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오늘, 이 노선에서 본 우리의 신앙 현실

이 노선 사수의 절박감

작성자
연구2
작성일
2024.02.14

1. 지도자의 절박감

절박감이란 위기감이란 말과 같습니다. 큰 위험이 닥쳐오는 것을 보면서 위기를 강하게 느끼는 마음입니다. 보면 알게 되고, 알면 느끼게 되는 것은 필연입니다. 느끼는 절박감은 그가 어디에 속해 있으며 어떤 입장에 있는지에 따라서 그 내용이 달라집니다. 뛰어난 지도자들일수록 이런 절박감을 강하게 느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는 전운이 감돈다고 합니다. 보는 사람은 보고, 보기 때문에 알고, 알기 때문에 느끼게 되며, 위기감 절박감을 느끼고 전쟁을 미리 준비하게 됩니다. 임진왜란 전에 이율곡, 유성룡, 이순신 같은 사람들은 이런 위기감 절박감을 느끼고 전쟁을 준비했고 나라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분들은 전쟁 준비에 대한 절박감을 남다르게 가졌습니다.

6‧25 전쟁 전에도 전운은 감돌았을 것인데 이 나라에 그것을 느끼고 준비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결과는 불과 3일 만에 수도 서울이 점령되었고, 한 달여 만에 대한민국의 90%를 공산군에게 점령당했었습니다. 남침의 위험성을 미리 보고 알고 그에 대한 위기감, 절박감을 가진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생전에 기회 있을 때마다 중역들에게 위기감을 설파했다고 합니다.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는 가운데서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도록 다그친 것입니다. 이런 분들은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뭔가를 보고 있었고, 보기 때문에 느낌이 있고 그 느낌이 강하기 때문에 절박감을 가지고 자꾸 다그치게 되는 것입니다. 기업의 생존, 경쟁에 대한 절박감입니다.


2. 백 목사님의 절박감

백 목사님은 종말에 대한 절박감을 강하게 가졌습니다. 신앙 세계에서 종말에 대한 절박감은 신앙 전반에 대한 절박감이 됩니다. 가실 날이 가까울수록 ‘재림 준비, 죽음 준비, 전투 준비, 피난 준비’를 그렇게 외쳤습니다. 모두 ‘왜 저러시는가?’ 이해를 못 했습니다. 심지어 ‘나사를 너무 조우면 터진다’는 아주 고약한 말을 한 신학박사도 있었습니다. 그분이 가시고 난 다음에 약간 느꼈지만 세월 속에 또 다 흐려졌습니다.

백 목사님은 재림에 대해서 절박했고, 죽음에 대해서 절박했으며, 앞으로 닥칠 신앙의 환난에 대해서 절박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보고 싶다고 보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보이는 것을 안 볼 수도 없습니다. 늘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며 교계를 보고 공회를 보고 교회를 보며 주변을 보시는 그 속에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을 것이고, 보이기 때문에 절박하지 않을 수 없었고, 절박하기 때문에 외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아람 나라 왕이 엘리사를 잡으려고 도단에 군사를 많이 보내서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을 뺑 둘러서 포위를 했습니다. 수종 드는 사람은 겁에 질렸습니다. 엘리사가 기도했습니다. 저의 눈을 열어서 보여주시라고. 눈을 열어 주셔서 보니까 불 병거와 불 말들이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 주변을 에워싸고 지키고 있었습니다. 보여서 보면 알게 되고 알면 느낌은 전혀 다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느낌들은 저절로,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신비한 역사가 성경에도 많고 교회 역사에도 많습니다. 그 모든 역사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까닭 없이 누구를 좋게 보셔서 그렇게 하신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보응의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역사도 그러합니다. 그럴 만한 일이 없는데 하나님의 신비한 역사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실 수밖에 없는, 남다르게 보여주실 수밖에 없고, 남다르게 그에게 신비한 역사를 하실 수밖에 없는, 거룩과 진실과 충성이 남다르게 세월 속에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역사는 필연이기 때문입니다.


3. 이 노선 사수의 절박감

오늘도 이런 절박감을 가지고 늘 외치며 다그치는 종을 봅니다. 그리고 가까이서 지켜본 그분의 지난 세월을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께서 뭔가를 보여주셨을 것이고, 보통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뭔가를 보기 때문에 저렇게 절박하게 다그치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게 됩니다.

이분의 절박감은 ‘신앙 노선의 사수’에 대한 것입니다. 좁디좁은 길을 걸어가는 이 노선의 신앙은 한 번 양보하면 걷잡을 수 없이 후퇴하게 된다는 것을 너무도 절박하게 느끼는 나머지 백 목사님께서 공회와 교인들을 다그치는 그 이상으로 다그치고 있습니다. 많은 오해를 받으며 많은 사람이 떠나기도 했지만, 이 노선 사수에 대한 절박감이 그 모든 것을 넘어서기 때문에 지금도 쉬지 않고 외치고 다그치고 있습니다. 자신이 누구보다 앞서 충성하고 앞서가면서 독촉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은 힘들어하면서도 따라가게 됩니다.

통제 사회인 공산 국가나 독재 국가에서 백성들을 강하게 통제하는 이유는 한 번만 자유의 맛을 보고 나면 다시는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수십만, 수백만 명이 죽어도 체제에 대항하는 개인의 자유는 기어코 꺾어버립니다. 중국의 천안문 사태 때 등소평은 ‘13억 인구 중에 백만 명은 적은 숫자’라고 하면서 탱크로 밀어붙였다는 말이 있습니다.

1973년에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한국에 왔었고, 여의도에 100만 명이 모였다고 했었습니다. 그 이후 백 목사님은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한국 교회의 신앙의 허리끈을 다 풀어놓았다고 강하게 비판했었습니다.

이 시대 공회의 신앙 노선은 말세 마지막의 어둠을 비추는 한 줄기 빛과 같은 것입니다. 아는 사람은 알고 그렇게 말합니다. 이렇게 귀한 노선이라도, 이 노선 안에 있어도 한 번 신앙의 허리끈을 풀어 놓으면 다시는 회복할 수 없다는 것을 남다르게 느끼기 때문에, 그리고 그 위험성은 언제나 끊임없이 주변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절박감을 가지고 이 노선 사수에 목숨을 걸다시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절박감에 대한 그 심정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는 것입니다. 함께 하다가 떠난 사람들이 이런 절박감을 알았다면, 그래도 떠날 수 있었을까? 지금 함께하는 사람 중에는 이런 절박감에 대해서 동감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지도자는 늘 고독한 것 같습니다. 엘리야가 그랬고, 엘리사가 그랬고, 백 목사님이 그랬고, 주님도 마지막에는 혼자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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