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오늘, 이 노선에서 본 우리의 신앙 현실

중국교회는 중국공산당 지도하에 - 우리의 앞 날

작성자
연구1
작성일
2023.09.07
(세상의 상식 하나)
중국은 공산당이 지배한다. 이 것을 부정하면 중국과 모든 관계는 단절 된다. 미국도 한국도 세계도 모두가 다 인정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이 다스리는 중국을 인정한다는 뜻은 중국 공산당이 중국의 교회를 관장하는 종교법도 인정한다는 전제가 있다. 이 것은 국제법의 상식이며 세계사의 상식이다. 이런 상식 때문에 교회와 신앙의 사람은 세상과 약속을 하거나 도장을 찍을 때 쉽게 질러 버리지 않는다. 유행에 휩쓸리지도 않는다. 훗날을 앞당겨 놓고 많이 살피고 신중하다. 마25장의 기름 준비 중 하나는 이런 면도 있다.

(일제의 총독부의 경우)
1939년부터 1945년까지 공회 신앙이 출발하던 경남의 거창군 고제면에 있었던 개명교회는, 바로 이 세계사와 국제법적 상식 때문에 오히려 신사참배를 쉽게 초월할 수 있었다. 정확무오한 천황, 인간처럼 식언하지 않는 천황폐하께서 일본 대제국이 조선을 합병할 때 미국과 서방 열국과 세계 앞에 약속한 것을 어길 리가 있는가? 천황은 조선의 종교 자유를 허락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기독교의 본질적 계명을 어기라고 할 리가 있는가.. 고제 주재소 일본인 순사는 이 법치, 그들 스스로 세운 자치를 먼저 지키라는 백영희의 논리에 막혀 6년을 허송했다. 고등계 형사까지 파송이 되었으나 결국 그들은 실패했다.

(해방 후 정부와 국기배례)
공회의 신앙은 일제 때처럼 정부 수립 후 이승만 정권의 안호상 교육부 장관이 국기에 대해 예배를 하라 할 때 일제 때도 하지 않았다고 먼저 전제를 하고 대문 앞에 자기 문패에게 절하는 미개국을 원하냐고 맞섰다. 1948년 8월 15일 이후부터 발생한 국기배례 분쟁은 1950년 6.25 직전의 국내 분쟁을 서둘러 종식 시키려는 대통령의 의지와 공회의 논리가 맞물리며 국기에 대한 국민의 충성 표시는 하되 '예배'라는 구령과 함께 귀신에게 굽히는 자세를 바꾸어 오른 손을 왼 가슴에 얹는 것으로 마무리 했다.




(중국의 공산당 지배)
선교 때문이라 하지만 국내 유명 교회들의 아마 대부분, 아마 전체 선교부가 중국의 정식 교회와 연을 맺고 있다. 선교를 위해서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선교를 위해 천황의 신사참배도 할 수 있는 것이 일제 때 한국 교회의 논리다. WCC가 소련의 공산당 교회와 그렇게 하나가 된다고 하는 바람에 미국의 CIA는 보수 정통 교회를 앞에 세워 ICCC로 맞대응을 했다. 서류를 봐야 알 것인가? 미소 대결이 종식 되면서 옛날 일이 되어 지금은 들춰 보지도 않으나 우리는 이런 불편한 진실도 알고 있어야 한다. 그 시대의 그 바보들처럼 오늘의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해서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 이북에 남아 구월산 유격대를 하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으로 애국자 중에 애국자다. 일제 치하의 독립운동보다 더 어렵고 더 희생했고 더 가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교회 이름으로, 선천군의 교회 청년회가 만일 교인의 조직으로 그렇게 했다면 교회로서는 해서 안 될 일이었다. 참 애매하다. 그러나 이론적으로는 이렇게 선을 그어야 한다. 실제 어떻게 했는지는 조사를 할 수도 없고 자료도 남아 있지 않다. 그렇다 해도 짐작이 가능할 정도의 자료는 곳곳에 흘러 나오고 있다.

애국과 신앙은 구별해야 한다. 이 것을 구별하지 못하면, 효도 때문에 문중 제사를 드리는 식이 되어 결국 천주교의 초기처럼 자충우돌 하다 초기의 그들 순교자를 개죽음으로 만들어 버린다. 애교심과 신앙도 구별해야 한다. 부부의 사랑조차 신앙으로 구별은 하면서 살아야 한다.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에 아내가 가는 절에 가서 불교인이 될 수는 없다.


중국은 공산당이 지배하는 나라다. 대한민국이라는 우리의 조국은 세상에서 생존하고 발전하기 위해 중국 공산당과 장사도 할 수 있고 외교도 할 수 있다. 그 것은 대한민국이 알아서 할 일이다. 그러나 이 나라의 교회는 우리 나라 안에 불교든 천주교든 중국의 공산당이든 중국 공산당 휘하의 교회든, 우리의 신앙으로 살펴서 교회가 중국 공산당의 직계 조직인 교회를 우리와 같은 교회라고 생각하면 이 것은 신은 같은 신이라 하여 신사참배를 했던 논리와 같고 구약의 이방신을 섬긴 경우와 같다.


중국은 원래 공산당이 교회까지 지도한다. 그 지도를 받지 않으면 숨어서 운영한다. 이 것을 지하교회라 한다. 중국 공산당이 알면서 적당히 활용하려고 두는 시절이 있었다. 중국의 공산당이 교회들에게 이런저런 조건을 붙이는 것은 중국의 자유다. 그 자유가 싫어면 그들과 상종하지 않으면 된다. 중국 공산당이 1970년대 개방을 시작하면서 국제 사회로부터 돈을 벌기 위해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는 것처럼 느슨하게 했던 적이 있다. 개의 목줄이 늘어 진다 해서 개에게 자유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제는 개목줄을 많이 당긴다는 소식이 있다. 이전에는 공산당을 비판하면 처벌한다면서 목줄을 넉넉히 풀어 놓았다. 이제는 공산당을 선전하는 일에도 나서라고 요구를 한다는 소식이 전해 진다. 목줄을 많이 잡아 들였다. 그들이 필요하면 모든 예배당에 공산당 깃발을 걸고 공산당 찬양만 하고 예수 이름을 없애라 할 수도 있다. 그렇게 요구를 할 때 그 요구를 듣겠다고 약속한 것이 중국 사회에서 볼 수 있는 교회들이다.



(한국, 우리의 형편)
한국의 경우도, 정부가 교회에게 지금은 목줄을 넉넉히 풀어 놓았다. 그 목줄의 길이로 보면 목줄을 달고 있으나 달지 않으나 별 불편이 없어 보인다. 심지어 목줄을 달면 주인이 던져 주는 부스러기가 많아서 교단마다 모두 자진해서 목줄을 걸었다. 그 것을 교회의 '법인화'라고 한다. 신학교를 신학대학으로 등록하는 것, 교단을 종교 법인으로 등록하는 것.. 그 목줄의 디자인과 길이와 그로 인해 받는 혜택은 천차만별이다. 그런데 어느 날 주인이 목줄을 거머쥐게 되면? 그 때는 왜 그러냐고 대들지 않고 잘 따르겠다는 각서를 자진해서 제출하고 목줄을 걸었다. 그래서 혜택을 받았다. 공회는 바로 이 뒷줄 때문에 아예 신고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오랜 세월 무허가 신학교니, 무허가 교회니, 무허가 사이비니 라는 말을 무척이나 많이 들었다.

일제 때 신사참배로 총독부가 조선 교회의 목줄을 잡아 당길 때 선교사들이 총독부가 미국이나 서양의 정부처럼 기독교에 상식이 있고 선을 지킬 줄 알았다. 우리를 가르친 것은 감사하나 철이 없었다. 또는 선교지의 상황을 그렇게도 몰랐다. 이로 인해 신사참배라는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될 때 선교부는 일제히 총독부에 항의를 하거나 타협을 하는 상황이 되었다. 공산당 국가 안에 교회들도 마찬 가지다. 공산당 국가들이 처음 혁명을 하거나 정권을 잡거나 점령을 하게 되면 전체 민심을 움직이기 위해 급한 사안 외에는 일단 풀어 놓는다. 군대 경찰 정당을 가장 먼저 손을 본다. 그 다음 법원과 행정 공무원과 교육 기관을 장악한다. 이 것이 시급하다 보니 교회처럼 물렁한 곳은 동향만 파악하고 직접 치고 들어 오지 않는다. 대놓고 반대 운동만 하지 않으면 자유를 줄 것처럼 하면서 군인 경찰 정당 등의 적대 세력을 철저히 족쳐 놓는다. 그 것을 구경하면서 그렇게 될까 걱정도 되는데 자유를 준다니 조금만 조심하면 되는 줄 안다. 독 안에 든 쥐라는 사실을 모르고 자기 차례를 맞는다.


북한만 교회를 요절 내는 곳인가? 중국과 소련과 동구 공산 국가들은 그래도 조금 빈 틈을 준 것처럼 보인다. 공회와 거의 비슷해 보이는 지방교회를 시작한 지도자가 중국의 공산화 된 그 속에서도 격리만 되었고 늙어서 별세했다. 이 것이 중국이다. 이제는 정보, 통신, 기술, 교통 모든 면에서 중국 전체를 통제할 수 있다. 이제는 중국의 공산당이 중국의 교회들에게 중국의 공산당을 반대하지 말라는 데 그치지 않고 중국의 공산당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라고 요구하고 있다. 거부할 일이 아니다. 그럴 정도였다면 진즉에 지하교회가 되었을 것이다. 지하교회라 해도 중국의 공산당은 다 파악하고 있다. 그들을 요절을 내게 될 때 오는 문제점과 지하교회 정도로 관리하는 것을 비교하며 스스로 조절을 하고 있을 뿐이다.


현재 국내에서 동성법, 차별금지법 .. 별별 이름을 앞에 붙여 놓고 중국의 공산당처럼 교회들에게 갖가지 목줄을 걸 연구를 하고 있다. 법인처럼 자진해서 목줄을 걸게 하는 방법과 함께 던져 주는 부스러기를 쳐다 보지 않는 교회들에게 강제로 목줄을 걸 연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교회가 신앙의 자유를 지며 보려는 운동이 초교파적으로 열심이다. 그런데 그 반대편의 교회들은 자기들 목에 개줄을 걸고 다른 교회도 개목걸이를 하자며 선동을 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세상은 타락으로 인해 헌부대가 되었다. 지금은 에덴동산이 아니다. 세상은 대한민국도 국회도 대통령도 모든 제도까지도 모두가 겉 모습과 상관 없이 또 당선 된 지도자들의 개인 신앙과 상관 없이 세상 그 자체는 교회와 본질적으로 서로 다르다. 교회에게는 주님의 대속으로 새로운 기회가 주어 졌다. 교회가 가진 복음은 새포도주다. 이 성찬, 이 신앙의 본질을 지키는 것은, 이대로 살려다가 세상이 박해하면 박해를 당하면서도 이대로 사는 생활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그 것이 세상을 이기는 승리며 우리의 전법이다. 세상이 교회에게 요구하는 불법을 막으려고 교회가 세상 속에 들어 가서 세상의 정권이나 국회의원의 숫자를 확보하거나 그들의 지지를 얻으려는 순간, 더 이상 싸울 것도 없이 스스로 세상의 개목걸이를 자기 목에 걸어 버린 셈이 된다. 이 주인과 저 주인에 따라 다른 듯 보인다. 그런데 그들 속을 들여다 보면 뒤로는 '세상'이라는 이름 하에서는 한 몸이다.



신사참배와 6.25의 극단적 상황을 겪어 본 이들, 또는 그런 교회는 이런 본질을 늘 손 끝에 두며 계산을 한다.
지금의 교회 원로나 교회의 가장 위대한 이들의 입에서는 이런 주장이 조금이라도 비치는 정도를 볼 수도 없다.

모두가 세상 어느 줄을 붙들고 교회를 개혁할까, 교회를 보수할까, 자기 교파의 세상적 이득을 볼까, 손해를 막을까..
그 연구만 하느라고 세상의 목줄을 걸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듯하다.



WCC의 동성 문제나 전도 금지법까지 들먹이도록 한국 교회를 한 편으로 거세게 몰아 붙이니
한국 교회는 이 현안으로부터 교회가 생존을 하기 위해 그런 법을 통과 시키려는 쪽의 반대 측에 있는 이들이 주님인 줄 안다..
이리나 늑대나 같은데.. 이리 늑대나 사자 호랑이나 양에게는 다르지 않는데.. 주님만 구주신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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