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오늘, 이 노선에서 본 현실

백 목사님의 국제정세에 대한 간곡한 기도

작성자
"
작성일
2018.04.22
1970년대 중반부터 1989년 돌아가실 때까지 백 목사님의 기도는 정말 뜨거웠고 절박했습니다. 일제 말기 6년과 6.25 점령지와 빨치산 치하의 3년을 신앙으로 겪고 승리했던 분이기에 그 기도는 너무 강했습니다. 평화에 잠든 교회를 노리는 맹수의 눈빛을 본 그는 깨어 있었습니다.

'이북을 이남에 붙여 주시고, 이남을 이북에 붙이지 마옵시고'
'소련을 미국에 붙여 주시고, 미국을 소련에 붙이지 마옵소서'

이유는 단 한 가지였습니다. 그래도 남한과 미국은 기독교의 나라였고 북한과 소련은 기독교를 박멸한 체제였습니다.
백 목사님의 기도가 계속 되었고, 남한이 적화 될 위기들이 수 없이 많았으나 모두 막아 지고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백 목사님이 돌아 가시던 해, 소련은 돌이킬 수 없는 멸망의 순서에 접어 들었고 오늘 남북의 상황을 만들게 됩니다.


현재 우리는 다 된 밥에 재 뿌리기만 없으면 됩니다. 지금 급박하게 돌아 가는 국제 정세를 두고 우리 모두 기도합니다. 치는 현실에 순응해 버리는 일반 교회는 세상 살이 때문에 기도하지 신앙을 지킬 걱정 때에 기도하기 어렵습니다. 이 노선 우리는 배운 것이 '환란에서 승리'이며 이를 위해 '고문과 고형, 그리고 순교'를 늘 각오합니다. 문제는 우리의 지식만 그렇지 우리는 일반 교회보다 세상에게 더 약하며 바뀌는 현실에 굴종하는 것이 아주 종이 한 장처럼 쉽고 가볍습니다.

주님이 더 이상 봐 주시지 않는다면 그 동안 준비하고 걸어 온 자기 신앙으로 감당할 수밖에 없겠으나, 일단 우리는 기회를 다시 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혹시 나는 준비가 끝났다 해도 내가 맡은 주변의 약한 사람들 때문에라도 기회를 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역사는, 인간의 모든 노력이 자멸을 향했으나 주님이 신앙의 계통을 맡긴 교회와 사회는 그 목적에 맞는 결과로 끌어 가셨습니다. 이 노선 우리와 이 사회의 언행은 북한보다 더 처참해야 마땅하지만 이 노선과 이 사회는 주님의 말세적 사명을 가졌고 품어 온 곳이므로, 우리의 망할 생각과 행동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인도와 보호는 그렇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오늘처럼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이 노선 우리가 소망을 가지는 이유는 이 한 가지뿐입니다.


남북의 당국자는 죽으려고 망하려고 발버둥을 칠지라도 주님은 이 노선을 담고 있는 이 사회의 역할 때문에 북한을 남한에 붙이는 결과로 이끌어 주시도록 기도합시다. 미국의 과거 정권자들이 북한을 상대할 때 오판으로 이어 졌으나 최근에야 제대로 인식하게 된 것이 이런 소망의 끈을 놓지 않도록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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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5-08 12:43
    예...열심히 눈물의 기도와 회개.. 아이들에게도 권면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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