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오늘, 이 노선에서 본 현실

공회가 소개 된 전개 역사

작성자
담당b
작성일
2022.05.11
공회 자료를 보면 수치와 인물과 지역이 명확하나, 기억으로 '추세'만 살펴 본다. 구체적으로 짚어 주시면 수정에 반영하겠다.



(해방 전 초기의 공회)
1936년 백 목사님이 신앙으로 출발할 때 그는 경남 거창군 고제면 개명 마을에 살았다. 지도를 보면 알지만 가장 험한 곳이다.
지도상 정북 극단은 웅양이나 국도가 지나 간다. 산의 표고와 통로로 보면 개명이 경남 전체의 가장 북단인데 묘한 면이 있다.
이 곳은 경남 전체를 맡던 호주 선교부가 경남을 다시 둘로 나눈 서부경남의 첫 개척한 곳이고 모든 선교사들의 땅 끝이었다.
한반도가 세계 지도의 동 쪽 끝이지만 지도를 뒤집어면 한반도는 세계를 향하는 출발인 것처럼 개명은 그런 지정학이 있었다.

개명에서 역으로 진주와 부산 쪽을 보게 되면 이 곳이 중심이 되고 부채살처럼 경남 해안을 향해 뻗어 간다. 실제 그렇게 된다.
지금까지 호주선교부의 경남 선교사와 고신의 지역 선교 연구는 부산에서 진주, 부산과 진주에서 내륙을 향해 뻗는 설명이다.
경남의 동부 지방은 개척이 아주 빨랐다. 경남의 서부는 너무 느렸다. 그리고 그 첫 개척의 성과는 개명이라는 이 동네가 된다.
한국 선교사 초기 결산은 신사참배였고 남한 교회의 투쟁사는 경남의 투쟁사가 되고 경남의 투쟁사는 경남의 해안 지역사다.

해방 후 북한 교회는 없어 졌다. 남한 교회가 한국 교회고 남한 교회의 신사참배 투쟁과 승리사는 경남 중 남해안의 역사다.
하동, 통영, 함안, 진해, 부산, 기장, 밀양으로 이어 지는 신사참배 투사들의 주 활동 지역을 보면 이런 설명은 무리가 아니다.
주남선만 경남 제일 깊은 거창이고 백영희는 그보다 더 깊은 개명 골짝이다. 복음은 그 내용과 흐르는 방향을 볼 필요가 있다.
공회는 내용을 주력했다. 한국 선교에 해방까지 생존한 신앙은 호주 선교부의 경남이고 거창은 그 말단이거나 제일 꼭지다.

이 곳은 주로 공회만 가지고 이야기한다. 개명 골짝에서 출발한 이 노선은 해방 이전에 이미 선교부를 통해 경남에 전해 졌고
진주의 경남 성경학교를 강사나 학생으로 거쳐 간 인물이 주기철 최상림 주남선 손양원 최덕지 박인순 등의 출옥성도들이다.
고신은 이들이 한국 교회의 신사참배 승리자라 주장하고 통합은 순천이 더 투쟁했다 하고 합동은 전국에도 많다고 예를 든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당사자가 생존해 있던 해방 후 수십 년 동안 고신 외에는 신사참배의 순교나 투쟁을 타 교단은 묻어 왔다.


(해방 후 공회의 전파)
해방 직후 한국 교회는 교파를 막론하고 신사참배 승리자만 의인 취급을 받고 신사참배의 승패 여부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서로가 너무 잘 알았기 때문이다. 고신은 마치 신사참배 승리를 독점한 듯했고 타 교단은 교만하다는 말 외에는 하지 못했다.
이 말은 해방 후 고신의 무대인 경남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백영희는 산골 집사이나 경남과 고신 전체에 소문이 퍼졌다.
주로 출옥성도들이 백영희를 소개했고, 사경회를 인도하고 나면 그 때부터는 백영희의 설교와 신앙만 따로 남아 전해 졌다.

이 영향력은 해방 5년 후인 1950년대 초반 고신이 총회로부터 제거 될 때 고신으로 교회를 모으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
이후 백영희의 영향력을 시기하고 견제한 남영환 한명동 등 고신 지도부가 내심 가장 경계했다고 고신사에서 쉽게 보인다.
이런 현상은 외부 모습이고 이런 현상 내면에는 고신 내 전국 어디든 백영희의 특별한 신앙은 항상 고신 전체를 움직였다.
고신이 두 길을 놓고 고민할 때 겉으로는 한상동 송상석 박윤선의 향방이 중요했고 제대로 된 신앙들은 백영희를 주목했다.

해방 전에는 선교사들을 통해 알려 졌고, 해방 후에는 출옥 성도들이 소식을 전했고, 이제는 접한 교인을 통해 전해 졌다.
주남선은 한상동은 고신의 설립자다. 행정은 한상동, 신앙은 주남선이 대표한다. 주남선을 초빙하면 백영희를 대신 보냈다.
아직은 공회가 고신 안에 있었다. 고신 안에서 진 고신이었다. 1951년 주남선의 사후 한상동의 교회 정치는 제어가 없었다.
주남선 생전 주남선의 태도와 눈 빛은 고신을 신앙에 붙들어 자중을 시켰다. 그의 사후 백영희는 견제와 탄압일 뿐이었다.

주남선 사후 백영희에 대한 고신의 박해는 일제 때 신사참배나 6.25 점령 하의 인민군 치하보다 더 집요하게 철저했다.
맞 상대를 하면 고신은 두 쪽이 난다고 고신 스스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 백영희는 굴하지는 않되 치지는 않는다.
밀어 내면 된다. 백영희는 자기 발로 소속을 바꾸지는 않는다. 그러나 밀어 내면 밀려 나가지 살려 달라고 하지는 않는다.
고신은 밀어 냈고 백영희는 고신 안에서 고신을 향해 충분히 전했고 또 그 기간과 그 직후 초교파적으로 전할 것은 전했다.



(이단으로 알려 진 시기)
1960년 전후까지, 공회도 서부교회도 알려 지지 않았으나 '백영희'는 한국의 보수 교계에서는 신령한 이름으로 각인 된다.
고신에서 나온 백영희는 서울과 전국을 상대로 자유롭게 전할 수 있으나 전하고 나면 온갖 비판이 그 이상으로 제기 되었다.
그냥 이단이라 해 버리면 백영희의 신앙을 차단하는 데는 가장 빠르고 좋다. 다행히? 백영희는 굳이 해명을 하지 않는다.
한 마디로, 목사가 백영희처럼 설교하고 생활하면 모두가 산에서 기도하다 죽거나 굶어 죽는다. 그러니 막을 수밖에 없다.

어쨌든 1959년 고신에서 밀려 난 후 1979년까지 만 20여 년을 걸쳐 합동의 박희천 한 명 정도 외에는 모두가 이단이라 했다.
박윤선까지 전해 들은 말로 비판을 했다. 직격 비판은 하지 않았으나 성경에서 벗어 났다는 정도로 표현하여 배경이 되었다.
점잖고 신중하기로 유명한 그의 이 말은 교계에 마음 놓고 공회를 이단으로 정죄할 수 있는 뒷배가 되었고 근거가 되었다.
고신이야 제명을 했으니 당연하나 숫자가 적다. 한국의 가장 큰 합동은 전국적으로 정죄를 했다. 이 정죄가 밑거름이 된다?

1979년 주일학생 1명이 미아가 되었다가 다시 찾는 사건이 발생했고 이 때 조갑제 기자가 서부교회를 비판하려 취재를 하다
세계 최대의 주일학교라는 특종을 불신자의 일반 신문 사회 1면에 큼직하게 터트렸다. 그 날부터 한국 교계의 스타가 되었다.
조갑제 기자는 그냥 본 대로 적었으나 교계는 그 내용에 보수 정통 교회의 내용을 가지고 순복음을 넘는 부흥을 이룬 것이니
이 사안은 그냥 넘어 갈 수가 없었다. 이후 한국 교회는 오랜 세월 백영희의 전설 만들기와 전파에 열기를 더했다. 참 묘했다.

20년을 이단으로 매장해 놓고 실컷 욕을 해 놓은 그 비판과 그 이름이 교계에 흩뿌려 진 바로 그만큼 더욱 명성은 높아 갔다.
아는 이들은 지난 날의 모든 비판이 거짓말이었고 백영희는 일체 대응하지 않았고 불신 신문의 소개로 다시 재평가 되었다.
장년반의 순복음과 비교할 때 장로교의 정통 보수 신앙에 철저하면서 아동과 청소년의 부흥이 앞섰으니, 정말 이상적이다.
서부교회의 숫적 부흥이 가는 곳마다 교회의 운영이 알려 졌고 신앙의 노선이 소개 되면서 마지막에 설교 소식이 나갔다.

숫자에 놀란 사람은 초보 신앙, 교회 운영에 놀란 사람은 교회 간부, 설교이 깊이와 교리에 놀라면 신학자나 교계 지도자다.
이후 백영희와 공회에 대한 평가는 이 땅 위에 사람이 살면서 직접 받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칼빈을 넘어 서고 있었다.
교계의 최고 지도자들 신학자들은 어떻게 하든 설교록을 입수한다. 그리고 이후부터 묘하게 표현이 달라 지기 시작한다.
백영희 이름을 직접 거론한 경우는 박희천 피영민 정도다. 나머지는 그들의 이전과 이후의 설교와 교리 표현을 보면 안다.

순복음 조용기부터 1970년대 전후가 달라 진다. 80년대부터 공회의 핵심 교리인 중생과 건설구원은 곳곳에 영향을 끼친다.
이 것만 따로 연구해도 학위가 줄줄이 나올 것이고 공회는 여러 면으로 성취와 교인 격려에 도움이 되겠지만 그러지 않는다.
우선,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그리고 공회의 본질은 백영희의 위대함이 나의 위대함이 아니다. 우리는 그냥 주님뿐이다.
주님 잘 따르고 그 말씀을 살피고 순종한 것. 이 것이 백영희다. 이 것이 칼빈이다. 우리 시대에 살았으니 먼저 참고할 뿐이다.


(목회연구소)
백영희는 1952년, 서부교회를 부임하자 교인들이 하나 둘씩 필기를 시작했다. 그냥 듣고 지나 갈 수가 없어서 그러했다.
백영희 평생의 설교는 항상 참석자로 실내가 가득하고 남녀노소 거의 모두 필기를 한다. 목회자들은 아예 녹음을 했다.
백영희 평생에 기록은 늘 만류를 했다. 말씀을 듣는 예배 시간에 성령의 감화에 집중하여 자기가 변화 되는 것을 강조했다.
그러나 설교 내용에 성경의 해석과 교리의 중요한 부분, 그리고 신앙과 생활의 주옥이 너무 쏟아 져서 놓칠 수가 없었다.

공회 내부보다 교계에서 참석하는 외부인들이 녹음을 시작했고 예배 중의 각자 녹음 때문에 예배의 진행에 지장이 되었다.
녹음기는 소형화 되었고 외부에 소개한 이들이 잘못 전달하면 또 이단 시비에 빠질 수가 있다. 결국 방송실을 두고 녹음했다.
또한 거의 모든 성경 해석이 전통적 해석과 다르다는 이유로 시비가 될 때 자체 발행한 도서가 근거이니 설교록을 출간했다.

한 편으로는 대외의 시비 방어용이며 외부의 선의적 오해를 막고 내부적으로는 세월 속에 주신 깨달음을 체계화해야 했다.
박윤선 주석의 출간에 제일 수고한 분이 50년대부터 이미 백영희 설교 자료를 확보하려고 애를 썼으나 당시는 주지 않았다.
1982년, 주일학생을 가르치는 공과라도 제대로 자료를 마련하겠다고 나서자 백영희는 허락했다. 설교록 출간의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주일 오전 오후를 50여 페이지로 주간 설교록 형태로, 이후 600 페이지 분량의 타이핑 자료로 설교록을 출간했다.

설교록이 출간 되자 서울의 총신대 정문 앞의 복사집에서 그냥 만들어 내는 양이 부산의 출간물보다 많다는 말까지 들렸다.
백영희는 설교를 저작권을 통해 돈으로 만들지 않는다. 날조만 하지 않는다면 누가 어떻게 전하든 말든 복음 운동이라 했다.
1989.8.27, 그는 죽기 1년 전부터 일자를 계산해 가며 준비를 했다. 1989년 3월에 부산의 연구소 핵심을 여수로 이동 시켰다.
그 때는, 그의 사후 그 때의 조처가 그렇게 앞 날을 내다 본 것인 줄 해당 직원과 주변이 모두 몰랐다. 세월 속에 알게 된다.

백영희 생전의 백영희와 공회는 부산의 동대1동 281번지였다. 그의 사후 보이는 서부교회와 공회는 아다시피 존재가 없다.
그의 교훈과 노선의 영향력은 공기 중에 퍼지는 바이러스처럼 교계로 나갔다. 출간과 전파는 여수에서 이루어 진 일이다.
여수는 공회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백영희 생전에 아무도 몰랐다. 사후가 되어서야 백영희 사후 총공회 중심지로 알려 진다.
백영희와 공회의 노선, 그 교훈의 소리 없는 전파력과 결과는 너무 많다. 이미 대략적인 것은 여기서 소개했고 충분히 알렸다.


(앞으로는)
이 노선과 이 교훈의 깊이는 한 시대를 이끌던 정도에 그칠 것 같지는 않다. 그 성격은 세계교회사의 계통 선에서 볼 정도다.
이 곳은, 모든 면으로 그렇게 될 가능성은 넘친다고 보고 있다. 그런 점을 지금까지 출간과 함께 많은 면으로 소개해 왔다.
공회의 보이는 조직과 덩치와 인물은 그냥 시골에 묻혀 있거나 분산 되어 먼지처럼 보일 듯하다. 그러나 그 내용은 지극하다.
우한에서 발생한 바이러스, 그 실험실이나 시장 골목에서 그냥 묻힐 수도 있었다. 그랬다면 아무도 알지 못하고 넘어 갔다.

이 것이 밖으로 우연히 또는 의도적으로 퍼지기 시작하며 순식간에 세계사에 기록 될 사건으로 남았다. 파급이 너무 컸다.
공회의 내용에는 복음의 너무 귀한 요소가 너무 많다. 오늘날의 전파 수단에 따라 어느 날 전파가 되면 역대급이 될 듯하다.
루터의 95개조와 칼빈의 기독교 강요가 나오기 직전 유럽에 막 전파 된 인쇄기가 유럽의 1천 년을 뒤바꿀 줄은 예상 못했다.
이 연구소는 1989년 1월에 이미 책자로 또 사경회에서 오늘 다시 한 번 신앙의 대변혁을 가져 올 그런 기회를 예상하고 있다.

공회의 노선, 그 성격과 흐름과 내용은 주님 오시기 전 세상이 악령으로 하나 되어 교회를 모두 삼켜 버릴 때
천하의 악령과 맞설 정도의 진리적 복음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검증은 충분히 거쳤다.
이제 어떤 계기로 주님이 불만 켜실 때를 이 곳은 지금도 기다린다.
그리고 그 기다림 때문에 국내도 해외도 관심 있게 지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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