이 모두 공개 되면서 비로소 백 목사님의 우려는 신경 과민이 아니라 영안으로 소련과 중공과 평양의 수뇌부가 침상에서 꿈을 꾸는 것을 실시간으로 읽고 있음을 알고 온 몸이 떨렸다.


2013년부터 부공3과 연구소는 수백 건의 고소로 7년을 지나고 있다. 법원이나 변호사 사무실에서 통지서 한 장만 날라 오면 목사들은 기도가 나오지 않고 설교 시간에는 갑자기 이웃을 사랑하라면서 상대가 원하는 대로 하나님도 그냥 내어 주고 진리는 전하지 않으면 간단하다면서 외친다. 그럴 때 총공회 교인 중에 평소 그런 성향이 있었던 사람들은 갑자기 발언을 하고 활동을 시작한다. 38선이 뚫리자 남한 안에서 갑자기 움직인 사람들이 있었다. 부부의 재산은 나눌 수 없다는 교인들이 있었다. 그들 부부는 교단 소속도 다른데, 돈은 나누면 안 된다 한다. 또 결혼도 하기 전에 미리 이혼까지 한 교인도 그런 말을 했다. 유치원 정도면 그렇게 말하면서 뭔가 멈칫할 것인데 이들은 지성인들이다. 노련하게 남만 지도한다. 최근의 어느 장관식이다. 실제 그런 이들이다. 부공3과 연구소를 이 땅 위에 최고의 가치로 두던 내부인들, 핵심들, 우리의 백영희 자료 전달에 평생 최일선에서 수고했고 만일 문제가 생기면 법적 책임을 지겠다면 선서까지 한 분들이 갑자기 태도가 변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부공3과 이 연구소는 내부의 신앙과 비신앙, 내부의 인본과 신본, 내부의 공회와 비공회, 내부의 진실과 허위를 그냥 알게 되었다. 하나님 앞에 설 때 심판을 받는다고 보통 그렇게 가르친다. 그러나 공회의 기능구원론은 매 현실이 심판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타가 알 수 있도록 한 번씩 시대적 사건이나 교회적 사태를 주신다고 깨닫는다. 이런 글은 그들이 평생 읽으면서 은혜를 받았고 실제 그렇게 설교를 했던 내용이다. 이 곳을 통해 이제 이 노선을 시작하는 분들에게, 그 분들을 쉽게 비판하지 말라고 적는다. 이제 시작하는 분들보다 수십 년을 앞서 수십 배 노력을 했고 모두가 그들은 변치 않을 것이며 또 변할 것도 없이 내면이 모두 이 노선이라고 여겨 졌던 분들이다. 오늘 그들을 쉽게 생각하면 새로 출발하는 분들의 훗날은 볼 것도 없이 그들처럼 된다. 그들보다 못할 것이다. 그들도 그랬으니 오늘 출발하는 사람은 몇배를 조심해도 될까 말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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