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오늘, 이 노선에서 본 우리의 신앙 현실

신앙의 연속은 신앙, 외형의 연속은 천주교

작성자
담당
작성일
2022.06.14
신앙은 쉽다. 진리기 때문에 오직 한 길이다. 두 길이고 혼선이 있으면 신앙은 아니다. 한 분 하나님을 향한 직진만 신앙이다.
어렵지만 학생의 길은 학교만 가면 된다. 어려워도 열심히 공부만 하면 학생이다. 힘이 없어 넘어 진다 해도 알 수는 있다.

귀신은 여러 길로 흔든다. 우선 쉬워 보이나 알고 보면 길이 많아 혼선이 있고 어렵다. 혼란 혼동 유혹으로 어두운 길뿐이다.
학생에게 어려워 보이는 학교 가는 길 옆에 만화방, 영화 극장, 뒷 골목에 별별 재미 있는 것을 널어 놓는다. 실은 혼선이다.




요한복음 14장 11절, 예수님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예수님 안에 계신다. 요14장과 15장에 집중적으로 많이 적었다.
구약 내내 아버지 하나님만 있는 듯했다. 그러나 2위 성자 하나님은 창조 때부터 벌써 활동을 했다. 갈수록 점점 뚜렷했다.
막상 사람으로 나타 나실 때는 모를 수가 없는 시점이나 그렇게도 알지를 못했다. 결국 십자가에 처형을 시켜 버렸다.
그들은 사람을 처형한 줄 알았다. 실은 하나님을 처형한 것이었다. 예수님 처형은 2위 성자 처형이고 1위 성부 처형이 된다.

요15:3에서 우리가 주님 안에 있고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실 수 있다. 방법은 10절이다. 그의 계명을 지키면 상호 내주가 된다.
아버지가 주님 안에 계시니 주님을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이다. 우리가 주님 안에 있으면 우리를 본 자가 주님 본 것이 된다.
주님이 부활 후 보이는 주님으로는 더 이상 계시지 않는다. 우리가 있으니 우리를 통해 주님을 볼 수 있도록 우리에게 맡겼다.
성부는 성자 하나님에게, 성자 하나님이 예수님의 인성에게, 부활 후 예수님은 제자에게 제자는 그 다음 제자에에 맡겼다.


손양원은 갔고 애양원은 손양원의 신앙과 교훈과 그의 신앙의 걸음을 보였는가? WCC로 가 버렸다. 손양원을 없애 버렸다.
손양원의 육체는 인민군이 처형했고, 손양원의 신앙은 인민군이 총으로 처형하지 못한다. 애양원이 WCC로 묻고 매장했다.
백영희는 갔다. 그의 육체는 김해 묘소에 묻혔고 그의 영과 혼은 낙원에 있다. 서부교회와 공회 교회들은 현재 어떠할까?
백영희의 육체를 추구하면 천주교가 된다. 백영희의 신앙과 그 걸음이 성경을 어떻게 전했는지 이어 가는 것은 신앙 길이다.

백영희 생전에는 공회로 오는 이들은 백영희를 보고 왔다. 그의 신앙 그의 설교 그의 노선이 좋아서 참 많이 가입해 왔다.
백영희 사후 상당한 기간 동안 연구소는 그의 신앙과 설교를 전했고 그의 신앙과 설교 때문에 공회 내로 많은 분들이 왔다.
세월이 점점 지나 가면서 어느 덧 백영희의 이름과 설교와 노선은 그냥 회사의 간판처럼 남고 실제로는 오늘만 보고 왔다.
공회의 오늘이라는 말은 백영희의 자료를 직접 본 것이 원인이 되지 않고 백영희의 신앙을 가진 이들을 보고 왔다는 뜻이다.


백영희 이름만 전하고 그 설교만 반복하자는 것이 부산의 연구소 입장이다. 일정 기간은 이해를 한다. 무조건이면 천주교다.
바로 이런 신앙의 당연한 걸음에 귀신은 옆 길을 하나 만든다. 이름은 백영희로 걸어 놓고 실제로는 엉뚱한 길을 가게 한다.
그리고 이들에게 백영희 이름을 걸었으니 그 노선을 지키는 줄로 인식하게 만든다. 한식당을 걸어 놓고 양식을 파는 셈이다.
양식 때문에 식당이 운영 되는데 자기는 한식을 지키는 전통 업소인 줄 안다. 부공1과 부공4와 서부교회 4층의 문제점이다.

이 곳은 '공회'와 '백영희 신앙'을 선명하게 그리고 한결 같이 앞에 놓고 달려 왔다. 중요한 것은 이 곳의 노선과 내용이다.
이 곳이 백영희 노선, 성경만으로 가는 길을 정말로 유지하고 있다면, 그리고 백영희 자녀들 때문에 그 자료를 빼앗겼다면,
그런데도 이 곳을 찾는 이들이 있다면, 구약의 성부 활동에 성자가 나타 났고 신약에 성자 활동에 제자들이 이어 온 것처럼,
백영희 생전에 신앙의 길을 잘 배우고 그의 사후에도 그 생전을 잘 연구하다가 자연스럽게 그들의 제자들이 활동을 한다면

이 것이 생전의 백영희의 소원이고 목표였고 당부였다. 사람은 바뀌고 없어 지나 주님과 그 복음만 세상 끝까지 가는 것..
이 것이 사람은 썩어서 없어 지고 그 속에 생명은 이어 가며 열매를 맺는 것이다. 대법원이 백영희 자료를 가져 가 버렸다.
이 것을 백영희 직계들은 자랑으로 알 듯하다. 그리고 이 곳을 향해 이제 아주 끝장이 났다고 생각할 듯하다. 그럴까?
백영희의 외부 이름 외부 모습 외부 자료 외부 설교 글자를 어느 날 한꺼번에 모두 없애 봤다. 그런데 이 곳은 그대로다.

그 신앙, 그 노선, 그 성향, 그 활동, 그 외침, 그 안내, 그들의 눈 빛과 충성과 전하는 것은 전과 달라 진 것이 없다. 있는가?
달라 졌다면 이 곳은 헛 된 것을 좇았고 헛 된 것을 쌓았다. 모래 위에 세웠으니 무너 지는 것이 자연스럽다. 어떠할까?
흰 강아지가 굴뚝에 들어 갔다 나온 뒤 검은 강아지가 되었다면 다른 짐승이 되었을까? 겉의 색만 달라 졌지 내용은 같다.
이 곳이 대법원의 자료 사용 금지 때문에 먹을 뒤집어 썼는데 먹만 뒤집어 쓴 것이 아니라 불교가 되고 유교가 되었다면?

그렇다면 검정을 뒤집어 쓴 검정 강아지가 아니라 오소리가 되고 너구리가 된 것이다. 만일 검정만 묻어서 검을 뿐이라면?
이 곳은 오해와 박해만 받았지 1989년 이전과 같고 2018년 이전과 같고 항상 같고 늘 외친 그대로라면? 이 곳은 참 제자다.
선생을 닮아 버렸고 이제 선생이 없어도 선생의 가던 길을 대신하는 중이다. 지고도 이기는 길. 이기고도 지는 길. 두 길이다.
부산 연구소는 소송에서 이기고 제자 되는 길에서 졌다. 이 곳은 소송에서 지고 제자 되는 길에서 이겼다. 이 곳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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