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오늘, 이 노선에서 본 현실

다니엘 11장을 통해 읽어 보는 오늘의 급변 정세

작성자
담당
작성일
2018.05.02
1. 국제정세가 급변하고 있습니다.
백 목사님이 생존해 계셨다면 설교 시간을 통해 이 시대를 읽으며 앞날을 밝혔을 것입니다. 1975년의 월남 패망을 전후하여 백 목사님은 일제 말기와 6.25 점령기의 환란을 눈 앞에 둔 심정으로 긴장하며 외쳤습니다. 당시 백 목사님의 특별 지시로 공회의 전국 강단도 마치 유신 정권의 나팔수가 된 듯 남침 위협을 막아 달라고 기도하며 남한의 국방이 곧 총공회 신앙이라는 식으로 몰아 갔습니다. 당시 이런 분위기 때문에 연구소의 회원 중 한 분은 극히 거부감을 느끼며 자기의 목회자인 공회의 어느 유력한 분에게 찾아 가서 '유신 정권이 독재를 이어 가려고 간첩 사건을 전부 조작하고 있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종이 그런 유치한 정치가들의 장난에 놀아 날 수 있는가!'라고 항의를 했다 합니다. 그 직원은 평생 그 때를 후회하며 그 때의 공회가 옳았고 그 당시를 지도한 백 목사님의 생전을 그리워 하고 있습니다.

2. 설교록의 글까지도 보이지 않는 분들
공회의 최고 핵심으로 평생을 살아 온 분이 '백 목사님이 설교 시간에 박정희를 칭찬했을 리는 없다. 만일 그 것이 사실이면 공회를 탈퇴하겠다'고 최근 공회를 탈퇴한 일이 있었습니다. 마치 여호와증인의 눈에는 66권을 아무리 읽어도 예수님이 하나님이라고 가르친 곳은 단 하나도 없고, 천주교인 눈에는 교황이 우리의 천국과 지옥을 결정하는 정확무오한 베드로라는 것이 모든 성경의 일치 된 기록이라는 착각과 같습니다.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보인다 합니다. 몸이 눈을 통해 듣고 보지만 마음은 뇌를 통해 보고 싶고 듣고 싶은 것만 따로 추려 장기 기억실에 보존하고 보기 싫고 듣기 싫은 것은 뇌에서 찾아 쓸 수가 없는 깊은 창고의 어느 한 쪽에 밀봉을 해 버립니다. 영어의 see는 눈에 보여서 본 것이고, watch는 보고 싶어서 본 것을 뜻합니다. hear는 들려서 들리는 소리지만 listen은 듣고 싶어 들은 것입니다. see & hear처럼 보고 들은 것은 돌아 서면 없어 집니다. 지금 보고 듣고 있는 중이라도 전혀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정도입니다.

지금 국제 정세를 두고 남한의 우리 교인들, 공회인들은 그들이 받은 신앙 때문에 이런 국제 정세를 앞두고 이사야처럼 회개를 외치며 재앙을 피할 길을 마련하고 있을까? 예레미야처럼 몰아 친 환란의 실체를 눈물로 전하고 있을까? 이 번 5월집회는 과거 어느 때보다 더욱 1975년 5월 집회의 백 목사님 심정을 헤아리고 오늘로 그 분과 그 심정을 옮겨 놓고, 이 번 5월의 강단에서 재독의 사회를 서든 설교를 직접 하든 그렇게 하리라고 기대해 봅니다.

3. 다니엘 11장
1975년 5월 집회 때는 에스라 공부를 통해 남한 교회의 위기를 위해 기도했고 당시 해결을 했습니다. 미국이 남북베트남의 전쟁을 종식 시키려고 북베트남과 평화조약을 맺고 키신저와 레둑토라는 양국의 외교부 장관들이 노벨 평화상까지 받았습니다. 그리고 미군이 남베트남에서 철수하자 북베트남은 바로 남베트남을 치고 베트남 전체를 공산화 시켰고, 남베트남의 신앙인과 자유인들에게는 몰살을 당하거나 쪽배를 타고 탈출을 합니다. 이후 북베트남은 남북을 통일한 뒤 미국과 다시 외교를 트고 오늘의 기분 좋은 공산정권을 구가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여전히 탄압하고 경제만 좋게 만들고 그리고 모든 것은 공산당의 독재로 내려 옵니다. 오늘 남한은 바로 그 공식에 대입 될 상황입니다.

이 번에는 다니엘 11장의 남방왕과 북방왕의 전쟁과 협상과 배신으로 이어 지는 기구하며 별별 일이 자꾸 눈에 들어 옵니다. 평소 설교록에서 배운 말씀으로, 백 목사님이 한 번도 설교하지 않은 다니엘 11장을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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