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오늘, 이 노선에서 본 우리의 신앙 현실

'집회'라는 이름, 그 성격과 명칭들

작성자
담당
작성일
2022.07.27
(집회)
모이면 집회라 한다. 다른 곳에서는 부흥회라 한다. 세미나라고도 한다. 수양회라는 말은 이제 별로 사용하지도 않는 듯하다. 공회도 부흥회 수양회 정도로는 표현을 하지만 그런 표현의 통칭과 대표로는 늘 그냥 '집회'라고 한다. 예배당을 예배당이라고 하듯이. 성도를 우리는 교인이라 한다. 헌금을 우리는 여전히 '연보'라고 한다.

주일에 모여 아동을 가르치면 주일학교다. 반 별 선생님이 계셨으니 반사다. 목사 안수를 받지 못했으나 목사 역할을 하시는 분을 '조사'라고 한다. 손양원 전도사가 아니라 애양원에서는 손양원 조사님이다. 그래서 애양원에서는 공회 전도사가 조사라고 말을 하면 반가운 얼굴 빛을 만날 수 있다. 또 현 교계의 중진들은 나이가 어려서 모르지만 원로 중에서도 무척 원로가 되는 분들은 공회의 표현들을 만나면 '아! 그 때가 좋았어.. 그 때가 정말 교회였다.. 어쩌다가 이제 이렇게 되어 버렸어'라며 부럽게 탄식을 한다. 잘 나가려고 했던 그들은 그들의 손으로 전부 다 바꾸었고 그 결과의 오늘 교계를 보며 이제는 탄식을 하는데 공회는 그들이 청교도니 개혁주의니 복음 보수를 위치던 아득한 그 옛날의 모습을 오늘에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참 맛도 없는 단어다. 새벽예배는 새벽에 모이는 예배다. 그런데 '특새'라고 하면 상품에 포장이 단연 돋보이다. '이슬비전도' '가랑비전도' '셀전도' '제자훈련' '디사이플' '프레이즈' 한글에서 영어로, 한글과 영어의 조합으로 온 나라의 간판까지 현란하게 바뀌는 바람에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친 교수도, 이 나라 국어학자로 유명한 분도 시내의 간판 하나를 해독하느라고 멍할 때가 있다고 한다.


(집회의 성격)
신앙의 기본은 평소에 있다. 주일을 중심으로 6일을 펼친다. 주일은 예배를 중심으로 성수한다. 평일은 자기 할 일에 충성한다. 예배의 말씀을 각자 마음에 품고 실행하는 기회로 생각한다. 그런데 세월이 가다 보면 첫 결심이 흐려 지듯, 학기가 진행 되다 보면 학기 첫 날의 결심이 흐려 지듯, 교회는 신앙이 있는 사람도 있고 어린 사람도 있기 때문에 한 사람을 보면 신앙이 출중해도 한 교회 전체를 보면 일반적으로 신앙은 어리고 늘 위험스러워 보인다. 이들에게 병원의 입원처럼, 또는 보약처럼, 전체의 신앙을 일깨우는 기회는 옛날부터 있어 왔다. 세월 속에 건전한 모임들이 도출 되었고 이를 부흥회라고 한다. 평소 받지 못한 은혜를 받고자 함이다. 그러나 공회는 그냥 '집회'라고만 한다. 큰 기대를 하고 큰 기대에 부응하려고 노력하다 지나 친 실수를 하기 때문에 그냥 집회라 한다. 평소의 신앙에 부족한 점을 채우는 기회를 함께 가진다는 정도다. 그런데 이 집회가 지나 가고 나면 참석한 이들에게 '부흥'이 된 신앙의 결과가 나와야 한다. 미리 부흥회라고 하지 않고 집회를 하고 난 결과가 부흥 된 신앙이 도출 되어야 바른 집회다.

전도를 하다 보니 너무 먼 곳까지 오게 되면 '선교'라고 한다. 전도도 해 보지 않은 사람이 처음부터 야망을 가지고 '선교'의 간판 아래 훈련을 받고 멀리 뛰려는 자세는 신앙의 자라 가는 순종, 신앙의 실제 내용이 주님이 끌고 우리는 따라 가는 믿음의 모습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집회라는 표현을 오늘까지 사용하는 것도 공회뿐이 아닐까 싶다. 5월은 학기 중이어서 학교에 결석계를 제출하며 '집회'라고 적자 교사들이 거의 다 교인인데도 알아 듣지를 못해서 학교에 제출할 때는 '사경회'나 '수련회'라고 번역한 단어를 제출한 적도 있다.


(집회의 진행 과정)
* 백영희의 설교 세계
공회는 백 목사님의 신앙 지도가 좋아서 형성 된 교회다.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라는 남부의 3개 지역 전체를 나누는 덕유산 제일 끝자락에서 믿게 된 백영희는 1936년에 믿고 1939년에 개명교회를 개척한다. 내용적으로는 공회가 출발 되는 순간이다. 그의 설교를 듣는 교인들은 교회의 자체 집회가 필요 없었다. 매 시간이 멀리서 들리는 다른 교회 교인들의 가끔 참석한 집회 은혜보다 나았고 따로 집회가 필요한지 생각도 하지 않았다. 젖먹이야 외식이라는 것을 알 필요가 없는 것과 같았다. 그러나 거창 지역의 모든 교회들이 집회를 자주 모여 신앙에 도움을 받게 되니 한 지역의 같은 형제 교회기 때문에 참석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 참석한 결과는 자연스럽게 아쉬웠다. 개명교회의 강단의 은혜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이 쌓여 갈수록 자연스럽게 교계의 유명한 강사가 온다 해도 별로 기대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평소 듣는 백 목사님의 설교의 가치를 더 느낄 뿐이었다. 이 것이 현재까지 이어 지면서 공회의 정체성 아닌 정체성 중에 제일의 정체성은 '백영희 설교'가 되었다. 이 설교 외에는 설교가 없다는 정도가 되면 공회 교인이고 그렇지 않으면 이제 공회를 막 배우는 단계로 본다. 오래 된 교인이 백영희 설교의 가치를 알지 못하면 그냥 듣는 귀가 좀 어둡거나 아니면 교회 내에서 어느 날 일을 낼 수 있어 걱정을 하게 된다.


* 집회의 시작
백 목사님이 직접 목회를 하던 개명교회, 그 주변의 봉산교회, 원기동교회 등은 별도의 말씀을 찾지 않았다. 배 부른 아이가 옆 집에 밥 얻어 먹으러 다니지 않는 것과 같았다. 그런데 주남선 목사님이 집회 강사로 초청을 받으면 백영희 당시 집사를 대신 보냈고 그 설교의 은혜가 전해 지게 되면서 고신을 비롯하여 교계에는 백영희의 설교를 찾는 이들이 자꾸 생겨 났다. 결국 외부 초청에 자주 설교를 하러 다니게 되었고 고신 내 박영기, 김창인과 함께 3대 부흥사라는 말도 나왔다. 박영기는 뒤로 갈수록 흐려 졌고, 김창인은 시원시원스럽게 인도를 해서 환호를 받았으나 백영희는 말씀 중심의 전달을 통해 그 깊이를 두고 김창인보다 탁월하다는 평가가 있다. 김창인의 설교는 사이다, 백영희의 설교는 곰국.. 대충 이런 비교다. 김창인의 설교집은 현재 남아 있는지 모르겠다. 인용이나 연구 대상인지도 모르겠다. 백영희의 설교는 교계의 성경과 설교를 추구하는 이들에게 그 인용과 연구 대상으로 가히 독보적이다. 그는 믿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늘 한결 같았다. 그냥 한 절씩 또박또박 실행해 본 그대로 전했다.

* 주남선의 교역자 수양회
6.25가 발발하고 거창을 향해 인민군이 다가 올 때 주남선은 거창 함양 합천의 '거창 지역' 전체 교역자들을 모아 놓고 유다서를 가르치며 인민군 치하의 고난을 준비하도록 했다. 모든 교역자들이 유다서를 암송하며 배웠고 각오했다. 1939년 신사참배가 한창 몰아 칠 때도 주 목사님은 백영희 집사를 개명으로 찾아 와서 냇가로 데려 가 발을 함께 담그며 신사참배의 역사와 성격과 신앙의 이유를 차분하게 설명했다. 백영희는 그 날 받은 그 부탁으로 1945년 8월 15일까지 전체 교인들까지 신사참배를 하지 않도록 지도를 하고 해방을 만난다. 한 사람의 한 번의 지도가 이렇게 생명의 씨로 던져 지고 열매를 맺을 수 있음을 겪어 본 것이다. 신사참배를 거국적으로 반대하고 성명서를 발표하고 수 많은 교인들이 모여서 단체로 머리 띠를 하고 반대를 하는 방식... 초기에는 이 것이 무슨 힘이 되는 것 같으나 제대로 된 박해자에게는 철 없는 짓이다. 양 떼가 궐기를 하면 늑대야 고맙지 무슨 고민일까? 공회가 오늘까지 교회를 박해하는 사회에 대하여 공동 행동에 나서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러하다. 궐기 대회에 나선 이들은 나중에 다 돌아 서거나 항복한다. 그 중에 지도급 인사들은 정치가적 기질이 있어 탄압하는 쪽에서 오히려 특별 관리를 받고 참으로 우습게도 살아 나오는 수가 있다. 이들이 살아 나오면 해방 후에 엄청난 주목을 받으며 교권 장악에 나선다. 세상도 그렇고 교회도 그렇다. 진정한 신앙의 사람은 평소에는 외치지만 밤중이 되면 자기 기름을 미련한 처녀에게 나눠 주면서 함께 공동 투쟁에 나서자거나 조직을 결성하지 않는다. 주기철과 손양원과 주남선은 이런 식이다. 주남선의 경우 그 소속 노회의 다른 분들 때문에 신사참배 반대 때도 또 해방 후 고려신학교를 출발 시킬 때도 교회의 정치적 투사로 앞에 선 것처럼 보이나 그를 직접 접해 본 거창의 모든 분들은 전혀 반대로 기억한다. 그냥 조용히 기도한다. 필요하면 딱 한 마디만 던진다. 그렇다고 어린 후배들이 열심히 하겠다 하는데 그들의 조직을 해체하러 다니지도 않는다. 그러다 보니 주남선은 고신의 역사에 활동가처럼 적히기도 하는데 다시 면밀히 들여다 보면 늘 2선에 있었다. 손양원도 그러했다. 백영희는 신앙의 처음부터 그러했고 또 주남선을 접하고 배우며 단호하게 그런 길로 평생을 걸었다.

6.25 전쟁의 초기에 밀려 드는 인민군의 소식을 들을 때도, 거창이 점령 되기 전의 교역자 수양회에서도, 그리고 점령 기간 내내에도, 점령 기간 중 체포가 되었을 때도, 주남선은 늘 요동이 없고 그냥 평소 그대로였다. 이 것이 공회의 신앙 성향이다. 주남선 > 백영희 > 그리고 오늘 우리는 어떤지 모르겠다.

주남선의 교역자 수양회에 대한 기억은 백영희이 평생 마지막까지 그대로 이어 졌고 그의 모든 집회 인도는 늘 주남선의 교역자 수양회였다. 그 때는 교역자만 모였지만, 백영희는 교역자만의 모임에 참가하는 교인들이 늘어 날 때에도 늘 교역자 수양회를 잊지 않았다. 천막으로 15,000명이 4박 5일을 산속에서 야생하며 한 번의 설교가 3-4시간 계속 될 때 그의 설교는 마치 주남선의 6.25 초기 거창 지역 교역자 수양회를 하듯 했다. 설교의 내용이 교역자들도 어려워서 잘 배워야 할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 방향은 늘 이 말씀으로 실제 살려 하면 목숨을 걸어야 하고 그 각오는 인간적 일시의 감정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방향이었다.

* 김현봉의 교역자 수양회
주남선은 1951년에 돌아 가셨다. 1952년 백영희는 부산으로 이동했고 고신에서 많은 고초를 겪는 그 말기에 김현봉을 알게 되었다. 계신측 창광교회 이병규 목사님이 피난 시절 부산에서 백영희에게 배웠고 수복 후 서울로 올라 가서 김현봉을 접하며 백영희와 모든 면에서 너무 같은데 두 사람은 서로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소개를 했다. 김현봉의 나이가 훨씬 많다. 서울 지역에서 교역자들만을 모아 놓고 수양회를 통해 성경을 가르치던 모임에 백영희도 몇 번을 참석했다. 그런데 이병규의 발언 때문에 김현봉은 백영희가 마치 딴 마음이나 먹은 듯 오해를 했고 공석에서 비판을 하게 되자 백영희는 별 말을 하지 않고 이후로는 거리를 두고 있었다.

이미 백영희를 알게 된 이들 중에서는 백영희에게 배우러 오는 이들이 있었고. 또 당시는 거리가 멀면 남의 나라 정도가 되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백영희는 1960년부터 거창의 삼봉산과 부산의 금정산에서 교역자 수양회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2-30여 명이었다. 그런데 참석한 교역자들이 각 교회로 돌아 가서 그 은혜를 전하려 해도 그들이 직접 수양회에서 받은 감동을 전하기 어렵게 되자 핵심 교인들을 하나 둘씩 데려 오기 시작했다. 어느 덧 교역자 수십 명에 교인이 수십 명이 되었고, 집회를 마치고 돌아 간 교인들의 신앙은 각 교역자가 몇십 년을 가르쳐도 어려운 정도로 변화가 있었기 때문에 작정하고 교인들을 몰아서 데려 왔다. 이렇게 커지고 커진 것이 60년대에는 수백 명, 70년대에는 몇천 명, 그리고 80년대 마지막에는 한 자리에 15,000명이 앉게 되었다. 이 때가 되자 예수님의 오병이어에 장정만 5천이니 대략 2만여 명의 남녀노소가 함께 앉았던 때를 쉽게 연상할 수 있었다. 초중고교 학생들도 수천 명 이상 참석을 했다.


(돌아 본, 오늘의 집회)
* 오늘을 맡길 인물을 기다리며
모세 한 사람은 1 명인데 1 명이 아니다. 다윗 한 사람은 1 명이나 1 명이 아니다. 아합은 수만 명이 따라 다녀도 털고 나면 아합 하나만 남는다. 그리고 빗 나간 화살에 자신도 죽는다. 그래서 뭘 모르는 교회는 조직을 하려 들고, 뭘 아는 교회는 신앙의 한 사람의 신앙의 한 순간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백영희 사후, 공회에는 그렇게 기대한 후계자를 아직도 받지 못했다. 서부교회 2층의 설교 강단에 서는 자체를 후계자라 한다면 어느 분이 여전히 서 있다. 그런 식으로 따지다 보면 이런 저런 면으로 후계자가 없는 것은 아니다. 동래의 어느 터널 주변에 교인 10여 명 앉아 있는 교회를 방문한 이 곳 회원에게 그 교회 목사님이 '제가 백영희 목사님의 후계자'라고 소개를 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 분이 백 목사님이 가시던 마지막 해에 중간반 남학생의 책임자로 임명이 되었다는 점으로 보면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런데 그런 기준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으면 그의 말을 듣고 백영희를 우습게 볼 수 있다. 같은 기준으로 이 곳은 백영희의 후계자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고 표시해 본 적은 없다. 백영희의 후계자라고 적지 않으면 고소를 해서 감옥에 보내겠다고 협박한 사람에게 전과를 받아 가면서도 우리는 후계자를 표시해 주지 않았다. 그런데 후계자를 자처한 그는 이 곳에게 백영희 설교를 전하고 연구하고 소개를 한 것은 이 곳이 유일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 기준으로 보면 이 곳은 후계자가 맞다. 그 외에 신앙이나 은혜나 지도력 등을 두고 말한다면 우리는 백영희의 뒤를 이을 후계자를 주실 때를 사모하며 기다리고 있는 세례 요한 정도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어느 날 공회 전체에게 무슨 회의니 뭐니 필요 없이 모두가 따를 정도의 인물이 나타 난다면 그는 이 곳에서 그가 그 시대를 감당할 모든 것을 얻어 가고 참고할 것이며 이 곳에 사안 별로 질문을 하면, 솔로몬에게 다윗 시절을 설명했던 다윗을 모셨던 신하의 역할은 일부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 아직은 주지 않으시니, 주지 않으신다면
오늘은 우리 스스로 오늘을 감당해야 한다. 지난 날 공회에게 백영희란 기회를 주신 것처럼 다시 주시게 된다면 우리는 나이와 경력에 상관 없이 제일 앞에 엎드릴 공회다. 다른 공회처럼 혼자 몰래 수원에 감춰 놓고 읽지를 못한다며 버티고 뒤로는 읽었다며 슬금슬금 흘리면서 사람들을 애 태우는 그런 비양심적인 일을 아예 하지 못한다. 아니면 강단을 각목으로 점령한 곳처럼 시대적 종을 몰아 내려 각목을 들지 않을 곳이다.

문제는 아직은 보이지 않는다. 주실 수도 있으나 이대로 주지 않고 세상을 마감 시킬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세상이 이미 그렇고 교계도 그렇고 공회들도 모두가 흩어 지며 시대에 편입이 되는 상황에서 이 곳인들 얼마나 버티겠는가?


집회를 준비하며 이런 면이 너무 확실하게 보이게 되자 이 번 집회를 두고 갑자기 간절한 기도가 나오게 되었다. 외형은 지금까지 해 온 대로 진행을 하지만 내용적으로는 6.25 인민군의 남침을 들으며 교역자 수양회를 했던 주남선 목사님의 그 심정, 1960년부터 전해야 할 말씀은 전하되 그 내용은 교역자를 대상으로 했던 그 자세, 그리고 그 이후는 전쟁 중 별세한 주남선 식이 될지 아니면 오랜 세월 씨앗으로 보존 된 에스라 성전 식이 될지, 결과와 훗날을 맡기되 당장의 우리는 5월과 8월의 집회를 지금까지 80년대의 공회 집회를 늘 마음에 그리며 진행하고 준비한 자세를 바꾸어 2-30여 명이 모인 교역자 수양회를 마음에 그리며 진행하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이다.

이 번 우리의 집회는 '주권'을 중심으로 살펴 본다. 백영희 생전 30년, 백영희 사후 그 설교 복습 30년, 이제 5 년째 오늘의 첫 걸음을 두고 창세기 1장의 창조와 출애굽기 25장의 성막을 살피며 몇 걸음을 걸었다. 지난 5 년을 두고는 감사가 넘친다. 공회 전체 중에서 가장 부족한데 내용적으로는 가장 복 된 것을 받았다. 또 보이는 모습도 부족한 우리를 기준으로 본다면 넘치고 있다. 이제 5년을 지나는 이 시점에 외부 모습은 비록 시대에 휩쓸려 가는 모습이 보일지라도 우리의 내용은 전쟁을 준비하던 주남선의 교역자 수양회, 60년대 공회 출발의 첫 순간을 '교역자 수양회'로 방향을 잡았던 백영희의 공회 집회를 지향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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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 2022.07.29 0 115
12026
하룻 비둘기, 잿만당 넘지 못한다. (2)
12026 | 담당 | 2022.07.30
담당 2022.07.30 0 202
12036
집회를 앞에 두고 : 좌절은 소망으로, 감사는 긴장으로
12036 | 담당a | 2022.08.04
담당a 2022.08.04 0 148
12002
예배의 분산 해체 시대를 맞아
12002 | 담당b | 2022.07.24
담당b 2022.07.24 0 198
12009
새 것을 낡은 부대에.. 공회들에 대한 애절한 마음 이미지
12009 | 담당 | 2022.07.25
담당 2022.07.25 0 174
12010
공회 예배론의 진수, 모르면 지키지 못한다.
12010 | 담당 | 2022.07.25
담당 2022.07.25 0 176
12014
예배와 예배당, 교회와 신앙의 겉과 속을 돌아 본다.
12014 | 담당 | 2022.07.27
담당 2022.07.27 0 75
12015
'집회'라는 이름, 그 성격과 명칭들
12015 | 담당 | 2022.07.27
담당 2022.07.27 0 117
12023
집회 기간의 변화 역사, 오늘을 돌아 본다.
12023 | 담당a | 2022.07.28
담당a 2022.07.28 0 104
12001
복음병원의 설립자 논쟁 - 그 배경을 통해 우리를 본다.
12001 | 담당a | 2022.07.24
담당a 2022.07.24 0 142
11970
예배 숫자가 교회 숫자인데
11970 | 담당 | 2022.07.19
담당 2022.07.19 0 165
11981
동성 반대 하다 연애질 하라는 독사의 옹니 속으로.. (1)
11981 | 담당a | 2022.07.20
담당a 2022.07.20 0 133
11986
'맹자'의 말씀을 걸고 WCC 반대? 이미지
11986 | 담당b | 2022.07.21
담당b 2022.07.21 0 112
11992
공회 중심 교회들의 탈 공회 현상..
11992 | 담당 | 2022.07.22
담당 2022.07.22 0 174
11959
공회의 대표적 사회적 인물 2 명에 대한 비교
11959 | 담당a | 2022.07.17
담당a 2022.07.17 0 213
11961
공회의 부러운 교회들에 대한 비교
11961 | 담당a | 2022.07.18
담당a 2022.07.18 0 182
11940
백도광, 역사의 인물을 보내며
11940 | 담당b | 2022.07.12
담당b 2022.07.12 0 251
11953
백도광 장로님의 가족분들께 드리는 所請
11953 | 담당 | 2022.07.15
담당 2022.07.15 0 176
11909
한종희, 공회에게 주신 어두움
11909 | 담당 | 2022.07.06
담당 2022.07.06 0 173
11915
세상의 불행, 교회의 불행 - 남만 비판하는 악령의 역사
11915 | 담당 | 2022.07.07
담당 2022.07.07 0 172
11919
표현 하나에, 천하를 살리는 복음과 천하를 삼키는 간교가 된다.
11919 | 담당 | 2022.07.09
담당 2022.07.09 0 149
11901
집회를 준비하면서
11901 | 담당s | 2022.07.05
담당s 2022.07.05 0 195
11928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 히10:25
11928 | 담당 | 2022.07.10
담당 2022.07.10 0 114
11930
눈을 뜨는 기도, 눈을 감는 기도
11930 | 담당 | 2022.07.11
담당 2022.07.11 0 166
11934
세인트루이스교회, 백태영 식과 그 반대 식
11934 | 담당a | 2022.07.12
담당a 2022.07.12 0 159
11896
전도 : 그 상식과 그 실제 (2)
11896 | 공회원 | 2022.07.03
공회원 2022.07.03 0 207
11897
교회가 노래방 되면, 노래방에 팔린다. (4)
11897 | 공회원 | 2022.07.03
공회원 2022.07.03 0 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