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오늘, 이 노선에서 본 우리의 신앙 현실

교회의 공유와 분리 - 건물 공동 사용을 중심으로

작성자
담당c
작성일
2022.11.11
(규격화와 차별화/ 일원화와 다양화)
경찰서와 군대와 행정 조직은 5천 만 국민이 함께 사용한다. 이 것을 분리하면 내전이 되고 밀림이 된다.
한 마음의 가정 별 식사를 공유하면 우선 돈벌이는 좋아 진다. 그러나 가정의 분위기가 없어 진다.
울타리는 공유하면 더 낫다. 굳이 분리하려면 해도 된다.
공유를 해야 하는 것, 분리를 해야 하는 것,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거나 알아서 해도 되는 것.. 무엇이든 이런 것이 있다.

하나님, 예수님의 구원, 기본구원, 교회의 필요, 주일과 예배 그 자체 이런 것은 협상 대상이 아니다. 무조건 하나뿐이다.
구역 예배, 성경 공부, 집회, 찬양대, 설교록, 연보궤, 심방 예배.. 이런 것은 신앙에 유익이 되도록 알아서 할 수 있다.
연보의 액수, 하루 읽는 성경의 분량, 가정 예배의 설교 내용.. 이런 것은 우연히 같을 수는 있으나 달라야 정상이다.
같아야 할 것까지 자유와 개성의 이름으로 제각각 나가는 것이 기독교의 단점이면 달라야 할 것도 같게 한 것이 천주교다.




(교회들의 예배당 공동 사용)
* 공유 교회 or 공유 예배당
한 예배당을 2 개 교회가 함께 사용하는 경우를 최근 '공유 교회'라고 말하며 수도권 몇 곳에서 그런 사례가 나오기 시작했다.
여러 교회가 예배당 건물을 함께 사용하면 '공유 교회'가 아니라 '공유 예배당'이 맞지만 교회라는 단어가 요즘은 변하고 있다.
교회라 할 수도 없는 진보 쪽에서 놀기 삼아 모이는 교회들이 비용을 아낀다며 시작하다가 요즘은 보수 교단도 따르고 있다.
여러 교회가 하나의 예배당을 사용할 수 있을까? 서로 달리 가지는 것이 좋으나 과도기 또는 특별한 경우라면 그럴 수 있다.

* 교회의 예배당 공유
한국 교회는 5만에서 10만 개에 이른다. 교단만 500 개 이상이라는 점은 세계 교회사에서도 그 분열이 특이하고 유명하다.
분열의 대부분 원인은 속 좁은 한국인의 특성 때문이지 정말 불가피한 경우는 거의 없다. 공회 분열도 대부분 마찬 가지다.
한국 교회의 또 하나 특이한 점은 불 꺼진 도심을 십자가 네온싸인이 전국을 휩쓸고 있다. 시골도 마을 하나에 1 개 정도다.
비좁은 도심의 주택가 1백 미터에 교회가 3-4 개 정도는 기본이고 조금 괜찮아 보이는 골목에는 10여 개의 교회가 몰린다.

작은 상가 하나 안에 교회가 2-3개 씩 있고 조금 큰 상가에는 한 건물 안에 교회가 몇 개인지 헤아리기도 사실 어려운 정도다.
교계는 궁색하게 변명하고 세상은 조롱한다. 공회는 많다는 자체를 비판하지 않는다. 그래야 할 사정도 있으면 그럴 수 있다
교회 별로 예배당을 따로 가져야 하지만 교파와 교회의 분열이 너무 극심하다 보니 예배당의 공유가 필요할 때가 있다.
한 교회가 분열을 할 때 분열하기 전에 한 예배당 안에서 예배를 달리 하며 과도기를 거쳐 보면 대부분 해결이 될 듯하다.

개척하는 분들이 죽어도 개척을 해야 하고 실제 죽을 때까지 변치 않는다면 별도 예배당을 마련해도 굳이 말릴 일은 아니나
죽어도 개척을 한다고 말은 하나 실제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으니 이런 분들은 공유 예배당으로 자기를 살펴 보면 좋겠다.
큰 돈을 들이고 주변의 많은 사람에게 큰 폐를 끼치고 시작을 했다가 허무하게 그만 두는 경우 때문에 공유 예배당을 권한다.
개척할 교회들이 하나의 예배당을 좋게 마련하고 서로 과도기를 보내 보면 무리도 덜하고 자기의 사명감도 검증할 수 있다.

3 개 정도의 교회라면 주일 10시, 12시, 2시 정도로 오전 예배를 드리고 주일 오후나 저녁이나 평일은 별 불편이 없을 듯하다.
금과 은과 동처럼 다르면 저절로 금 같은 교회 하나로 모여 질 것이고, 눈과 귀와 입처럼 사명이 다르면 하나 될 일은 없다.
나는 평생에 공회 교회의 출발을 권해 왔다. 다만, 그 지역에 그 교회가 정말 필요한지를 먼저 묻고 또 묻고 출발을 시킨다.
목사나 설교나 목회가 별 차이 없다면 이미 있는 교회를 추천한다. 굳이 또 하나를 만들지 않는다. 정말 필요한지 살펴 본다.



(서부교회의 분열을 돌아 본다)
서부교회와 남정교회와 나뉠 때, 또 부산공회와 대구공회가 나뉠 때 정말 나누어야 할 사람은 많지 않았다.
각 교회와 공회의 20% 정도는 따로 믿어야 좋을 극단적이었고 80%는 대세에 따라 어느 쪽으로 가도 될 성향이었다.
교인 1 명당 교회 1 개를 만들 수는 없고 교회 1 개당 교단과 신학교를 1 개씩 만들어야 한다면 이 것은 너무 지나 치다.
그런데 그렇게 된다 해도 자기를 바꿀 수 없다면 따라 가야 한다. 80% 정도는 어느 쪽이든 별 상관이 없어 보였다.

지금도 재독만 해야 한다는 분들이 있을까? 그렇게 말을 하고 앞에서 끌던 이들은 실제 자기 설교 기회에 설교를 했다.
재독을 정말 신사참배와 같다는 분들이 지금도 대구공회에 있을까? 없을 듯하다. 충동과 선동에 휩쓸려 그렇게 되었다.
1989년 9월에 대구공회와 남정교회가 일단 내 놓은 이유는 '재독' 문제였다. 당시 몇 달만 지켜 보며 살펴 보자고 했다.
어느 쪽도 사실 그럴 마음이 없었다. 목사님 가신 상황에서 자기가 틀어 쥐고 주도할 사람을 대충 헤아려 보고 주장했다.

서부교회는 예배당이 1층부터 4층까지 한도 없이 넓다. 층별 방음도 충분하다. 3 개의 대형 교회가 따로 예배 드려도 된다.
지하실 2 곳까지 포함하고 3층 기도실 2 곳을 더한다면 몇백 명 교회 4 개가 더해 지면 총 7개 교회로 운영을 해도 된다.
그렇게 몇 달만 진행했다면 자연스럽게 자기에게 맞는 교회를 자유롭게 택할 것이고 다음 해에 분리했다면 참 좋을 뻔했다.
우리의 심보나 성격이 그 때나 지금이나 찰나의 순간조차 따져 보지 못하고 비교하지를 못한다. 순식간에 더 엎어 버린다.



(교계의 예배당 공유를 두고)
휴대폰 가게와 카페가 수 없이 새로 개점하고 순식간에 폐점을 하듯, 교회도 그런 식이 되다 보니 교회 공유가 나온 듯하다.
신학교와 일반 대학의 차이가 없고, 목사의 자격증과 다른 자격증의 차이도 없다 보니 교회의 시작과 운영도 비슷해 진다.
아무리 추세라는 것이 있다 해도 교회와 신앙과 예배와 목회자만은 세상과 달라야 하는데 어떻게 이렇게까지 같아 질까?
과거에는 예배당 공유를 생각할 수도 없었는데 이 것이 실제 추진이 된다는 점에서 앞으로 교회의 흔적이나 남게 될 것인가?

예배당의 공유란 그 자체로 막거나 비판할 문제가 아니다. 알아서 잘 사용한다면 좋은 방법일 수가 있다. 그 이면을 걱정한다.
교회는 단일성이 기본이어서 한 예배를 여러 부로 나누는 것도 문제는 있다. 진보 쪽에서 먼저 시작하고 결국 다 따라 간다.
하나의 예배를 편의에 따라 여러 부로 나누어 골라 잡게 하듯, 교회의 지도적 단일성도 신식 교회들부터 협력체로 바꿨다.
설교 담당, 찬양 담당, 심방 담당, 청소년 담당... 분담이라는 것은 단일성에도 할 수 있으나 분담이 분리로 단절로 나가고 있다.

예배당이야 예배를 드리는 하나의 주소요 건물이니 교회의 단일성과 상관 없이 돈이 없으면 얼마든지 공유하여 아낄 수 있다.
문제는 예배를 쪼개고 교회들끼리 예배를 섞 교회의 지도 방향을 분산 시키고 절편화 하는 추세에 더해 진 것이 의심스럽다.
이제 교주도 섞어 버리고 바꾸기도 하고 서로 추인도 한다. 불교 천주교가 앞 장을 서고 기독교의 대부분도 그러는 추세다.
성경도 우선 천주교와 기독교가 섞어 봤다. 불경과 성경의 일부 내용은 섞기에 쉽다. 나누고 섞고 비비다 보면 하나가 된다.

이렇게 하나가 되자는 시작이 WCC, 통합, 연합, 교회 일치 등의 단어 뒤에 숨고 훗날 보면 동성애나 개사랑으로 치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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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1-11 17:22
    교계는 무엇이든 긍정적인 면을 먼저 보고 질주한다. 실패도 많으나 성공도 있다. 그 일부의 성공이 전체를 선도하며 발전? 또는 규모를 확대해 왔다. 공회는 만사 조심부터 한다. 우선 말씀으로 살펴 보고, 훗날까지 면밀하게 계산을 한다. 그래서 만사 수동적이고 내향적이다 보니 큰 실수는 피하나 한 번씩 한 방에 대박은 거의 없는 편이다.

    예배당의 공유와 같은 사안이 나오면 교계는 우선 경비도 적게 들고 막 다른 골목에서 한번 시도해 볼 만하다고 판단한다. 그리고 추진력 있는 교회들은 불쑥 해 본다. 공회는 교리에 노선에 문제가 없는지 많은 시간을 생각해 본다. 할 수 있는 일이라 해도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그 필요성과 유효성을 두고 더 많이 따져 본다. 그리고 나서도 또 계산을 해 본다. 죄악 세상이니 교회 안에서도 그리고 교회끼리도 예배당을 함께 사용할 때 발생하는 여러 상황을 미리 계산해 본다. 급할 때 몇 달이거나 그런 정도의 짧은 기간이면 몰라도 기본적으로 곤란하다고 판단한다.


    미국의 교회들은 우리보다 신사적이다. 또 미국의 시민 사회의 시각도 우리와 다르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한국처럼 개척 교회들이 줄줄이 사무실을 얻는 것보다 주변의 좋은 예배당의 한 곳을 사용하는 것이 피차 좋다. 기존 교회도 그 주변 곳곳에 무수히 흩어 질 간판을 한 곳에 모으는 편이 낫다. 한국의 경우는 이런 대화, 이런 배려, 이런 여지가 거의 없다. 공회 교회들처럼 특이한 교회들이 내부로 분열이 되려면 서로가 잘 출발하도록 충분히 시간을 갖고 서로 밀어 주면 참 좋을 듯하다.

    이런 면에서 가장 보기 좋았던 사례는 대구의 달산교회였다. 그 어느 교회 이상으로 분쟁이 있었고 협의가 되기 어려운 요소를 거의 다 갖춘 곳이다. 장신석 목사님은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제안을 통해 해결을 했다. 우리 모두가 그 분과 그 가정을 두루 잘 안다. 달산교회라는 곳이 신도범 목사님을 밀어 낸 유명한 곳임도 잘 안다. 공회의 어느 교회나 어느 목회자라도 그렇게 하면 될 수 있는 사례를 보였다. 그런데 실제 그렇게 한 곳은 나 개인적으로는 알지 못한다. 어떻게 하겠는가? 일반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인데 한 분은 그렇게 했고 나머지는 하지 못했다면 그 분과 그 교회는 교회 분열의 처리 면에서는 1 등이다. 이 곳이 모이지 않는 총공회의 중심이라면 그 분은 눈으로 보고 한 자리에 모이는 총공회가 있다면 그 자리에서 회장할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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