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오늘, 이 노선에서 본 우리의 신앙 현실

공회 예배론의 진수, 모르면 지키지 못한다.

작성자
담당
작성일
2022.07.25
천주교가 예배를 화석으로 만들어 버렸다. 죽은 예배, 화석화 된 예배를 살려 보려고 5백 년 전의 서구 개혁주의 교회들은 사도신경을 외우며 신앙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예배를 시작했고, 교독을 통해 정말 살아 계신 하나님 앞을 느끼며 떨었다. 그 과정에 꼭 필요한 여러 순서를 넣었다. 천주교에서 출애굽을 하는 과정의 광야 교회로서는 특별하게 해야 할 일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가나안에 들어 가는 순간, 이제는 마음이 바뀌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펼쳐 주시는 과제가 다르기 때문에 만나 대신 농사를 지어야 했고, 물은 지팡이로 한 번 치면 반석이 해결해 주는 방식이 아니라 직접 땅을 파서 샘을 얻어야 했다.


광야에서는 만나를 무시하면 민11:4 이하처럼 큰 재앙이 닥치지만 가나안에 들어 가서도 만나만 기다린다면 이 것은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을 시험하는 죄가 된다. 다 굶어 죽어도 그냥 버려 두신다. 천주교 1천 년에서 탈출하는 과정의 교회는 '개혁주의'라는 표현을 앞 세운 노력이 필요했다. 천주교와의 결별이 확실해 진 17세기부터는 개혁주의 교회들이 천주교의 석고화 된 미사에서 탈출할 때 사용한 여러 예배 예전에 더욱 생명성을 살리고 미사에서 채 나오지 못한 것처럼 보이는 순서는 벗어 났어야 한다. 아이가 자라면 옷의 크기와 형태와 기능이 달라 져야 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21세기 오늘까지도 5백 년 전의 천주교와 전쟁이 다급한 것처럼 무기를 챙기고 전시를 준비하듯 '개혁교회의 예배 모습'에 철저하게 된다면 참 딱한 일이다.


사도신경이 들어 가지 않으면 사도신경을 부인한다고들 한다.
십계명을 외우지 않으면 십계명 부인이 되나?
신구약 66권을 예배 때마다 전부 외우지 않으면 일점일획도 가감이 없다는 사실을 부인한다는 말이 되는가?

사도신경으로 지켜 낸 교회가 있었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으로 지켜 냈던 당대 교회들도 있었다.
오늘은 사도신경과 각종 신앙 고백이 넘치고 있다. 이해도의 문제지 기본적으로 이런 고백 이상의 교리와 노선이 필요한 때이다. 성경인들 목사들이 다 외우거나 다 깨닫고 파악하고 있는가? 기본만 잡으면 죽는 날까지 늘 새로 배우고 또 새로 깨달으며 자라 가는 것이다. 오늘의 귀신은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그런 공격은 권투의 잽을 날리듯 미끼처럼 슬쩍 써 먹으면서 정작 다른 교리나 유혹으로 교회를 탈선 시키고 있다.


각 교회가 예배로 모일 때마다 그 교회에게 주신 시대와 환경을 파악하면서 그 속에서 또 새롭게 인도하는 하나님의 다음 방향과 내용이 무엇일까? 그 뜻을 찾기 위해 강단을 맡은 교인이 가장 중심에서 노력하고 전 교인은 그를 위해 기도하면서 예배로 모인다. 그리고 예배의 모든 진행은 바로 이 면에 전부를 기울인다. 이 것이 '산 예배' '살아 있는 성도의 살아 있는 예배'다. 천주교가 정해 준 의전을 따르다 미사가 되고 천주교의 석고화가 되었다. 개혁주의가 5백 년 전에 제시한 것을 오늘 무조건 그 모습만 따르면 천주교가 되지 않아서 좋은가? 천주교만이 교회를 이탈 시키는 유일 세력인가? 개혁주의를 강조할 때마다 귀신은 속으로 웃고 있다. 마치 이 나라 진보 측이 반일만 외치면 뭐든지 해결이 된다고 보는데 그럴 때마다 나라는 주저 앉고 주변국은 그 덕분에 대한민국의 추격을 쉽게 뿌리 친다.


오늘의 개혁의 첫째는
도둑ㄴ 사기ㄲ 목사부터 제거할 때다. 공회는 교인 25%만 반대하면 조건 없이 목사를 제명해 버린다. 이 것이 진정한 오늘의 개혁주의적 시급한 문제가 아닐까? 개혁주의 예배의 절차를 따라 사도신경을 예배 때 외우고 시편을 교독하고 성가대가 온 예배당을 울리도록 클래식으로 찬양을 하면 천주교를 이기는 교회가 되고 목회자들이 정신을 차리고 교인들이 오늘의 자기 현실에서 세상을 이길 수 있는가? 자기 관리가 되는 서구의 기독교 선진국의 지성인들이라면 개혁주의의 예배 의전이 더 좋아 보인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교회가 이제 남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한국 교계의 경우, 뒤로는 WCC와 진보 자유주의자들과 온갖 일을 다 하면서 집에만 돌아 오면 갑자기 다른 말을 해 댄다. 밤새 술을 마시고 온 남자가 처자식을 불러 놓고 음주론을 펼치는 셈이다. 정말 제대로 된 개혁주의의 예배와 교회 운영은 공회의 정식을 보면 될 듯하다. 그런데 정작 공회 안에 제일 중심 교회들은 초등학문을 졸업했고 중등 과정을 수료 했고 고등 과정이라고들 했는데, 다시 밑으로 내려 가서 예배에 교독이 무슨 필수 순서인 것처럼 사도신경을 해야 하고 공중고백을 해야 하고 성경 봉독이 끝나면 그 말씀을 찬양대가 찬양으로 말씀을 띄워야 하는 것처럼 하고 있다. 공회의 80년대 예배 모습, 그 것은 이 시대 아직까지 우리에게는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의 이 시대에 맞는 개혁주의의 발전 된 절정의 모습이다. 전혀 바꿀 수 없다고는 할 수 없으나 오랜 세월을 거치며 정교하게 정착을 시켰다. 주님 오실 날이 좀 남아 있다면 다음 세대에는 또 그 세대를 감당하도록 바뀔 수 있겠지만 나의 판단으로는 아직 우리 현실에서 우리의 예배로는 80년대까지의 예배 모습과 방향을 바꾸어야 할 만한 요인은 없는 듯하다.


공회의 기둥 같고 기초석의 위치에서 이 노선을 떠받드는 귀한 교회들이 예배와 교회의 운영을 두고 공회가 그토록 조심했던 위험선을 쉽게 넘나드는 것이 안타깝다. 몇 번을 드나 들다 보면 예사가 되고 그 다음에는 멈출 수 없이 미끄러 진다. 타락과 탈선이라는 것이 모두 그런 식이다. 시대가 그렇지 않고 주변이 그렇지 않다면? 그렇다면 시대를 가르치고 주변을 고치려 드는 것이 복음 운동이다. 나서서 설치지는 않아도 최소한 내가 물이 들지는 않아야 한다. 그러다 보면 생명의 운동과 빛의 범위가 어느 새 주변을 살리게 된다. 이 것을 공회의 자세라 한다. 알고 보면 고신도 초기에는 이런 말을 자주 했다. 그리고 교회사에 귀한 종들의 기록에서는 이런 면을 쉽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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