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오늘, 이 노선에서 본 우리의 신앙 현실

집회 기간, 다시 집회를 생각한다

작성자
목회
작성일
2024.05.10
70년대 초반의 집회는

* 땔감까지 이고 갔다.
공회 교회가 대부분 시골에 있었고 집에서 땔감을 마련해서 갔다. 산림 보호가 엄해서 나무를 베면 강도 정도로 취급했다. 집회 장소에 나무를 베고 밥을 할 정도가 되지 않았다. 혹 그런 교인 때문에 산에 나무를 베지 말라고 늘 전체 광고를 하며 막았다. 그래서 교회서 모여 버스를 타러 갈 때 버스에 땔감까지 이고 갔다. 시골 한 교회의 이야기다. 집에서 버스를 타는 곳까지 이고, 버스에 타고, 시내에 내려 완행 기차에 장작을 이고 탔다. 대도시에서 시외 버스 주차장까지 시내 버스로 그렇게 이동했고 거창읍까지 시외 버스로 갔다. 다시 도평까지 버스를 갈아 탔고, 도평에서 내려 이고 지고 끌고 가다 보면 논 사이로 마지막 집회 장소까지는 비탈에 길이 없는 경사 비탈길을 갔다. 걸어서 30분이다. 땀에 범벅이 되고 비라도 내리면 다 맞으며 갔다. 5월 집회의 노곡동은 북구 팔달교에서 걸어 가야 했다. 무거운 짐 때문에 기본적으로 30분을 걸어 갔다.

* 70년대 말이 되면서 곤로가 대체했다.
석유로 불을 피우는 곤로를 가져 갔다. 기름통으로 대체하니 가볍고 편리했다. 그러나 차량에서는 위험했으나 그 때야 위험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다만 비가 와서 심지가 젖으면 불을 피울 때 애를 먹었다. 산에는 어김없이 바람이 불어 불이 잘 꺼졌다. 씻는 것도 거의 없고, 텐트는 PT천이라 하여 재봉틀로 연결해 놓아 봉재선을 따라 비가 샜다. 오는 비 맞아 가며 도시락에 나란히 꽉 채워 놓은 김밥줄처럼 잤다. 고생고생을 모조리 모아 둔 것이 공회의 '산집회'다. 70년대의 집회를 기억에 떠올리면 오늘의 산집회는 호사스럽다. 5성 호텔급 집회다. 말씀만 집중하고 은혜만 받으면 된다. 그나마 잘 사는 교인은 포장마차처럼 생긴 소형 천막이라도 가져 가지만 대부분은 예배당 가마니 깐 바닥에 그냥 잤다. 대구의 5월 밤은 추웠고, 거창의 도평 8월은 산골짝이어서 역시 추웠다. 자다 깨며 애매한 정신으로 새벽 예배 3시 30분이면 일어 나서 4시부터 오전 오후 3회 예배를 드리는데 설교는 3시간이 기본이고 4시간에 이르기도 한다. 무릎과 무릎이 맞닿는데 나이 많은 분의 뼈가 쇠토막인 줄은 그 때 알았다. 맞닿으면 너무 아픈데 피할 공간이 없었다.

* 그때의 은혜로 오늘의 은혜를 되살린다.
6.25 전쟁에 북쪽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이 남한에 정착하면서 '38따라지'가 못할 것이 있는가? 그러고 거의 다 성공했다. 배고픈 거지가 다리 밑을 생각하면 헤쳐 나가지 못할 일이 없다. 억울하고 힘들고 어렵다는 것은 왕궁의 배부른 소리다. 공회 우리에게는 각 교회는 개별 형편 때문에 모두가 다르지만 5월과 8월의 두 번의 집회는 모두가 함께 했다. 그래서 보이는 공회는 '산집회'로 조사를 하면 딱 정체가 드러난다. 한번 집회 장소에 도착하면 돌아 가고 싶어도 사실 돌아 갈 길이 없고 수단이 거의 없다. 죽을 정도가 아니면, 집에 부모의 초상이나 나면 모를까 한번 들어 오면 마지막 시간에 함께 오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11회의 예배는 하나의 말씀, 한번의 주제, 한번의 기회를 깊게 파헤쳤다. 아무리 강퍅해서 삶고 삶고 또 삶으면 물러 진다. 자르고 깨고 때리면 결국 부서진다. 그래서 불신자가 따라 오면 신자가 되었고, 초신자는 집회 한번에 ;정상 교인이 되었다. 일반 교인은 자기가 목회자 정도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목회자는 이제 자기가 시대를 감당할 지도자가 될 정도의 말씀력을 가졌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이 것을 '공회의 산집회'로 제시해 놓고, 우리는 오늘도 그 때와 비교를 한다.
고생이라는 것은 괜히 하면 고행주의의 이단이며 주신 은혜를 버리는 배은이어서 우리는 필요 없는 고생은 피한다.
그런데 고생이 연단이 되면서 사람을 만들고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그릇 준비가 된다면 우리는 충실히 맞으며 나간다.
지금 텐트는 히말라야 고산 등반을 해도 온도와 바람을 막아 준다. 집집마다 가진 예전의 자전거가 자가용이 되었다. 집에서 각자 출발하면 집회 장소의 내부 자기 텐트나 숙소 문 앞에 짐과 사람과 모든 것을 내려 놓게 한다. 고행주의도 아니며 편의주의도 아니라, 당시의 생활상을 이어 가듯 오늘의 생활상으로 이어 갈 뿐이다. 집회가 출발하던 1957년과 60년대는 군인의 야외 훈련보다 더했다. 요즘 특전사의 생존 훈련에서나 있을 듯한데 이 이야기는 전설이나 동화가 되어 현장감이 떨어 져서 적지 않는다.

* 만사 그 때보다 못한가?
옛 이야기란 하면 할수록 발전하는 세상의 다음 세대로서는 나이 많은 사람의 헛소리 정도로 들린다. 아니면 그냥 재미 있는 이야기로만 듣고 넘어 간다. 우리는 과거를 오늘에 구현을 할 때 성찬의 '기념'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이 것을 신앙이라고 한다. 기념이 아니면 천주교의 죽은 신앙이나 조각과 그림으로 채운 우상 종교로 본다. 과거의 땔감과 곤로와 시외 버스와 천막 생활은 기념할 일이 아니다. 당시는 매 가정에서도 땔감이 전부였고 다 어렵게 살았다. 산으로 옮겨 생활을 떼 놓은 것이 산집회다. 오늘의 산집회라면 집회 기간에 휴대폰 인터넷을 끊으면 된다. 예배에 집중하며 말씀을 이어 가면 된다. 그러기 위해 이전에는 예배의 시간 사이에 하루 3회 땔감으로 밥을 해야 하는 난리가 있었다. 지금은 모든 것이 부드럽게 편리하게 자연스럽게 지나 간다. 그렇다면 예배 시간 사이에도 말씀에 더욱 집중할 수 있다.


* 이번 집회는 에스겔 성전을 살폈다.
목사님 생전에도 거기까지는 진도가 나가지 못했다. 그러나 목사님이 터를 팠고, 기초 콘크리트를 타설했다. 그리고 1층을 완공했고 2층을 올렸고 3층을 올렸다. 조선 말기 서울의 주택가에 5층 건물이 있었다면 서울 전역에서 눈에 띄었을 것이다. 왕궁보다 높으니.. 이 것이 목사님 생전에 진행 된 공회 신앙, 말씀의 세계, 그 중에서도 성경 해석의 규모요 위용이었다. 와서 보는 사람, 차마 오지는 못해도 전해 듣기는 했다. 이 것이 합동의 박희천 목사님이 국내 최대 최고라는 총신대에서 수십 년을 소개하여 알려 진 것이고 최근에는 그를 이어 침신대 총장 피영민 목사님이 또 그렇게 전하고 있다. 정작 공회는 품 안에 아이가 엄마의 고마움을 모르듯, 폐 질환을 갖기 전에는 공기의 고마움을 모르듯, 우리는 공회 노선의 성경 해석과 교리 정립에 우리에게 주는 말씀의 세계를 아는 것처럼 보이는데 실제 맞닿뜨려 보면 그런 분은 아직 거의 본 적이 없다. 박물관에서 전시된 고려청자를 눈으로 보고 옆에 설명서를 보거나 해설가를 통해 가치를 파악한 것과 집에서 간장 그릇, 된장 도자기, 식탁 위에 올린 주전자를 고려 청자로 실제 늘 사용하는 것을 비교하면 안다고 하나 실제 알기나 하는지? 사용하는 사람이라야 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진수성찬 밥상에 앉아만 본 사람과 먹고 나간 사람은 차이가 있지 않을까?

이 나라는 우리가 아니 감히 한국 교계까지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공회의 집회 말씀은 단연 최고의 건축물이었다. 구한 말에 5층짜리 빌딩이라고 치자. 오늘 우리는 5층 빌딩 옥상 위에 옥탑방 하나를 판넬로 더 올렸다. 과거보다 더 올라 간 것은 사실이다. 품질이야 비교할 수 없지만 높이로는 그렇다. 부모가 벌어 주고 간 재산에 자기가 1원이라도 보탰으면 부모보다는 부자다. 삼성 재벌 창설자가 벌어 주고 간 재산에 아들이 까먹지 않고 1원만 보태도 아버지보다는 재산이 많다. 많아야 사실 정상이다. 많지 않다면 갉아 먹은 패륜아다. 수평 비교를 한다면 어떻게 목사님과 비교하겠는가? 그렇지만 그가 이루고 넘겨 주고 간 건축물, 시스템, 체계적 깨달음에 하나를 더 쌓는 것이야 못하는 것이 바보가 고장이 아닐까? 다만 기존 건축물 전체와 재질이 같고 설계도상 안전 문제나 연결 문제는 없어야 한다. 남기고 간 자재는 넘치고 있다. 그 자재로 그 설계도를 보면서 하나만 더 얹어 볼 수는 없을까?

공회 중에
부공1은, 이미 가는 길이 다르다면 이름 가지고 싸우지 말자면 연구부가 순서를 붙여 줬다. 배려와 예우로 1을 붙여 줬다.
부공1을, 대구공회는 비디오파라고 조롱을 했다. 동기는 좋지 않는데 동영상 강의라는 동강이 되어 시대를 앞설 수 있다.
부공1의 정체성은 연구부에서 '그대로파'라고 붙여 줬다. 부산 동대 1동 381번지의 벽돌 하나도 그대로 지켜 낸다는 곳이다.

이들은 설교록에 토씨 하나도 더하거나 빼면 안 된다 한다. 실제로는 불가능하며 실제로는 빼고 더하면서 말만 그렇게 한다.
설교록은 이 곳의 연구부가 빼고 더해서 출간했다. 빼고 더할 때 일일이 목사님께 검토를 받았고 여쭸고 배우며 그렇게 했다. 굳이 말하자면 그대로 파는 백영희 설교 그 자체를 지켜 내는 것이 아니라 이 곳의 연구부가 편집한 결과물을 지켜 내는 셈이다. 연구부가 그들의 불상이며 우상이며 지켜 낼 신성불가침의 존재가 되어 버렸다. 절에 있는 돌부처가 공양을 드리는 중들을 보면서 얼마나 우스울까.. 이 곳의 연구부 직원들은 부공1을 보면서 그렇게 웃고 온 세월이 36년이 지나가고 있다. 안다는데 실은 모르고 있는 이들이다. 설교록을 정말 읽어 봤다면 목사님이 가르친 것을 잘 살펴 한 걸음을 더 나가 달라고 부탁을 했다. 대구공회는 다른 방향으로 나가면서 발전이라 했다. 우리는 이탈이라고 염려했다. 서울공회는 연결을 끊고 새 세계를 추구했다. 우리는 미아라고 불렀다. 부공1은 곧이 곧대로를 주장했다. 교권 확보를 위해 낚시에 미끼를 달았다고 했다. 부공2는 부공1과 대구공회를 합했거나 그 사이 중간쯤이다.


이 곳은?
설교록 출간에 1982년부터 20대와 30대와 40대와 50대를 다 쏟았다. 그리고 목사님 사후 복습에 불신 가정의 주교생도 모두가 집중하며 30년을 보내왔다. 그리고 더 나아가려다 막혔다. 막히고 보니 출간하면서 복습하면서 자연스럽게 한 걸음 더 나아갈 자재를 넘겨 받았고 또 교리라는 건축법과 설계도까지 받았다. 목사님 생전에도 이미 '소선집'과 '메모'로 설교록 이후를 시작했다. 그리고 2018년부터 한 걸음을 걸어 보려다 보니 에스겔 성전에까지 닿았다. 에스겔 40장은 1세대 연구부 직원들의 생전에는 어렵다고 봤다. 설교록 10만쪽을 살피면 나올 수는 있으나 길이 멀었고 우리의 시야가 흐렸기 때문에 기대하지를 않았다.

이번 5월 집회를 준비하면서도 애매했다. 그러나 진행을 하면서 비로소 에스겔 성전을 봤다. 문을 열었고 한 걸음씩 이 노선의 설교록과 교리로 1차 마당까지 진입할 수가 있었다. 일단 감사했다. 만 가지 감사할 것뿐이다. 그리고 이 곳에 소속 시켜 주신 것과 이 곳을 알게 한 것에 감사하다 보면 요즘은 감사가 넘쳐서 자다가 깨도 같은 감사만 반복하고 있다. 이제 치매 요양원에 가야 할 상황이라 그런지, 이제사 철이 좀 들어서 그런지 모르겠다. 그래서 집회를 마치면 바로바로 설문을 한다. 요양원에 입원할 일인가, 아직은 철이 들고 있어 소망이 있는가..
전체 1

  • 2024-05-10 13:30
    범사 감사말고,
    손양원처럼 10가지를 내놓으면 좋을듯 하다
    철이 옛부터 걱정이라,
    아직은 강조가 천하에 퍼지니
    부드러운 혀가 뼈를꺽는 지혜를 가짐하길 바라며
    아쉬움은 암송아지로 밭을갈수
    있어야 할데리시어야 임인데,
    바보를 만들어, ,그래도
    그 없이는 장소가 없으듯 하였으니
    우리공회는 진리우선주의라
    부모는 배척처럼 보일수 밖에 없는듯하다
    서영준은 죽었고 서영호는 박사님 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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