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오늘, 이 노선에서 본 우리의 신앙 현실

공회 중심 교회들의 탈 공회 현상..

작성자
담당
작성일
2022.07.22
공회는 항상 '소속'과 '노선'을 강조한다, 목숨보다 더욱. 하나님과 진리가 더 중요하지 않은가? 그렇다. 존재적으로 가치적으로는 하나님이 첫째고 전부며 진리가 뒤를 따른다. 소속이라는 것은 인간들의 모임이니 아무 가치도 없다. 적게 모이면 선산의 가족 묘원이고, 많으면 공동 묘지이다. 엄청 나게 많이 모이면 공원 묘지다. 노선이란 인간들의 판단이고 인간들이 개설한 도로일 뿐이다. 어떻게 하나님과 진리에 비교를 하겠는가?

그런데도 공회는 그 사람의 소속과 노선을 먼저 본다. 왜 그럴까? 강아지 얼굴을 하고 있으면? 그 속을 들여다 보지 않아도 인성이란 없다. 보이는 대로 들리는 대로 짖고 본다. 그리고 약한 것이 보이면 떼로 달라 들어 물어 뜯는다. 망아지 모습을 하고 있으면? 볼 것도 없이 그 속에 인격이란 없다. 오로지 뛰고 본다. 공회는 그 사람이 속한 곳을 보는 이유는 기장에 다니는 교인은 큰 것을 뒤 집는 데 평생을 소모할 사람이다. 통합 교단이면 뭐든 일단 모아 놓고 본다. 고신이면? 이 사람들은 자기들만 교회인 줄 안다. 그래서 소속을 보는 것이다. 하나님도 진리도 모두가 입으로는 말을 하지만 마지막에는 소속을 따라 움직인다. 양심적이라 해도, 신앙적이라 해도, 아무리 경건하고 훌륭해도 마지막에 보면 자기 소속의 일원이 되어 그 집단을 벗어 나지 못한다. 자기 집단이 하나님과 맞서면 자기도 결국은 하나님과 맞선다. 그래서 소속을 보는 것이다.

노선을 보는 이유는, 경부선을 택했다면 마지막에는 서울 아니면 부산에 도착한다. 호남선을 택했다면 광주 목포로 간다. 전라선을 타면 여수로 온다. 경부선을 타고 그 안에서 무슨 소리를 하든 무슨 운동을 하든 하나님 제일주의를 말하든 마지막에는 경부선의 종착역에서 내려야 한다.


인생은 한 번만 산다. 인생 전체도 그렇지만 우리의 매 현실도 알고 보면 한 번의 기회만 주어 진다. 그런데 견 집단에 속했다면 그의 그 순간과 그의 평생은 견으로 결말 짓는다. 그런데 개떼에 속해 있으면서 혼자 하나님과 진리를 외친다면? 그 것은 그냥 해 본 소리일 뿐이다. 그렇게 마음은 먹어 본 것이다. 그의 행동은 개떼와 함께 움직이고 그의 마지막은 견생이라는 열매를 맺는다. 개 떼 속에서 인격을 정말 지키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물려 죽든지 밀려 나오든지 아니면 개장판 싸움을 벌이고 있을 것이다. 누가 봐도 주소지는 개떼에 있어도 그 모습이 개일 수가 없게 되어 있다.




공회에 속한 교회들은 그 어떤 교회보다 더욱 반갑다. 더 가깝기 때문이다. 공회 교회들 중에는 소속 공회의 지향점을 알고 택했거나 또는 자기가 지향점을 설정해서 모두를 이끄는 교회도 있다. 그 중에는 멋 모르고 소속이 되니 교회들도 있다. 원래의 총공회를 수정하자는 곳이 대구공회다. 그러기를 원치 않는 교회들이 1백 개 교회 속에 섞여 있었다. 최근 여러 기회를 통해 좀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여전히 그 속에서 부산공회와 같거나 더욱 원래 공회를 지켜 내는 교회도 있었다. 부산공회는 어떤 일이 있어도 변치 않는다는 일념으로 시작을 했다. 그런데 대구공회와 나뉘기 직전까지 대구공회 핵심으로 있다가 나뉘는 순간에 갈아 탄 교회들이 많다. 실은 대부분이다. 어쨌든 부산공회 안에 있어도 대구공회처럼 운영하는 교회가 있다. 심지어 잠실동보다 더 잘 나가는 곳도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누구를 접해도 일단 소속을 먼저 본다. 대구공회인가? 그렇다, 대구공회 신앙이다. 다행스럽게 대구공회는 세월 속에 스스로 탈 총공회적 초기 현상을 잠 재우고 원 총공회 입장으로 노력하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 대구공회 교회들을 볼 때는 총공회적으로 자꾸 나아 가려는 교회라고 본다. 부산공회는? 토씨 하나도 바꾸지 못하고 모이는 집회의 장소마저 사수한다는 극언을 서슴치 않는 부공1이 있고, 대구공회와 무엇이 다른지 모르는 부공2라는 곳이 있다. 이 부공2가 원래 대구공회와 하나가 되어 대구공회 내의 탈 총공회 현상을 초기에 잘 무마하여 합리적 총공회를 만들면 좋았을 교회들이다.


부공1의 최고 중심인 교회, 그리고 교회답게 뭔가 조직을 운영할 수 있는 곳은 1 곳뿐이다. 부공2에는 부산공회의 원래 좋았던 노선을 좋아 하는 교회가 몇 곳이 있었다. 이들은 세월 속에 늘 나의 연구 과제였다. 소속은 달라 졌고 그들의 소속 공회는 너무 지나 쳤거나 너무 합리적으로 나가는 바람에 초기부터 이상했고 결과는 필패일 수밖에 없으나, 내가 주목하며 관심 있게 보는 교회들은 목회자와 주력 교인들과 그 교회의 역사가 부공3의 이 연구소와 같기 때문에 이런 교회들은 소속 공회 안에서 이 곳처럼 언행을 하게 되어 각기 소속한 공회들을 건전하게 또 바르고 좋은 모습으로 붙드는 역할을 하지 않을까 , 기대도 했고 또 연구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관심도 많았다. 세월이 좀 지나면 실수로 여기 저기 흩어 져 있던 같은 신앙이란 같이 모일 것으로 봤다. 양심만 있다면...


이제 나뉜 지 대략 30여 년이다. 40 년이 되면 성경에서 한 세대로 본다. 더 이상의 기회는 없다 라는 그런 의미를 담는다. 그 40 년이 달력의 일자로 헤아린 숫자는 아니다. 그렇다 해도 그 숫자는 그냥 적어 주신 숫자는 아니다. 그러니 진지한 마음으로 참고할 40 년이다. 지금 30 년이 지나고 있는 상황에서 부공1과 부공2에 어떤 핑계를 댈 것 없이 이 노선의 원래를 지켜 내야 할 교회들이 과연 지켜 내고 있을까? 공회의 성격 상 자기 부족을 돌아 보며 주님 동행을 노력하다 보면 저절로 보이고 듣는 것은 듣고 봐도 굳이 조사를 하러 다니지는 않는다. 최근 이런 교회들의 모습을 깊이 자세히 들여다 볼 수가 있었다. 그래서 부공3의 목회자들과 이 연구소의 50여 명이 넘을 듯한 연구팀 회원들에게 이 교회들의 최근 자료를 가지고 평가를 해 봤다. 우리의 평가는 상대에게 통고 되거나 공개 되지 않는다. 그들을 보며 우리의 현재 좌표와 우리의 진행 방향을 살피는 내부 목적이기 때문이다.


(좋은 면을 먼저 적어 본다.)
30 년의 세월이면 바뀔 교회는 바뀌고도 남을 만한 세월이다. 재건 교회와 고신 교회의 탈선 과정을 보면 그리 길지 않았다. 20여 년 지나자 겉 모습으로 나올 것은 거의 다 나왔었다. 대구공회의 경우는 교회 역사에서 곁 길을 택한 교단들의 역사에서 좀처럼 찾아 보기 어려운 복고 현상까지 보인다. 최근의 대구공회는 공회적으로만 볼 때 부산공회들보다 나아 보이는 점들이 많다. 지금 거론하고 있는 부산공회들 내의 최고 중심 교회들의 경우는 그 교회들이 아무리 강하게 버틴다 해도 소속 공회 전체의 흐름이나 담임이 앞에서 흔들어 버리면 그렇게 지켜 내기가 어려울 듯한데도 여전히 대체적인 모습을 지켜 내고 있다. 참고로 애양원교회는 손 목사님 사후 소속과 노선은 즉각 다 바꾸었지만 내면의 신앙 흐름은 1 세대들이 생존했던 2000년대 초반까지도 확연하게 표시가 날 정도로 대단했다. 2010년 경이 되면서 이제는 어디서라도 볼 수 있는 통합 교단의 모습이 보인다.


(아쉬운 점들)
시대도 교인이 줄고 공회는 목사님 사후 급격히 위축이 되다 보니 자라 나오는 어린 교인들이나 새로 들어 오는 교인, 또는 그마저 남아 있는 교인들이 다른 교회는 놀러도 간다, 다른 교회는 찬양을 너무 은혜롭게 하더라, 다른 교회는 강단에 꽃을 장식했는데 설교에 집중이 되더라, 다른 교회는 예배 때 신앙 고백을 하더라, 염불 없는 절이 없는데 왜 우리는 신앙 고백을 하지 않느냐, 다른 교회는 '아멘!'을 매 순서에 합창하는데 너무 감동적이더라, 다른 교회는 교인들이 따로 모여 여러 가지 행사를 하고 함께 먹는 기회를 통해 사랑이 넘치더라...

이제 적은 내용 때문에 이 글을 적는다. 이런 일들은 해도 된다. 공회 노선에서 벗어 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말들이 나올 때 그들을 달래기 위해 한두 번을 하거나 또는 이해를 시킬 정도의 과도기를 두고 사용하는 것은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오랜 세월 그렇게 반복하다 보면 교회 자체의 방향이 바뀌어 진다. 그런 요구들을 공회가 몰라서 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다. 그런 사소해 보이는 것들이 교회의 신앙 흐름과 방향과 성격을 틀어 버리기 때문에 하지 않았을 뿐이다. 교회의 야유회? 서부교회도 50년대에는 갔었다. 사진도 남아 있다. 교회 간부들이 계룡산 등산에 남해 보리암에 등산을 가서 촬영한 단체 사진도 있다. 60년대에 비키니를 입고 해수욕장에서 찍은 사진도 있다. 그러나 갈수록 줄여 나갔다. 한두 번 하고 이제 구경이 끝났으나 다시는 뒤 돌아 보지 말자고 했거나 한 번 체험 학습으로 한 정도다. 그런데 이런 어린 시절의 한 번 경험을 품고 있다가, 백 목사님이 별세를 하자 전국의 총공회 교회들은 타 교단이 수십 년 전에 실컷 하다가 이제는 지겨워서 내 버린 것을 줏어 들고 환호하고 있다. 지진아들인가, 넝마주이들이라 그런가, 아니면 원래 그 깊은 속에 끼가 강한 잡ㄴ 잡ㄴ들이라 그런가..


예배의 순서에 사도신경을 한 번쯤 할 수 있다. 예배마다 빼지 않고 사도신경을 한다면? 예배마다 10계명은 왜 외우지 않는가? 성경에 없는 사도신경은 예배 때마다 고백을 해야 그 신앙과 교리를 지키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면, 그래서 예배가 성립이 된다면... 십계명은 교리 위에 있는 성경인데 이 십계명을 예배 때마다 외우지 않는다면 십계명을 우습게 알았거나 유기할 작정인가? 십계명을 예배 때마다 외우며 고백을 한다면 신구약 성경은 왜 전부를 외우고 고백하지 않는가? 일점일획도 가감이 없는 말씀인데..

천주교가 교독 좋아 하고 공중 고백 무슨 반복적 경건미를 예배인 줄 염불화 된 미사로 예배를 폐기 해 버렸다. 그 것을 개혁한 것이 기독교다. 백 목사님 장례 직후 부산공회까지, 부공1이든 부공2의 중심 교회들까지, 이 노선을 철저히 지킨다고 외치는 교회들까지 왜 하지 않던 일 또는 했다 해도 어릴 때 잠깐 하고 이제 성장 과정에서 벌써 그런 단계를 초월한 지난 날을 뒤져 다시 사용하고 있을까? 고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간 아들이 집에 돌아 와서 초등학교 때 가지고 놀던 물총, 인형, 딱지를 찾아 대학교 기숙사에서 매일 그런 유아 놀이를 하고 있다면... 그 전공이 유아교육학과나 교육대학이 아니라면... 유치화가 진행이 된다는 것이니 이 것이 요즘 말로 퇴행성 질환이다. 성경에서는 '망령'이라고 했다. 옛 어른들은 '노망'이라고 했다. 태어 나면 자기 대소변을 찍어 먹고 손바닥으로 치고 논다. 돌아 가실 때가 된 노인이 다시 대소변을 그렇게 하면 이런 현상을 노망이라 했다.


과거에는 교회의 이름이나 목회자의 이름과 그들의 과거 행적까지 적어 가며 그들의 가는 길을 막아 보려 한 적이 있었다. 그 바람에 1989년의 언행 하나 때문에 지금까지 내 얼굴을 귀신 보듯이 증오하는 바람에 공회적으로 나와 함께 할 수 있는 많은 분들을 잃었던 경험도 있고 또 명예훼손이라며 대구공회 어느 목사?님처럼 수백 건으로 고소를 하고 들어 오면 비록 무죄는 받았으나 공회 내 온갖 문제를 가지고 경찰 검찰 담당자들에게 가서 백 목사님이라는 분이 이런 분인데 이렇게 가셨고 내부가 이렇게 되어 이런 과정에서 이렇게 말을 했다며 별별 설명을 해야 하는데 아직까지 그런 설명을 듣고 수사하는 경찰이나 검사가 공회를 존경하며 감동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3 건뿐이다. 조사한 이들은 수도 없이 많을 터인데.. 감동을 받았다는 이들 외에는 백영희 성함과 공회 이름에 얼마나 욕을 퍼 부었을까?


그 때는 그들을 막아 설 마지막 기회였기 때문에 많은 문제가 일어 나든 말든 외쳐 봤다. 이제는 수십 년의 세월 속에 서로에게 주신 자기 위치와 사명이 다르다. 북 쪽 이스라엘이 남 쪽 유다 입장에서 보면 적대적이고 탈선을 했다 하지만 넓게 보면 북 쪽에서 앗수르와 바벨론을 막아 주는 바람에 유다는 도움을 입었다. 또 북 쪽 이스라엘 안에는 엘리야라는 선지자도 있었다. 남 쪽에는 북 쪽보다 더 나쁜 인간이 있었다. 백 목사님 사후 초기에는 한 발만 빗 나가면 돌아 오지 못할 길이 될 상황이어서 필사적으로 바지 끝을 붙들어 본 적이 있다. 지금은 그렇게 할 상대도 없고 필요도 없는 때이다. 우리 안에 어느 어느 어느 교회나 목회자보다 훨씬 낫게 잘 유지 하는 곳도 있다. 그렇다 해도 위에 나열한 여러 문제들을 예사롭게 생각하는 것은 안타깝다. 가루 서말에 적은 누룩이야 별 것이 없다 생각하나 마지막에는 전부를 삼킨다. 그 것이 교회의 역사다.

이런 교회들의 겉 모습은 같은 소속의 주변 다른 교회와 비교할 때 아주 철저해 보인다. 그러나 이미 곳곳에 구멍이 났고 그보다는 기본적으로 이런 문제에 대해 왜 공회가 그렇게까지 막아 왔는지 그 사연을 모르니 결국은 지켜 내지를 못한다고 보인다. 이제 마음에 두고 안타까워 하는 이 교회들은 총공회 전체 중에서도 몇 남지 않은 보석들이어서 그렇다. 공회의 역사성을 가지고 공회의 곳곳을 지켜 낼 마지막 몇 기둥들, 그 기둥의 밑과 그 기둥의 내부가 심각하게 썩고 있다. 썩어 가고 있다. 참 아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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