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오늘, 이 노선에서 본 우리의 신앙 현실

고신의 탈선사, 공회의 탈선사 - SFC와 주일학교 중심으로

작성자
담당a
작성일
2022.08.04
(고신의 자랑 SFC, 공회의 자랑 주일학교')

이런 이름은 이 곳에 오는 분들이면 상식이라야 하나, 세월이 너무 급변하여 알 것은 모르고 몰라도 되는 것만 아는 세상이 되어 간단하게라도 소개는 하지만 마음이 썩 내키지 않는다. 그래도 혹시 모르고 방문할 수 있는 어떤 사정이 있는 분들을 위해 간단히 적어 본다.

* SFC : Student For Christ
1947년, 전영창은 해방 직후 미군정의 통역관으로 일하다 신앙 있고 총명한 10 명의 중고교 학생들을 모아 놓고 해방 된 조국의 앞 날이 풍전등화와 같다, 우리라도 모여서 이 나라를 위해 기도하자, 서로의 신앙을 위해 서로 살피며 기도하자, 우리부터 바로 서야 이 나라에 희망이 있다' 라고 기도 모임을 만들고 '학생 신앙 협조회'를 조직했다. 전영창은 조직과 운영 그리고 사람 설득에 타고 난 인물이다. 일제 때 고베 신학교를 유학하면서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투옥 되었던 열혈 애국자며 신앙가였다. 미국 남장로교 선교부라는 골수분자들에게 배운데다 천성이 또한 직진뿐인 인물이다.

일제를 생생하게 막 거쳐 온 1947년의 중고교생 10 명, 그들에게 일본을 유학했고 또 미국의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로 유학을 갈 '미군정 통역관' 전영창은 학적으로 실력으로 연배로 경험으로 설득과 신앙으로 어디 하나 빠진 곳이 없었다. 전영창의 지도로 부산 지역의 10여 명 학생들은 쉽게 뭉쳤다. 역사적으로 '영도제일교회'라는 이름이 나오는 것은 당시 부산 전체를 통해 학생들의 공부 실력과 신앙이 제일 좋았기 때문이어서 자연스럽게 중심이 된 것일 뿐이고 실제 훗날 SFC 초대회장이 되는 한동희는 서부교회 학생이었다. 어쨌든 모임의 여러 형편상 영도제일교회가 중심이 된 것은 맞으나 SFC의 출발은 SFC 스스로도 '1947년의 10 명 학생의 학생신앙협조회'라고 명시를 하고 있으니 창설자는 전영창이다. 전영창은 곧 이어 미국으로 한국 학생으로서 해방 된 조국의 제1호 여권 비자 유학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가 평생 그렇게 말을 했기 때문에 그렇게 알려 져 있다.

전영창이 유학을 간 뒤 '학생신앙협조회'라는 10 명의 좁은 이름을 '학생신앙운동'이라고 바꾸게 되었고 교단적으로 한명동 목사님의 교회적 지원과 한부선 선교사의 지도와 박윤선 목사님의 신학적 도움을 받으며 고신의 불 타 오르던 초기 역사에 학생들의 모임은 함께 끓어 올랐고 비록 교세는 미미했으나 해방 된 교계에 신사참배를 반대하며 해방을 맞은 출옥성도들이 출발한 고려파라는 이름이 전국의 주목을 받고 실제 신앙의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타 올랐는데 바로 이 시기에 학생들에게는 SFC, 학생신앙운동(학신)이 함께 불타고 있었다. 타 교단들의 학생회는 그 때는 이후나 그냥 학생운동이지만 고신의 학신은 고려파의 초기처럼 그 불길이 아주 달랐다. 백영희 목사님은 이 SFC의 새벽예배 강사로 유명했고 평생 교단을 달리 해도 그 때를 기억하는 이들은 50년대의 학신 운동을 통해 백영희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목사님도 평생의 설교를 통해 그 때를 종종 거론한다.

* 서부교회 주일학교
학생들의 초빙 때문에 백 목사님은 조사 시절 SFC의 핵심 지도자처럼 알려 졌지만 기본적으로 백영희 신앙의 노선과는 맞지 않는다. 우선 '조직'과 '운동'이라는 것은 백영희 신앙과 물과 기름 비슷하다. 백영희는 사람이 먼저 '계획 > 조직 > 운동'으로 나가는 것은 교단이든 교회든 장년반이든 학생의 모임이든 시작부터 '인본'이라고 본다. 그냥 주일과 예배에 집중하고 전도와 심방을 하면서 생활에 전력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개인이든 교회든 새로 열어 주는 길이 있을 때 조심스럽게 따라 가는 것을 신앙의 '신본'이라고 본다. 고신의 초기 역사를 보면 백영희 식은 백영희 혼자의 식이 아니라 제대로 신앙이 있는 이들에게는 기본이었다. 그러나 '목표를 설정'하고 조직과 운영을 통해 뒷받침을 하면서 '운동'으로 휩쓸고 가는 것이 목회 현장에 워낙 돋 보이고 성과가 탁월하기 때문에 그 문제점을 알아도 그런 방식을 사용하게 되어 있고, 그런 신앙의 깊은 세계를 알지 못하는 이들은 이런 사고 방식을 두고 무슨 말인지를 알아 듣지 못한다.

1959년 고신에서 내쳐진 백영희는 이제 눈치 볼 것 없고 한 몸 된 교단적 입장에 불편을 느끼지 못하게 되자 백영희 신앙 노선의 공회라는 이름으로 알려 질 서부교회의 서부교회적인 모습을 보이게 된다. 원래도 그러했기 때문에 제명을 당했고, 제명을 당하기 전까지는 소속에 충실 때문에 주변을 배려 했지만 자유롭게 되자 서부교회의 길을 마음껏 걸었다. 그렇다고 남녀 성가대나 중고생 중심의 학생회를 해체 시키지는 않았다. 하고 싶은 청년 학생들은 고신 시절처럼 그렇게 했고, 목사님은 개인의 신앙과 교회의 주력을 성경 읽고 기도에 주력하며 예배와 개인 전도와 개인 심방에 주력하게 만들자 서부교회의 남녀 성가대 활동과 각종 중고교 학생회 활동은 저절로 식어 졌고 없어 졌다. 한 여름 무성한 나무가 철이 바뀌면 금새 단풍이 지고 잎이 다 떨어 지는 것과 같다. 청년 학생들의 별별 남녀 모임과 운동이 저절로 없어 진 자리에 오로지 예배와 말씀과 개인 기도와 개인 전도에 매진하게 되면서 장년반도 서서히 부흥이 되기 시작했으나 주일학교는 놀랍고 변모하고 있었다. 일체 아동용 찬송이 없고 장년반 찬송과 장년반 설교로만 진행하고 율동이나 선물 하나도 없지만 주일학교는 세계적인 기록과 주목을 받을 때까지 가파르게 발전했다. 그리고 1979년부터 교계의 모든 주목은 순복음식 장년반 부흥과 서부교회식 주일학교 부흥에 모아 졌다.


(고신의 SFC 폐지론)
공회 안에 '공회의 주일학교 방식'을 폐지하자는 말은 어느 공회라도 입 밖에 나오지 않는다. 불편하면 그냥 바꿀지라도 그 이름의 역사와 명성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고신의 학신은 50년대의 학신이 학신이었다. 60년대가 되자 교계의 학생회 운동과 별로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고신인들은 고신의 SFC만 학신의 전부라고 생각할 정도다. 세월이 지나며 고신은 그들끼리 버티며 나갔고 교계는 CCC나 IVF 등을 통해 SFC를 압도하여 SFC 이름이 무색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되자 SFC도 그 조직과 운영을 CCC처럼 따라 했고 오늘까지도 SFC만은 고신이라는 교단의 내부 단체로 남아 있는 것만 다르지 학교의 학생신앙운동으로서는 다를 것도 없고 오히려 SFC가 다른 단체를 흉내내면서 SFC의 정체성조차 없애 버린 지 오래 되었다. 역사와 이름만 늘 반복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고신 안에서 수십 년을 내려 왔지만 고신의 지도부 대부분은 SFC를 거치면서 고신의 신학자 목회자 또는 평신도 지도자가 되었기 때문에 그들의 향수, 그들의 소망을 통째로 깬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을 듯하다. 그런데 2020년부터 코로나 때문에 교계가 모두 침몰하는 가운데 고신의 세계로교회 손현보 목사님이 가장 돋보이게 되었고 그 분의 개척과 교회 발전 과정이 고신의 주목을 받게 된 상태에서 손 목사님에게 고신 총회의 미래 대책을 맡기자 손 목사님은 고신 전부조차 코로나에 벌벌 떨고 정부 눈치를 볼 때 전국의 뉴스 중심에 서서 소신 있게 밀어 붙인 것처럼 고신 총회가 SFC를 폐지할 때라고 폭탄? 선언을 해 버렸다. 이 분의 실력 위상 성향을 볼 때 쉽게 물러 나거나 주저 앉지 않을 것으로 봤다. 고신의 심장을 수술하겠다는 정도다. 문제는 고신의 일반 분위기는 고신의 심장은 썩 좋은 편은 아니지만 평생 문제 없이 잘 있었다고 볼 듯하다.

손현보의 주장은 SFC의 역사를 통해 SFC의 역할과 기대해 온 성과라는 것이 오늘 이 모양 이 꼴을 유지하는 것이 맞느냐고 질타하고 있다. 학교에 가서 전도하라고 만든 전도 조직인데 전도를 단 1 명이라도 했느냐, 고신 총회로부터 지원금을 받아 간사라는 이름과 사무실을 유지하기 위해 간판만 달고 돈만 사용하는 것이라는 취지다. 누가 들어도 딱딱 맞아 떨어 지는 수치와 논리를 가지고 고신이라는 그 유명한 고집불통의 차돌 같은 단체 속에 심장 수술을 하겠다는 자세로 보인다.



(공회의 주일학교 폐지론)
* 공회 주교의 현황
이미 공회 교회 중에 주일학교가 없는 교회만 30% 정도 되지 않을까? 각 공회 별 통계를 한 번씩 볼 기회는 있었나 다시 들춰 볼 것도 없이 이렇게 적어 본다. 부공3 우리의 10 개 교회 중에 1 개는 주일학교가 없다. 그 교회가 여러 사정을 거론한다면 들어 봐야 할 사정은 있다. 말하자면 사고 교회라 그렇다. 그런데 교계 어디라고 해명을 듣다 보면 그렇지 않겠는가? 통계란 우선 정확한 것은 아니니 어느 한 교회나 한 사람으로서는 흘려 들으면 된다. 문제는 통계란 아무리 왜곡을 한다 해도 어떤 힌트가 있다. 그리고 일반적 통계는 하나의 흐름을 보는 데는 별 불편이 없다. 광화문 1백 만 명의 군중이 모이는 것처럼 아주 왜곡 된 경우도 있지만 그들을 통해 또 하나의 다른 것을 볼 수는 있다.

부공3 우리 교회들의 10%에 주교가 없다면 부공2는 20%가 넘지 않을까? 대구공회는 30%가 아닐까? 서울공회는 절반이라도 되지 않을까? 얼추 생각해 본 것이다. 그리고 평균을 따지자면 2~30%라는 말이 나오는데 공회 밖의 사람이라면 20%라고 해야 더 낫지 싶고 나는 공회 내의 사람이니 30%라고 해야 양심에 가깝지 않을까? 공회식 통계나 추론의 기본 자세가 대개 이러하다. 외관상 주일학교의 존재 여부를 두고도 이러하지만 문제는 공회의 주교는 공회식 주교만을 주교라고 한다. 공회식 주교가 아닌 주교는 그냥 프로그램.. 그 정도로 친다. 공회식 주교라는 기준으로 본다면 내 생각에 50%, 절반의 교회는 주교를 없애지 않았을까? 고신은 폐지를 논하고 있다. 공회는 이미 30%를 없앴고, 70% 중에서 절반이 이미 공회식을 폐지했다고 보면 공회 전체의 60%가 공회식 주교를 없앴을 듯하다. 그냥 둬도 저절로 없어 지고 있다면 고신의 SFC처럼 폐지론을 꺼낼 것도 없다. 90년대까지 전국에 묘지 조성 때문에 온 나라가 공동묘지 된다며 절규를 했으나 2000년대가 되면서 저절로 공원묘지로 모였고 그마저 어렵게 되자 이제는 화장이 대세가 되었다. 이제 시골이나 전국의 산과 들의 개인 묘소들은 더 이상 국토 환경에 위협이 되지 않고 있다. 지금 갑자기 묘지법으로 단속을 한다고 설치면 정부의 지지율만 손해 본다. 이 나라가 이렇게 분위기가 바뀔 줄은 사실 모두가 몰랐다. 우리는 세계 어느 민족보다 변화가 빠르다. 한국 교회도 그렇다. 다만 공회는 최소한 겉모습만은 거의 바꾸지 않는다. 그렇다고 우리의 속까지도 그렇게 장구할까? 공회의 세상적 출신 기반이 천하기 때문에 공회가 바뀌면 타 교단과 비교도 되지 않게 빠르다.

* 공회 주교의 외부 정체성
원래 공회의 주교는 고신 시절 것을 그대로 이어 왔다. 그 말은 한국의 교계와 같았다는 것이고 세계의 모든 교파까지 주일학교에 관한한 거의 같다. 공회의 주교는 1959년에 고신에서 나온 직후인 1960년대부터 하나씩 소리 없이 바뀌고 있었다. 아이들의 학년에 따라 가르치는 난이도가 다르다. 반편성이 세상 학교식이다. 공회는 세상 공부는 세상 학습력의 발달에 따라 편제해야 맞는다고 본다. 그러나 성경을 가르치는 신앙 세계의 발달 차이나 난이도라는 것은 세상 학교의 편제 그대로 사용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이 생각에는 '중생론' '성화론' '성령론' '교회론' '예배론'이 소리 없이 모두 적용이 되어 있다. 공회 교리가 아니면 이렇게 접근하지 못한다. 한 마디로 줄이면 공회 주교의 정체성 1호는 세상 학교식 편제를 폐지하고 반사 1 인을 작은 교회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편제가 1970년경부터 세계 교계가 주목할 주교 부흥을 가져 왔지만 본질은 폭발적 학생수가 아니라 편제에 녹아 있는 성경적 신앙적 기본 사상이다. 공회는 부부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그 아이는 그 부부가 기른다는 방식이다. 전통적 주교 편제는 한 마을에 출생한 아이들을 연령별로 분리하여 각 가정에 학교 편제식으로 담임 맡기듯 한다는 것이다. 히틑러나 공산 독재 세계에서는 몰라도 제 정신을 가졌다면 평소에 그렇게 생각을 한다는 것은 어렵다. 공회의 교리와 모든 제도를 살펴 보면 공회 것은 이렇게 자연스럽다. 그냥 성경 그대로다. 어려운 것이 하나도 없다. 교계의 일반 방식은 쓸 데 없이 고생을 하고 머리를 쥐 싸매고 난리다. 굶든 죽든 제 아이는 제가 기르는 것이 기본이다. 아주 급해서 옆 집에 맡길 수는 있으나 그야 말로 응급 상황의 과도기 잠깐의 문제다. 부모가 죽어 버리며 고아원에도 보내고 입양도 보낼 수 있다. 부모가 죽었다면.. 멀쩡한 부부끼리 서로 연령과 수준에 따라 내 아이 남의 아이를 가리지 않고 체계적으로 아이들을 나누어 기른다면 이는 양계장의 관리법에는 좋을 듯하다.

지금 공회의 주교 방향을 결정할 분들 중에 이런 공회의 신앙 노선을 기본에 깔고, 그리고 각 교회의 형편에 따라 알아서 개별적 조처를 하다 보니 외부에서 볼 때 공회식 주일학교가 아닌 것처럼 보이는 교회가 몇 곳이나 될까? 공회식 주교를 유지한다 해도 하다 보니 하는 것이지 이런 이유나 배경을 모르는 곳이 대부분일 듯하다. 또 교회의 개별 형편 때문에 주교의 편제 모습을 바꾸기는 해도 주교의 정체성을 알면서 현재 상황 때문에 대처하는 교회는? 아예 없을 듯하다.

* 공회 주교의 내부 정체성
언젠가 시간이 있으면 글을 정서해야 참고하기에 좋을 듯한데 지금은 그냥 적고 있다. 공회 주교가 세상 학교식 편제를 반사 중심으로 바꾼 것은, 그 이론이 먼저 제기가 되어 바꾼 것이 아니라 전도에 유리하기 때문에 바꾸었다. 전도에 유리하기 때문에 바꾼 것은 주교 전체를 지켜 본 결과였고 실제로는 홍순철이라는 대학교를 막 입학한 학생이 반사를 하겠다며 지원을 하자 주교 부장이 남녀반 학년별 반 편성에 담임으로 배정을 해 주겠다고 했고 홍순철은 그런 식이 어디 있느냐 내가 골목으로 나가서 내가 전도해서 오는 학생을 내 반의 학생으로 삼겠다고 했다. 주교를 주교로 보지 않고 축소 된, 작은 규모의 장년반으로 본 것이다. 장년반과 주교가 왜 다르냐? 다니엘과 다윗이 어리다고 어린 아이 취급을 해 버렸다면 그 것이 옳겠으며, 엘리와 사울이 이스라엘의 지도자라고 제사장과 왕 직에 앉아 있는데 앉아만 있으면 그들이 제사장이 되고 왕이 되는가? 그런 말이 된다.

연세대 행정학과 1 학년에 입학한 홍순철, 이제 막 고교를 졸업하고 주일학교 반사에 지원한 이 학생은 배우면 배운 그대로였고, 이 학생의 특별한 점은 누가 뭐라 해도 배운 것과 다르면 따지는 사람이고 이해가 되지 않으면 따라 나서는 사람이 아니다. 주일학교는 초등 6 학년까지 아이들을 데려 와서 가르치는 곳이다. 다른 반사가 전도해서 다른 반사가 이미 가르치는 학생은 그 반사의 학생이다. 세상 학교가 매년 3 월이 되면 신입생을 받고 학년이 올라 오는 모든 학생을 가지고 반편성을 새로 하는데 왜 교회가 그대로 답습을 하는가? 내가 전도하여 나의 학생을 삼고 내가 맡은 학생은 부모 입장이 되어 계속 가르치며 초등학교를 졸업하게 되면 내가 그 학생을 데리고 장년반 예배에 같은 교인으로 함께 앉아 배우고 또 그 학생에게 필요한 것이 있으면 내가 평생 지도하며 신앙을 기른다는 것이 홍순철이 백영희에게 배운 성경이며 백영희 식 신앙이다. 장년반은 벌써 그렇게 하여 타 교회는 천주교식 교구제를 적용하여 지역 별로 구역을 배정하는데 백영희는 장년반의 구역 제도를 구역장이 어느 지역에 있든 그 구역장과 그 구역 식구가 전도하면 그 식구가 된다. 죽는 날까지. 그렇다면 주교도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이 방법은 대체로 공회 교회들이 오늘도 그렇게 하고 있을 듯하다. 문제는 공회의 이런 사고방식은 교회를 학교나 회원 중심으로 운영되는 각종 세상의 단체처럼 운영하지 않고 교회의 기본 성격을 가정으로 보기 때문에 지역 별 편제가 아니라 책임자 또는 지도자 별로 편제를 운영한다. 주교의 반이 하나의 가정이고, 장년반의 한 구역이 하나의 가정이다. 부모가 먼저 수고하고 본을 보이고, 자녀는 그런 부모를 보면서 배우고 흉내 내며 자라 간다. 목사가 먼저 앞에 서고 교인은 그 목사를 지켜 보며 배우고 참고하고 따라 간다. 주일학교도 장년반의 구역 제도도 그렇다. 공회의 기본이 그렇기 때문에 어떤 새로운 상황을 만나도 이런 기본 사상으로 대처하다 보면 저절로 공회식이라는 것이 형성 된다. 서부교회의 주교 체계가 1960년대부터 시작 된 것은 사실 너무 늦었던 것이다. 1950년대 내내 고신 안에서 시달리다 보니 목회자도 교인도 모두가 일단 신앙의 생존에 주력하다 여러 기회를 놓친 것이다. 고신의 체계는 전통의 장로교 체계니 교회의 내부 운영까지도 전도사였던 백영희에게 당회권을 쥔 고신이 교권 지도부가 일일이 개입을 할 수 있었다. 없는 죄도 계속해서 만들어 매장하는 상황에 주교나 찬양대나 학생운동 등의 보이는 체계를 바꿔 놓으면 이는 체제에 대한 반역죄로 추가 될 수 있다.

공회 주교의 내부 정체성, 무엇을 말하려고 이렇게 배경을 길게 설명하고 있을까?
목회자가 상대를 고르다가 결혼을 늦게 한다면, 교인들은 세상에 더욱 가까우니 결혼을 더더욱 미루게 되게 세상 기준으로 결혼하는 것이 당연할 듯하다. 목회자가 결혼은 했으나 세상 먹고 사는 것이 어렵거나 부인이 아이를 많이 가지면 몸이 망가지고 자기 인생이 불편해 진다고 아이를 적게 낳는다면, 부부가 함께 그렇게 뜻을 맞췄든 아내를 위해 그렇게 되었다면 교회의 사택에 아이 출산이 적어 질 것이고, 그렇다면 그 교회의 전체 출산도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 하지 않을까? 세상 학교는 유치원 교사가 결혼과 출산을 미루며 출근을 한다. 초등학교 교사도 임용 고시와 함께 격무에 버티며 자기의 교직 일정에 충실하다 보니 결혼이 늦어 지고 또 출산은 최소화가 된다. 시대가 그렇고 교사들도 그렇다. 그런데 교사들은 국가가 주는 돈을 받고 신분이 보장이 된다. 그 대신 국가에서 근무지와 학년과 반을 매년 바꾼다. 맡겨 주는 아이를 가르치면 된다. 아이가 적어서 폐교가 되면 이동만 한다. 아이가 적어서 반별 학생이 적으면 근무에 부담이 줄어 든다. 그래도 수입은 갈수록 많아 진다. 아이들이 더 적어 지면 신규 인력을 뽑지 않는다. 이미 교사가 된 나와는 상관이 없다.

교회는? 목사는 결혼을 미뤘고 아이를 적게 낳고서 강단에서 이 시대를 비판하며 일찍 결혼하고 많이 낳아라! 이렇게 설교해도 될까? 세상은 대통령이 결혼도 하지 않으면서 결혼과 출산 정책을 마련하고 국민에게 혼을 내도? 누가 뭐라 하지 않는다. 그 대신 국민들은 국가가 어떤 조건을 제시하는지 봐 가면서 자기 선택은 자기가 한다. 교회는? 그리고 반사는...

서부교회 주일학교의 중심은 체제가 아니라 반사였고, 서부교회 주교의 반사란 일찍 결혼해서 아이를 많이 낳는 것이 반사로 활동하며 남의 동네 남의 집에 가서 남의 집 아이들을 데려 오는 노력과 함께 했다. 자기는 결혼과 출산을 미루고 불신 가정에 가서 남의 집 아이들을 데려 온다면? 어린 반사는 뭘 모르니까 그럴 수 있고 또 신앙을 나이 들어서 가지게 되어 그럴 기회를 놓친 분들이야 때를 놓쳤겠지만, 교회 전체로 본다면 목회자와 구역장과 주력 교인과 반사들이 기본적으로 일찍 결혼을 해서 세상 유혹을 막고 출산을 많이 해서 교회 안에서 먼저 많은 집 토끼를 길러 내고, 그리고 밖으로 나가서 산 토끼까지 몰아 오는 것이 공회의 주일학교의 운영안에도 나오지 않는 더 중요하고 당연한 운영이 기본이다.


목회자가 결혼과 출산에 불충하면, 교인의 결혼과 출산을 이끌 수 있는 자질도 없고 안면도 없어야 한다. 그렇다 해도 목회자는 사도 바울처럼 믿기 전에 교회를 핍박한 죄를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교인들에게 뼈 저린 마음으로 부탁을 하면 된다. 6.25 전쟁에 한국의 장군들의 자녀가 전선에 나가 전사한 경우는 단 1 명이라는 통계를 봤다. 남의 집 자식은 순국자가 되라고 적진에 밀어 넣고, 자기 아들 자기 친인척은 뒤로 몰래 뺐다면 참 슬픈 일이다. 이 문제도 전혀 달리 봐야 할 다른 기준이 있기는 하다. 미군의 경우 장군의 아들들이 한국 전쟁 중 전사나 부상을 입은 경우가 100 명이 넘는다고 한다. 과연 부러운 나라를 만든 것이 그냥 재수가 아니었고 이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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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31
차원 높은 사랑 : 에덴보다 이후의 사랑이 크다.
12131 | 담당a | 2022.09.02
담당a 2022.09.02 0 72
12042
시대를 통한 하나님의 인도(1) - 교계와 비교 : 주교 같은 오늘의 공회 대책
12042 | 담당 | 2022.08.12
담당 2022.08.12 0 193
12045
시대적 인도(2) - 공회 역사로 오늘을 본다 : 30년 단위의 전환점 (1)
12045 | 담당a | 2022.08.15
담당a 2022.08.15 0 141
12056
시대적 인도(3) - 교회와 예배가 없어 졌다 : 그 대책은? (1)
12056 | 담당b | 2022.08.16
담당b 2022.08.16 0 159
12058
시대적 인도(4) - 서부주교의 불편한 진실 : 평정심을 잃게 한 대규모 견학 (1)
12058 | 담당b | 2022.08.17
담당b 2022.08.17 0 142
12071
시대적 인도(5) - 서부주교의 80년대, 그 힘겨운 상황 : 도심 개발과 이주 (1)
12071 | 담당 | 2022.08.18
담당 2022.08.18 0 100
12080
시대적 인도(6) - 사회 발전과 국가 정책 : 과외 금지, 만화 방영의 파괴력 (1)
12080 | 담당b | 2022.08.19
담당b 2022.08.19 0 78
12085
시대적 인도(7) - 80년대 서부주교의 비상 대책들 : 선을 넘고 있었다. (1)
12085 | 담당0 | 2022.08.20
담당0 2022.08.20 0 74
12088
시대적 인도(8) - 끝 없는 전도, 내재 된 심각성 : 주교의 열매로 돌아 본다. (1)
12088 | 담당a | 2022.08.21
담당a 2022.08.21 0 81
12092
시대적 인도(9) - 20대의 주교 대형 버스 : 발전인가 후퇴인가 (1)
12092 | 담당 | 2022.08.22
담당 2022.08.22 0 89
12097
시대적 인도(10) - 개간과 길바닥 : 분교로 마무리 했으나 (1)
12097 | 담당a | 2022.08.23
담당a 2022.08.23 0 97
12031
공회와 고신에 스며 든 '거창'이라는 염병, SFC와 복음병원을 중심으로 (1)
12031 | 담당a | 2022.08.02
담당a 2022.08.02 0 167
12035
장기려, 왜 고신이 그토록 칭송하는지.. (1)
12035 | 담당b | 2022.08.02
담당b 2022.08.02 0 175
12038
고신의 탈선사, 공회의 탈선사 - SFC와 주일학교 중심으로
12038 | 담당a | 2022.08.04
담당a 2022.08.04 0 108
12039
공회의 정체성, 지켜 지는 것과 폐지 되는 것들 (2)
12039 | 담당b | 2022.08.05
담당b 2022.08.05 0 163
12020
13C 프란시스와 비교해 본 백영희의 생애
12020 | 담당a | 2022.07.28
담당a 2022.07.28 0 130
12025
변화 된 환경으로 본 오늘의 프란시스와 백영희 방식
12025 | 담당 | 2022.07.29
담당 2022.07.29 0 115
12026
하룻 비둘기, 잿만당 넘지 못한다. (2)
12026 | 담당 | 2022.07.30
담당 2022.07.30 0 202
12036
집회를 앞에 두고 : 좌절은 소망으로, 감사는 긴장으로
12036 | 담당a | 2022.08.04
담당a 2022.08.04 0 148
12002
예배의 분산 해체 시대를 맞아
12002 | 담당b | 2022.07.24
담당b 2022.07.24 0 198
12009
새 것을 낡은 부대에.. 공회들에 대한 애절한 마음 이미지
12009 | 담당 | 2022.07.25
담당 2022.07.25 0 173
12010
공회 예배론의 진수, 모르면 지키지 못한다.
12010 | 담당 | 2022.07.25
담당 2022.07.25 0 176
12014
예배와 예배당, 교회와 신앙의 겉과 속을 돌아 본다.
12014 | 담당 | 2022.07.27
담당 2022.07.27 0 75
12015
'집회'라는 이름, 그 성격과 명칭들
12015 | 담당 | 2022.07.27
담당 2022.07.27 0 116
12023
집회 기간의 변화 역사, 오늘을 돌아 본다.
12023 | 담당a | 2022.07.28
담당a 2022.07.28 0 104
12001
복음병원의 설립자 논쟁 - 그 배경을 통해 우리를 본다.
12001 | 담당a | 2022.07.24
담당a 2022.07.24 0 142
11970
예배 숫자가 교회 숫자인데
11970 | 담당 | 2022.07.19
담당 2022.07.19 0 165
11981
동성 반대 하다 연애질 하라는 독사의 옹니 속으로.. (1)
11981 | 담당a | 2022.07.20
담당a 2022.07.20 0 133
11986
'맹자'의 말씀을 걸고 WCC 반대? 이미지
11986 | 담당b | 2022.07.21
담당b 2022.07.21 0 112
11992
공회 중심 교회들의 탈 공회 현상..
11992 | 담당 | 2022.07.22
담당 2022.07.22 0 174
11959
공회의 대표적 사회적 인물 2 명에 대한 비교
11959 | 담당a | 2022.07.17
담당a 2022.07.17 0 213
11961
공회의 부러운 교회들에 대한 비교
11961 | 담당a | 2022.07.18
담당a 2022.07.18 0 182
11940
백도광, 역사의 인물을 보내며
11940 | 담당b | 2022.07.12
담당b 2022.07.12 0 251
11953
백도광 장로님의 가족분들께 드리는 所請
11953 | 담당 | 2022.07.15
담당 2022.07.15 0 176
11909
한종희, 공회에게 주신 어두움
11909 | 담당 | 2022.07.06
담당 2022.07.06 0 173
11915
세상의 불행, 교회의 불행 - 남만 비판하는 악령의 역사
11915 | 담당 | 2022.07.07
담당 2022.07.07 0 172
11919
표현 하나에, 천하를 살리는 복음과 천하를 삼키는 간교가 된다.
11919 | 담당 | 2022.07.09
담당 2022.07.09 0 149
11901
집회를 준비하면서
11901 | 담당s | 2022.07.05
담당s 2022.07.05 0 195
11928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 히10:25
11928 | 담당 | 2022.07.10
담당 2022.07.10 0 114
11930
눈을 뜨는 기도, 눈을 감는 기도
11930 | 담당 | 2022.07.11
담당 2022.07.11 0 166
11934
세인트루이스교회, 백태영 식과 그 반대 식
11934 | 담당a | 2022.07.12
담당a 2022.07.12 0 159
11896
전도 : 그 상식과 그 실제 (2)
11896 | 공회원 | 2022.07.03
공회원 2022.07.03 0 207
11897
교회가 노래방 되면, 노래방에 팔린다. (4)
11897 | 공회원 | 2022.07.03
공회원 2022.07.03 0 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