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오늘, 이 노선에서 본 현실

부공3, 우리의 파송 사례 1 (15일 17:40)

작성자
담당a
작성일
2022.05.15
백영희의 평생을 '파송'과 '교회 개척'의 시기와 지리를 중심으로 간단히 살펴 봤다.
백영희 사후 이 연구소의 부공3의 개척과 파송을 '인물' 중심으로 살펴 본다. 객관적으로 살피기 위해 실명은 최대한 피하겠다.


(백영희 목사님의 파송 준비 - 연구소 직원)
1984년 5월 집회 직후, 백 목사님은 연구부장을 예배당 남반 측문에서 만나자 문득 '미국을 가야겠다. 준비하라'고 통고했다.
뭔가 사연은 많고 여러 면을 생각하고 전한 느낌이었다. 목사님은 평소 말 한 마디에도 많은 생각을 한다. 만사 빈틈이 없다.
그 직원은 너무 황당했다. 우선 중1 정도의 영어 실력, 오로지 설교록 교정에만 몰두, 겨우 밥 먹는 가난, 노동 장사 출신이다.
곰방, 5층까지 등짐 지는 최악의 노동과 국제 시장 리어카 장사를 오래 했다는 것을 안다. 학교는 이름만 걸어 둔 것도 아신다.

직원은 미국 유학 1세대 출신 학교장에게 초등 1학년부터 미국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선교사를 많이 만나 봤다. 대졸이었다.
목사님은 일제 때 초등 5학년이 전부다. 산 속에 기도와 교회 설교만 한다. 미국을 전혀 모르고 유학은 더 모른다고 생각했다.
유학 생활을 거쳐 보니 목사님은 미국의 겉이 아니라 속속을 다 파악하고 계셨다. 가라 할 때는 그냥 던지 농담인 줄 알았다.
'영어를 하면 타락한다 해서 영어 공부하지 않았습니다.' '토플을 치면 된다.' '토플이 뭡니까?' '미문화원에 가 보면 알려 준다'

그는 '토플'이 대학생 영어 참고서로만 알았다. 고교생은 '성문영어'이듯이.. 유학시험이라는 것은 백 목사님께 들어서 알았다.
직원의 내막을 듣고도 보내신 목사님, 가라 한다고 옆 집 가듯 간 직원.. 이 것이 공회고 이 전통을 이어 오는 곳이 부공3이다.
무모하면 값비싼 댓가를 치른다. 목사님은 그 댓가를 치른다 해도 미국에 가서 미제 신앙이 되는 사람을 보낼 마음이 없었다.
가는 사람은 가라니까 갔다. 이렇게 막 가면 많은 잡음과 분란이 참 많아 진다. 그래도 신앙이란 어느 정도 무지몽매가 있다.



(백 목사님의 여수 파송 : 신풍교회)
유학을 마친 직원은 돌아 오자 바로 주일학교 부장을 겸했고 교회 월급 문제로 대학의 토플 강의를 했다. 만사 좋아 보였다.
서부교회 본당에 붙은 15평 창고를 82년부터 편집실로 사용하다 목사님 순교 직전 한 골목 건너 작은 건물을 지어 주셨다.
89년 3월, 목사님은 갑자기 여수 신풍교회로 목회를 보냈다. 평소 한 마디 하고 듣지 않으면 넘어 가는데 이 번에는 달랐다.
목사님을 잘 아는 이들은 신풍교회가 수습 불능이 되자 몇 달만 보내어 해결을 시키고 돌아 오면 후계자로 삼는다고 했었다.

처음 보낼 때는 그럴 조짐도 있었다. 그러나 보낸 직후 몇 사람은 비로소 목사님의 순교 대비인 줄 알았다. 본부 피난이었다.
목사님은 8월 27일의 순교를 두고 한 해 전 '연도', 신년이 되자 '월'을 짐작했고 날자가 가까와 오자 일시를 헤아리고 있었다.
8월 26일이 되자 몇몇 사람에게 시급하게 전화를 했고 이 직원에게도 순교 19 시간 전에 전화를 해서 이후 할 일을 말씀했다.
다음 날 새벽 4시 50분 강단에서 괴한의 칼에 순교했고 이 소식은 신풍에 가장 먼저 전달 되었다. 어제 전화가 유언이었구나!



(연구소 중심의 공회 : 부공3의 성격)
목사님은 여수로 파송하며 '목회 2 : 연구 8'로 업무를 말했다. 설교 외에는 연구소만 전념하라는 목사님 사후의 방침이었다.
이 직원은 평생 백영희 신앙 연구에 주력하며 그가 관련 된 모든 파송과 개척에는 항상 이 노선 연구라는 단서를 꼭 붙인다.
상대가 목회에 주력 해도 그 것이 간접으로 이 노선 연구에 도움이 되거나 협력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반 교인도 그렇다.
그런데 도움을 받을 때 이의를 하는 경우는 없다. 도움을 받고 자립을 할 때가 되면 '교회론'을 들고 나온다. 교회는 절대나?

그러면 처음에 받을 때 거부를 했어야 한다. 이 직원으로부터 부공3은 시작 된다. 부공3을 거친 파송과 개척은 모두 같다.
어린 교인들은 말을 알아 듣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고 따지거나 받으려 하지는 않는다. 부공3의 정신이 그러하다.
백영희 신앙 노선, 여기서 성경과 신앙을 배웠다. 또 옳다. 틀린 것은 항상 고쳐 간다는 것이 가장 마음에 든다. 그래서 옳다.
이런 신앙을 다른 곳에서는 본 적이 없다. 이렇게 믿는 것을 주님 오실 때까지 지키자는 것이다. 뭐가 우상이고 왜 잘못인가?

어느 정도 자립을 할 정도가 되면 신앙은 자유니 조건을 걸지 말라고 한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지원을 받지 말아야 했다.
자립이 되고 자본과 교인이 어느 정도 모이면 교회란 하나님만 간섭 할 수 있다고 한다. 처음부터 하나님께 받았어야 했다.
백 목사님 생전도, 그 사후도, 그리고 오늘까지 늘 진행 되는 사항이다. 그래도 연구소는 아는 대로 가능한 대로 계속한다.
돌아 서거나 딴 길을 걷거나 중간에 이탈하는 분들은 그들이 결정하고 우리는 이 길이 사명이고 확신이 있어 늘 파송한다.


(부공3의 1차 파송 : 광남 서진 성남 조례)
서부교회의 외부 운영은 행정실이 맡는다. 내용은 구역 중심이다. 행정의 핵심은 주일학교 중간반 편집실이 교회의 내부다.
주교 총무 장영목, 중간반을 대신한 특수반의 이치영, 연구소가 될 편집실장 이민영, 3인은 서부교회의 내면에 대목 가지다.
목사님은 연구 부장만 파송하고 갔다. 연구 부장은 3인에게 서부교회와 총공회의 앞 길을 두고 원래 길을 고수하자고 했다.
목사님 사후 서부교회와 총공회의 첫 갈림길만 바로 잡아 놓고 이후는 교권 싸움이 될 터이니 연구소 중심으로 가기로 했다.

1990년까지 서부교회를 지켜 냈고 총공회의 3분의 2가 떠났으나 부산공회가 양성원과 서부교회와 집회를 유지하게 했다.
4인의 첫 소망은 이루어 졌다. 1991년 1월에 서영호 목사님이 서부교회에 부임했다. 이로서 이들은 원래 길을 위해 나섰다.
총공회의 중심인 서부교회, 여기서 동서남북으로 분담을 하고 한 교회씩 개척을 했다. 남쪽은 우연히 1년 전에 개척이 됐다.
목사님 생전의 이 노선은 외형까지 가졌고 사후의 이 노선은 '노선'으로 존재하며 그 중심은 연구소고 각자 교회를 맡는다.

각 교회는 외형적으로 서부교회의 몰락 이후 새로 출발하는 사명을 가지되 전체의 중심은 '노선'을 위해 연구소가 중심이다.
연구소란 자료만 있으면 인건비만 문제다. 연구 인력은 목회가 가능하다. 각자 개척을 하고 생활비는 교회에서 받으면 된다.
교회 형편에 시간이 많으면 연구에 더 주력하고 시간이 없으면 각 교회에 주력하며 마음만은 이 노선 연구로 노선을 세운다.
이런 뜻은 따로 말할 것도 없이 모두가 알았고 눈 빛으로 또 '우리는 이렇지요?' 그리고 전부였다. 시작은 참 은혜스러웠다.

1990년 광남교회(남), 1991년 서진교회(서) 성남교회(동), 1992년 모덕교회(북)으로 이어 졌고 1993년에 순천도 개척했다.
생활비는 각 교회에서 해결하고 한 편으로 목회자며 다른 한 편으로 연구소의 직원이거나 인력이나 돈을 제공하기로 했다.
광남 성남은 처음부터 연구소의 지원만 갔다. 연구소로 돌아 온 것은 기억에 없다. 성남은 규모화로 방향을 전면 바꾸었다.
광남은 서부교회를 다시 가지는 것이 더 중심인 듯했다. 신풍 서진 모덕 조례만 연구소 중심의 교회로 매진하며 나아 갔다.

광남은 1997년, 서부교회와 총공회의 교권을 도모하자는 부공1로 돌아 섰다. 그리고 이 곳을 향해 많은 고소로 앞장을 섰다.
성남은 1998년, 노선보다 교회 부흥이 먼저고 부흥만 되면 노선을 지킨다고 했다. 원래 뜻을 지키는 분들이 동천에 남는다.
광남 성남처럼 핵심의 이탈은 목사님 생전부터 흔한 일이다. 항상 두 길! 그러나 우리 선택은 오직 한 길! 우리 길을 재촉했다.
1998년 5월이 되면서 부공3은 목사님 사후 10년간 예상 못한 부흥을 갖는다. 동천에 이어 서울의 강동과 사이트 때문이다.

10년을 계속해서 설교록과 이 노선을 묵묵히 전하던 상황에서 1998년에 공회 내 제일 핵심 인력들이 부공3으로 찾아 왔다.
집회도 신풍 시골 산 기슭에서 거창의 현재 대구공회 본부인 완대 초등학교로 옮겼고 공회 내 최고라 할 만한 분들이 모였다.
공회 밖에서 공회를 찾는 분들도 많아 졌다. 비록 적지만 '공회'라는 이름과 모습을 표시 할 정도가 되었다. 피하지 않았다.
부산공회 내에서 '부공1'로 우리를 지칭하고 싶었으나 목사님은 이런 문제를 두고는 남 뒤에 숨는다. 그래서 부공3이라 했다.


(부공3의 2차 파송 : 동천 강동 서진)
연도는 다소 얽혔지만 크게 보면 생전의 신풍 파견으로 시작이 되었고, 사후 3개 교회의 파송이 1차가 된다. 1991년까지다.
이후 모덕 조례 강동은 1992년에서 1998년까지 2차 파송이다. 1차 파송은 백 목사님 생전 늘 목사님 집무실에 앉던 경우다.
2차 파송인들은 백 목사님이 잘 알고 지켜 보았으나 업무적이나 개인적으로 직접 불러 지시하고 지도하는 정도는 아니었다.
전남 2곳, 부산 3곳, 서울 1곳이나 총공회 2백여 개의 중심이 되기는 충분했다. 노선의 자료와 연구는 이 곳뿐이기 때문이다.

외부에서 들어 오는 공회 가입 문의는 대체로 부공2나 대구공회로 소개했다. 부공3, 우리와 함께 하는 것은 실제 쉽지 않다.
백 목사님 생전에 가장 중심에 있던 목회자들조차 부공3의 경제나 공회 신앙의 최소 기본 원칙을 맞추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전하는 교훈과 공회 소개는 누가 읽어도 대부분 좋아 할 듯하다. 입에는 달지만 배에는 쓰게 되리라는 것이 성경이다.
생전의 서부교회 최고 핵심도 10여 년을 채우지 못하고 벗어 났다. 왔다가 나가면 서로 어려움이 많아 다른 공회로 안내했다.

타 공회로 소개를 하거나 보다 나아 보이는 다른 공회로 소개를 했지만 꼭 이 곳이라야 하겠다는 분들은 지역 교회로 갔다.
지금 20 년에서 30년이 지나 가면서 끝까지 지켜 내는 분들도 있다. 그렇지 않은 분들이 훨씬 많다. 이 곳은 상당히 어렵다.
목회자에게 월 99만 원 이상의 생활비를 제시하면 학교를 다 포기해야 한다. 그 것을 맞추는 것은 목사님 생전보다 어렵다.
교인들에게는 생전의 집사 조건을 맞춰야 집사로 임명한다. 시대가 급변하는데 이 곳에 오면 집사도 평생 받기 어려워 진다.

성남에서 이 노선을 지키는 분들의 의지는 확고했으나 목회자가 필요했다. 공회는 서진이 안정적이어서 목사님을 파송했다.
서진 후임에 연구소 직원을 임시 파송한 후 창동교회 김형렬 집사님을 파송했다. 대구공회 성향이나 이 노선에 서기로 했다.
동천은 1998년 이치영 목사님이 부임하자 바로 자리를 잡고 성남교회보다 부흥을 했다. 서진은 오랜 기간 침체로 돌아 섰다.
동천은 오늘 부공3이 되고 서진은 유지가 어렵다. 서진의 약화을 비판하는 분도 있으나 현실을 주신 주님을 따랐을 뿐이다.

서진은 이치영 목사님을 통해 8년의 기회를 받았다. 출발하는 동천이 약하나 자세가 바르다. 그렇다면 돌아 보는 것이 맞다.
할 말은 많다. 좋은 목회자는 교인이 어려도 교회가 발전한다. 목회자가 약하면 교인이 힘쓰면 된다. 힘을 쓰지 않은 것이다.
부모가 실력이 있으면 자녀는 무능해 진다. 부모가 부모의 역할을 하지 못하면 자녀는 생존력을 발휘한다. 실력이 자란다.
무엇이 좋은지 사실 알기 어렵다. 부모는 편애하지 않고 노력하면 된다. 공회는 주신 현실에 충성할 뿐이다. 그 것이 교회다.


(부공3의 3차 파송 : 서인 세종)
1998년 서울의 동 쪽은 강동이 맡은 상태에서 서울의 서 쪽에서 우리와 함께 할 교인들이 종종 연락이 왔고 개척이 되었다.
인간적으로 더 많고 좋은 기회는 우리와 함께 하기 어려웠으나 피할 수 없는 사연이 생겼다. 불과 두어 사람으로 시작했다.
1998년 이후 연구소에는 공회의 중진 목회자급의 교인들이 목사님 사후 목회의 기회를 놓친 상태에서 대거 가입을 했다.
백 목사님 생전이면 묵회자로 파송 될 20여 명이었다. 그냥 보내려 하면 실력은 충분하다. 그러나 우리의 기준은 까다롭다.

우선 서인교인들에게는 목회자가 없어도 이 길뿐이겠는지 물었다. 목회자가 될 만한 분들에게는 우선 교인이 되라고 했다.
목회자 실력이 되는 이들이 교인으로 바른 생활하는 것은 어렵다. 그래도 그 과정을 거쳐야 나중에 문제를 줄일 수가 있다.
사울의 시험은 다윗을 섬기지 못한 것이다. 신앙의 고난도 시험이다. 주남선은 자기가 갈 사경회에 백영희를 거의 보냈다.
백영희를 보내면 백영희의 스승이 된다. 그런데 대개 이렇게 되면 싸우려 들거나 견제를 한다. 교만의 죄에 걸리는 것이다.

한 눈에 봐도 신앙과 실력에 있어 부공3의 기존 목회자들을 넘어 서거나 여러 분야에서 그런 인물들이 참 많이 지나 갔다.
부공3, 연구소 공회는 그냥 단순하다. 주일학생도 세우면 모신다. 어떤 위대한 분도 기회 주지 않으면 기다리라 부탁한다.
인간이 계획을 잡아 일정을 추진하지 않는다. 사람을 기르는 것도 개척도 파송도 임명도 그렇다. 모두가 여기서 탈이 난다.
눈치가 아주 빠르면 1년 안에 떠난다. 10년을 기다린 분도 있다. 20년을 기다리다 찾아와 2년을 애타게 부탁한 분도 있다.

총공회 전체적으로 모를 수가 없는 인물들이다. 그 때마다 공회 입장은 설교록과 공회 역사다. 그 범위에서 우선 대처한다.
우리의 기본은 어느 교회든 현 목회자 이상의 인물이 있으면 바로 목회자로 모신다. 서열이나 다른 입장은 가리지 않는다.
확실히 더 낫지 않으면 어떤 분이든 기회를 줄 때까지 교인으로 충실해야 한다. 하나님이 열어 주는 객관적 기회를 말한다.
포기하고 앉아 있으라는 말이 된다. 이는 인간적 계획이나 다른 뜻이 있다면 견디지 못한다. 우리는 늘 그렇게 걸어 왔다.

세월을 기다리지 않고, 자신의 뜻을 관철하려 않고, 이 노선의 원칙에 충실하게 교인으로 계신 분들을 목회자로 파송했다.
강동의 입장이 달라 지면서 서울의 서 쪽에 서인교회를 개척했다. 또 세종시에 부산공회에서 오래 기다린 가정이 합류했다.
어떤 교인도 부공3 우리와 함께 해야 한다면 우리 교회가 있는 곳으로 이주를 해야 했다. 이주는 무리가 되는 경우도 있다.
서울의 동 쪽은 강동에 맡겨 놓고 서울의 서 쪽에 서인교회가 시작이 되었다. 그 곳 주변의 교인들은 그 곳으로 파송을 했다.

이 노선이 아니면 안 된다는 몇 교인만 모였고 목회자 조건이 까다로워 공회는 파송할 목회자가 없어 교인만 한 가정 보냈다.
이 가정이 그 곳에서 중심 가정이 되고 그리고 그 교회 교인들이 모두 목회자로 모시겠다고 하면 가장 이상적인 과정이 된다.
공회를 모르는 타 교단 출신이나 공회 생활 5년을 통해 가능성은 봤다. 그리고 파송했고 경제와 모든 면에서 인준을 하였다.
타 교단 출신이, 공회를 다니고, 공회 교인이 된 후, 공회 개척을 위해 파송을 받고, 그 곳에서 교인을 거쳐 목회자가 되었다.

비슷한 시기 세종에서는 공회 청년 둘과 한 가정이 출발했다. 직장 생활을 통해 청년과 학생을 전도했고 교회가 되었다.
그렇다면 그렇게 한 그 교인이 이미 목회자다. 직장을 정리하고 경제와 재산까지 다 정리하면 공식적인 목회자가 된다.
하나라도 정리가 되지 못하면 백 목사님의 개명 시절과 같다. 집사로서 목회자가 된다. 공회로서 파송할 경우가 생겼다.
기존 교회의 사택 자녀가 결혼을 하게 되면서 기존 교회에 끼칠 문제 때문에 개척 교회의 교인으로 충성하게 파송을 했다.

서인교회도 세종교회도 초기 수 년 동안 실시간으로 공회 교회로 연결 되어 분교 형태로 지냈다. 때가 되어 완전 독립했다.
그 교회 함께 하던 교인들이 좋으면 목회자가 되는 것이 공회 원칙이다. 파송 되는 어떤 목회자보다 더 유리하고 좋게 된다.
기존 교회의 목회자 자녀가 목회자가 될 수 없다면 공회의 개척 교회에 교인으로 충성한다! 현재 부공3의 파송 원칙이다.
그렇다면 교회 개척 단계에 2 가지 형태의 파송이 있다. 목회자 자녀로서 가는 경우와 그 교회의 중심 교인으로 가는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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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81
첫 은혜 - 중생의 순간인가, 중생을 따르는 현상인가?
11481 | 담당c | 2022.03.27
담당c 2022.03.27 0 129
11483
한 사건의 분석 - 건설구원의 기능과 요소를 중심으로
11483 | 담당 | 2022.03.27
담당 2022.03.27 0 164
11492
교회가 어두워 지면
11492 | 담당 | 2022.03.29
담당 2022.03.29 0 139
11501
보고 믿고자 하는 '도마'적인 심리
11501 | 담당a | 2022.04.01
담당a 2022.04.01 0 109
11472
시대가 크게 바뀌면 지진이 발생한다.
11472 | 담당 | 2022.03.25
담당 2022.03.25 0 126
11460
주제 찬송가 : 개인, 교회, 공회, 연구소 별
11460 | 담당 | 2022.03.23
담당 2022.03.23 0 137
11468
옳은 것만 따른다, 백영희 가족들을 회상하며
11468 | 담당b | 2022.03.24
담당b 2022.03.24 0 118
11480
교회의 계속성은 무엇으로 확인 되나?
11480 | 담당 | 2022.03.25
담당 2022.03.25 0 147
11446
뱀의 옹니에 걸렸을 때
11446 | 담당b | 2022.03.20
담당b 2022.03.20 0 126
11459
미국의 청교도 운동이 지나 간 자리
11459 | 담당a | 2022.03.22
담당a 2022.03.22 0 379
11445
연구소의 무형 자산..
11445 | 담당 | 2022.03.19
담당 2022.03.19 0 136
11451
공회의 열등감과 자신감, 그 극심한 문제점 (1)
11451 | 담담b | 2022.03.21
담담b 2022.03.21 0 201
11452
주보, 공회의 설교 노선
11452 | 담당 | 2022.03.21
담당 2022.03.21 0 124
11455
양성원과 신학교..
11455 | 담당a | 2022.03.21
담당a 2022.03.21 0 121
11432
'죽도록 충성하라'를 왜곡해 버리면
11432 | 담당a | 2022.03.15
담당a 2022.03.15 0 149
11436
고신과 공회, 교계와 공회 - 인식의 출발 차이
11436 | 담당b | 2022.03.16
담당b 2022.03.16 0 139
11443
환란의 성격에 따른 승리의 요건들
11443 | 담당 | 2022.03.19
담당 2022.03.19 0 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