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오늘, 이 노선에서 본 우리의 신앙 현실

편리와 은혜는 반비례한다 - 집회를 중심으로

작성자
담당
작성일
2022.04.26

집회를 돌아 본다.

(야전 천막)
60년대 공회의 초기 집회는 산 속에 빈터를 찾아 6.25 전쟁 후 민간에 흘러 나온 군인들의 야외 막사를 예배당으로 사용했다. 이 것은 2차 세계대전에 미군이 사용하던 것이다. 재질이 두껍고 무거웠다. 또 곳곳에 비가 샜다. 어깨와 무릎을 맞대고 앉았다. 처음에 1개로 시작했고 1970년경에는 2개를 연결했다. 그 가운데는 비가 오면 별 대책이 없다. 식사는 금식을 하는 사람, 조금 끓여서 조금 나누는 사람, 미리 싸오는 사람은 당시 떡이나 미음 정도다. 군인 2인 1조로 사용하는 A형 야전 천막은 강사용 1개에 김봉태 집사님이 참석자 중에 가장 유력한 분이어서 1개를 추가한 정도다. 나머지는 예배 천막에서 자든지 알아서 야산에 흩어져 철야를 하든 웅크리고 기도하다 자든 아니면 조금 몸 들어 갈 바위 틈에 흩어 졌다.

이 때의 집회는 광야 40년의 이스라엘과 같았다. 인간적인 것은 의지 할 것도 없고 바랄 것도 없다. 1936년 덕유산 속에서 시작한 공회의 신앙 출발이 그대로 보존 되며 이어 지고 있었다. 거창의 개명 동네는 경남 전체 지도를 보면 가장 북단이며 덕유산 신풍령이 막은 절벽 아래였다. 이 신풍령은 지금도 빼재라 한다. 뼈의 고개라는 뜻이다. 호랑이가 잡아 먹은 짐승의 뼈가 많아서 지어 진 이름이다. 이 곳을 밤마다 사냥 다닌 분이 공회 1세대며 연구소 주력의 부친이다. 경남을 기준으로, 사람이 더 이상 갈 수 없는 막다른 산 속에서 이 노선은 시작했다. 그래서 공회의 내면은 항상 산 속이다.

(발동기 소음)
70년대는 산 속에서 내려 와 주상면 도평의 야산으로 옮겼다. 교통이 어렵고 모여 앉을 곳이 없었다. 모이는 인원이 많아 져 그러했다. 교역자 성경공부로 시작한 것이 일반 교인의 일반 집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많아 지니 스피커가 필요했다. 예배 천막 바로 밑에 전기 발전용 발동기를 하나 마련했다. 기억에 아마 폭 1미터 길이 2미터 높이 1미터 되는 정도다. 사회 생활에서 흔하게 보는 일반 대형 발동기다. 가뭄에 시냇물도 끌어 쓰고 홍수에 물도 퍼내며 가을에는 추수할 때 탈곡과 방아에도 사용하는 당시 만능 엔진이었다. 무겁고, 그리고 고장이 잘 난다. 소음은 대단했다. 통통통.. 이 정도가 아니라 쿵쿵쿵... 지축을 울리며 고요한 산 속을 흔들었다. 첫 날의 저녁 예배와 매일의 새벽 예배는 유독 그 소리가 더욱 컸다.

지하철에서 휴대폰에 몰두하는 청소년에게 주변은 없다. 운동장에 전교생이 떠들고 뛰어 다녀도 한 구석에서 소년들이 뭔가를 공모하고 소녀들이 무슨 인형에 빠져 쳐다 보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말씀에 대한 사모 때문에 발동기 소리를 기억하는 분들은 없다. 기계를 맡은 책임자 두어 명과 가족을 따라 갔다가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는 아이 하나나 기억할 정도다. 그러다 전기선 하나가 들어 오게 되었고 60촉 백열 전구가 기둥 하나에 하나씩 달리게 되면서 발동기가 없어 졌다. 이 시점에 지붕도 스레트로 바뀌었다. 여기까지가 집회의 시설이 천지개벽이었다. 이후 하나씩 더 좋아 지고 편리해 진 것은 우리 모두가 어느 집회에서든지 보고 아는 현황이다.

(옛날이 더 좋았다)
세상 모두가 한 번씩 하는 말이다. 나이가 많아 지면 이런 표현과 심정은 급증한다. 그러나 신앙의 세계는 그 반대다. 성경은 그런 말을 금했다. 신앙은 생명의 역사다. 자라 가는 것이 정상이다. 엄마의 품을 두고만 말하면 그 때가 좋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전체로 따져 본다면 엄마 품에 잠만 자는 아이는 그 나이의 성장 과정에서는 좋은 것이나 현재 그 아이가 가정과 사회적으로 맡은 사명을 벗어 버리고 다시 그 품에 잠만 자고 있다면 이 것은 그 사명 때문에 도움을 받는 모두에게 큰 재앙이 된다. 홍해를 앞에 둔 모세가 출생 3개월 이전의 엄마 품으로 가 버린다면 나머지 2백여 만 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 모두는 이런 면을 모를 리 없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과거의 은혜가 오늘보다 낫다면, 그래서 어릴 때가 낫고 엄마의 품 속이 더 낫고, 아예 엄마의 뱃속이 더 낫다고 한다면 이는 무책임한 시인의 글일 수는 있어도 하나님 앞에 내가 맡은 위치와 사명을 아는 사람에게는 마음에 둔 회상에서 그쳐야 하고, 현재가 과거보다 단언코 낫다 해야 옳은 신앙이다. 그런데 우리의 신앙이 옳고 바른 길에 서야 하는데도 자신을 돌아 보면 늘 부족하다. 한탄스럽다. 그러다 보니 과거 은혜의 때를 그리게 된다.

오늘 우리의 2022년 환경은 60년대 70년대 80년대의 환경과 비교할 수 없이 탁하고 악하다. 한 치 앞을 내다 보기도 어려울 정도로 어두운 시절이다. 이전에는 자라 나오는 사람이 눈에 보였다. 그들의 성장에 쫓기듯이 내가 달려야 했다. 지금은 자라 나오는 사람이 없는 듯하다. 사방 안팎 어디를 봐도 그런 듯하다. 사회적으로는 나이 든 사람이나 사람 노릇하고, 도덕 종교적으로는 새로운 인물이 아예 없다. 신앙의 세계도 그렇게 보인다. 공회들은 다행스럽게 곳곳에 분들이 보인다. 그래도 예전과 비교해 보면 올라 오는 그 출발의 힘이나 굵기가 너무 아쉽다.

(방법은 있다.)
이 글은 환경론을 중심으로 적어 보고 있다. 어려울 때가 은혜의 때이었다. 오늘은 환경이 너무 좋은 때다. 그러니 좋은 것을 도저히 좋은 줄을 모르고, 좋은 줄을 모르니 좋은 것이 지켜 지지를 않는다. 버려 진다. 신앙까지 함께 주변 환경에 편리 속에 방치가 된다. 그렇다면 환경을 좀 어렵게 만들면 어떨까? 지금 공회들의 집회는 다른 교회와 비교할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우리 공회 신앙의 원래 분위기로 본다면 알게 모르게 편의 시설이 너무 많아 져 버렸다. 그 편리함까지 은혜를 받는 데 잘 사용만 한다면 더욱 좋으나 환경의 편리가 신앙의 사모에 김을 빼 버리니 각자 자기 편리를 각자 알아서 삭감을 하도록 부탁을 해 본다. 소파가 있지만 딱딱한 의자에 앉고, 의자에 앉아서 편한 자세로 비스듬히 몸을 둬도 되지만 몸을 조금 곧추 세운다든지, 물을 한 통 사용할 수 있으나 반 통으로 줄인다든지, 더 맛 있는 식사를 기대하던 자기의 식욕을 좀 꺾어 본다든지...

너무 표시를 내면 남들에게 미안할 수 있고 또 무리를 하면 오히려 손해를 본다. 어느 정도라야 할까? 각 공회의 자기 결정이며, 각 교회의 자기 결정이다. 각 교인의 자기 건강과 신앙에 따라 자기가 '조금 더 조심' '주님의 은혜를 조금 더 사모' 이런 자세라면, 그렇게 노력을 많이 한 것 같지 않은데 어느 덧 주님은 옆에서 오랫동안 지켜 보셨고 함께 하셨고 이미 은혜를 여러 면으로 주셨음을 뒷늦게 알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가 못되게 나갈 때 주님은 예상보다 훨씬 오래 참으신다. 우리가 돌아 서면 너무도 빠르게 이미 은혜를 주시며 돌아 보신다. 우리의 강퍆과 우리의 어린 심령이 이를 잘 알아 보지 못해서 대개 반대로 생각한다.

집회의 기간, 예배의 시간과 내용, 집회의 진행의 기본 시각과 진행 방향이 시설과 생활은 최소한일수록 더 낫다는 기본 사고방식을 견집하지 못한다면 어느 순간 흐트러 지면서 다른 교단들이 걸어 간 길에 선 우리를 보게 된다. 신앙의 한길에서 벗어 나는 순간 우리들은 그들 중에서도 참 못 난 이들이고 세상에서는 거의 존재도 없는, 우리는 솔직히 천출들이다. 그래서 더욱 그래서 이왕이면 환경과 시설과 주변의 불편을 조금 더 찾아 나서면서 그 불편만큼 주님의 은혜를 구하면 좋겠다. 건강으로 말하면 자기 다리를 부러트리면 간절한 기도는 저절로 나온다는 식이다. 이렇게 자해로 갈 수는 없으나 생활과 환경의 편리만은 줄일수록 피할수록 신앙에는 유리하다. 이래서 진정한 교회와 신앙은 광야를 추구한다. 도심을 벗어 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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