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오늘, 이 노선에서 본 우리의 신앙 현실

송용조와 서영호 - 그 초기

작성자
연구1
작성일
2023.07.19
두 인물을 통해 우리의 초기와 중간을 살펴 본다.
두 인물을 통해 오늘의 우리에게 뻗어 있는 깊은 영향력을 살펴 본다.
두 인물은 오늘의 서울공회 대구공회 부산공회2가 모두 얽혀 있다. 부산공회1이라는 공회 보수측은 그들과 다르다고 펄펄 뛰며 반발하지만 이 곳이 볼 때는 그들과 부공1이 왜 다른지 모르겠다. 꼭 같다. 그냥 교세 유지를 위해 다르다고 해 봤을 뿐이다.


(성장 과정)
송용조, 경남 창녕 출신으로 1935년생, 서영호보다 3세 위다. 두 사람은 같은 면도 있으나 여러 면에서 아주 대비가 된다.
송용조는 가난한 시골 가정에서 자랐고 서영호는 부자라 하기는 곤란할 수 있으나 어려움 없이 부유하게 자란 상류층이다.
송용조는 불신 가정에서 자랐고 서영호는 어릴 때부터 호주 선교부의 분위기 속에서 뿌리 깊은 신앙의 가정 출신이다.

그래서 그런지 송용조는 천하 어디에 던져 놓아도 당당히 자기를 구축하고 나갈 듯하고, 서영호는 안정된 체계가 제공 되면 그 속에서 자기 역할을 하지 체제 자체가 흔들리면 전기 나간 기계처럼 되는 듯하다. 그냥 그들의 평생이 그렇다. 송용조는 교회가 없는 곳이면 교회를 만들고, 교계는 있어도 공회가 없으면 공회 교회를 만든다. 공회 교회에 제일 중심에 있었으나 불편하게 되자 울타리를 넘어 나갔고 독자 세력을 구축했으며 어디를 가든 말든 그가 원하는 방향으로 평생을 살았다. 서영호는 환경이 바뀌고 체계가 준비 되지 않으면 지나칠 만큼 존재감이 없었다.

그의 동생은 이런 그를 두고 노련하게 때를 기다린다 했고 나는 그참 표현도 멋있다고 놀렸다. 철이 없던 때 오간 말이니 누구 말이 맞는지 알기는 어렵다. 이제 이들이 평생을 살았다. 지난 날을 가지고 둘을 비교하는 것은 별로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열매가 주렁주렁 열렸다. 감나무인지 사과나무인지 가을에 이름표를 붙이는 것을 두고 남을 험담한다고 말한다면 나는 열매를 보아 나무를 알라 하신 말씀 때문에 그냥 웃고 넘어 갈 듯하다.




(학문의 과정)
* 초중고, 대학 과정
송용조는 모든 면에서 남 다른 출장함을 가졌다. 그러나 가정 형편 때문인지 대학을 가지 못했다. 중고등학교도 누구 말로는 부산의 평화중학교를 다녔다 하면서 당시 인준 학교였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본인도 주변도 한국에서 다닌 학교 이름이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당시 거의 모든 훌륭한 신앙가들이 거쳐 갔던 그런 애매한 과정이었나 싶다. 정확한 학교나 자료를 가진 분이 있다면 댓글에 표시를 해주면 좋겠다.

서영호는 초등학교 과정에 1년을 월반했다. 천재라는 뜻이다. 부산 경남의 최고 명문인 경남중고등학교를 우수하게 거쳤다. 또한 58학번 서울대 영문학과의 학부와 대학원 과정을 그대로 이어 갔다. 대학교 입학 시험에 필기만 보고 면접을 주일이라 거부했음에도 1차 시험의 성적 때문에 합격을 시켰다는 이야기를 통해 정규 교육의 한국 최정상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학력을 기준으로 비교한다면 송용조의 학사 과정은 허무한 듯하다. 그러나 일제 말과 해방 초기를 거친 한국 교계의 1세대 학자들은 대부분 송용조와 같은 과정을 거쳤다. 오늘과 다르기 때문에 흠이 되지 않는다. 다만 서영호와 비교를 하게 되니 초라해 보일 뿐이다.

* 신학 과정
서영호는 세상 정규 과정을 모두 최고 수준으로 거친 다음에 1968년 서울의 청량리교회를 목회하면서 대한신학교를 마쳤다. 그러나 그에게 대한신학교란 목사 안수 과정에 필요해서 다닌 견문 정도다. 이후 1968년 미국에서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 입학하여 M.Div와 Th.M 그리고 템플대학교에서 Ph.D를 마쳤다. 한국 교계에서 서영호의 학사 과정을 넘어 서는 인물은 없다고 볼 정도다.

송용조는 세상 교육 체계도 당시 모두가 거치는 과정을 애매하게 지냈다. 대학은 아예 생각하지 못했고 부산신학교를 거쳤다. 부산에서 부산신학교는 그 학교가 부산신학교라고 이름을 붙이니 그렇게 부르기는 하지만 부산 경남의 고신 세력, 특히 우리의 개념에서 부산신학교는 모든 면에서 그냥 어디 비정규 학교 취급을 했다. 그런데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면 한국에서 서울대를 나왔든 한국에서 새마을 공민학교를 나왔든 별로 따지지 않는다. 미국의 신학교에서 그 사람의 인격과 신앙과 강의실에서의 실력을 볼 뿐이다. 송용조가 거친 Fuller(1973-76)나 Concordia(1976-78) 신학교는 공회나 고신처럼 한국의 보수 교계에서는 이름도 잘 모를 정도였다. 미국에서는 이런 학교가 더 유명하지만 한국 자체가 이상한 곳이어서 만사가 뒤집어 지는 곳이 아닌가?

한국 안에서만 보면 서영호는 고신 합동 통합 교단까지 모두가 욕심을 내고 가져 가고 싶은 최고의 길을 걸었다. 송용조는 눈치 있고 재주 있는 이들이 서영호처럼 갈 수가 없다면 이리저리 해서 어떻게 뚫어 내는 그런 길로 보인다. 그런데 일단 미국에서 유학이 시작 되는 순간 Fuller나 Concordia라는 이름은 참 괜찮다. 서영호가 밟은 길보다 나아 보인다. 실제 학교를 다니는 과정을 봐도 신학이라는 이론과 목회의 현장을 맡아야 할 목사로서 서영호의 길보다 송용조의 길이 훨씬 나아 보인다.

* 미주 유학 시절
두 사람이 함께 1970년대를 미국에서 주로 보냈다. 서영호는 Philadelphia에서만 10여 년을 보냈다. 그는 누구에게나 존경 받는 좋은 목사감이고 미래의 신학자였다. 그러나 그와 함께 개척하는 사람은 단 한 가정도 없었다. 이름은 좋으나 함께 교회로 출발할 사람이 없었다. 한국에서 목회를 하다가 간 목사인데, 목사가 목사 가는 곳과 목사가 사는 곳에 교회가 없다면 목사일까? 이 것이 공회적 시각이다. 타 교단에서는 목사가 목사할 시간이 없고 학자로서 책만 보고 있으면 훨씬 위대하게 본다. 이런 목사가 신학 과정을 다 마치고 나면 바로 최고의 교회가 스카웃을 해 간다. 우리는 그런 교계를 보면서 그 것도 교회냐고 반론한다.

송용조가 미국에서 Fuller 신학교를 출발하게 되자 LA 교회라는 공회의 해외 및 미주 첫 교회가 개척을 한다. 이렇게 되어야 공회는 목사라고 한다. 그런 목사가 신학을 한다면 신학을 할 만하다고 말한다. 그렇게 출발을 시킨 다음에 St. Louis의 Concordia 신학교로 가게 되자 그 곳에 또 공회 교회를 개척한다. 이미 공회 교인들은 Philadelphia에도 있고 LA에도 있고 St. Louis에도 있었다. 목사가 있으면 교인이 모이고, 교인이 없으면 목사는 교인을 모은다. 이래도 저래도 목사가 있으면 교회가 선다. 이 것이 교회고 이 것이 신앙이다. 그리고 이렇게 모여 진 곳에 상식이 필요하거나 몇 가지 확인할 일이 있으면 성경학교도 세울 수 있고 신학도 할 수는 있는 것이다. 목사에게 자기 신앙과 교인과 교회가 먼저 있고 나서 성경학교든 신학교든 교단이든 뭐든 별관처럼 따라 가는 것이다. 공회의 기본 시각이 이렇다 보니 서영호 송용조 두 사람이 1970년대에 미국으로 유학을 갔고, 그들의 소식이 간간히 들릴 때마다 서영호는 산 너머 남의 동네 사람처럼 여겨 졌고 송용조는 비로 미국에 있다 해도 우리 부근에 있는 느낌이었다.

말하자면 1970년대의 미국 유학 시절에 두 인물 중 송용조는 공회 내부의 인물이 공회를 위해 미국에 유학 중이며 유학 과정에서도 공회적 상태가 진행 된다고 보았다. 서영호는 적지에 간 우리 편이 적이 되었는지 우리 편으로 여전히 변치는 않았는지 소식도 그렇고 만사가 의심스러웠다. 서영호는 변하지 않는 인물이다. 공회는 출신들이 급하다. 성향들이 천박하다. 그래서 눈에 뭔가 보여야 비로소 안심을 한다. 송용조도 변하지 않는 인물이다. 그런데 공회에 걱정을 하지 말라고 전하려 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공회 체질의 사람이다 보니 결과적으로 늘 든든했다. 세상적 교계적 학벌이나 학문의 실력으로는 서영호가 앞설 것이나 세상과 교계에는 언제나 인물들은 있다. 송용조는 학벌과 학문에서 밀릴 것이나 어디를 가도 공회적 신앙을 견지하고 있다면 이 면이 공회의 정체성이다. 그렇다면 공회로서는 송용조가 보석이고 서영호는 늘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인물이다.
전체 2

  • 2023-07-19 20:58
    그러나,아직이지만
    결과적으로 본다면, 서 **설교자가 서부교회
    30 여년 넘게 있으니 뼛속은 공회인이라
    볼 만하다 그것을 증명한다.
    단점이야 누구든 없겠는가
    본 서기의 장점은 헤아릴수 없으나
    장조사처럼 했다면 어땠을까!
    목사감 이지만, 본 설교자를 위해
    아낌없이 서 있다. 설교는 일반적일찌라도
    누구나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은
    그분 뿐일까 부모위치에 있는 분이나
    서**를 다연히 평가 처리하는 것이 물한잔 일수 있는지
    하여튼 ,인물은 인물이라 감사를 찾아본다
    미약하나마 ...

  • 2023-07-20 10:35
    서 목사님을 존경하는 분들의 착각..
    서 목사님이 마음을 먹으면 갈 수 있는 곳이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서 목사님이 갈 수 있는 곳은 시간 강사 급 교수직뿐입니다. 고신 총신 그 어느 신학교도 제대로 된 신학교의 교수직은 그 교단의 정치 총량이 집중 되어 있습니다. 학교 시절의 객관적 실력으로 가는 곳이 아닙니다. 정권이 바뀌고 교육부 장관을 임명할 때 대통령과 뜻이 맞지 않으나 수능고사 점수가 우수하다고 뽑는 것이 아님과 같습니다. 이 것이 서 목사님이 간다면 갈 수가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고신 총신 등의 구조입니다. 그 쪽의 뿌리와 교권 정치를 아는 사람들은 그들이 박형룡 박윤선처럼 시대에 하나밖에 없는 인재조차 교권을 가진 쪽에서 자기 사람이 아닐 때 바로 쳐내버린 상황입니다.

    서부교회의 1990년대 상황은 구조적으로 학벌 좋고 후덕한 인물에 목이 말랐던 시절입니다. 그 시절에 딱 맞는 분이 오셨습니다. 그대신 그 결과는 서 목사님이 부임하면 교회는 침체 된다는 값을 내야 했습니다. 전국 교계가 부흥하고 공회 교회들이 다 부흥하던 시절도 서 목사님 가는 곳은 교회가 줄어 듭니다. 그런데 서부교회에 서 목사님을 모시려 몸부림 치던 분들은 서부교회 울타리만 알았지 공회를 몰랐습니다. 당시 공회 전체를 보는 눈을 가진 이들은 거의 다 대구공회 쪽이었습니다.

    지금 서부교회 예배당의 그 넓고 넓은 곳이 광야처럼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목회자로서 또한 교인다운 교인으로서는 무조건 생각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평양의 김씨들도 그래도 우리 때문에 미국이 우리의 존재감을 의식하고 남한이 세계 10대국이 되었다 해도 우리 눈치를 보는 것은 김씨들이 인물은 인물이다.. 이렇게 말할 때 그들 때문에 묻혀 버린 무수한 눈물과 절망을 앞에 놓고 그 말과 함께 말을 해도 해야 할 듯합니다.

    공회에는 많은 공로자들이 있었습니다. 서 목사님의 학벌 방면과 비교하면 다른 방면에서 그만큼 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들 때문에 공회는 소리 없이 덕을 많이 봤습니다. 그런데 서영호, 그 이름 때문에 덕을 본 것은 없고 오히려 서영호조차 공회와 서부교회가 이단이라고 정죄 받을 때 침묵을 했으니 공회와 서부교회는 실제 이단이 맞기는 맞다.. 이런 결과를 평생 보여 주고 있었습니다.

    아쉬운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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