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오늘, 이 노선에서 본 현실

공회의 집회 역사

작성자
담당b
작성일
2022.04.25
(미국과 한국의 부흥회)
18세기, 19세기 미국에서는 청교도의 2세 3세로 이어 지며 속화 되는 상황을 안타깝게 생각하다가 대부흥의 시기를 갖게 된다. 1970년대 한국의 순복음은 주시는 은혜인지 만들어 가는 분위기인지 혼재스럽지만 외형의 대부흥이 있었다. 미국의 대부흥 시기에 전국 곳곳의 교회들에 뜨거운 회개의 물결이 휩쓸게 되자 광란이 될 정도였고 자연스럽게 대자연을 가진 미국은 들판으로 나갔다. 그러는 중에도 고요히 말씀을 깊게 새기는 사경회식도 있었다.

1907년 조선의 곳곳에도 회개의 분위기가 휩쓸었고 미국의 대부흥 시기와 같은 일이 벌어 졌다. 해방 후 신앙의 자유가 주어 지면서 모든 교회들은 20세기 초에 겪은 그 분위기를 사모하면서 부흥 운동을 주력했다. 대부분은 그 때를 추억하며 그 때를 재현하려고 몸짓을 했으나 은혜를 받고 시끄러워 지는 것을 사모하는지, 처음부터 시끄러워 지려고 만들어 가는지 애매하다. 좋은 경우도 있으나 적었고 좋지 않은 분위기가 대세였음은 확실하다. 한국의 초기 역사를 모르는 상태에서 순복음교회는 그들 식의 부흥회를 진행했고 교계의 판도가 바뀌는 모습을 본 기성 교단들은 과거 그들이 비판한 순복음을 정확히 답습해 나갔다. 공회는 그러든 말든 주시는 은혜를 억제하지 못하면 순복음보다 더 뜨거웠으나 기본적으로 들판에서 고요히 한 말씀을 붙들고 깊게 넓게 자신을 철저히 살펴 왔다. 그 과정에 성경과 교리에 엄청난 발전도 있었고 동시에 신앙의 실제 유익은 말할 수 없이 많았다.

한국 교회의 정말 제대로 된 부흥회는 5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역사적 결과로 볼 때 공회의 사경회가 중심이고 아마 전부일 듯하다. 공회는 부흥회보다 사경회, 사경회보다 그냥 집회라고 말한다. 표현에 이르기까지 치장을 피하고 내면에 집중한다. 모든 부흥회는 통성기도가 그 절정이다. 말씀을 받고 깨닫고 자기를 돌아 보니 견딜 수가 없을 때 나오는 기도를 통성기도라 한다. 속에서 그런 작용도 없는데 그런 결과와 그런 모습만을 가지기 위해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것은 기획이며 연예며 선전이니 성경은 이런 것을 외식이라 한다. 그렇다 해도 실컷 쏟아 버리고 나면 몸과 마음이 성취감을 느끼고 뭔가 가뿐한 느낌이다. 그러니 반복을 한다. 반복을 하다 보니 습관이 된다. 참 죄송하나.. 이 정도가 되면 중독이라고 비판을 할 상황이다.



(공회의 산 집회)
1950년대 말에 전쟁 후 서울로 돌아 간 서울의 아현교회 김현봉과 부산에서만 목회하던 백영희는 서로가 모르는 사이인데, 양 쪽을 겪어 본 계신측 이병규 목사님의 눈에 정확히 같았다. 그래서 양 쪽 어른을 연결 시켰고 연배 때문에 백영희는 여러 번 김현봉의 집회를 참석했다. 그 집회는 정확하게 교역자 수양회다. 간판도 순서지도 원고도 없다. 그냥 머리 깎은 한복의 김현봉이 말씀을 하나씩 가르쳐 나가면 목회자들이 적고 배우는 것이 전부다. 그런데 그 진행 과정에 그 어디에서도 배울 수 없고 겪을 수 없는 말씀의 세계가 전해 졌다. 백영희도 그렇게 하고 있었다. 그런데 김현봉은 백영희에 대해 혹시 자기 위치를 노리는가 의심을 했고 이후 백영희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 다시는 가지 않았다.

서울에서는 김현봉의 교역자 수양회가 있다면 백영희는 부산의 금정산과 경남 거창 삼봉산에서 교역자 수양회를 했다. 김현봉을 알던 분들은 백영희가 김현봉을 보고 배낀 것이라 또는 배끼고 분파한 것이라 한다. 백영희는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자 거창이 함락 되기 한 주간 전에 이미 주남선 목사님을 모시고 거창 지역의 목회자들이 교역자 수양회를 한 적이 있다. 이 수양회는 물 좋은 한적한 곳에서 말씀을 배우는 교역자들의 모임이다. 그 때 주남선은 일제의 신사참배를 이야기 해 주며 인민군의 점령 하에 각자 자기 신앙과 교회를 지킬 것을 가르쳤다. 이 모임 후 주남선과 백영희는 6.25의 인민군 점령 하를 평소처럼 자유했다. 다른 교역자들은 일부 피난했고 일부는 두려움 속에 자기를 지켰다.


많은 사람이 구름처럼 모여 들어 두 손을 다 함께 들고 만세 삼창을 하듯이 순교 각오 삼창을 한다면 도움이 될까? 할렐루야 삼창을 한다면 인민군의 감옥 속에 고문과 고형이 이어 질 때 자기를 지켜 줄 수 있을까? 한 말씀을 붙들고 당장 진행 되는 자기 현실 속에 경제와 취업과 가족과 건강 문제를 파악하고 말씀이 주는 평안을 미리 받아 예배 후 자기 생활이 그 말씀으로 실제 변화가 되는 작은 투쟁이 이어 지고 그 작은 투쟁에서 작은 승리가 이어 질 때 이 것이 기름 준비가 되어 인간이 이길 수 없는 시대적 환란 때 최후 승리를 하게 만든다. 따라서 평소의 예배는 평소의 현실에서 살아야 할 말씀을 전하고, 집회는 평소 배우기 어려운 깊은 말씀을 제대로 새기며 깊이 자기를 돌아 보고 자신을 만들어 놓는 기회다.

역사적으로 주남선 목사님을 모시고 준비했던 6.25 점령 직전의 교역자 수양회, 전쟁 후 생활과 신앙이 엉망이 된 한국 교회의 곳곳을 가르치며 사경회를 인도하던 백영희는 교인들도 급하지만 교역자 한 사람사람이 제대로 배우고 돌아 서지 않으면 혼자서 한국 교회를 모두 감당하는 것은 어렵다고 느끼며 일반 교회들의 초청에 따라 전국에 수 많은 교회들을 초교파적으로 인도하며 다니는 중 1960년대가 가까워 지면서 '교역자 수양회'를 기억하며 교역자 모임을 인도했다. 저절로 모였고 저절로 형성이 되었다. 처음에는 2-30여 명이 전부였다. 이미 목숨을 걸고 믿는 목회자들이니 이들만 데리고 산 속에서 성경을 가르치는 것은 쉬웠다. 일반 교인들이 보면 감히 가서 앉을 자리도 아니고 격에도 맞지 않다 느낄 때다.


(집회를 참석한 경험)
백 목사님께 산 속에서 한 주간 만사를 제쳐 놓고 말씀을 배운다는 것. 겪어 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뭐라 설명을 해도 전해 질 수가 없다. 천하가 부럽지 않고 세상에 모르는 것은 이제 없겠다는 자신감으로 충천한다. 그리고 자기 속에 들끓으며 바뀌는 내부 변화를 느낀다. 물론 작심 3일처럼 오래 가지는 않으나 변화산에서 희게 된 주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본 제자들을 이해하는 데는 부족이 없다. 그 제자들도 그 경험을 직접 겪고도 또 과거로 돌아 갔다. 과거로 돌아 갔지만 그 경험은 베드로후서에 다시 적고 있다. 백 목사님께 배우던 초기의 교역자들 중 일부는 자기가 직접 겪은 것을 교회로 돌아 가서 아무리 전해도 그대로 전해 지지가 않게 되자 답답한 마음에 다음 교역자 사경회에는 자기 교회에 신앙에 가장 앞 선 교인을 한둘 또는 서너 명을 데리고 왔다. 다른 교역자들이 눈치를 주지만 백 목사님은 이런 것은 희망 있게 보지 비판하지 않는다. 그는 목회자만의 별도 장막을 치고 특권을 나누는 것, 그 것을 가장 싫어 한다.

어떤 교역자는 부부 또는 교인 한둘을 데려 왔고 어떤 교역자는 끝까지 혼자 참석을 했다. 세월 속에 참석 숫자가 4-50여 명으로 늘어 났다. 그리고 1백여 명까지 늘어 났다. 데려 오는 것이 부담스러운 시대이지만 교역자의 순수한 마음이 이 보배로운 경험과 순간을 혼자 가질 수가 없었고 또 그대로 잘 전하는 것이 부족했기 때문에 직접 데려 왔던 것이고, 이 때 참석한 교인들에게 대 변화가 일어 나면서 입으로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자기 주변 사람을 또 데려 오게 되면서 2백 3백으로 자꾸 늘어 났다. 이 것이 공회의 60년대 집회의 상황이다.



(공회적 집회)
1970년을 넘어 서게 되면서 이제는 감출 것도 없고 감출 리도 없고 오히려 전국의 공회 교회들의 교인들이 집회만 다녀 오면 신앙으로 아주 일신이 되고 교회마다 큰 변화를 겪게 되자 모든 교회는 평소의 신앙은 과거 그대로이면서 1년 2회의 집회가 교회의 연중 행사 전부가 되고 핵심이 되었다. 이후 1천 명, 2천 명으로 늘어 나면서 대구의 5월 노곡동과 거창의 8월 도평 집회로 고정이 되었고, 80년대가 되면서 전국 최대 규모이자 제대로 된 거의 유일의 산 집회가 되었다. 서부교회의 주일학교 부흥은 외부로 알려 진 기록이라면 5월과 8월의 집회는 아는 사람만 아는 주교 이상의 기록이었다. 그냥 기록이 아니라 미국의 18세기 19세기와 한국의 20세기 초반의 부흥회를 직접 겪은 이상으로 큰 은혜가 쏟아 진 집회로 1989년까지 이어 졌다.

1989년 8월 집회 때 백영희는 이 집회가 자기 생의 마지막 집회인 줄 알았고 모든 조처와 함께 모든 설교의 내용을 그의 사후에 방향으로 잡았다. 그리고 집회 2주 후에 순교했고 1990년 5월의 사후 첫 집회가 되자 이미 생전에 형성 된 각 교회와 각 개인의 신앙 상황에 따라 우선 대구공회의 백태영 설교 집회가 출발했고, 부산공회의 백영희 생전 설교 복습 집회가 출발했다. 연구소는 백태영의 설교 집회는 2-3년을 가기 어렵다고 봤다. 몇 년을 더 갔는지 몰라도 겉 보기에는 10여 년은 가지 않았을까? 내용적으로는 몇 년 안에 이미 끝이 났다. 백태영의 이탈 후 대구공회는 3인 정도의 연합 강사로 집회를 오늘까지 이어 오고 있다. 원래 공회의 집회 의미를 분석한다면 대구공회의 집회는 1990년 5월부터 5월과 8월의 집회라는 일시나 횟수 외에는 별로 이어 지는 면을 찾기 어렵다. 부산공회는 생전의 설교를 복습한다는 방향을 잡아 일단 이어 간다거나 이탈을 한다는 문제는 아니고 그냥 잠정적 과도기를 보내게 된다.

그러나 1990년 5월의 첫 집회를 백순희 백명희 두 사모님이 주도하게 되면서 형식은 생전 집회의 복습이나 내용은 두 분이 부친의 10만 쪽 설교 중에 하나를 가지고 본인들이 하고 싶은 말을 참석자와 부산공회 전체에게 전하게 된다. 서영호 목사님을 비판하고 싶을 때는 1988년과 89년 설교를 복습한다. 그 내용이 서영호식 신앙을 철저히 비판하는 설교이기 때문이다. 서 목사님과 10여 년을 싸우는 과정에 부산공회의 집회는 복습의 형식을 빌어 교권 싸움에 사용이 된다. 연구소는 이런 안팎의 사정을 다 알기 때문에 1992년까지 정상화가 되기를 기다리며 지켜 보다 1993년부터 오늘까지 생전의 집회를 제대로 복습하고, 그리고 2018년의 백영희 가족분들 고소 때문에 이제 생전의 교역자 산 집회의 초기를 생각하며 새로 출발하고 있다. 겉으로는 총공회 집회의 정통성과 전통을 홀로 이어 가면서 내용적으로는 그렇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1-20명만 모여도 충분하다. 제대로 배워야 할 필요를 느끼는 이들, 시대의 상황을 깊이 인식하며 이 노선 이 말씀 아니고는 안 되겠다는 절박감이 있으면 충분하다. 이후 역사는 주님이 다시 이어 가실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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