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오늘, 이 노선에서 본 우리의 신앙 현실

목사 표기 때문에 가족과 맞선 적이 있었다.

작성자
연구
작성일
2024.02.29
설교록에 '목사' 표기는 원래 없었다. 자녀 중에 표기를 요구하여 4번을 넣었으나 목사님은 다시 지우게 했다.
설교록에 '백영희 목사님'이 아니고 '백영희 목사'도 아니다. 꼭 넣으려면 '목사 백영희'다. 그런데 '백영희'가 백영희다.






1984년에 백 목사님은 설교록 출간을 허락했다.
목사님은 설교의 준비와 내용 그리고 그 전하는 예배 시간에는 목숨을 걸고 살아 왔다.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러나 설교록의 출간은 아예 생각한 적이 없었다. 계속 자라 가고 밝아 지기 때문에 한 시점에 고정을 할 수 없었다.
그의 성경 해석과 설교는 너무 은혜롭고 너무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었기 때문에 출간에 대한 요구는 항상 거셌다.
1970년대를 거치며 외부에 너무 알려 졌는데 전달하는 이들의 오류로 오해가 발생하자 녹음과 출간을 고려했다.

1981년에 출간을 결정했고 1982년에 준비를 했다.
오늘의 목회연구소는 서부교회 편집실로 출발했다. 그리고 1984년에 6백 쪽 분량의 설교만 담은 출간을 시작했다.
이미 준비 된 기록 때문에 설교록을 출간하던 시점의 설교를 100호로 매기고 매월 1권 분량을 목표로 업무를 했다.
설교록의 출간과 초기 예산과 머릿말은 '백도광' 장로님이 수고했다. 흔히 백도영 막내라고들 하나 실은 그렇지 않다.
백 장로님은 1950년대 부산대 법대 교수였고 60년대 연세대 교수였다. 저서를 알고 학계의 정점에 있던 인물이었다.
백도영 막내는 당시 사업 때문에 교회 출석이 어려웠고 본인의 희망과 목사님의 지도 때문에 중학만 마쳤다고 전한다.



설교록이 66권째 발간되던 1988년 7월, 번호로는 '165호'를 두고 미국에 있던 자녀들이 저자에 '목사' 표시를 요구했다.
설교록 표지에 저자를 '백영희'만 적고 '목사'를 생략하면 무례이며 비상식이라 했다. 전문가들에게 확인까지 했다고 한다.
연구부장은 그런 주장까지 두루 고려했고 이 설교록은 역사적 의미가 있어 '목사' 표시를 일부로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빼라, 뺄 수 없다는 논란이 거듭 되자 자녀들은 백 목사님께 직접 하소연을 했고 목사님은 빼라고 했다. 당연히 빼드렸다.

그래서
166호(88.8.31)부터 167호 168호 그리고 169호(1988.12.13)까지 설교록에는 '목사 백영희'로 표기를 했다.

가족들은 '백영희 목사'를 원했지만 꼭 목사 표시가 들어 가려면 '백영희 목사'가 아니라 '목사 백영희'라야 한다고 맞섰다.
현재 묘소의 '백영희 목사님'이라는 표기는 공회의 목사 표기법에 2 가지가 이미 잘못 되었다. 그 중에 하나를 말하고 있다.

서영준 목사님의 장례 때 연구부는 표기를 '서영준 목사님'으로 하려다 제지를 당한 적이 있었다. 너무 과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서영준 목사'로 표기한 것은 백영익 목사님 중심의 공회 비주류, 이탈측의 입장이 반영 된 것이다.
공회는 '목사' 표기를 꼭 해야 한다면 '목사 000'으로 한다. 물론 내부 공문이나 일상 표시 때는 '000 목사님'으로 표기한다.
교회의 성직은 평소 부를 때를 기준으로 그대로 적는 것이원칙이다.


1988.12.15, '목사'를 4번을 계속 붙여 나오다가 1989년이 되면서 '목사'를 빼고 원래대로 '백영희'로 환원할 수가 있었다.
연구부가 '백영희'로만 표기하는 이유는 칼빈의 책에 '칼빈 목사님'이라고 적지 않는다. 루터 교수님이라고도 하지 않는다.
이미 이들의 이름은 그 차원이 이름 석 자로 모든 것을 다 포함하기 때문이다. 덜 존경해서가 아니라 더 존경해서 그렇다.
이 노선, 이 노선의 방향을 잡은 백영희는 그 이름 석 자로만 남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 연구부의 기본 인식이다.
2013년, 목사님의 자녀들이 이 곳을 향해 고소해 올 때 '님'이라고 표시하지 않고 이름만 적었다고 그렇게 격분을 했었다.
자녀들은 공회를 잘 알지 못하고 서부교회를 잘 알지 못하고 부친을 잘 알지 못하다 보니 그럴 수 있다. 충분히 이해한다.
부친은 교인을 가족으로, 그리고 연구소 이 곳을 자녀로, 또는 자녀 이상으로 상대했다. 그러다 보니 가족들은 밀려 났다.
부친이 밀어 낸 것이 아니라 목사로서 교인을 지도하다 보니 바빠서 그런 것이다. 그 것이 공인이고 공무지 않을까?

자녀들로서는 유명해 진 부친을 자녀만의 아버지로 두고 싶을 듯하다. 적어도 자녀가 우선권을 가진 상황을 추구할 듯하다.
그 소망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 것이 밖으로 잘못 드러 나서 마치 목사님이 가족을 위해 목회를 한 것처럼 되면..
만일 교회와 교인과 복음을 육체 자녀에게 돈으로 바꿔 주려고 연극 한 것처럼 비춰 진다면 이 것은 부친에 대한 모독이다.


설교록은 넘칠 만큼 전했다.
이 곳에 전할 때 자녀분 대부분은 이 곳에 맡겨 놓고 응원을 했다.
세월 속에 이 곳이 전한 효력이 심대해 지자 직접 전하겠다고 나선 분도 있다. 전하기만 한다면야 우리는 환영이다.
우리는 연구를 통해 설교록에 발표 되지 않은 기록을 찾아야 하고 또 그 내용이 지향하는 앞을 향해 나가야 한다.
이 곳이 할 때 옆에서 지켜 보는 이들은 쉬워 보였겠지만 공회들도 총공회도 서부교회도 가족들도 그렇게 하지 못한다.
막상 이 곳의 출간과 전파를 막아 놓고 다 가져 간 이후에 활동을 보면 비교할 필요도 없을 듯하다.



이 번 2024년 2월의 서부교회 묘소에 서부교회가
갑자기 가족의 설교록 애착에 대해 경쟁을 하듯이 묘소 단장에 나섰다. 단장은 좋으나 왜곡과 오도는 개탄스럽다.
묘소의 비석에 붙인 '백영희 목사님'이라는 표시, 아마나 적으면 적는 줄 알지만 장남 백도광 장로님이 연구소의 의견 때문에 1989년에 묘소를 조성하면서도 비석은 세우지 않고 그리고 30년 이상을 해결하지 않고 갔다. 아무나 하면 하지만, 제대로 하려면 이 노선, 백영희의 세계는 함부로 입을 대거나 손을 대는 것이 아니다. 백도광 장로님은 최소한 이런 역사적이고 학문적이며 연구적인 차원을 두고는 이 곳에 늘 하문해 오셨다. 그리고 대화가 있었고 이 곳을 늘 존중해 주셨다. 그 분의 과도 적지 않으나 그 분의 공은 참으로 지대하다. 그 중에 하나가 설교록의 표지에 '목사'를 붙이려 했던 동생들을 혼내면서 연구부가 주장한 대로 '백영희'만 유지하게 만든 분이 바로 백도광 장로님이다. 4권째 '목사'가 표기 되고 그 사연을 알게 된 장로님이 목사님께 직접 연구부의 입장을 대변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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