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오늘, 이 노선에서 본 우리의 신앙 현실

교계의 코로나19 결산, 신사참배 때를 반복

작성자
연구
작성일
2024.01.12
오늘 '소식' 게시판에 올려 진 '(외부) 교계의 코로나19 결산 - 신사참배 반성과 동일'을 통해 역사를 다시 본다.


평소 신사참배란 한국 교회치고 찬성한 곳은 없다.
그러나 총독부가 작정하고 절차를 밟아 나가면서 압박하자 결국은 모두 참배를 했다. 이유는 찬란했다.
해방이 되자 총독부의 강행만 규탄했다. 교회가 무릎을 꿇은 것은 사라졌다.
신사참배도 6.25 점령기도 또 코로나 팬데믹도 시대가 다르고 화면은 달라 졌으나 환란을 닥친 교회의 반응은 항상 같다.



<모든 것은 정부의 탓인가?>
토론회의 흐름은 정부 잘못만 탓한다.
교회가 정상적이라면 교회는 세상을 공중의 권세 잡은 악령이 죄를 짓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교회가 세상 정부에게 신앙의 자유를 기대하는 것은 양떼가 이리떼에게 자비로운 정책을 바라는 것과 같다.
이리떼가 우리를 몰아 넣었니 협박을 했니 달랬니 약속을 지키지 않았니 하는 그 모든 사고방식은 앞으로 또 일을 낸다.


로마의 네로가 로마를 방화하면 더 폭군이 되고 방화하지 않았다면 너그러운 성군이 되는가?
네로가 교인이 방화한 것으로 몰아 가고 자기 책임을 묻은 것을 두고 나쁘니 마니 할 것도 없다. 세상은 원래 그렇다.
우리에게는 신앙으로 살다 죽을 권리를 주셨고 세상에게는 교회를 박해할 권리를 주셨다.
교회는 교회가 할 일을 하고, 세상은 세상이 할 일을 하는 것이다. 서로 자기 할 일을 자기 위치에서 하면 된다.
그렇다면 교회는 코로나19 때문에 평소 살아 있는 사람이 예배를 드려야 한다 하든 자기 교리만 들여다 보면 된다.

공회는 거의 모든 면에서 기존 교리보다 더 발전한 면도 있고 어떤 면은 아주 개혁을 하여 달라 보이는 면도 있다.
공회의 예배는 코로나19 상황이 처음부터 환란이 될 수가 없었다. 평소 그랬다.
코로나19 이전에도 자기 신앙에 따라 실시간을 사용했다. 원거리의 예배 연결과 재독이 아주 자연스러웠다.
개구리에게는 폭우가 생존의 위협이 되지 않는다. 잠수함은 물 속과 물 밖이 별로 다르지 않다. 대처의 차이만 있다.

코로나19를 가지고 정부가 이 나라 교회를 제대로 짓뭉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맹수의 육식을 비판할 수는 없다.
아주 나쁘게 하려 했으나 굴을 파두고 먹을 것이 비축된 토끼에게 호랑의 군림이란 별로 상관이 없는 세계다.
공회는 신약의 신앙 투쟁이란 세상 정권과 육탄으로 승부를 내는 혈육전이 아니어서 광화문에 1백만을 모은다거나 1천만 서명 운동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국회의 의원회관 대강당에 모여 세과시를 하지 않는다. 양떼가 호랑이 소굴에서 회의를 하면 호랑이들이 얼마나 우스울까, 재미가 있을까, 얼마나 좋을까? 도무지 생각이란 하지 않는 듯하다.




<정부와 입법과 사법에 대한 비판>
입법의 취지를 질타한다. 세상이 세상 좋게 하는 것이 입법의 기본이다. 세상이 신앙의 자유를 절대치로 허용하면 교회에게 도움이 될까? 예배 생활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을 하는 모양이다. 정말 위험한 발상이다. 정부는 과학적 조사도 결과도 원칙도 없이 교회의 예배만을 마음껏 짓밟았다. 국회는 그렇게 하도록 법으로 길을 열었다. 사법부는 예배를 막아야 한다며 판결을 했다. 모인 모두가 이런 문제를 질타했다.

공회는 이런 대처를 보며 교계에 희망을 거둘 수밖에 없다. 만일 정부가 전염의 경로나 데이타를 분석한 다음에 정말 교회의 예배 모임이 찬양이나 통성기도나 교인들의 여러 활동 때문에 막을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면 그 때는 교회가 따를 것인가? 이 모임, 그리고 코로나 관련 모든 반발을 읽어도 늘 이런 식이다. 세상 정부가 상식적으로 형평성에 따라 법적으로 과학적인 자료를 가지고 단속하면 예배를 포기할 것인가? 모든 지하철과 식당과 타 종교의 예배를 공평하게 차단하면 교회가 적극 동참할 것인가?

교회란 세상이 어떻게 하든 말든 교회가 할 일을 한다. 그래야 교회다. 교회는 교회 할 일을 교회가 결정한다. 이 것이 교회가 세상을 상대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이다. 교회가 교회 스스로 결정했는데 세상에게 죽어야 한다면 교회는 그 것을 순교라 한다. 평소 이런 순간을 준비하는 것이 교회다. 신학교 교재에 아마 다 그렇게 적혀 있을 것이고 모든 교회의 설교가 그럴 것이다.



<법원에서 결판을 낸 경우>
교회가 예배는 예배대로 진행하면서, 한편으로 세상의 예배 금지를 세상법으로 풀려고 노력하는 병행은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세상 법정에 우리는 예배가 합법이든 불법이든 진행한다. 그런데 세상 너희의 법에도 막으면 안 된다..
이렇게 나가는 것과 너희가 너희 법에 어긋나게 막기 때문에 시정해 달라고 재판을 해 버리면 그 때는 호랑이 입 속에 교회가 머리를 집어 넣은 것이다. 새끼 돼지가 문을 열어 주면 잡아 먹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늑대에게 대문의 고리를 풀어 버린 셈이 된다.



<서헌제 교수님의 귀한 말씀>
'순교한 백영희 목사의 주일성수 믿음'이라고 표현한 것은 참으로 귀하다. 이 회의에 단 하나의 보배로운 표현이다.
'백영희 주일 성수 믿음을 승계한 서부교회'라는 표현은 아마 서부교회를 잘 알지 못해서 나온 듯하다.
서부교회는 마당이 넒어 전 교인이 예배를 드릴 수 있다. 그런데 현관만 막는데도 불구하고 마당에서 예배는 없었다.

서부교회가 법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때 고려파의 세계로교회와 함께 했다.
이렇게 되면 세계로교회와 하나로 묶어 버린 것인데 세계로교회는 공회와 신앙의 근본이 다르다.
이 대처법은 서부교회가 백영희 목사님의 신앙 노선을 알지 못한 결과다.




서부교회는 현재 부공2의 중심이다.
그래서 부공2의 모든 판단과 대처에는 얼른 보면 마구 신앙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지뢰밭을 뛰어 다니는 아이들처럼 보인다. 터지지 않으면 용감해 보인다. 여기까지가 부공2다.




신사참배를 두고
당사자 1세대가 다 죽어 버리고 구경도 하지 못한 2세대가 원로가 된 오늘
신사참배 때 가장 앞장 서서 나쁜 일을 했던 이들을 이어 나온 쪽이 통합 교단이다.
지금 이들은 자기들 1세대가 신사참배 항거의 일선에 섰다며 열을 올리고 순교자를 양산하고 저항지를 조작하고 있다.

신사참배는 일제 총독부의 잔학함이 원인이고 6.25점령은 인민군의 교회 탄압이 원인이라고만 방향을 잡아 버린다.
피난을 가다 잡혀 죽어도 순교가 되고, 6.25 때 죽으면 모두 순교자를 만들 정도다.
이 정도가 되면 국내 변란 때 죽은 사람은 모두가 애국자가 되는 흐름과 같다.

도무지 생각 없이 믿고 살다 보니 이런 지경에 이른 듯하다.
그래도 가장 지성적이어야 할 모임에서 가장 반지성적인 분석과 대처만 발표가 되어 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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