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오늘, 이 노선에서 본 우리의 신앙 현실

봄을 위한 낙엽, 도약을 위한 자세

작성자
담당a
작성일
2022.07.01
나무의 절정은 가을이다. 녹색으로만 무성하던 나무가 천연색으로 모습을 바꾸며 탐스러운 열매를 천하에 내어 놓는다.
봄부터 시작하여 여름의 그 길고도 무더운 환경을 모두 극복한 마지막 결과가 가을의 진풍경을 통해 한 해가 평가 된다.
한 해 중에 그런 절정은 정말 순간이다. 절정을 느끼는 그 며칠이 지나면 나무는 혹독한 겨울을 준비하며 잎을 털어 낸다.
삭풍의 석 달, 나무는 다시 움을 틔울 것 같지 않아 보인다. 꺾어 보면 생명의 표시가 없다. 패전하는 군대 모습도 그렇다.

한국 교회의 출발은 18세기 말이다. 조선은 쇄국 정책이라는 이름의 바위 절벽을 통해 아무리 복음을 던져도 내 던졌다.
공회의 출발은 일제 말기였다. 새 움이 돋기 어려운 혹독한 때에 복음이 씨앗으로 심어 졌으며 7년을 새움으로만 버텼다.
국가적으로는 식민지라 슬퍼 했으나 한국의 복음은 그 시기 덕분에 첫 전성기를 맞았다. 복음은 전국을 휘감고 있었다.
공회의 첫 기회는 해방 후에 왔다. 시골 한 구석에서만 있었으나 그 내용과 성격은 시대를 감당할 될 성 싶은 움싹이었다.



6.25 전쟁은 불과 5 년 전에 끝난 신사참배 환란에 이어 한국 교회를 더 철저히 끝장 냈다. 한국의 교회는 희망이 없었다.
일제 때는 예배당이 그래도 그 모습을 지켰고 은혜는 없다 해도 교인들은 교회를 드나 들었다. 공산화는 교회 말살이다.
미국은 망명 정부를 심각히 고려하고 있을 때 인천상륙작전이라는 뜻밖의 전황으로 교회는 절반을 건져 오늘에 이른다.
공회는 바로 이 시기가 향후 절정을 위해 마음껏 신앙의 날개를 준비했고 교계적 도약을 위한 준비를 모두 갖추게 된다.

불행이 기회가 되는 섭리다. 나는 한국의 교회 환란 역사를 주로 살펴 왔다. 일제와 전쟁을 함께 승리한 교회는 거의 없다.
신사참배를 위대하게 승리한 분들은 더러 있다. 6.25에도 그렇다. 모두가 알려 졌다. 공회의 승리는 더욱 컸지만 조용했다.
스스로 광고하지 않아서 그렇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 들레지 않고 묻어 두셨다. 다음에 사용할 것은 아껴 두는 섭리이다.
그 내용, 그 속에 들어 있는 실상이 명확하게 귀한데도 바로 드러 나지 않는다면, 드러 내시지 않는다면 아껴 두는 것이다.

우리가 할 일은 나를 들여다 보며 고치는 것이다. 끝까지 철저히 배우는 것이다. 쓰시는 것은 주인, 당신이 알아서 하신다.
나무는 단풍과 열매로 한 해를 마무리한다. 그리고 며칠이 가지 않아 바로 겨울을 준비한다. 외부의 모든 것을 떨어 버린다.
잎을 유지하면 겨울에 얼어 죽고 말라 죽는다. 열매는 다음 해에 다른 곳을 위해 떨어 내고 잎은 겨울을 위해 없애 버린다.
그리고 겨울 석 달을 오로지 생명의 보존에만 치중한다. 환란이란 당장과 투쟁하며 한 편으로 다음 봄을 준비하는 기회다.



언젠가 짚어 봤다. 6.25는 준비 없이 당한 임진왜란처럼 비참했다. 왜군은 서울까지, 인민군은 낙동강까지 일사천리였다.
조선군과 국군의 전체는 눈 날리듯 낙엽 날아 가듯 녹아 내렸다. 그 중에 여수 좌수영과 동서 양 끝의 1, 6 사단은 버텼다.
전국은 처참하게 무너 졌으나 신풍의 앞 바다 한 쪽은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1, 6 사단은 후퇴를 하면서도 반격을 그렸다.
전국의 전황도를 보면 정부도 군도 인민도 공황 상태다. 모두가 정신이 나가 버렸다. 그러나 이들의 눈은 반짝이고 있었다.

6.25 전쟁이 끝나고 전후 사정을 평가해 봤다. 오늘 다시 평가를 해 본다. 기적이며 불가항력 속에 하나님의 섭리가 보인다.
임란이 끝난 뒤 징비록이 임란을 회고해 봤다. 그리고 4백 여 년이 흐르며 오늘은 임란의 전부를 완벽하게 평가할 수 있다.
북한의 전력에 밀리기는 해도 조금만 노력했다면 그렇게까지는 되지 않았을 전쟁이다. 임란도 그렇다. 모두가 자멸이었다.
김일성 스탈린 모택동막 쳐 죽일 ㄴ으로 만들면 또 당한다. 왜적만 쳐 죽일 ㄴ들이라고 증오하면 또 당한다. 내부 문제였다.

말 못하는 나무도 창조 4 일에 형성해 주신 사계절을 안다. 봄이는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여름에 흘리는 땀의 투자를 안다.
가을의 수확에 취해 닥치는 겨울을 잊는 나무는 없다. 날랜 토끼도 천하를 지배하는 인간도 나무 앞에서는 참 할 말이 없다.
6.25 후 70 년을 넘어 가며 마치 무궁히 발전할 것처럼 절정을 향해 치달아 왔다. 모두가 발전만 있을 것으로 착각한 듯하다.
창조의 첫 날부터 빛의 낮을 주시며 흑암의 밤을 동시에 주셨다. 둘째 날에 위를 마련하며 아래 쪽의 현실과 환경도 주셨다.
3 일에는 아래 쪽의 환경을 좌와 우로 나누어 육지와 바다를 나란히 두셨다. 4 일에는 춘하추동을 주셨다. 모를 수가 없다.


좋으면 궃은 날이 온다. 70 년 넘게 발전을 했다면 나무의 꼭대기까지 올라 갔으니 이제 내려 오거나 떨어 져 죽어야 한다.
알면 대처가 되고 모르고 치닫기만 하면 낭떠러지를 향해 질주하는 차량과 같다. 다음 비행을 위해 착륙을 준비할 때이다.
다음 봄을 위해 겨울을 준비할 때이다. 현재 교회의 내면 신앙은 임란의 초기처럼 6.25 초기처럼 절망적 퇴각처럼 보인다.
교회의 규모와 예배의 횟수나 진행처럼 확인이 가능한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난치가 짙어 지며 이제 불치가 보인다.

1969년인가, 로켓이 달 나라를 향해 치솟아 오를 때 미국과 서구의 신앙은 하늘에서 땅으로 추락했다. 신앙이 실종이다.
찰스 다윈의 진화론이라는 것이 역사 교회를 겉만 남기고 속은 아주 주저 앉혔고 로켓이 들어서 재개를 못하게 박살 냈다.
나라의 경제와 사회가 단기간에 발전하며 교회의 외부가 발전했다. 내부는 내려 앉았다. 코로나로 이제 불치가 되었을까?
시대와 환경의 전체가 이렇게 될 때는 하나님의 역사적인 섭리를 읽어야 한다. 이런 추세와 환경 자체는 받아 들여야 한다.

전체의 흐름은 거스리지 못하나 개인적으로 개별 교회적으로 대처는 천차만별이다. 오는 적군을 환영하는 방법도 있다.
공포에 휩싸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눈만 뜨고 당해도 된다. 필사적으로 피난을 하는 방법도 있다. 그 때도 그러했다.
그러나 전체가 함께 맞서지를 못한다면 나 하나라도 다시 주실 날을 사모하며 오늘을 버티고 오늘도 할 일을 찾아도 된다.
6.25의 1, 6 사단처럼 임란의 신풍 좌수영처럼 사전에 준비가 좀 되었다면 퇴각을 해도 또는 환경이 암울해도 소망이 있다.



공부를 하는 곳이 학교다. 역사 이래 이 말은 부인 된 적이 없다. 나쁜 것을 가르칠 망정 학교란 그래도 가르친다고 했다.
지금은 노는 곳을 학교라고 말한다. 공부를 시키면 처벌을 하겠다며 협박을 한다. 왜ㄴ들이 쳐들어 오겠냐는 시대 같다.
역사의 군대는 적을 전제했다. 이 나라의 군대는 적이 없다는 말을 대놓고 말한다. 북 쪽이 동포니 치고 오겠댜는 것이다.
유치원이면 꿈만 그려 주겠지만 자연의 어두운 곳을 조금씩 알려야 좋지 않을까? 마냥 웃게 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일까?

국가의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이 사회의 지성인이라며 언론과 대학에서 온 나라를 향해 뭐라고 한 마디씩 하는 인간들이..
세상에는 늑대도 뱀도 없고 이미 천년왕국이 도래 한 줄로 알고 토끼에게 마음껏 뛰어 놀라고 한다면 인신매매범 아닐까?
오늘의 신앙 현실은 역사 6천 년에 솔로몬 때나 잠깐 있어 봤고 앞으로 주님 오시면 펼쳐 질 천년왕국에서나 있을 때다.
솔로몬은 없는데 솔로몬 때처럼 좋다면 이는 멸망 전의 소돔이다. 재림이 없는데 천년왕국처럼 보인다면 이는 생지옥이다.

자기 하나 겨우 버티고, 자기 교회 하나 경우 붙들 우리는 밖으로 나가서 전체를 살리려 외치는 시기조차 지나 간 듯하다.
예레미야 에스겔이 닥칠 환란을 조금이라도 준비가 가능할 때는 외쳤다. 더 이상 외칠 기회를 주지 않을 때는 침묵했다.
이 곳을 방문하는 이라면 좀 낫고 좀 못 하지만 대개 비슷할 듯하다. 마음 먹고 정신을 차린다면 자기 하나는 챙길 듯하다.
외식을 줄이고, 체험 학습이니 여행이니 세상 사람들 돌아 다니는 까페니 어디니 모두 축소했으면. 그리고 숙연해 졌으면.

시험 준비는 하지 않았고 원래 실력은 애매한데 평생을 좌우할 국가 고시가 한 주간 남았다면, 그 표정과 자세가 따로 있다.
한 장이라도 더 보는 것이다. 어지간하면 책상에 앉아 있어야 한다. 되는 것이 없다 해도. 주변이 웃어도 함께 웃지 못한다.
해 맑게 웃으라며 주변이 자꾸 부추기다. 맑고 밝지 않아서 교회를 옮긴다며 사방에서 자꾸 자극을 주며 소매를 끌고 있다.
임란 전 날 신풍 앞 바다는 참 숙연했다. 6.25 전 날 1, 6 사단은 비장했다. 단풍과 열매가 절정일 때 나무는 이를 악물게 된다.
전체 1

  • 2022-07-02 12:31
    임란의 이순신은 영웅
    그러나 그때에 민족이 융합했더라면,
    오늘의 싸움없이 그 장점을 ??
    내부적 서로 죽이는 300년이 보다는
    낳을지도 모를것이 일까!
    수류탄 들고 사진 찍는 위대함 ..
    결과적 6 25가 참혹함이
    영웅을 만들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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