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9) 공회의 결혼 이야기 - 20세에 결혼하고 30세에 아이 4명

작성자
서기
작성일
2019.09.22
(만 17세, 여고 2학년)
나는 1981년에 시골에 있던 여동생을 부산의 서부교회로 데려 왔다. 고1을 마치고 고2를 올라 가던 2월 마지막 날이었다.
백 목사님은 교회에서 몇 집 건너 떨어 진 곳에 서부교회 핵심 구역장님들과 함께 관사 지하에서 공동 식사를 하던 때다.
동생을 인사 시키려고 문을 열고 함께 계단으로 내려 갔다. 막 내려 서는 순간 식사를 하시던 목사님은 환한 얼굴을 하셨다.

'아, 동생이야? 이런 인물이 있나! 고등학교 2학년? 됐다, 그만 시집 보내라'

창세기 18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 100세에 아이를 가질 것이라 하셨다. 사라가 몰래 웃다가 들켰다. 나는 여고 2학년 입학식이 내일 모레인 동생에게 시집을 보내라는 말씀을 '말하자면 그런 자세를 가지라'고 해석을 했다. 목사님의 말은 나와 관계 된 것치고 그대로 이루어 지지 않은 것이 없다. 땅에 떨어 진 것이 없다. 모든 면으로 다 그랬다. 그런데 그 말들을 접할 때는 이해가 되거나 그렇겠다 싶은 것이 거의 없었다. 동생은 20대 중반이나 되어서 결혼을 했다. 그런데 지금 나는 나의 교회와 우리 공회 교인들을 만 17세에도 결혼을 시켰고 또 20세면 모두 결혼을 한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실제로는 20세를 살짝 넘기고 있으나 내 주변에 20세 결혼은 흔하다. 30세가 되기 전에 아이 3 - 4명이 예사다. 그 때마다 백 목사님의 1981년 말씀이 나를 몰아 세운다. 왜 그 때 몰랐을까? 철이 없었다. 참 몰랐다.


(백 목사님 가정의 결혼)
그런데, 목사님 7남매 중에 위에서 3명은 1960년대에 결혼을 했다. 아들도 딸도 그 옛날에 모두 30대를 넘겼다. 무척 늦었다.
중간에 2명은 20대 중반을 약간 넘겼다. 막내 2명은 20대 중반이다. 그런데 목사님은 10대 결혼까지 강력하게 몰아 세웠다. 물론 그 과정에 결혼이 깨진 가정들도 있다. 목사님의 결혼관과 자녀 교육만을 두고 말하면 목사님의 설교대로 된 것이 아주 적다. 결혼의 나이도 그렇지만 자녀들은 모두 대학을 나왔다. 설교 시간에는 대학이 필요 없다고 했고 학교를 다니는 사람들을 자퇴하게 했다. 연구소 직원 중에 한 분은 목사님께 직접 항의를 했다. 왜 목사님 자녀들은 전부 대학을 시키면서 나는 고등학교도 가지 못하게 하느냐고. 또 목사님 자녀들은 대부분 다른 교단 교회를 다니거나 타 교단 목회자 밑에서 신앙생활을 한다. 손주 20명은 거의 대부분 타 교단에 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공회 교회 외의 교회는 교회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목사님도 출타를 하면 차라리 혼자 예배를 드리는 것이 낫다고 했을 정도다.

나는 1984년 미국에서 손주들을 처음 대했다. 그들은 벌써 뛰어난 이들이었다. 그들에게 이 노선을 가르쳤다. 그들은 서로 앞으로 할아버지의 설교를 번역하겠다고 경쟁을 했다. 지금까지 성의 표시로 몇 개를 했을 뿐이다. 실제로는 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맞다. 연구적인 노력은 27명의 자녀 손주 전체를 통해 아직도 단 한 개의 글도 나오지 않았다. 백도영 목사님의 발표는 몇 번 있었으나 공회 교권 투쟁 가운데 나온 것이지 순수하게 신앙 발표로 나온 것은 아직 내가 모른다. 결국 나는 아무도 하지 않은 일을 혼자 했다. 혼자 달리니 완성도에 상관 없이 1등이다. 내 글에 대해서 아직도 공식적으로 나온 비판은 없다. 물론 뒤에서는 말이 많다. 그러나 어느 한 부분도 딱 찍어서 직접 비판하지 못한다. 그러니 나의 글은 발표 기준만으로 보면 총공회의 기준에 맞는 완제품이다. 그래서 더 슬프다. 내 실력은 총공회나 일반 사회의 평균이다. 그런데 왜 이 노선에는 단 1명도 이 노선 기준에 따른 발표나 노력이나 시도가 없을까? 한동안 이 노선의 경건성 때문에 발표를 극히 사리는 분위기라고 짐작을 했다. 그런데 재산 때문에 싸우고 교권 때문에 떠들 때 보니 입도 있고 글도 있다. 그럴 때는 나보다 훨씬 더하다. 공회의 슬픔, 공회에 대한 탄식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 해도 세상적으로 말하면 나는 이 노선을 기준으로 볼 때 혼자 달려 1등이다. 나의 독점 세계다. 나는 이 세계를 기독교 2천년의 중심에 섰다고 본다.

백 목사님의 가정에서 그 자녀나 그 손주 쪽에서 나온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서영준 목사님은 실제 가능했으나 일찍 가셨고 나머지는 실력이 넘치는데 하지 않았다. 손주들 중에 1명은 확실히 내가 돕고 훗날에는 내가 배울 인물로 봤다. 그런데 그 인물도 현재 40대지만 교회를 다니는지 모르겠다. 백 목사님 사후 공회의 최고 인물인데 정말 이대로 끝이 날까. 아니면 어느 날 내게 와서 내게 도움을 받고 그리고 늦었지만 새로 출발하여 나를 가르치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결혼과 진학으로 형성된 연구소)
목사님께는 특수한 사정이 있었다. 목사님의 자녀 결혼과 교육과 진로는 교리가 아니다. 교인의 신앙 일반에 대한 일반적 지도 차원이다. 목사님께는 너무도 다른 특수 환경이 주어 졌다. 전기에서 잠깐 설명했으니 여기서는 줄인다. 나는 이 점을 두고, 내가 유일하게 목사님에 비하여 빠지지 않는 부분이다. 나의 아이들과 나 주변 교인들은 지금 시대에 20세 결혼이 추세다. 대개 아이도 많이 낳는다. 교육은 목사님의 지도에 따라 초등학교 이상은 독학을 원칙으로 한다. 웬만하면 남자는 노동 현장으로 간다. 여반도 주일과 집회 때문에 좋은 직장과 진로를 거의 포기한다. 목사님의 손주들은 목사님 때문에 직접 당한 고초가 없다. 그런데 그 손주들과 나 주변 아이들을 비교하면 신앙과 진로를 두고 확실히 우리는 모두 목사님의 지도 방향에 있고 그들은 대개 그렇지 않다.

그래서 나는 백 목사님의 신앙 계통은 그 분의 집안 자녀로 이어 가지 않고 나를 통해 연구소 중심의 우리를 통해 내려 간다고 생각을 한다. 백영희 신앙의 노선의 의미가 특별하다면 이 계통적 승계는 왕조 시대의 왕권 승계와 같은 의미다. 신앙의 계통적 흐름을 우리가 지니고 있다면 우리는 이 노선의 적자다. 장자다. 여기에다 최근 그 자녀들 전부가 백영희 설교를 자신들만의 사유재산이라고 도장을 찍고 나를 고소하고 나섰다. 이로 인하여 이제 공식적으로 그들은 백영희 신앙 계통을 스스로 떠났고, 그들이 도장을 찍어 나만 고소를 함으로 나는 백영희 신앙의 적자로 공인이 되어 버렸다.

야곱은 에서로 내려 가던 계통을 찬탈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죄를 지었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도 그 분들이 먼저 고소라는 죄를 통해 하늘의 이런 영광, 이런 횡재, 이런 위치에 등극을 시켰다. 내가 실력이 있어 그렇게 되었을까? 여수 바다가의 시골 교회 하나로 세계10대 교회가 버려 둔 일, 백 목사님의 7남매와 20명의 세계적인 인재들이 지난 수십 년간 버려 둔 일, 그 일을 했을 뿐이다. 나는 설교록을 출간하고 자료를 무제한 제공하던 순간까지 제발 서부교회가 해 달라고 사정을 했고, 자녀들이 운영하는 부산 연구소를 향해 끝없이 부르짖었다. 서부교회는 심지어 10명의 결사체를 만들어 비밀 회원들만 나눠 가졌다. 제천의 남천교회와 수원의 수산교회가 실무를 맡아 그렇게 봉합을 해버렸고 서영호 목사님을 비롯한 부공2의 핵심 지도부가 그렇게 했다.

아무도 돌아 보지 않고, 누구도 하려 하지 않고, 나는 사방에다 대고 제발 좀 하시라고 사정사정을 하면서 결국 내 손으로 하게 되었다. 백영희 신앙 노선의 자료와 전달하는 일을 두고. 결과적으로 나는 혼자 달려서 혼자 1등을 했다. 1998년부터 인터넷을 통해 대대적으로 알려 지기 시작하였다. 그 과정에 나를 돕는 이들은 앞에서 말한 결혼과 학교를 두고 나와 생각이 같은 이들이 직원이 되었고 이런 행동을 본 이들이 연보로 지원을 해 주셨다.

내가 한 일이 위대한가?
녹음을 타이핑 하는 것은 불신자도 할 수 있다. 전하는 것은 CD 한 장에 초기에 10개 설교를 담아 전했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인터넷에 공짜로 마음껏 전했다. 돈이 들지 않는다. 지금은 손톱만한 USB 1개에 120기가 용량의 모든 자료를 모두 담는다. 그런데 왜 이 것을 모두가 막고 나서는가?


(이 노선이 정말 시대적 가치가 있는가?)
말은 쉽다. 그러나 실행은 어렵다. 어려워서 어려운 것이 아니라 모두들 세상이나 타 교회의 사고 방식으로 시도를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수 많은 것 중에 하나를 들어 말한다. 목회자냐? 최저 생활을 하라. 최저 생활의 기준은 아이들의 공부를 초등학교까지 시키고 이후 자립을 시켜라. 그 것이 이 노선이며 그 것이 세상을 제대로 살게 하는 경쟁력을 심는 것이다. 그 것이 공회의 생활 지도이다. 그 것이 보장 될 때 이 노선의 주일과 집회와 신앙을 실제 생활 속에서 지켜 낼 수 있다. 그리고 20세가 되면 결혼을 하라. 20세 결혼을 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눈만 낮추면 된다. 그리고 이 말씀으로 살아 가면 나머지는 저절로 해결이 된다. 그러면 이 노선의 교인도 되고, 교회도 개척할 수 있고, 개척한 교회의 유지도 발전도 가능하다. 그리고 천하가 다 어두워 지고 썩는다 해도 남 걱정할 것 없이 적어도 우리는 이 노선에서 최소한의 생존은 할 수 있다. 생존이란 조금만 생존을 버티면 조금이라도 성장을 하게 된다.

최근 연구소 내부 핵심의 이탈은 결국 내적으로 이런 문제를 두고 실제 그렇게 할 수 있느냐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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