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 노선에서 본 우리의 신앙 현실
공회 별 드러난 특색 - 부공2 행정..
작성자
담당
작성일
2023.06.29
(공회의 수준)
* 장로님이 목회를 하면 '호칭'이 어찌 되나?
백 목사님은 한순간 갑자기 가셨다. 1989년 8월 27일 주일에 가셨다. 그리고 주간은 장례의 진행만 있었다. 그리고 다음 주일이 9월 3일이고 그 다음 월요일은 9월의 첫 주일이 지난 첫 월요일이니 정례 교역자회가 있었다. 회의가 진행 되다가 학장교회 목회자는 진용택 장로님이니 '조사님'과 '장로님'의 호칭이 혼재가 되어 질문이 있었다.
* 성직자와 평신도의 기준 문제로 본 총공회
사회자는 교계의 일반적 분위기를 전했다. '조사와 전도사는 같은 말인데 전도사는 사람도 아닙니다. 장로교의 장로는 목사와 동급입니다. 장로님이 목회를 한다고 전도사라고 부르면 안 된다'는 취지로 말이 나갔다. 별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아파트 50층 창문에서 재떨이를 밖으로 던지면 그 의도와 상관 없이 살인자로 상대해야 한다. 목사님 생전에 총공회 자체를 뜯어 고쳐야 한다는 운동이 80년대의 민주화처럼 공회에서도 난리였다. 조사라는 표현, 그 직책, 그 성격은 공회의 거의 모든 면을 다 담고 있었다. 사회자에게는 미안했으나 이 표현과 분위기가 목사님 사후 공회의 분리는 필연인데 대구공회를 위해 기존 공회를 개혁하는 신호탄처럼 되었다. 연구소 직원이 발언에 나섰다. 타 교단은 그렇고, 공회는 조사와 목사는 같으니 장로는 평신도고 조사는 성직자지요..
한순간 벌컥 뒤집어 졌다. 대구공회로 나갈 분들은 이제 광우병처럼 세월호처럼 한 건을 건졌다. 벌떼처럼 들고 일어 났다. 장로는 당회원이고, 조사는 1년짜리 비정규직이라는 것이 당시 대구공회의 인식이다. 조사가 공석에서 장로를 평신도라 한 것이 장로 무시라 난리였고 조사가 성직자라는 말을 두고 조사를 1년짜리 비정규직이 어떻게 감히 성직일 수 있느냐는 논리였다. 서부교회 장로님들이 우선 벌컥했다. 교학실에 찾아 가서 저런 조사를 처리하라고 요구했다. 교학실장님은 노련한 분이다. 뒤로는 부추겨 놓고 항의하는 이상원 장로님에게는 청원서에 그 뜻을 잘 줄 적고 서명을 부탁했다. 이 장로님은 헌병 출신이라 벌컥 하지만 동장으로 은퇴하여 행정을 안다. 순식간에 이 사람들 사이에 뭔가 있구나 해서 청원서를 내지 않고 나왔다.
성직자와 평신도라는 표현은 불신자도 알 정도의 상식이다. 일반 교인이면 모른다 해도 교회의 운영에 조금이라도 활동을 해 본 사람이 이 기준을 모른다면 중학교의 세계사를 접하지 않았으니 국졸 정도다. 국졸이라 해도 학교에서 배울 기회가 없었지 세상을 살았고 교회를 출석했다면 모를 수가 없는 상식이다. 이런 표현을 가지고 교역자회나 장로님들에게 설명을 할 때는 속에서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나의 단점은 이런 순간에 곱게 말하지 않는다. 일부로 옆구리를 푹푹 쑤셔 버린다. 그래서 지금도 이 모양 이 꼴이다.
(세계적 신학자?)
전도사는 사람도 아니라고 발언했던 교역자회 사회자는 부공2 추종자들이 세계적인 신학자라고 추앙하는 분이다. 한국에는 세계적 신학자가 참 많다. 이 분은 성품도 신학도 찬송 음성조차 다 좋다. 딱 하나 아쉽다면 가는 곳마다 교인은 무조건 내려 간다. 학자니 그렇다. 치과 의사에게 혈액암을 물으면 알까? 영어 전공자에게 물리를 물으면 알까? 그래도 박사라 하면 묻고 또 그 박사는 그래도 뭔가 대답을 한다. 그 박사는 그냥 보통 아는 정도에서 말을 하는데 듣는 사람은 세계적 신학자가 내린 정답인 줄 안다. 이런 곳을 공회라 한다. 세월이 30여 년 지났으니 이제는 이 정도의 코메디는 대폭 줄지 않았을까..
교계의 전도사는 사람도 아니다. 요즘 말로 하면 1년짜리 비정규직이다. 그런데 당시 회의는 목사님 순교 후 첫 회의였다. 모두가 비장했다. 공회의 한 치 앞을 모를 때다. 기본적으로 이제 모조리 뜯어 고치자는 3분의 2가 굉음을 내며 출발을 준비했고, 3분의 1은 과거를 지켜 내야 하는데 과연 가능할지 암담해 했다. 이런 긴장 속에 아주 가볍게 넘어 갈 만한 질문이 나온 것이다. 학장교회 목회자는 진학일 장로님인데 이런 경우 조사님인가 장로님인가 호칭을 물었다. 사회자가 세계적 신학자면 공회의 사례를 아는가? 이 분은 교계와 다른 공회의 문제점을 평소 질타해 왔다. 부공의 입장에서 보면 공회를 폐기하려고 질문자는 미끼를 던지고 사회자는 웃어 가며 공회를 지긋이 밟아 버리며 공회원 3분의 2는 드디어 도살이 시작 된다며 흥분을 하고, 부공1의 성향을 가진 분들은 공회의 조사 의미는 모두가 알면서도 이 문답 앞에 그냥 할 말을 잃고 순간적으로 정전 된 기계들이었다. 이후에 전원일치 논리, 헌법 제정 논리, 재독 정죄 논리... 수도 없는 망발이 쏟아질 때마다 분위기는 늘 비슷했다. 이렇게 될 때마다 연구소는 참으로 피하고 싶지만 그냥 두면 통째로 왜곡이 될 상황이어서 한 마디씩 해서 사태를 제 자리에 돌려 놓았다. 이렇게 했으니 제명을 5번이나 당하지 않을 수는 없다.
(최근의 상황)
당시 그렇게 부딪혔던 각 공회의 지도자들 대부분과 30여년 또는 그 이상을 접촉 없이 살았다. 1989년에 치열했던 대구공회와 부산공회의 분쟁 때는 한 쪽 모퉁이에서 기도만 하고 걱정만 하면서 그런데 심정은 부산공회 쪽이었던 분들은 그 시기에 주님만 바라 보고 기도를 하느라고 나설 기회가 없었다고들 한다. 경건하여 그렇지 몰라서 당한 것이 아니고 용기가 없어서 나선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최근에 그런 경건한 분들의 활동을 곳곳에서 접하거나 지켜 볼 기회가 있었다. 1989년부터 그렇게 총공회 개혁을 부르짖은 분들의 일부는 서울공회라는 이름 하에 교계 어느 심해 속에 있다. 그들을 지켜 보며 옆에서 뒤에서 추종하던 분들 중 대부분은 상황을 파악한 다음 현재 대구공회 이름으로 총공회의 가치를 지킨다며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 참 감사한 일이다. 1989년, 당시 이 노선을 지킨다며 설친 사람들 말고 그 뒤에 앉아 뭐가 뭔지 몰라 공황 상태였으나 훗날 부산공회에 어떻게 앉게 되고, 1989년에 활동했던 주역이 이 곳 연구소에서 조용히 세월을 보내고 있자 연구소가 활동한 자리를 꿰차고 그들만 총공회라며 전국을 떠들고 다니고 있다. 1989년에 대구공회 지도부가 했던 말, 행동, 논리 딱 그대로다.
원래 기도하던 분들이니 원래 기도하던 곳으로 가면 지금도 보배로울 분들이다.
원래 목회만 하던 분들이니 지금도 목회만 하면 그 교회는 살아 날 수 있다.
이 분들이 정치를 한다며 전국을 설치고 있다. 1989년의 대구공회 일선에서 설쳤던 분들처럼. 그 때 설친 분들의 공통점이 거의 교계 곳곳으로 흩어 져 이제는 공회 이름도 가지지 않고 있을 정도다. 80년대 민주화 운동을 한 사람들이 최소한 도덕적으로는 깨끗한 줄 알았다. 이들이 집권을 몇 번 하고 나니 비로소 이들의 정체가 드러 나고 있다. 자본주의 독재주의 배경을 가지고 해먹던 사람들보다 더 못됐고 더 나쁘다. 자본주의 독재주의를 앞에 세운 이들은 미개국 후진국 가난한 이 나라를 전부 부자는 만들어 놓았다. 민주화를 앞에 세운 이 인간들은 도둑 사기 매국 외에 따로 하는 일이 없어 보인다. 세상만 그럴까? 교회 안에서도 신앙 떠나면 일본 교회는 일제, 미국 교회는 미제, 한국 교회는 딱 조선 기질이 다 나온다. 공회 목회자가 공회적 신앙에서 살짝 벗어 나면 그 순간 우리는 바로 믿기 전의 본전이 그대로 나온다.
부산공회1 쪽의 장로님 목사님들은 교계를 다니며 불신 사회를 만난다 해도 첫 마디에 '순교하신 백영희 목사님'을 평양에 김씨 앞에 붙이는 수식어처럼 붙인다. 지금도 그럴까? 지금은 이제 허기져서 말이 나오지도 않을 듯하다. 다 없어 졌고 사라 졌다. 부공2의 행정을 맡은 위대한 목사님들이 공무원이고 세상 누구를 만나도 총공회의 교리와 신조와 행정을 들이민다. 그렇게 하기 전에 연구소를 찾아 와서 헛소리를 하다 면박 받고 돌아 간 사람이 그 동네에서 제일 윗 자리에 앉아 계신다. 그 분이 원래 이런 행동이 나오면 가장 먼저 진압을 한다고 했던 분이다. 그 분마저 이렇게 막 간다면 이 동네가 이런 일에서 그치지 않게 된다. 이 것이 부공2의 구조적 문제다. 총공회 전체를 대표할 만한 외부적 단체는 그래도 80개 교회의 대구공회와 서부교회를 포함한 60개 교회의 부산공회2다. 대구공회는 미꾸라지 하나에 엉망은 되었으나 전체적으로는 총공회적 입장은 조금 가진 듯 보인다. 부공2는 1989년에 대구공회 뒤를 따라 가던 이들이다. 이들의 목덜미를 붙들어 부산공회에 앉힌 것이 이 곳이다. 아니라고 할 분이 실명을 적어 주면 당시 그 분의 행적을 적어 드릴 수 있다. 당시 일지는 여러 사건을 거치며 법원에서 인정하는 공적 입증 자료가 되어 버렸다. 그 일지에 현재 부산공회2의 최고 원로들의 1989년과 1990년의 행적들 그리고 1997년과 1998년을 지나 가며 호적을 바꾸고 신앙의 노선을 개조한 기록들이 있다.
부산공회2는 기도만 하고 자기 교회 목회만 주력하면 오늘도 이 곳을 지도할 신앙의 사람들이다. 이들이 행정에 나서고 정치에 나서며 자기 교회 밖을 돌아 다니면 전국 교회와 총공회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아주 침몰하게 만드는 행동이 된다. 몇 목사님들께 드리는 고언으로 읽어 주셨으면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 분들을 평생 주변에 귀한 공회 목회자들이라고 소개를 해왔다. 그런데 이들이 뒷늦게 밤일을 배운 모양이다. 새벽 오는 줄도 모르고 난리들이다. 이 표현들이 마음에 들지 않겠으나 기도실과 교회 목회만 주력하면 좋겠다. 걱정 될 인사 이동 소식이 들려서 적어 본다. 그렇게 정치로 돌아 다니면 곤란다.
* 장로님이 목회를 하면 '호칭'이 어찌 되나?
백 목사님은 한순간 갑자기 가셨다. 1989년 8월 27일 주일에 가셨다. 그리고 주간은 장례의 진행만 있었다. 그리고 다음 주일이 9월 3일이고 그 다음 월요일은 9월의 첫 주일이 지난 첫 월요일이니 정례 교역자회가 있었다. 회의가 진행 되다가 학장교회 목회자는 진용택 장로님이니 '조사님'과 '장로님'의 호칭이 혼재가 되어 질문이 있었다.
* 성직자와 평신도의 기준 문제로 본 총공회
사회자는 교계의 일반적 분위기를 전했다. '조사와 전도사는 같은 말인데 전도사는 사람도 아닙니다. 장로교의 장로는 목사와 동급입니다. 장로님이 목회를 한다고 전도사라고 부르면 안 된다'는 취지로 말이 나갔다. 별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아파트 50층 창문에서 재떨이를 밖으로 던지면 그 의도와 상관 없이 살인자로 상대해야 한다. 목사님 생전에 총공회 자체를 뜯어 고쳐야 한다는 운동이 80년대의 민주화처럼 공회에서도 난리였다. 조사라는 표현, 그 직책, 그 성격은 공회의 거의 모든 면을 다 담고 있었다. 사회자에게는 미안했으나 이 표현과 분위기가 목사님 사후 공회의 분리는 필연인데 대구공회를 위해 기존 공회를 개혁하는 신호탄처럼 되었다. 연구소 직원이 발언에 나섰다. 타 교단은 그렇고, 공회는 조사와 목사는 같으니 장로는 평신도고 조사는 성직자지요..
한순간 벌컥 뒤집어 졌다. 대구공회로 나갈 분들은 이제 광우병처럼 세월호처럼 한 건을 건졌다. 벌떼처럼 들고 일어 났다. 장로는 당회원이고, 조사는 1년짜리 비정규직이라는 것이 당시 대구공회의 인식이다. 조사가 공석에서 장로를 평신도라 한 것이 장로 무시라 난리였고 조사가 성직자라는 말을 두고 조사를 1년짜리 비정규직이 어떻게 감히 성직일 수 있느냐는 논리였다. 서부교회 장로님들이 우선 벌컥했다. 교학실에 찾아 가서 저런 조사를 처리하라고 요구했다. 교학실장님은 노련한 분이다. 뒤로는 부추겨 놓고 항의하는 이상원 장로님에게는 청원서에 그 뜻을 잘 줄 적고 서명을 부탁했다. 이 장로님은 헌병 출신이라 벌컥 하지만 동장으로 은퇴하여 행정을 안다. 순식간에 이 사람들 사이에 뭔가 있구나 해서 청원서를 내지 않고 나왔다.
성직자와 평신도라는 표현은 불신자도 알 정도의 상식이다. 일반 교인이면 모른다 해도 교회의 운영에 조금이라도 활동을 해 본 사람이 이 기준을 모른다면 중학교의 세계사를 접하지 않았으니 국졸 정도다. 국졸이라 해도 학교에서 배울 기회가 없었지 세상을 살았고 교회를 출석했다면 모를 수가 없는 상식이다. 이런 표현을 가지고 교역자회나 장로님들에게 설명을 할 때는 속에서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나의 단점은 이런 순간에 곱게 말하지 않는다. 일부로 옆구리를 푹푹 쑤셔 버린다. 그래서 지금도 이 모양 이 꼴이다.
(세계적 신학자?)
전도사는 사람도 아니라고 발언했던 교역자회 사회자는 부공2 추종자들이 세계적인 신학자라고 추앙하는 분이다. 한국에는 세계적 신학자가 참 많다. 이 분은 성품도 신학도 찬송 음성조차 다 좋다. 딱 하나 아쉽다면 가는 곳마다 교인은 무조건 내려 간다. 학자니 그렇다. 치과 의사에게 혈액암을 물으면 알까? 영어 전공자에게 물리를 물으면 알까? 그래도 박사라 하면 묻고 또 그 박사는 그래도 뭔가 대답을 한다. 그 박사는 그냥 보통 아는 정도에서 말을 하는데 듣는 사람은 세계적 신학자가 내린 정답인 줄 안다. 이런 곳을 공회라 한다. 세월이 30여 년 지났으니 이제는 이 정도의 코메디는 대폭 줄지 않았을까..
교계의 전도사는 사람도 아니다. 요즘 말로 하면 1년짜리 비정규직이다. 그런데 당시 회의는 목사님 순교 후 첫 회의였다. 모두가 비장했다. 공회의 한 치 앞을 모를 때다. 기본적으로 이제 모조리 뜯어 고치자는 3분의 2가 굉음을 내며 출발을 준비했고, 3분의 1은 과거를 지켜 내야 하는데 과연 가능할지 암담해 했다. 이런 긴장 속에 아주 가볍게 넘어 갈 만한 질문이 나온 것이다. 학장교회 목회자는 진학일 장로님인데 이런 경우 조사님인가 장로님인가 호칭을 물었다. 사회자가 세계적 신학자면 공회의 사례를 아는가? 이 분은 교계와 다른 공회의 문제점을 평소 질타해 왔다. 부공의 입장에서 보면 공회를 폐기하려고 질문자는 미끼를 던지고 사회자는 웃어 가며 공회를 지긋이 밟아 버리며 공회원 3분의 2는 드디어 도살이 시작 된다며 흥분을 하고, 부공1의 성향을 가진 분들은 공회의 조사 의미는 모두가 알면서도 이 문답 앞에 그냥 할 말을 잃고 순간적으로 정전 된 기계들이었다. 이후에 전원일치 논리, 헌법 제정 논리, 재독 정죄 논리... 수도 없는 망발이 쏟아질 때마다 분위기는 늘 비슷했다. 이렇게 될 때마다 연구소는 참으로 피하고 싶지만 그냥 두면 통째로 왜곡이 될 상황이어서 한 마디씩 해서 사태를 제 자리에 돌려 놓았다. 이렇게 했으니 제명을 5번이나 당하지 않을 수는 없다.
(최근의 상황)
당시 그렇게 부딪혔던 각 공회의 지도자들 대부분과 30여년 또는 그 이상을 접촉 없이 살았다. 1989년에 치열했던 대구공회와 부산공회의 분쟁 때는 한 쪽 모퉁이에서 기도만 하고 걱정만 하면서 그런데 심정은 부산공회 쪽이었던 분들은 그 시기에 주님만 바라 보고 기도를 하느라고 나설 기회가 없었다고들 한다. 경건하여 그렇지 몰라서 당한 것이 아니고 용기가 없어서 나선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최근에 그런 경건한 분들의 활동을 곳곳에서 접하거나 지켜 볼 기회가 있었다. 1989년부터 그렇게 총공회 개혁을 부르짖은 분들의 일부는 서울공회라는 이름 하에 교계 어느 심해 속에 있다. 그들을 지켜 보며 옆에서 뒤에서 추종하던 분들 중 대부분은 상황을 파악한 다음 현재 대구공회 이름으로 총공회의 가치를 지킨다며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 참 감사한 일이다. 1989년, 당시 이 노선을 지킨다며 설친 사람들 말고 그 뒤에 앉아 뭐가 뭔지 몰라 공황 상태였으나 훗날 부산공회에 어떻게 앉게 되고, 1989년에 활동했던 주역이 이 곳 연구소에서 조용히 세월을 보내고 있자 연구소가 활동한 자리를 꿰차고 그들만 총공회라며 전국을 떠들고 다니고 있다. 1989년에 대구공회 지도부가 했던 말, 행동, 논리 딱 그대로다.
원래 기도하던 분들이니 원래 기도하던 곳으로 가면 지금도 보배로울 분들이다.
원래 목회만 하던 분들이니 지금도 목회만 하면 그 교회는 살아 날 수 있다.
이 분들이 정치를 한다며 전국을 설치고 있다. 1989년의 대구공회 일선에서 설쳤던 분들처럼. 그 때 설친 분들의 공통점이 거의 교계 곳곳으로 흩어 져 이제는 공회 이름도 가지지 않고 있을 정도다. 80년대 민주화 운동을 한 사람들이 최소한 도덕적으로는 깨끗한 줄 알았다. 이들이 집권을 몇 번 하고 나니 비로소 이들의 정체가 드러 나고 있다. 자본주의 독재주의 배경을 가지고 해먹던 사람들보다 더 못됐고 더 나쁘다. 자본주의 독재주의를 앞에 세운 이들은 미개국 후진국 가난한 이 나라를 전부 부자는 만들어 놓았다. 민주화를 앞에 세운 이 인간들은 도둑 사기 매국 외에 따로 하는 일이 없어 보인다. 세상만 그럴까? 교회 안에서도 신앙 떠나면 일본 교회는 일제, 미국 교회는 미제, 한국 교회는 딱 조선 기질이 다 나온다. 공회 목회자가 공회적 신앙에서 살짝 벗어 나면 그 순간 우리는 바로 믿기 전의 본전이 그대로 나온다.
부산공회1 쪽의 장로님 목사님들은 교계를 다니며 불신 사회를 만난다 해도 첫 마디에 '순교하신 백영희 목사님'을 평양에 김씨 앞에 붙이는 수식어처럼 붙인다. 지금도 그럴까? 지금은 이제 허기져서 말이 나오지도 않을 듯하다. 다 없어 졌고 사라 졌다. 부공2의 행정을 맡은 위대한 목사님들이 공무원이고 세상 누구를 만나도 총공회의 교리와 신조와 행정을 들이민다. 그렇게 하기 전에 연구소를 찾아 와서 헛소리를 하다 면박 받고 돌아 간 사람이 그 동네에서 제일 윗 자리에 앉아 계신다. 그 분이 원래 이런 행동이 나오면 가장 먼저 진압을 한다고 했던 분이다. 그 분마저 이렇게 막 간다면 이 동네가 이런 일에서 그치지 않게 된다. 이 것이 부공2의 구조적 문제다. 총공회 전체를 대표할 만한 외부적 단체는 그래도 80개 교회의 대구공회와 서부교회를 포함한 60개 교회의 부산공회2다. 대구공회는 미꾸라지 하나에 엉망은 되었으나 전체적으로는 총공회적 입장은 조금 가진 듯 보인다. 부공2는 1989년에 대구공회 뒤를 따라 가던 이들이다. 이들의 목덜미를 붙들어 부산공회에 앉힌 것이 이 곳이다. 아니라고 할 분이 실명을 적어 주면 당시 그 분의 행적을 적어 드릴 수 있다. 당시 일지는 여러 사건을 거치며 법원에서 인정하는 공적 입증 자료가 되어 버렸다. 그 일지에 현재 부산공회2의 최고 원로들의 1989년과 1990년의 행적들 그리고 1997년과 1998년을 지나 가며 호적을 바꾸고 신앙의 노선을 개조한 기록들이 있다.
부산공회2는 기도만 하고 자기 교회 목회만 주력하면 오늘도 이 곳을 지도할 신앙의 사람들이다. 이들이 행정에 나서고 정치에 나서며 자기 교회 밖을 돌아 다니면 전국 교회와 총공회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아주 침몰하게 만드는 행동이 된다. 몇 목사님들께 드리는 고언으로 읽어 주셨으면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 분들을 평생 주변에 귀한 공회 목회자들이라고 소개를 해왔다. 그런데 이들이 뒷늦게 밤일을 배운 모양이다. 새벽 오는 줄도 모르고 난리들이다. 이 표현들이 마음에 들지 않겠으나 기도실과 교회 목회만 주력하면 좋겠다. 걱정 될 인사 이동 소식이 들려서 적어 본다. 그렇게 정치로 돌아 다니면 곤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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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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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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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회 | 2023.11.09 | 0 | 129 |
136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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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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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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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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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회 | 2023.11.09 | 0 | 135 |
13603 |
먹구름이 몰려온다. 1945년의 재현을 염려한다.
13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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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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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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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 2023.10.23 | 0 | 175 |
136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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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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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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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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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1 | 2023.10.24 | 0 | 150 |
136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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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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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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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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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 2023.10.25 | 0 | 106 |
136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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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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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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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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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1 | 2023.10.26 | 0 | 128 |
136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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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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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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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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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1 | 2023.10.28 | 0 | 100 |
136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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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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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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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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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1 | 2023.10.30 | 0 | 92 |
136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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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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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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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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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1 | 2023.10.31 | 0 | 100 |
136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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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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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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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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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 2023.11.02 | 0 | 97 |
13597 |
서울의 중심, 광화문의 3개 교회를 비교해 본다
13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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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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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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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1 | 2023.10.20 | 0 | 176 |
135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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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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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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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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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1 | 2023.10.22 | 0 | 156 |
136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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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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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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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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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1 | 2023.10.29 | 0 | 112 |
13580 |
장례식에 남은 마지막 지장물.. 위패
13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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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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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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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 | 2023.10.15 | 0 | 145 |
13576 |
연구소 공회의 20개 역사와 현황
13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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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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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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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 2023.10.13 | 0 | 179 |
135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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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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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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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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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1` | 2023.10.17 | 0 | 164 |
135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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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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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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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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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 2023.10.19 | 0 | 143 |
13571 |
모든 총회와 노회는 왜 하필 9월인가
(1)
13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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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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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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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1 | 2023.10.12 | 0 | 149 |
13550 |
소속의 형태, 공회를 중심으로
13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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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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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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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1 | 2023.10.05 | 0 | 176 |
135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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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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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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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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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 | 2023.10.06 | 0 | 141 |
135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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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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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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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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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1 | 2023.10.06 | 0 | 133 |
135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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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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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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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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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 | 2023.10.07 | 0 | 174 |
135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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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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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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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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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 | 2023.10.08 | 0 | 123 |
135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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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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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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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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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 | 2023.10.09 | 0 | 142 |
135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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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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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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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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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2 | 2023.10.11 | 0 | 155 |
13548 |
한글 유감 - 한글은 고맙다, 한글학자는 밉다.
13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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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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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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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 | 2023.10.05 | 0 | 131 |
135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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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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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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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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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3 | 2023.10.05 | 0 | 132 |
13529 |
필요한 인원을 주셔서 참 감사하다. 기대하지 않았었다.
13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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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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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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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1 | 2023.10.03 | 0 | 192 |
13525 |
만사 좋지 않았다. 덕분에 만사가 좋았다. - 84년의 유학
13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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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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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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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부 | 2023.09.30 | 0 | 132 |
목사님의 인허를 받고, 공회의 재가를 받고
목사님의 명으로 개교회에서 사역을 한다 할지라도
그냥 서리집사와 같이 1년 임명직이라 보는 것이 맞을지요?
그런데 의대 졸업장과 간호대 졸업장은 병원에서 대우가 다르듯이, 간호사와 조무사는 법적으로 아예 다르듯이 다른 교회는 그런 호칭 그런 직책에 특권을 주는데 공회는 호칭과 직책은 편의상 분담도 하고 부르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실제 그 사람의 신앙, 수고, 결과가 어떤지만 봅니다.
정치꾼인 것 같네요..
자신이 행정을 하면, 살리는 일을 하는 것이고
남이 행정을 하면, 죽이는 일을 한다고,
별별 과거를 별별 논리를 끄집어내어
짓밟는 것이야 말로,
세상 정치판에 속칭 내로남불이 따로 없네요..
자신들을 반대하는 행정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마구 비판해서 물고 찢어놓아야
직성이 풀리는 모양새입니다.
자신들의 해온 행정을 보세요..
자신을 보는 눈이 없으니
백마디를 한들 귀에 들어갈리가 없겠지만...
이 글을 읽는 분들이 한쪽 위주의 말에
현혹되지 않기를 바래서 한마디 했습니다.
공회의 조사는 공회의 본질에 속한 것인데 1989년 9월 교역자회 때 있었던 일을 이 글은 적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 소개한 내용 중에 기억이 잘못 된 부분을 짚어 주면 회개하기 좋고, 이 글의 판단에 잘못이 있으면 구체적으로 지도를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참고로 '성직자'란 거룩한 직책이 아니라 교회에서 월급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실은 교회에서 일을 하고 돈을 버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알고 보면 나쁜 말입니다. 장로님은 세상에서 돈을 벌어 교회에 연보를 합니다. 이렇게 교회 돈으로 먹고 사는 일을 하지 않으면 평신도라 합니다. 조사는 성직자다, 장로는 평신도다, 이렇게 말을 할 때 벌컥 하는 분들은 단어를 몰라서 오해를 한 것입니다. 당시 한국의 '평신도신문'이 있었고 그 회원이 모두 각 교파의 장로님들이었습니다. 연구부가 그 신문을 하나 구해서 서부교회 장로님에게 보여 드리자 얼굴이 붉어 졌고 그냥 없던 말로 끝이 났습니다. 이 것이 정치인가요? 아니면 공회를 정치판으로 가져 가는 것을 막았으니 비둘기 같이 순결한 것인지요?
이런 행위가 없었는데 말을 만들었다면 거짓말로 비판하면 되고, 지금도 장로님은 성직자라 한다면 윗글로 비판하신 분의 교회나 공회는 장로님들에게 교회로 출근하도록 만들고 모두 월급을 주면 됩니다. 또 그 교회 그 공회에서 교회 월급을 받는 목사님 조사님 교회 직원들은 세상에 돈을 벌러 가시도록 하면 됩니다.
양심철저에 나온 정치발언이니,
그때도 지금도 옆구리 쿡쿡이요.
깍쟁이 저리가라나,중심이고
후계자 본선에 있었으나 때가 덜 됐고
학생이 아닌 교수 였으나,소위 요즘
킬러 문항 작성땜에 제명 이니,,
그래도,내팔이라 발언이어서..,
다들 아직도 애라 판명하니,
옥토에 심었다 단언 천언하오니,
지켜볼 밖에 알 사람은 그래도
알것이니, 다만 계부계모는 아닐찌언정
부모의 맘을 이제야 배운듯 하셔서 다행
신풍교회 구건물이 헐렸습니다.
외부회원 때문에 노곡동이 저 사단이 났습니다.
이제 타 공회 목회자들을 정치목사라 하니 뻔뻔함도 몰상식함도 책임감도 없습니다.
마치 평양의 마스게암을 하듯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비판이란 전무한 상태니 마치 중환자가 산소호흡기를 끼고 오늘내일하는 상황입니다.
아직 부공3은 할일도 많고 갈길이 멉니다.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이건 교만이고 자기 모순입니다. 정치목사는 당신입니다. 이런글을 자꾸 쓰면 말도 안듣는 외부회원들이 공회를 또 들쑤시는데 결과를 감당 못합니다.
부공1이 미쳤다고 갑자기 노곡동을 헐었습니까? 부공1,2 목사님들이 생고생을 하고 돌아다니겠습니까? 제발 이제 그만해야 합니다. 솔직히 형제가 형제를 욕하는것 만큼 추한것도 없습니다. 도울건 돕고 빠질건 빠져야 합니다!
부공3의 주력교회인 신풍, 동천은 정말 갈길이 멉니다. 부공2나 대구공회에 5순위에도 못들어 가잖습니까… 아, 신풍은 5위정도는 하려나?
정말 목회에 주력하는건 부공3입니다..
그리고 다른공회 인사이동을 걱정하고 자시고 할거 없이 여기 인사도 문제 많거든요? 그래서 전에 터졌었잖습니까? 과연 지금 문제가 없다고 할수 있을까요? 제발 본공화에나 집중합시다.
그리고 이 글을 쓴 목사님의 의도는 정말 잘 알겠는데 그렇다고 인터넷에만 집중하실게 아니죠? 그 목사님께 직접 그리고 자주 접촉을 해보세요. 솔직히 말이 통할 분이잖습니까? 옛날을 생각해보세요. 물론 차이는 있었지만 두분이 정말 협력한다면 협력할수 있는 또는 그렇게 해야할 일들이 정말 많다고 봅니다. 저는 그분이 개인적으로 부공3에 오시길 기대했는데 하여튼! 목사님이 여러가지로 섭섭(?)할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해봅니다(표현이 정확하지 않은점 양해바랍니다). 할말도 많으시겠죠. 근데 이런 방법은 정말 아닌거 같습니다. 안 통하고 특히 목사님한테도 안 어울립니다. 일단 뭔가 안풀리잖아요.
이런 방법은 외부회원들을 격동시켜서 다른 문제를 양산할 뿐인거 같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목사님 일기에 다른 이상한 댓글이 달리는 모습인거 같아 뭔가 이상합니다.
혹시라도 다른 회원님들은 제 글에 답글을 안 다시길 바랍니다. 정말 요즘의 이런 모습, 부공3의 초심과 안 어울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