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오늘, 이 노선에서 본 우리의 신앙 현실

끝없는 교계의 논쟁들, 안타까운 마음으로 건너다 본다.

작성자
담당
작성일
2022.10.18
(구원론의 경우)
* 건설구원론을 요약하면
1960년대가 시작 되면서 공회는 중생 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 사람의 범죄는 심신이다, 마음과 영은 다르다, 마음은 물질이며 짐승에게도 있고 불신자에게도 있다, 중생 된 사람의 영은 범죄하지 않으니 중생 된 사람의 영은 무조건 천국을 간다, 평생 살아 가면서 발생하는 문제는 마음과 몸을 얼마나 영에게 순종을 시키느냐는 것이니 이 것은 교인마다 다르다, 중생 후의 모든 회개와 구원의 노력은 심신을 말씀으로 고쳐 가고 길러 가는 것이니 이 것이 성화의 과정이다, 중생은 기본구원으로 주어 졌고 성화는 교인마다 신앙의 건설의 차이니 건설구원으로 나누어 성경을 읽으면 '구원론'에 대한 모든 난제가 일거에 해결이 된다..

* 구원론 요약의 파급은
성경을 진실하게 연구하면서 귀가 있는 사람은 이 한 마디를 듣고 나면 다시는 구원론에 대한 문제로 고민하지 않는다. 불신자를 놓고 설명을 해도 그들이 믿지는 않으나 이해는 할 수 있을 만큼 쉽게 명쾌하다. 그런데 기본구원만 성경이 말한 구원의 전부로 알고 온 이들이 만일 그들의 고정 관념을 바꾸지 않고 공회의 설명을 들으면 끝까지 엉뚱한 소리를 한다. 공회가 하지 않은 말을 했다는 허상에 망상까지 하게 된다. 한두 번 말하고도 이해가 되지 않으면 세월에 맡기고 또 주님의 개별 인도에 맡겨 놓을 뿐이다.



(공회의 삼분론)
* 삼분론의 역사는
교회사 초기부터 사람은 마음과 몸으로만 되어 있다는 이분설이 대세였고, 마음을 깊이 고민해 본 이들은 마음 안에 마음이 아닌 영의 존재를 따로 느끼면서 삼분론을 주장해 왔다. 이 문제는 이단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고 어느 것이 옳은지 서로 살펴 보고 연구할 대상이었다. 그런데 삼분론을 주장한 사람의 발가락에 무좀이 걸렸다 해서 삼분론 주장 학자는 전부 무좀 환자로 몰아 가는 이런 무작하고 막 가는 일들이 교회사 2천 년을 통해 거의 다 그러했다. 지금도 거의 모든 논쟁을 두고 상대방을 일단 치기 위해 이런 불신자의 나쁜 행습은 기독교 내 가장 경건하다는 곳에서도 거의 다 사용하고 있다.

공회의 삼분론은 처음부터 역사적 삼분론과는 차원이 다르다. 일반적으로 볼 때는 비슷해 보일 듯하다. 역사적으로 고래를 덩치 큰 물고기로 봤지 허파로 숨을 쉬는 포유 동물로 보지 않았다. 상어는 고래보다 커다 해도 아가미로 숨을 쉬고 알을 낳는다. 고래는 상어보다 작은 종류가 있다 해도 허파로 숨을 쉬고 새끼를 낳아 젖으로 기른다. 공회 삼분론은, 중생 후 죄를 짓지 않는 교리와 중생 후에도 평생 회개를 해야 하는 모순을 해결하는 과정에 나온 것이다. 마음은 기본적으로 짐승도 가지고 있는 물질이다. 영만 영물이다. 이 것이 공회의 삼분론이다. 역사와 세계의 모든 교회를 다 알지 못한다. 어느 교회 어떤 교리가 공회와 같은지는 잘 모르겠다. 이런 교리는 기존 교리 전체를 개혁한다 할 정도여서 그렇게 주장을 했다면 조용히 지나 갈 리가 없어 공회는 처음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지방교회가 거의 비슷해 보인다. 마음이 물질이라고 딱 찍어 말을 했다며 기본적으로 같다고 할 수 있을 듯하다.

* 공회 삼분론이 기존 논쟁을 해결해 버리게 되자,
역사적으로 이분설만 정통이라 하고 무식하게도 삼분설 자체를 이단이라고 소리를 높이던 이들이 갑자기 이분설과 삼분설을 가지고 논쟁할 일이 아니고 '전인설'로 가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이렇게 말을 하려면 과거 이분설을 수천 년 강조했던 자신들을 먼저 공격을 해야 한다. 전인설로 가면 쉽고 간단할 문제를 가지고 공연히 이분설만 정통이고 삼분설은 이단이라고 했던 자신들의 과거 투쟁사와 교육 내용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다.

1950년의 6.25 때 남한의 모든 지도자와 군인을 전멸 시키려고 수백 만 명이 죽는 전쟁을 일으켜 놓고, 오늘은 이 것 저 것을 따지지 말고 형제의 손을 잡고 과거를 잊자고 한다. 이 말을 하는 쪽이 바로 또 전쟁을 일으키려고 상대방을 방심하게 하는 행동이다. 형제의 가슴에 총을 겨눈 것이 부끄럽고 잘못 되었다면, 남침을 시도한 것이 철저히 반인류 반지성 반민족 반가족적이었다고 대못을 박아 놓고, 그리고 이제는 반복하지 말자면서 형제 사랑을 말해야 한다. 이분설만 정통이고 삼분설이 틀렸음을 수천 년 반복해 놓고, 공회의 삼분설이 나오게 되면서 역사적 이분설이 천동설처럼 우습게 되자 이분설 내에 대처가 몇 가지 나온다.

- 양심 있는 이들은 한 마디 듣는 순간 바로 돌아 선다.
- 양심 없는 이들은 전인설로 가자며 이분설을 슬쩍 묻어 버린다.
- 귀가 없는 이들은 귀는 막고 입만 열고 계속 같은 논리를 반복한다.


(소극적 순종, 적극적 순종)
공회는 죄를 나눌 때 말씀을 어긴 죄와 함께 말씀을 겉으로는 지켜도 속으로는 자기 마음대로 하는 불의를 죄라고 생각했다. 주일에 일하지 않고 매매를 하지 않았다면 말씀을 어긴 죄는 아니다. 그런데 주일에 하루 종일 잠만 자고 놀기만 했다면 이 것은 죄가 아닌가? 주일에 무엇을 하라고 일일이 적지는 않았고 신약에는 각 교회와 각자 알아서 할 수 있다. 말씀을 바로 어긴 죄도 죄가 되고, 말씀을 지켜 설교도 했으나 설교 내용을 제 마음 내키는 대로 했다면 이 것은 불의의 죄가 된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나서 다시 성경을 읽어 보면 왜 이렇게 나누어야 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외식자의 죄는 말씀을 어기는 죄가 아니라 대부분 말씀을 지키는 외형 속에 제 마음대로 살아 가는 마음의 죄, 즉 불의스러운 죄다.

주님이 우리 죄를 해결하려 십자가에 못 박힐 때 말씀을 어긴 죄만 대상으로 했을까? 우리가 속으로 자기 중심으로 자기를 위해 소리 없이 짓는 불의의 죄는 해결하지 않았을까? 선악과를 먹지 말라 했는데 먹은 것이 말씀을 어긴 1차적인 죄라면, 선악과를 먹은 다음에 무화과 잎으로 옷을 해 입은 것은 그들의 보호를 하나님께 맡기지 않고 자기들 방식으로 살아 가는 불의의 죄가 된다고 해석을 한다면 이 것이 억해일까, 흔히들 비판하듯이 성경을 지나치게 파고 들면서 자기 주관대로 멋대로 끌어다 붙이는 것이 될까? 공회는 그 출발에 말씀을 어긴 죄를 두고 철저히 그리고 참 깊고 깊게 회개했고 투쟁했다. 주로 신사참배와 6.25의 점령 하에서 목숨 걸고 나온 투쟁은 주로 말씀을 어기는 죄 문제 때문이었다. 그 후로 우리 사회는 말씀을 직접 어기는 문제로 목숨을 걸 정도의 상황은 없어 졌다. 생활의 불편 정도에 그칠 정도였다. 이 상황에서 우리에게 주님이 대속하신 죄란 어느 죄까지이겠는가? 하루를 살되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은 괜찮을까, 성도끼리의 결혼이면 그 속에 돈이나 인물만 보고 상대를 고른 것은 자랑스러울 일인가 괜찮은 일인가, 아니면 이런 것도 신앙이 자라 감에 따라 하나님 앞에 죄가 되는 일은 아닐까..

다윗이 밧세바 문제로는 7 계명을 범했으나, 인구를 조사 시킨 것은 10 계명 중에 어느 계명을 범한 것이 될까? 말씀을 지키는 것은 기본이고 1차적인 문제고 당연하다. 그 다음에는 할 일이 없을까? 하나님이 주시는 사명, 매일의 새로운 인도, 우리 마음에 노력할 일들이 있을 것인데 이 것은 거부해도 상관이 없을까? 이렇게 따져 가다 보면 마음에 하나님을 모시지 않고 잊은 순간, 그 것도 죄가 된다. 또 모든 신앙의 생활이 최종적으로 두고 갈 이 땅을 향하게 되면 천국의 복음이 아니라 이 땅의 복음이 된다. 성공한 목회자들이 계명의 죄를 짓지 않고, 마음에 감동을 따라 전도 심방 설교를 열심히 하여 대 교회를 만들고, 그렇게 하기 위해 떨면서 늘 마음에 주님을 모시고 동행했으며 그 결과로 모두가 부러워 하는 교회가 형성이 되었을 때 신앙도 없는 자기 아이에게 교회를 넘겨 주는데 그 이유가 자기 아이의 세상 살이에 도움이 되도록 한 것이라면, 이 목회자는 말씀을 어긴 죄를 넘어 섰고 자기 마음대로 하는 불의의 죄도 넘어 섰고 주님 없이 사는 일이 없고 주님과 동행하는 수준까지 올라 갔지만 자기 평생의 신앙 전부가 두고 갈 땅의 건설이 되었다면 공회는 천국 소망을 버리고 절망의 세상에 붙들렸으니 이 것도 죄라고 생각한다. 이런 죄의 형벌은 주님의 십자가 죽음에서 빼 놓았을까? 굵은 죄만 주님이 해결하고 별 것 아닌 죄는 그냥 넘어 가셨을까?



우리가 지은 계명적 죄만 해결하느라고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것이 소극적 순종이다. 그 다음은 따지는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다. 부활을 통해 주신 우리의 새생명에 속한 것까지 가는 모습은 더더욱 보기 어렵다. 공회의 성경 해석은 70년대부터 한국 교계에 들어 가지 않은 곳이 없다. 백영희 교리를 접한 이들 중에 부산의 침례교회들이 토씨까지 그대로 옮기면서 교재를 만든 것이 80년대 중반이다. 대개는 이렇게 하지 않고 표현을 조금 바꾸고 그리고 공회가 아예 돌아 보지 않는 원어와 신학의 여러 학설을 덧붙이면 마치 새로운 제품처럼 보인다. 그 내용은 공회 것임이 명확한데.. 한 쪽에서는 조금 떼다가 옮기고 붙이면서 자기 것으로 발표하고, 한 쪽에서는 이단이라고 생 난리를 내다가, 나중에 말이 막히면 '전인설'로 덮어 버린다. 지금 50대 정도라면 전인설이 전부라고 생각해도 상관이 없다. 그러나 60대 또는 80년대에 교리 논쟁을 아는 이들이 만일 전인설로 이분설과 삼분설의 논쟁을 마무리 하려 든다면 비겁하다. 고신의 대표적인 언론에서 10여 년에 공개 논쟁했던 일을 이 곳에서 한 번씩 거론해 왔다. 네이버 포탈에서 총공회를 거론하자 언론의 편집장이 이단으로 몰아 갔고, 개인적으로 해명을 하자 이 분이 양심적인 분이라 그 언론의 1면에 '내가 신학교를 다닐 때 이분설은 정통이고 삼분설은 이단으로 배웠는데 고신의 신학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라'는 식으로 공개 주제로 걸어 놓았다. 그러면서 공회는 죄를 회개하지 않아도 된다는 식으로 몰아 가는 이들에게 공회만큼 죄에 대해 깊고 철저히 설교하며 실제 교회 운영도 그렇게 하는 곳이 있느냐고 장문으로 사례를 열거했다. 그러자 한 분이 '전인설'로 덮어 버렸다. 그 때 정 씨라는 목사님은 지금 무슨 말이 오가는지도 모르는지 옛날 이야기로 갑자기 돌출했다. 아직도 자료로 남아 있을 것이다. 글을 아는 사람은 한 번 읽어 보면 이미 다 판단을 했을 듯하다. 평양이 세습을 하면 이미 정통의 역사적 공산주의를 파괴한 것이다. 이 말을 알아 듣지 못하는 이들은 공산주의를 주장하면서도 공산주의의 기본도 모르고 과정도 모르는 이들이다. 이런 수준들 때문에 세상도 어지럽고 사회도 어지럽고 교계도 어지럽다. 공회 안에도 이런 식이어서 참 어지럽다. 말 같은 말을 한 번 들어 보기가 그렇게 어렵다.
전체 2

  • 2022-10-18 11:25
    '부활 신앙' 문제로 고생하는 춘천한마음교회 김성로 목사님도 언급이 된 듯하여 참고로 적습니다. '기독교 침례회' 쪽입니다. 그 말은 백 목사님을 잘 안다는 뜻입니다. 설교록의 한 부분만 제대로 접해도 한 분야의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됩니다. 그런데 힌트만 딴 후에 자기 것을 너무 붙여 버리면 그 끝이 문제가 될 수 있고 뒷 수습이 어려워 집니다. 그 과정에 애매하게도 공회 교리가 마치 배후나 공범처럼 매도를 당하는데 예전에는 조금만 비슷해도 공회가 비판을 받았으나 지금은 공회 이름이 나오면 일단 공회는 비판에서 떼 놓는 편이어서 다행입니다.

  • 2022-10-18 20:00
    이 댓글을 올린 분이 댓글의 답글을 통해 댓글의 삭제를 부탁하였고, 다른 글로 이어 지지 않았으며 본인이 확인 되어, 19일 09:38에 삭제합니다. 이 댓글 오해나 착오가 있으면 다시 복구하겠습니다. -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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