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오늘, 이 노선에서 본 현실

공회를 '연구'할 만한 분들께 적은 부탁

작성자
담당
작성일
2022.04.10
* 이 글은
며칠 전, 교역자는 아니나 교역자로 상대할 만한 과거를 가진 10여 명의 교인들께 부탁한 내용이다. 공회를 알고 공회 생활에 전력한 시간이 이제 1년 안팎의 분들에게 그 분들이 지난 날 이 노선 공회보다 더 철저히 더 헌신적으로 신앙에 매진 한 경험과 지식과 익혀 진 의의 기능을 가지고 공회의 한 주제씩 각자 연구를 해 보시면 좋겠다고 제안하며 그 이유와 방법을 구체적으로 적었다. 이 글을 공개하는 것은 이 곳을 통해 남 다른 신앙의 길을 걸어 가시는 분들께 비록 이 곳과 직접 연락은 하지 않더라도 혼자서라도 다음 글을 읽으며 자기 신앙을 한 번쯤 정리하면서 다음 걸음을 걸어 보시라는 뜻이다.




(1년을 돌아 보며)
10여 년을 전념해 온 여러 분들이 공회라는 신앙의 노선에서 새로 전력하게 된 시간이 짧게는 반 년 정도이고 대개 1년을 모두 넘기는 상황입니다. 이 정도 시점에서 얼른 모두 자신을 돌아 보고 향후의 방향을 잡지 않으면 그 10여 년 세월에 쌓아 둔 좋은 면을 급속히 잃어 버립니다. 여러 분들이 지난 10여 년 비록 저희와 다른 곳이나 그 곳에서 전력한 생활은 공회의 최고 핵심인 서부교회 중간반 반사들보다도 더 낫습니다. 제 평생에 서부교회 중간반사보다 더 가혹한 환경에서 신앙에 전력하는 경우는 본 적이 없었습니다. 여러 분들은 서부교회 중간반 반사들보다 더 어렵게 그런데 더 감사하며 10여 년을 헌신했다는 것은 역사 속에서는 가끔 볼 수 있지만 최근 우리 시대에서는 유례가 없을 듯합니다.

여러 분들이 지난 세월 열심으로 살았던 그 열심 자체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열심이 아니라 열심의 방향이었습니다. 그 곳에서 보낸 시간과 경제의 헌신적 충성 그 자체가 잘못 된 것이 아니라 쏟아야 할 때와 분량의 조절이 아쉽습니다. 그 시절에 집중했던 신학에 대한 열심이 문제가 아니라 성경의 신앙적 접근 단계와 방법이 아쉽습니다.

이제 공회에서 새로 시작한 생활은 지난 날과 다른 점이 많이 보일 듯합니다. 장점은 쉽게 눈에 보이지만 장점을 그냥 장점으로 보지 마시고 지난 날 익혀 둔 신앙에 좋은 연단과 지식을 가지고 이 노선을 좀 객관적으로 차분히 살펴 보면 이 노선의 좋은 점이 이 노선 안에만 있었던 분들보다 더 귀하게 평가할 수 있을 것이고, 또 이 노선 안에 있는 분들이 이 노선 안에 있기 때문에 볼 수 없었던 이 노선의 아쉬운 점을 여러 분들은 쉽게 잘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10여 년 세월 속에 여러 분들이 비록 다른 곳이지만 신앙에 전념하며 내면에 가져 온 지식과 행동과 쌓여 진 자산을 공회 생활을 하면서 따로 별 쓸 일이 없다고 그냥 두면 그냥 사라 져 버립니다.



(모든 분들께 부탁합니다.)
이제 공회 생활이 아주 익숙해 진 분들 또는 이제 어느 정도 파악이 된 분들, 이 시점에서 모두가 공회의 신앙을 접하며 느끼는 점을 가지고 '신앙의 과제' '신앙의 주제'를 하나씩 정해 보시고 그리고 '제목'에다 아주 간단한 글로 요약을 해 봤으면 합니다.

'남녀 분리와 오늘의 신앙'
'건설구원의 강조로 인한 장점과 단점'
'공회의 교회 운영에 교인이 가지는 장점과 주의할 점'
'마태복음 25장의 열처녀 비유'

정하실 주제가 교리라도 좋고 교회사도 좋고 우리의 생활 속에 경제 가정 결혼 부부 취업 진로 정치 사회 어떤 면이든 다 좋습니다. 처음부터 거창하게 논문을 제출하라는 것은 아니고 해외에 있어 시간이 맞지 않고 통화가 어려운 지인을 신앙으로 지도하거나 안내를 해야 한다면, 그래서 간단히 적어 안내를 해 본다면 어떻게 글을 적을까?

목회자는 주로 설교를 하고 신학자는 강의나 책으로 요약을 하지만 교인도 자기의 신앙 정리, 자기의 신앙 지식의 정립을 위해 간단간단하게 한 번씩 요약을 해 보면 좋습니다. 처음부터 많은 글을 적으려다 방향을 잘못 잡으면 허송이 많을 수 있으니 처음에는 한 페이지 이내로 소제목을 적어 보는 식. 쓰고 싶은 글의 전체 목록 정도만 적어 봐도 좋습니다. 작은 제목이나 생각 나는 몇 가지만 적어 보고, 그 내용을 주시면 그 다음 나아 갈 방향을 안내해 드리고, 그 안내를 따라 조금 더 구체화를 해 보시고, 만일 적어 주신 글이 방향이나 내용에 문제가 보이면 제가 다시 살펴 드리겠습니다. 두어 번 반복을 하다 보면 모두가 적어야 할 방향과 내용을 대략 짐작하게 될 듯합니다. 그렇게 검토와 대화를 하다 보면 처음에 1페이지 안 될 정도의 대략을 가지고 오갈 때마다 몇 페이지로 늘어 나고 나중에는 10여 페이지 정도의 분량으로 어느 제목에 대해 자기의 신앙 정리를 해 보시면 의외로 얻는 것이 많아 질 듯합니다.

거창하게 말한다면 박사 학위의 논문을 작성할 때 학생이 알아서 진행을 하지만 지도 교수가 대략 방향을 잡아 주며 곳곳의 논점을 짚어 주는 것과 비슷합니다. 논문 형식이 되면 진척이 어렵고 이론을 위한 이론이 됩니다. 형식에 별 부담 갖지 말고 교리든 성구 해석이든 신앙의 각 가지 의문점이나 흥미로운 점 그 어떤 것이든 하나씩 가지고 한두 주간 또는 한 달 정도의 기간 자신의 생활과 평소 일을 하면서 따로 진행해 봤으면 합니다.

예를 들어, 첫 제목은 각자 이 번 주일까지 제목만 하나 잡아 보시고, 그 제목에 몇 가지 방향과 작은 제목이나 참고할 내용을 1페이지 이내로 한 주간 또는 며칠 정도에 제출해 보시고, 그 이후 1주일 또는 2주일을 걸쳐 몇 페이지로 더해 보셨으면. 평생에 처음 해 보는 분들이면 첫 글은 한 달 또는 몇 달이 걸릴 수 있으나 두어 번 해 보고 나면 새로운 주제에 대해 구성하며 요약 정리하는 속도가 아주 빨라 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여러 분들이 쏟은 지난 세월의 시간과 노력 그리고 그 결과 여러 분들에게 쌓여 있는 실력은 공회 생활을 하면서 교인 중에 한 분으로 그냥 앉아 계시기에는 너무 아깝습니다. 원래 공회에서 믿어 온 분들에게는 여러 분들이 겪어 온 세월을 굳이 시키거나 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 분들은 모두 남 다른, 심지어 일반인이 생각도 하지 못할 특별한 세월을 지났고 그 세월 속에 여러 분들께는 신학의 기본과 함께 공회의 노선과 내용을 객관적으로 하나씩 살펴 봐도 좋을 신앙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기회를 틈을 내서 유익되게 가져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 분들의 전부는 아니지만 10여 분은 한 눈에 봐도 해 보셨으면 합니다. 남이 하는 운전이나 남이 하는 손 기술을 평생 옆에서 지켜만 보는 것과 어느 정도 지켜 본 다음 직접 손으로 해 본다면 세계가 달라 집니다.


공회는 모든 교인이 어느 정도 목회자의 역할을 했으면 합니다. 동시에 어느 정도 되는 교인들이면 누구나 관심 있는 분야나 제목에 대해 글로 요약을 하거나 강의를 해도 될 정도가 되었으면 합니다. 공회 내 생활만 한 분들에게는 따로 이렇게 제안해 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목회자 또는 목회자에 준하는 몇 분에게만 가끔 부탁을 해 왔습니다. 특별한 과거를 거친 분들은 기본적으로 모두 다 해당이 될 듯합니다. 출발은 늦었으나 그 곳에서의 연단한 세월 때문에 잠깐만 수고해 보시면 신앙의 또 다른 차원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소망에서 부탁을 드려 봅니다.
전체 8

  • 2022-04-11 12:30
    옳은 두 길과 하나님의 한 길 역사.


    먼저 사도된 베드로는 유대인 전도를 시작하다가 고넬료 가정 방문을 기점으로 자기 옳음을 부인하고 이방인 전도로 나아갔다. 나중된 자, 바울의 경우 처음에는 유대인 전도를 시작으로 이방인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이후부터 나머지 생애 전부는 오로지 외부로 이방으로만 나아 갔고, 마지막은 로마에서 유대인들이 보는 앞에서 순교의 피로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다.


    한 길은 다양한 의견 개진을 시작하다가 사후 교리의 일치를 도출하고 또 한 길은 일치된 교리 바탕 위에서 한창 열매 맺다가 사후 다양한 의견과 댓글을 나누게 되기도 한다. 누구는 공회 밖에서 공회 안으로, 누구는 공회 안에서 공회 밖으로 나아가고 있다. 잠시 바울을 떠났던 마가는 나중에 바울과 사역을 함께 하게 된다. 심하게 다퉜던 바나바가 마가를 베드로에게서 바울로 보내는 데 중간 기도 역할을 했을까? 모를 일이다.


    지금도 이치가 같다면 각자 자기 노선의 부족을 채워 줄 외부노선을 남겨 두셨을까? 엘리야가 나만 남았나이다 할 때 7,000명이 아직 남아 있다 하신 말씀처럼 말이다. 있다면 나가게 하시고 또 들어오게 하실 것이다. 마치 밀물과 썰물이 교차해야 그 속에서 잘 다듬어진 몽돌이 탄생하듯 오늘도 하나님의 한길 역사는 두 길인 철과 철이 부딪치는 용광로 속에서 자아 중심적인 인간 심리 등을 불쏘시개 삼아 불태워 가시면서 현실 속 인도 역사를 하고 계신듯 하다.


    - 매년 집회의 은혜에 감사하며. -

  • 2022-04-12 06:09
    ※ 왜 우리에게 두 노선을 양면으로 기록해 주셨는가?


    1. 기본 노선 (구약)
    - 두 택자인 가인과 아벨
    - 노아 8식구와 나머지 전 인류
    - 생명기능과 사망기능을 결정
    - 위험 경고 표시판으로 주신 노선
    - 노아 홍수의 물심판으로 생사 정도의 결론


    2. 건설 노선 (신약)
    - 베드로(야고보, 요한)와 바울(바나바)
    - 서머나, 빌라델비아와 나머지 다섯교회
    - 내, 외부 전도지역과 사역분담을 결정
    - 서로 보고 배우라고, 나눠 주라고 주신 노선
    - 일곱교회의 불심판으로 성화 정도의 결론

  • 2022-04-13 06:06
    심장에는 암세포가 생길 틈이 없다 한다.


    우리의 몸 기관 중에서 유독 심장은 암과는 거리가 먼 장기 중 하나다. 심장암은 보고된 바가 없다 할 만큼 거의 전무하다고 한다. 심장은 우리가 볼 때는 쉴새 없이 뛰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그렇지 않단다. 하루 24시간 중에 8시간은 일하고 16시간은 쉰다고 한다. 수축과 이완을 통해서 말이다. 초로 말한다면 1초 일하고 2초 쉬고 수축과 이완을 통해 일과 쉼을 평생 동안 무한 반복하는 것이 심장이란다. 이를 통해 이치를 하나 깨닫는다.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는 속담처럼 우리 신앙도 보면 주님 부르실 때까지, 죽을 때까지 죽도록 쉬는 것과 일하는 것을 잘 조절해야 건강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마라톤 페이스 조절처럼 말이다. 몇 초 쉬고 또 몇 초 일하고 이런 운동 싸이클이 있어 심장은 암세포가 침투할 수 없는 구조적 활동력을 지녔다. 보통 일주일에 적어도 3번 정도는 30분 이상 땀나는 운동을 권장한다. 이에 더하여 운동 매니아는 40-50분 운동, 10-20분 쉼을 3번정도 반복하라고 조언한다. 장도 건강하려면 채우는 것보다 비우는 것이 먼저란다.


    암환자의 특징은 운동을 멀리한다는 것이다. 하루에도 수많은 암세포가 만들어졌다가 사라지는 것이 우리 몸이다. 운동은 이런 암세포가 생기지 못하게 하는 명약이다. 운동을 멀리하면 암세포가 활성화되기 쉽다는 결론이다. 너무나도 잘 알지만 실천은 어렵다. 아직 운동이 생활화 안 되어 있다면 운동의 중요성이나 필요성을 아직 모른다는 뜻이 된다. 신앙의 운동은 전도와 심방, 양육일 것이다. 뿌린 뒤 기도하며 쉼을 누리는 것, 또 다시 전도하러 직장을 나가는 것, 세상 살 재미를 여기서 발견한다면 인생이 박진감 넘치고 흥미진진할 것이다. 열정이 식을 틈이 없는 법이다. 36.5도 뜨거운 피를 쉴새없이 온몸으로 돌리는 심장처럼 말이다. 어느 광고 문구처럼 슬럼프는 사치다.


    여기에 더하여 암세포의 특징 중에 하나는 다른 세포와 합력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활동한다는 것이다. 독불장군처럼. 이와는 반대로 정상 세포는 쉴새 없이 옆에 다른 세포와 소통하고 교감한다는 것이다. 부부간에 대화가 없고 대화해도 대화 주제가 다양하지 못하고 부모 자녀간에 오가는 대화도 쌍방적인 아닌 일방적이고, 질적으로 대화 주제가 단조롭고 대화양인 시간도 적고 목회자와 교인간에 소통이 없다면 그 교회와 가정은 암진단 키트로 점검을 한번 해 봐야 한다.


    금번 5월집회 말씀의 주제는 '노선'이다. 상당히 무거운 주제처럼 들린다. 노선을 묵상하다가 공회의 장점과 단점을 생각해 봤다. 나와 가정 우리의 장, 단점과도 연관이 깊다 생각한다. 한국의 좁은 땅덩어리의 지리적 민족성과도 연결지어 봤다. 소통은 주거니 받거니다. 교리가 깊다는 것은 설교에서 묻어난다. 설교 시간에 질문도 하고 대답도 하지만 대개 보통의 경우 설교자는 전하고 교인은 듣는다. 예배가 끝나면 저녁에 산기도 새김질도 보면 인도자가 말을 더 많이 하는 모습이다. 물론 시간적 제약은 무시할 수 없다. 그래도 본대로 따라하는 것이 자녀교육이고 이는 신앙계대를 이어 반복되고 이것이 가정과 교회 분위기를 결정 짓는다. 주일 설교 말씀을 가지고 교인간에 열띤 토론과 나눔, 주일 시간상 제약이라는 이유로 가족 구성원들간, 그 테두리로만 묶어 제한 두기에는 선순환의 효과가 너무나도 아쉬워 보인다. 교인간에 교류하다 보면 마귀 노릇도 분명 보고 되나 그 반대의 좋은 면도 따져 본다. 잘하는 것은 숨기고 못하는 것을 자꾸 회자정리해 본다는 설교 말씀이 떠오른다. 지적하여 문제 많다는 중심이 아니라 혼자서는 잘 안되니 다 함께, 같이 고쳐 보자는 취지다.


    일주일에 한번, 한달에 한번, 일년에 한 두번도 좋다. 댓글도 새글도 좋다. 자녀가 학교 갔다가 집에 와서 학교 있었던 일들을 시시콜콜 말하고 부모는 했던 말 또 한다. 지루하다는 표정 없고 늘 새롭게 들어주는, 이런 가정은 신앙암이 침투하지 못한다. 직장에서 있었던 일들을 아내에게 말해 본 적 있는가? 기억하기도 싫은 직장 스트레스를 아내에게 말하고 서로 공유하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를 서로 공유하는 것이고 둘이 하나되는 비결 중 하나라 생각된다. 속에 담아 둬야 할 말을 독백이라 하여 너무 강조하다 보면 다들 꿀먹은 벙어리가 되기 쉽다. 본 연구소의 분위기를 파악 못하고 글을 남발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이런 점에서 과오 등 오해의 소지가 많은 위치에 있는 필자는 글을 좀 안 적어야 될 사람이고 독자 누구는 적어야 될 사람일 게다. 이 말도 포함하여 필자의 오판은 늘 염두해 둔다.


    보잘것 없는 나의 현실 속 한 토막 이야기가 누구에게는 귀한 약재료가 되어 도움을 준다.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 자살하려는 죽음도 막고 꺼져가는 생명도 살릴 수 있다. 노선은 지나가는 말 한마디가 결정한다. 가사처럼 생명보다 귀한 우리의 영원한 기업은 노선에 매여 있다. 거창한 설교 한편도 필요하지만 남단글처럼 어느 교회 장로님, 집사님이 어떻게 서부교회를 다니게 되셨는가? 자전거 타며 먼 새벽길을 오가던 경험들, 결혼전 실수담, 사후만 아는 요즘 주일학생들에게 생전의 기억과 자기 글로의 정리는 할아버지와 손주를 서로 연결해 준다. 다 아는 얘기라도 손수 글로 적어 보면 그 때의 감동과 은혜가 밀려온다. 이 힘이 내일을 또다시 힘차게 걷게 만든다. 매일의 자기 기록인 일기는 자녀, 손주에게 말없이 전해진다. pkists.net은 우리 모두의 일기장이다. 개인의 역사며 공회의 역사적 기록이자 산물이다. 직접 해 보고 글로 보여 주는 삶은 말보다 그 전달력이 강하다. 깊게 와 닿는다. 기록은 나의 이름이다. 그래서 설교는 간증이라야 한단다. 이 또한 다 아는 말이지만 말이다.


    나의 신앙을 위해서는 손해지만 우리 전체를 위해서 이익이라면 10분 잠깐 한줄 두줄 댓글로 내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어찌 보면 대속의 정신을 실천하는 한 단면이라 하겠다. 담당님이 글을 10번 적었다면 적어도 한번은 적어 보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천리길도 한걸음부터, 글 분담의 원리는 나를 자라게 한다. 누구는 글을 적을만한 여유가 없다. 자녀가 많다. 시간적 여유보다 심적, 마음적 여유가 없는 것이 문제고 남을 너무 의식하거나 안하무인의 민폐도 문제다. 시작이 반이다. 어떤 이유에서건 식어 있다면 다시 시작해 봤으면 좋겠다고 나에게 다시 권면해 본다.


    심장은 암에 걸리지 않는다. 글쓰기는 나의 하루 삶을 정리해 준다. 일기처럼 말이다. 기록은 나를 남기는 것이다. 믿음의 유산을 전하는 것이다. 왕성한 번식의 생명력, 건강한 2세대, 3세대를 꿈꾸는 민들레 홀씨처럼 우리도 ...,

    • 2022-04-14 12:36
      읽고 보니 심장 마비로 겁을 내지 심장암은 들어 보지 못했습니다.
      심장의 구조가 원래 잘못 되었거나 열심히 뛰다가 박자가 맞지 않아서 탈이지 '암'은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들어 보면 쉽고 우리 주변에 흔한데 왜 그럴까 생각은 못했습니다.
      이 곳이 많은 자료를 먼저 드리고 방문하는 분들이 한 번씩 보태 주시고 나중에 모두가 같아 지기를 소망하며..

  • 2022-04-14 06:00
    생전과 사후, 집회 변화의 차이점.


    생전 집회는 거의 백목사님 한 분의 말씀 준비였다고 들었다. 집회 직전까지 그 내용을 상세하게 알 수는 없었다. 사후의 진정한 집회는 2018년 5월부터라 할 수 있다. 그 전까지는 정해진 설교 편집이 말씀 준비의 전부였다. 복습 속 은혜도 물론 주님의 선하신 인도의 뜻이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무한한 설교 세계가 한정된 면도 내포되었던 재독 집회였다. 지금은 교인들이 독립으로 참여하는 집회다. 한달 전부터 집회 교재을 미리 볼 수가 있으니 자기 나름대로 주제를 예습해 볼 수 있어 성경을 자기 스스로 연구해 보는 자립성에 많은 도움을 준다. 집회를 준비하며 회원들이 물어 보고 목회자가 답해 보고 또 서로 상의하는 등의 그런 일련의 과정들이 집회 당일 선포될 설교 말씀에 자연스럽게 녹아 들게 된다. 주의 종을 통해 주실 말씀을 다 함께 찾아보고 각자 독자적으로 연구해 본다는 것은 주의 종을 위해 기도로 준비하는 것 이상으로 동참한다는 데 그 의미가 크다.


    이런 집회의 변화가 우리 신앙에 있어서 어떤 면을 활성화 시켰고 앞으로는 또 어떤 숙제를 우리에게 남겼을까? 생애 처음 첫 설교는 미숙하지만 하나님을 의뢰하는 조심성이 들어 듣는 이들로 하여금 감동을 준다. 지금 필자의 글도 남단글과 비교하면 지극히 개인적이고 너무나 지엽적인 글로 자평된다. 자격지심이 아닌 정평정가의 시각으로 바라본다. 다만 첫발의 용기와 새로운 시도가 그 다음 새 길의 노선을 여는 데 동참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노선도 발전한다. 유대인에게만 구원이 있다고 하는 한정된 노선에서 영원 전 택함 받은 선민 사상은 이방인까지 포함하는 노선까지 확장된다. 이것을 부정한 유대교는 메시야를 못 박고 난 이후부터 그들이 말한대로 그 댓가를 톡톡히 지르고 있다. 반면 이를 인정한 12사도는 순교로 지금까지 그 피가 노선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노선을 지켜 나가는데는 최초 아벨의 피로부터 사가랴의 피까지 죽음을 각오해야만 걸어갈 수 있는 걸음이다.


    잠근 동산 미지의 영역처럼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신앙 세계는 무엇이겠는가? 천국에 가서 우리 영원한 삶의 실상을 지금보다 더 뚜렷하고도 보다 더 체계적으로 설명될 수도 있을까? 하나님의 지극히 깊은 것이라도 열어 보이게 하시고 통달케 하시는 성령론이 푸는 열쇠일까? 지금 시대는 누구를 붙들고 역사하고 계실까? 노아, 아브라함, 다윗, 바울, 어거스틴, 칼빈, 말세인 이 사대를 감당할 노선은 어디인가? 새 길을 여신 예수를 붙드는 거기에 답이 있을 것이다.


    다윗의 범죄 이후 그 집안에 칼이 떠나지 않았던 왕정시대 같이 예수는 없고 사람만 남아 있는 거기에는 선 중심의 생명 역사가 안 일어난다. 인생의 전환점인 새로운 국면은, 예수 노선을 연구하는 자에게 근접해 있다. 노선은 좁은 길을 걸어가신 예수가 기준이다. 2020년, 2021년 각 집회 행정의 모습을 돌아보면 노선의 모양도 색깔도 각양각색으로 드러나고 있다. 노선은 생명이요 기쁨이다. 예수 안에만 있는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기쁨 말이다. 결국 노선은 예수로 귀결된다.

  • 2022-04-14 12:51
    집회의 자생력.


    '초원의 집'이라는 책을 읽어 보면 미국 초기 개척정신이 잘 나타나 있다. 파이오니아라는 개척정신은 자생력, 자립심과도 일맥 상통한다. 부모가 돌아가시면 자녀의 진짜 자립심은 그때부터 발휘된다. 10살이라도 고아일수록 일반적으로 결혼 안한 20대 청년보다 그 생존력은 훨씬 더 강하다. 사별 후 아내의 빈자리, 남편의 빈자리가 평소 무슨 준비로 채워질 수 있을까? 한 교회 목회자가 돌아가시면 남은 교인들의 자생력 스위치는 그 즉시로 켜진다. 부모 없는 고아, 남편 없는 과부들. 이런 우리 주변 사람들의 갑작스런 사고, 질병에 의한 부고 소식들을 접하며 우리는 잠자고 있던 생존 본능을 간접으로 깨우게 된다.


    부모나 목회자 생전부터 사후를 미리미리 준비한다는 사람은 평소 신앙 생활 전반에 걸쳐서 그 자생력이 강해질 수 밖에 없다. 목회 노후 마지막은 결국 '독립으로 어디까지든지'가 결론이다. 이 세상에서 영원 후 천국을 미리 앞당겨 생각해 보는 것이 기름준비인데 준비에 자생력은 빼놓을 수 없는 필수 요소다. 나보다 상대를 먼저 데려가시면, 상대보다 나를 먼저 데려가시면 우리 가정은 어쩌나? 우리 교회는 어찌 될건가? 이런 생각이 현재 자생력이라는 엔진에 시동을 걸게 만든다. 뭐든 닥치면 어떻게든 하겠지만 미리 알고 대비하면 그만큼 수월하고, 탁월한 결과를 맺게 된다. 그래서 기독교는 자생력 준비의 도가 맞다.

  • 2022-04-15 06:06
    실제가 없는 관념적인 글.


    속 빈 강정, 빛깔 좋은 개살구, 알맹이 없는 껍데기, 실속은 없고 머리 안에서만, 우물 안 개구리처럼 생각 속에서만 맴도는 관념, 실제 이루어진 실상의 일은 하나 없고 탁상공론만 일삼는 공무원처럼 이래라 저래라 말은 참 잘하는데 정작 본인 삶은 엉망인 외색쟁이, 예수는 없고 인간 모임의 우상뿐인 주제, 자아도취, 자기만족, 할 일 없어 쓸데 없이 일만 만들어 이용만 당하기 쉬운 사람, 실제 없는 이론, 열매 없는 가을나무처럼 허구와 허울뿐인 글들이라. 공회 외부인도 공회 내부인도 필자를 잘 아는 분들의 필자 글에 대한 솔직하고도 한결 같은 답변이다. 다시 읽어 보니 과연 그러하다. 숨김없이 있는 그대로 말해 주는 사람이 있어 그래도 감사하다. 글을 읽어 봐야 소감이 나오는데 시간 내어 읽어 주는 그런 수고와 관심이 더욱 고맙다.


    말, 글 속에는 본인의 고칠 점이 다 드러난다. 어떻게 하면 주관적인 글을 객관화시킬 수 있을까? 어떻게 쓰면 관념적인 글을 실제의 글로 바꿔,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공감을 끌어내고 감동을 줄 수 있을까? 감동은 욕심이고 그냥 악취 없는 평범한 글 정도로 기억될 수 있을까? 처음 시도는 자타의 선을 격발케 하고 글 소통을 통한 '교통의 활성화' 를 위한 목적이었으나 아직 그릇이 못되니 거듭 폐간을 반복하고 있다. 묵은 자기만의 방식만을 고수, 이런 고착화된 스타일을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기도, 말씀, 성경, 교제, 원론적인 그런 거 보다도 '따라 와 보라'는 말씀처럼 와 닿게 구체적인 인생의 경험담도 때론 필요하다.


    요즘 오프라인 현실 속 사람들과 부대끼며 받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고자 카톡, SNS, 온라인 가상공간을 도피처로 삼아 이민을 가 버리는 이들이 많다는데 필자를 두고 하는 말 같다. 내 고민이 우리의 고민일 수도 있을까 하여 부득불 적어 본다. 이 문제를 두고 누군가는 해결을 봤다면 댓글로 도움을 청해 본다. 온라인상 주고 받는 이런 소통이 넘쳐 흘러 오프라인상 우리의 삶에, 현실 속 부부 관계로 부모와 자녀 관계로, 목회자와 교인간, 교인과 교인간, 동료간, 지인간 교통으로 번져 나가는데 시발점 내지는 창구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래 본다.


    글을 잠시 안 쓰면 고쳐질까?
    쓰다 보면 고쳐지고 나아질까?

  • 2022-04-22 13:17
    오판과 전향.

    잘못된 판단 하나와 결정이 전체를 사지로 내몬다. 주님의 인도와 안보 없는, 인간중심의 결정, 거기에는 고통뿐임을 깊이 깨닫게 하시고 주님 아니면 안된다는 이 진리 하나 깨우치시려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오판하게 하시고 40년 광야 노정과 70년 바벨론 포로 생활을 허락하신 것일까? 죄된 욕심의 원인은 오판을 끝까지 옳다고 정당화 하는데서부터 비롯된다.

    가뭄 때문에 애굽으로 내려간 아브라함의 선택 한번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던가? 다윗의 잘못된 인구조사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가? 바울 되기 전 사울은 자칭 의로웠다. 그러나 실상 그는 십자가의 원수였다.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 말라는 교훈을 바울은 훗날 여러번 되새겼을 듯 하다. 내가 남에게 했던 말들이 시간 지나고 보니 그 때 주님이 나 들으라고, 나 중심을 깨라고 내 입을 통해 내게 하신 말씀이었다면..., 그래서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 하셨고 또한 설교하는 위치가 더욱 두렵고 떨리는 자리인가 보다.

    잘못 산 제품은 얼마든지 반품이 가능하다. 그런데 영원이 달린 문제의 오판은 어찌 수습이 가능한가? 이방인은 짐승이고 유대인에게만 구원이 있다고 오판했던 베드로도, 예수는 이단의 괴수로 확신했던 사울도 주님이 직접 나타나야만 전향이 가능했다. 그만큼 신앙 사상의 전향은 자기가 깨어지기 전까지는 불가능에 가깝다. 지난 과거 내 말과 내 글에 얼마나 많은 오판이 있었던 것일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방향 전환이라는 전향의 회개, 과연 돌이킬 수 있는 것일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간 사태를 지켜보며 그 속에서 신앙전쟁의 오판과 전향을 되짚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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