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오늘, 이 노선에서 본 우리의 신앙 현실

십자가와 하트의 탈선 과정과 역사

작성자
연구
작성일
2024.02.13
한자가 망해야 중국이 산다는 말이 있다. 세계 최고의 문자를 미워한 것이 아니라 발목이 붙들린 것을 한탄했다고 보인다.
공자가 죽어야 중국이 산다는 말도 있다. 불신자로서야 그만한 인물은 없다. 그런데 만사 붙들리지 말자는 뜻일 것이다.

교회가 죽어야 말씀이 산다 이런 흉내도 있다. 교회를 말하겠는가? 변질 된 교회를 질타하는 하나의 표현 방법일 것이다.
교권을 쥔 쪽에서는 이런 말을 해도 뜻을 강조했다고 하고, 상대방이 이런 말을 하면 꼬투리를 잡아 당장에 정죄를 한다.




1. 십자가

주님이 가신 십자가,
십자가 없는 교회, 십자가 없는 복음, 십자가 없는 천국이 있을까?
십자가는 우리 신앙을 모두 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예배당 안팎에 그리고 우리의 몸 안팎에 빼곡하게 새기고 달고 다닌다.
그 순간, 귀신은 우리 마음을 다독이며 참으로 장하니 이제 안심하라 한다. 그리고 그 그림만 끌고 지옥으로 데려간다.
십자가를 부인하게 하다 없애려 하고.. 십자가가 넘치게 되면 귀신은 잠시 지켜 본다. 그리고 홍수처럼 십자가를 쏟아 낸다.
계12장에서 교회를 박해하다 신약의 복음이 출발하게 되자 사단은 교회를 후원해 버린다. 생명수를 넘치게 하여 삼킨다.

이런 단계가 되면 참으로 난감하다.
신앙이란 십자가뿐인데, 십자가를 달아 보려니 주변의 십자가와 비교가 된다. 네온사인부터 솟구치다 못해 하늘을 찌른다.
주변에 넘치는 십자가, 우리 식으로 달면 신앙이 못나 보인다. 차라리 달지를 말지 이왕 달려면 맵시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공회 교회는 복음의 초기에는 십자가를 표시하다 주변에 넘치게 많아 지면서 어느 순간 없애 버렸다. 종탑도 일찍 없앴다.
반발이 아니라, 외향적 광고는 다른 교회에 맡기고 우리는 십자가를 우리 내면으로 조용히 옮겨 소리 없이 추구해 왔다.

십자가를 달자니 십자가를 잘 달 실력이 없고
달지 않으려니 주변에서 여호와의증인이냐고 의심을 해 버리고, 작게 표시를 하자니 참 우습다. 주변을 탓할 수도 없다.
심지어 온 몸에 십자가를 치렁치렁 달고 표시하고 과시를 한다. 그리고 그 십자가를 가지고 사교나 사업에까지 나선다.
찬송가 책에 성경 책에 교회의 각종 장구와 비품에 얼마나 도배칠을 해 놓았는지 이미 철페하려던 천주교로 돌아 갔다.
주변에서 지나치게 사용한다 하여 우리는 지나치게 금지하고 물러 서는 것도 우습다. 그냥 우리는 우리대로 갈 뿐이다.
하여튼, 내 눈에는 내 주변에 십자가는 모두 치웠다. 성찬기 꼭지에까지 올라 앉은 십자가는 뱅뱅 틀어서 어디 모셔놓았다.
강단 위의 종에도 붙어 있던 십자가도 내부의 볼트를 풀어 또 어디에 모셔 놓았다. 아마 버렸지 않을까? 둔 곳을 모르겠다.




2. 하트 문양

심장은 대충 하트처럼 생겼다. 좌우 둘로 나뉘었고 전체적으로 약간의 원추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유목민이어서 짐승을 많이 잡아 댄 유럽의 교회들은 일찍부터 심장이 피를 뿜어 내는 엔진, 원동기라는 것을 알았다.
동양은 식품이거나 아니면 철학의 대상이었다. 서양은 분석적이고 해부적이었다. 그래서 심장을 많이 접해 보았다.

오늘 우리 주변에 넘치고 넘치고 또 넘치는 하트 모양. 정치가도 별별 행사에도 손으로 손가락으로 비틀어 표시한다.
남녀 이성죄의 신호로 써먹고 있어 밉다. 여기에 자녀와 가족 사랑을 겹쳐 버리니 깨끗한 곳까지 오염을 시키고 있다.

* 칼빈의 하트 사용
그런데 그 원래의 표시는 좋은 뜻이었다. 최소한 우리 기독교의 중심을 견지해 온 장로교, 개혁주의 칼빈주의는 그렇다.
5백년 전에 칼빈은 '내 심장을! 주님께' 이렇게 평생 자기를 새겼다. 성찬의 주의 피, 자신의 진심 진정을 그렇게 표시했다.
직접 하트를 그리고, 자기 손을 그리고, 주님께 제 심장을 바친다고 표식을 만들어 사용했다. 기록으로도 남아 있다.

주님의 십자가 피 공로, 피흘려 죽기까지 따라 가겠다는 각오였다. 성찬은 잔으로 적었으나 칼빈은 심장으로 각오했다.
여기에 우정도 죽이고, 이 길을 위해 가족 사랑도 포기하고, 이 길을 가는 데 부부의 이성 사랑도 잡아 죽이며 가려 했다.
세월 속에 칼빈이 유명해 졌고, 칼빈의 심장 바치는 그림은 갈수록 천주교처럼 어여쁘게 멋있게 정감나게 덧입혀 졌다.
칼빈의 목숨 바친 각오는 없어지고 그림만 다양하게 남아서 5백년을 오게 되니 이제는 남녀 이성의 방탕의 표시가 되었다.
둘이서 껴앉고 한 팔씩 올려서 만든 하트, 혼자서 양팔로 올린 하트, 두 손으로 만든 하트, 손가락 2개를 비튼 하트까지.

시작은 건전했다.
그러나 귀신은 늘 바로 따라 붙어서 옆으로 비틀어 버린다. 그렇다고 십자가와 하트를 나무라겠는가? 피하겠는가!
가장 좋은 것은 만사 처음부터 신령한 면으로 주력하다 보면 저절로 ㄸ파리가 붙을 여지가 없다. 그냥 주력하면 된다.
주변을 기웃거리고 또는 감성으로 나가서 남을 의식하기 시작하면 천하의 귀신들이 마구 따라 붙는다. 떼놓기가 어렵다.




공자는
비록 지옥간 불신자지만 남녀의 이성 문제를 두고 직접 표시를 금지 시켰다. 조금 둘러서 대략 알아 들을 만큼 사용했다.
성경에서도 부끄러운 곳이라는 등의 표시로 둘러서 가르쳤다. 오늘은 생생하게 뒤집어서 자극에 자극을 거듭하고 있다.
죄악의 심연 깊은 속에 가라 앉혀서 헤어 나올 수도 없게 만들고 있다. 공회는 하트를 그리지 않는다. 그린다면? 글쎄...
만사 보이는 표시보다 보이지 않는 쪽을 향해 나아 가자고 부탁한다.

표시를 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런 때는 하고.
표시를 줄여도 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외부를 줄이고 내면을 좀 노력하면 좋다.
모든 교회가 다 아는 일이다. 교회의 행사마다 왜 하트를 그토록 퍼부어 대는지.. 조금은 절제했으면 한다.
교회가 좋은 뜻으로 시작하고, 세상이 본을 받다가, 그러다가 세상이 아주 홍수를 내버리고, 그리고 세상이 끝장난 것이 많다.
그 중에 구원의 사랑을, 하나님의 사랑에서 인간의 헌신으로 끌어 내리고 인간의 동정이 되게 만들고 무분별한 구제가 되게 하며, 마침내 남녀의 정욕만 남게 만든 것은 심각하게 생각할 문제다. 지금은, 남녀 이성을 지나쳐 남남과 여여의 방탕으로 질주하고 있다. 그리고 그 다음 단계로까지 심각하게 짙어 지고 있다.



이런 때는 '구원의 사랑'을 줄여서 평소에 그냥 '사랑'이라고 했으나
이제는 꼬박꼬박 '구원의 사랑' '신앙의 사랑'이라고 앞에다 푯말을 단단히 새기고 붙여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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