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오늘, 이 노선에서 본 현실

교역자의 기본 자세 - 연구소의 내부 사정 - 보충

작성자
담당
작성일
2022.04.09
* 연구소 운영의 교역자 10여 명에게 나눈 내부 글이다.
이 곳을 조용히 방문하는 분들 중에는 마음으로 우리와 함께 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 우리와 얼굴을 보거나 회의나 분담은 하지 않아도 마음은 함께 하며 특별한 경우는 소리 없이 협조하여 큰 일을 해 주는 분들도 계신다. 일일이 연락 드리기 미안하여 그 분들에게 지켜 볼 수 있도록 적어 본다. 공회는 타 교단처럼 엄한 조직체로서 존재하지 않고 노선과 내용으로 함께 하기 때문에 이 글에 마음을 함께 하면 출석 회원과 같다. 출석 회원 중에서도 마음을 함께 하지 않으면 하지 않는 만큼은 내부 교역자가 아니다.

연구소를 함께 운영하는 동역자들이 함께 읽는 곳에 올려 진 내부 글이다. 신상 관련 몇 가지를 제외한다면 교역자뿐 아니라 교인도 함께 알아야 할 사안들이어서 이 곳에 소개해 본다. 과거 교역자 내의 발언은 목숨 걸고 그 비밀을 지켜서 목회자의 권위를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공회의 좋은 점들 중에 자기에게 유리한 것은 뽑아서 사용하고 불리한 것은 정밀 제거하는 것인데 공회라는 단어를 몰라서 생기는 오해다. 그런 식을 피하자는 것이 공회다. 문제는 자기 체면 자기 위신 자기 이해관계가 걸리면 교인이든 목회자든 공회 교역자든 갑자기 맹수의 본능이 나온다. 예수님을 처형하지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은 아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복음을 남의 용도로 전하는 것이 된다. 이렇게 되면 율법주의가 된다. 세월 속에 새 살이 돋아 나오다가 암 세포로 바뀌면 건강한 인체는 대처를 한다. 안 되면 수술을 해서라도 제거를 한다. 수술한 의사나 면역력이 나쁜 것이 아니라 변해 버린 악성 종양이 문제다. 이 글을 혼자 몰래 읽으며 가슴이 뜨끔할 때 돌아 서면 늦지 않다. 이 글을 읽으며 짐짓 자기에게 해당 되지 않는다며 자기를 위로하는 자기의 합리화, 그 것이 항암 투쟁의 길조차 버리게 한 자기 원수다. 다른 공회들에게만 해당 되는 글처럼 읽지 않기 바란다. 부공3, 이 연구소부터 그렇다. 극히 일부가 아니라 심각하게 많은 숫자가 그렇다. 교회사를 알고 성경을 알면 이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이렇게 될 때 최소한 놀라지는 않는다.




(교역자의 자세)
교회의 목회를 강조할 때는 '목회자'라 한다. 공회의 기본 신분을 강조할 때는 '교역자'가 된다. 목회적 교역자 또는 교역자인 목회자, 이 것이 우리 사명이다.


(최근의 동향)
이 노선은 폭발력이 너무 강하고 노선의 가치가 너무 중하여 이런 가치를 느낀 분은 미국이 신대륙이며 무한한 가치를 가졌다고 판단하고 서부로 달려 갈 때처럼 이 노선에서 황금의 벌판을 혼자 다 가지기 위해 경주를 하듯 달리게 된다. 이런 상황을 뒷늦게 알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나 너무 뒷쳐졌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다급해서 숨이 넘어 간다. 우리가 다 그렇게 경험했고 외부에서 들어 왔던 많은 분들이 늘 그러했다. 그런데 시간이 좀 흐르고 나면 모두가 이 노선에 대한 첫 사랑의 감격을 잊어 버리고 그냥 조직원으로 또는 일상사로 대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 때부터 자기만 모르지 이미 바리새인의 율법파가 되고 공회가 필사적으로 혁파하며 내려 왔던 교계의 안일적 답습에 자신을 매몰 시키게 된다. 이후로는 공회의 제일 중심인 부공3 우리의 연구소 핵심으로 있으면서 내나 칼빈주의자들처럼 고신처럼 재건파처럼 또 하나의 이 시대의 혁파 대상이 된 자신을 자신만 알지 못하고 자기는 혁파 대상에서 빼 버리게 된다. 지금 다른 공회는 공회적으로 다 그렇다. 우리는 우리의 사상만은 살아 있다. 우리의 실행도 일부는 살아 있다. 그래서 부공3은 특별하다. 그러나 우리의 전부가 늘 살아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또 우리 중 실제 늘 자신을 늘 돌아 보는 분들만 자신을 지켜 자신을 우상으로 만드는 일에서 벗어 날 수 있다. 조금 방심하면 내가 나를 우상으로 만든다.

현재 우리 공회 교역자의 분포를 평가 해 본다면 한 분은 좀 애매한 점이 있고, 이 노선의 첫 사랑에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충성하는 한 분도 모두가 알 것으로 생각한다. 나머지는 첫 사랑이 다 식은 듯하다. 계2장의 에베소교회에 대하여 말씀하신 첫 사랑이란 누가 봐도 표시가 난다. 구별에 어렵거나 애매한 면이 없다. 미쳐서 날 뛰게 되어 있다. 우리 중 어떤 분들은 첫 사랑을 가져 봤는지 좀 혼란스럽기도 하다. 우리의 범위는 최소한 10명을 넘는다. 최근 연구소의 문의답변방에 답변한 글을 보며 첫 답변에 대하여 다른 답변자가 추가 의견을 내야 할 것으로 기대하고 기다렸다. 소식 게시판의 집회 공지의 경우는 우리에게 주신 총공회 전체적 역할을 우리 교역자들이 모두 느끼고 있는지 의문이었다. 집회 공지에 대한 글에 몇몇 아쉬운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답변이든 소식이든 글을 처음 적는 분은 완성도에 한계가 있다. 자기의 첫 글이 100점 되기 어렵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수고로 1차 답변이나 1차 글이 등재가 된 다음, 이 글을 남이 적은 글로 읽는 사람은 첫 글을 적은 분보다 수준이 낮다 해도 한 눈에 첫 글의 문제점이 보이게 된다. 이 것이 타락한 우리의 특성이다. 문제점이 보이면 바로 정정을 요구하거나 제2의 답변자가 제1의 답변에 추가해야 한다.


(이 곳의 지난 날들)
수 많은 사람들이 연구소의 이 곳을 알고 나서는 급류처럼 태풍처럼 이 노선의 소식과 안내에 다급하게 반응을 해 왔다. 그래서 연구소는 수백 명의 외부 교인을 각 공회들의 교회들에게 출석하게 했고 우리 공회 내부에 출석한 교인들의 숫자도 2백여 명에 이르지 않았을까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직장 결혼 이사 등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과정에 그 분들의 생애에 엄청난 변동이 있었고 주변에 끼친 파장이 적지 않았다. 그런 과정을 통해 오신 분들은 이런 노선을 이제 알았다면서 모두가 급한 마음으로 충성했다. 그러나 이 노선은 우선 보기에 좋아도 실제 이 노선으로 생활을 하려면 입에는 다나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하신 계10장의 말씀처럼 쉽지 않다. 이 노선의 가치를 확실히 세우지 않고 그냥 어느 날 듣기에 좋고 보기에 좋아서 이 노선에 들어 온 분들은 세월 속에 거의 다 떠났다. 백 목사님 생전에도 목사님으로부터 이 노선과 그 말씀을 배운 뒤 이 노선에 남아 이 노선의 사람이 된 분들보다는 이 노선을 떠난 사람들이 훨씬 많다. 마13:54에서 배우고 나서 놀랐지만 그 직후 다시 현실을 생각했고 이해 관계 때문에 떠나는 것이다.

현재 우리는 평생을 바치며 남아 있다. 다른 공회에 있든 외부 교계에서 이 곳을 지켜 보던 또 우리 안에 교인으로 계시든 아니면 교역자 역할을 하시든 이 노선의 가치를 최고로 알고 비교할 만한 길이 없을 정도라고 아는 분들, 나는 그 분들을 우리라고 생각하며 이 글을 적고 있다. 우리는 이해관계를 초월했기 때문에 이 길을 걷고 있는가? 아니면 세월 속에 어쩌다 보니 떠날 기회를 잡지 못했고 어느 덧 생활화가 되어 이제는 하던 도적질 한다는 말처럼 이 노선과 이런 식의 신앙 생활에 그냥 안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사라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보이는 교역자라면 보이는 이사가 쉽지 않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 곳의 교역자와 뜻만 같이 하는 분이라도 자기가 판단한 가치를 바꾼다는 것은 어렵다. 웬만하면 현상을 유지하게 된다. 이제 와서 형편을 바꾸려면 딱히 더 나아 보이는 것도 없을 것이고, 그래서 그냥 현상을 유지한다면 설교록 10만 페이지가 우리를 비판할 것이다. 설교록의 모든 글이 진실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충 머무는 것을 비판한다. 국가적으로 1980년대에 민주화를 내세우고 활동한 세력은 입만 살았지 실력은 기를 기회도 없었고 처음부터 이런 인류들은 일을 할 마음도 없다. 세월이 지나 그들에게 기회가 갔고 그들은 지난 세월 이 나라를 파탄에 빠뜨렸다. 이와 같이 신앙의 세계도 평소 무슨 주장은 마음껏 할 수가 있으나 세월 속에 자기의 과거 했던 말이 훗날 열매로 나타 날 때 자기의 과거와 훗날을 비교 평가해 보면 과거 했던 그 말이 진실했는지가 드러 난다. 남들은 잘 몰라서 그냥 쳐다만 본다 해도 자기는 자기를 모를 수 없다. 자기를 대충 길갈이나 벧엘이나 여리고 정도에서 머물게 그냥 두면 왕하2장의 50인 중에 1인이 되고 앞에서 설명한 여러 사례에 포함이 된다.


(연구소 분실들의 사례)
우리 중에는 연구소의 본부가 일을 제대로 진척 시키지를 못해서 개별 교회가 별도의 연구실을 설치하고 교회의 1~20명 10대들을 시켜서 연구소의 운영을 맡겠다고 나선 적을 기억한다. 그런 잠재적 인재들 중에 1명의 결혼이 잘못 되면서 그 여파로 공회 결혼도 별 것이 없다는 인식이 돌았고 그 연구실의 활동까지 유명무실하게 된 듯하다. 아까운 인재들이었다. 백 목사님 생전의 서부교회 2천 명이 출석하던 중간반에서도 그 정도 숫자를 실제 확보하기는 어려웠다. 1989년에 중간반을 포함한 서부교회의 대학생까지를 모두 담당했던 인물이 우리 안에 있다. 그의 기억이 그렇다. 결혼의 실패 때문에 1명이 분위기를 흐려서 한 분소가 유명무실하게 주저 앉았을까? 그 교회의 기본 역량이 아직은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10대들을 기대한 것은 잘못이 아니다. 10대가 안정적으로 인재가 되려면 진학 진로 직업 결혼 육아까지의 향후 10년 이상이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그냥 10년이 아니라 이런 과정을 거친 10년을 무사히 통과하며 이 노선의 첫 사랑을 유지한다는 것은 경험상 100명의 1명이 나오기도 어렵다. 그런데 1~20여 명의 학생의 대부분이 그렇게 될 것으로 예측을 했다면 소망이 너무 앞섰다고 생각한다. 현재 그들 중에 1명 정도는 변하지 않은 듯하다. 백 목사님 사후의 서부교회에 변치 않고 남은 사람이 1명 정도이지 2명 되기도 어렵다고 보는데 이 면을 비교해 본다면 그 1명은 사람이 기르고 가르쳐 그런 것이 아니라 하늘이 주신 전적 은혜이다. 어쨌든 그 분실은 의욕이 조금 지나 쳤고 조금 빨랐던 듯하다. 언제가 세월 속에 다시 그 때의 소망이 실현 될 때가 오리라고 기대는 하고 있다. 당시 그 학생들이 지금은 그 교회의 20대이며 그 20대는 그냥 교회를 다니는 일반 교인 정도로만 보인다. 요즘 같은 셋상에 공회의 핵심 교회에 그들이 대부분 주력 교인으로 출석을 하고 있다면 이 사실만 가지고도 예사롭지는 않다. 율동 없이 남녀 교제를 적당히 눈 감아 주는 것 없이 일제 때부터 유지한 공회의 교회 분위기 속에서 20대와 30대에 이르는 연령이 교인으로 여전히 앉아 있다는 것, 사실 엄청난 일이다.

연구소의 본부를 대신하겠다는 상기의 첫 연구실이 활동을 하지 못하게 되자 또 다른 교회에서 그 일을 대신하겠다고 나섰다. 반가운 일이었다. 교인은 많지 않으나 인재들이 충분하여 소망이 실현 될 것으로 봤다. 그러나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고 현재로 볼 때 당분간은 첫 소망이 이루어 질 것 같지 않았다. 이름과 의욕만 가지고 일부 할 일은 맡고 있으나 연구소 본부를 대행할 정도는 아닌 듯하다. 더 이상의 역할 확대가 없다면 독점권을 가진 곳처럼 다른 곳이 그냥 기다리지는 않는다. 본부로서 충분하게 시간을 드렸다고 생각했고 이 번에 3번째로 다시 다른 교회가 연구실 활동을 전담하겠다고 지원을 했다. 이 곳이라도 잘 진행 되면 좋겠다. 이 곳에는 첫 사랑이 아직도 수 년간 계속 되는 분이 있다. 이 1명 때문에 연구소의 대부분 업무가 대량으로 몇 년간 진행이 되었다. 1차와 2차 연구실이 하지 않은 일을 3차 연구실은 이름을 가지지 않고도 했다. 이제 이름까지 더해 지면 얼마가 지나 가든 어느 정도 일을 할 것으로 보인다. 잘 해서 계속이 되면 더 낫다. 그러는 중에 1차와 2차로 시도했던 곳이 힘을 보태면 분담이나 다양화나 같은 업무의 내부 경쟁을 하면서 모두에게 더 나아 질 것으로 생각한다. 어느 곳에 어느 연구실이 하든 하는 일은 같다. 그리고 그 곳의 주력은 다르지만 그 곳을 위해 일하는 실무 교인들은 분담을 한다. 지금 40여 명의 교인이 설교 타이핑부터 여러 업무를 분담하고 있고 이미 자리를 잘 잡았다. 1982년 연구소 설립 이후 유급 직원으로만 출근한 상태에서나 가능했고 무급의 분담에서는 시급한 업무 때 가능했던 일을 1년 이상 잘 진행하고 있다. 그렇다면 연구소의 운영 방법론 중 무급의 회원들이 분담으로 연구소의 중요한 일을 처리하게 한다는 원칙이 연구소 설립 이후 처음으로 구체화 된 것이다.


(연구소 운영의 기본 방향)
1982년 연구소 출발 첫 해부터 이 소원을 간절히 가졌었다. 백 목사님 생전은 걱정할 것이 없으나 설교 때마다 늘 당장 죽겠다는 백 목사님, 그 분의 사후라는 것은 내게 늘 당면한 과제였다. 백 목사님이 죽으면? 서부교회는 바로 연구소를 차단하고 나선다. 그 것이 한 교회의 훌륭한 지도자가 죽고 후임이 들어 오면 인간 심리다. 설교록에도 자세히 적어 놓았다. 총공회는? 연구소 핵심을 처단하려 나선다. 그 것이 성경이다. 세상이면 교도소에 보내고 철폐를 직접 시키겠지만 종교계, 특히 총공회 체계에서는 돈을 차단하는 것이 뻔한 훗날이다. 이 면을 대처하려면 돈 없이 연구소를 운영해야 한다. 백영희 목사님의 연구소가 백영희 사후에 서부교회와 총공회의 후임 지도부의 개인 연구소를 만드려고 나설 때 이를 거부하면 운영금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까? 연구소의 운영은 인건비가 거의 전부다. 인건비를 없애는 것이 연구소를 진정한 연구소로 만드는 방법이고 외압에서 벗어 나는 연구의 자유성을 갖게 한다. 이 때 연구의 자유성이란 연구원의 제 멋대로 자유를 말하지 않고 교계나 신학계나 세상 학계의 자유를 말하지 않는다. 이 연구소는 백영희목회연구소니 백영희 목회 연구를 위해 옳고 바른 자유를 말한다. 백영희 노선에 틀린 점이 있으면 외부의 지적이 나오기 전에 내부에서 먼저 고치는 것이 연구의 자유이며 옳고 바르다는 것이 확신 된 사안은 옳고 바른 것을 그대로 전하는 것이 연구의 자유다. 백 목사님 사후, 서부교회와 총공회가 불매 운동에 나서고 인건비 등 모든 운영비를 전부 차단하고 나섰다. 우리는 목사님 생전에 이미 알고 있었고 대비를 했다. 그 대비는 연구소의 사명을 아는 핵심 직원 전부를 무급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돈이 들어 가지 않으면 돈 차단은 의미가 없어 진다.

이렇게 헌신하는 우리의 모습이 세월 속에 알려 지고 우리의 연구와 전파 노력 때문에 혜택을 보는 분들이 계신다면 그 분들이 다소 간에 후원을 하게 될 것이고 그 후원금의 범위에서 전하면 된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했고 그렇게 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돈 때문에 남아 있던 이들은 모두 저절로 정리가 되었고 또 예상하지 못했던 후원이 있었다. 백 목사님 생전보다 더 많았다. 당연히 목사님 생전보다 하는 일도 많아 졌다. 보이는 총공회는 5곳 정도로 나뉘었고 나뉜 곳들의 활동은 거의 표시조차 나지 않았으니 총공회와 서부교회와 백영희는 역사에 잊혀 진 이름들이 될 때, 연구소가 그들의 역할을 전부 했다. 월급 없이 운영 되는 연구소? 뜻은 그러했으나 기대는 어려웠는데 국내의 단일 목적으로 운영 되는 연구소 중 우리 연구소 정도 되는 곳은 없는 것으로 안다.

현재 연구소는 무명의 회원들이 연보하여 운영비는 항상 넉넉하다. 무엇이든 꼭 하려는 것은 모두 해 왔다. 그 바탕이 40여 명의 회원들이 각자 자기 생활을 따로 하면서 업무를 분담해 주기 때문이다. 이들이 일을 하도록 연락을 하고 앞에 서서 먼저 걸어 가는 사람이 있으면 이 40여 명은 직원이 되고 말로만 시키거나 서류로만 계획하면 이 40여 명은 움직여 지지 않는다. 인건비가 필요 없는 연구소, 그렇다면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원래부터 인쇄 출간의 실무를 알기 때문에 전파를 위해 들어 가는 돈은 크지 않았다. 지금은 인터넷으로 전하기 때문에 비용이 더욱 절감 된다. 이런 상황에 인터넷 전문가들이 속속 합류가 되어 이전과 차원이 더 달라 지고 있다.


(연구소를 주도하는 연구실)
분명한 것은, 이 노선은 그 누가 이름과 직책으로 실제 업무를 붙들고 있으면서 현장의 업무를 진행하지 않으면 교역자의 경우 시무투표를 통해 관리에 나서고 일선 반사는 자동 도태가 되게 한다. 그냥 안면 체면 때문에 복음 운동을 너무 지나 치게 맡겨 놓고 고사 되게 하지는 않는다. 이렇게 업무를 맡은 인원이나 교회 등을 바꾸게 되면 격렬하게 반발하는 것이 보통이다. 공회의 집회를 오랜 세월 도맡아 수고하던 분이 피로가 누적이 되어 너무 힘들어 했고 그 모습을 지켜 보는 모두에게 큰 짐이 되어 후임을 소개했다. 후임을 소개해 놓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한국 사람은 힘든다는 표현이 정말 힘이 들어 그만 두고 싶다는 뜻도 포함하고 때로는 나를 알아 주고 대우를 하라는 요구일 때가 있다. 우리끼리는 진실 되이 오랜 세월 함께 했기 때문에 그냥 피로도가 쌓여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인계를 시키면서 상식적으로 넘겨야 할 중요 서류가 분실이라며 그냥 입으로만 넘겼다. 알고 보니 그 것을 가지고 작정을 하고 공회 전체를 해체 시키는 무기로 삼아 현재 많은 시도를 하고 있다. 우리가 이 나라에 사는 이상 우리의 실제 국적이 천국이지만 이 조선 땅의 조선 심리를 떼 내기는 참 어려운가 보다.

잘 모르는 분들은 그 분을 달랬더라면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달래서 된다면 눈이라도 빼어 줄 수 있다. 달래면 더 악화 되는 경우가 있다. 최후의 만찬까지 입에 떠 먹여 주자 그 힘을 가지고 은 30에 예수님을 통째로 넘긴 것이 성경이다. 수백 명의 교인이 보는 데서 세상 쌍욕을 다하면서 모친 연세의 교인에게 반말을 던져 대다가 돌아 서서 언제 그랬느냐고 안면을 바꾸는 정도가 되면 달래서 되고 말고가 아니다. 그냥 맡겨 놓고 우리는 우리가 가는 데까지는 그냥 가는 것이다. 백 목사님 생전에 공회가 막 출발을 하자 바로 백영익 김석준 신도범 장렬 송용조 목사님 등이 줄 지어 탈퇴를 했다. 일반 교인이 모르는 목회자까지 포함하면 통계 내기도 어려울 정도다. 항상 두 길! 오직 한 길! 그냥 공회는 그렇게 내려 왔다. 오늘도 그 노선을 지키려 하는 이상 그런 일은 당연하다. 그런데 오히려 그런 일이 너무 없어서 의아했다. 늘 내적으로 상식적으로 그렇다고 알고는 있었다.

하나님께서 어느 교회나 어느 인물에게 봄을 주시기도 하고 가을을 주시기도 한다. 그럴 때는 복음 운동의 역할이나 사명이 교회에서 교회로 또는 이 인물에게서 저 인물에게로 넘어 갈 수도 있다. 그런데 한국인만은 이렇게 이전이 되는 순간 모든 것을 끝장 내며 털이에 나선다. 그렇다 해도 복음 운동과 교회라는 공적 기관의 의미를 안다면 사람으로서 배려 할 일은 최대한 배려해도 자기 것처럼 한 없이 누구 1명을 위해 다 쏟아 넣을 수는 없다.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는 최후의 선이라는 것이 있다. 항상 갈랫길이 올 때 너무 많이 배려를 해 왔던 듯하다. 1997년 부산 연구소에서 제명을 당할 때는 5년을 기다려 줬다. 따지려 들면 우리가 할 말이 많다. 그래서 우리를 우리 없는 곳에서는 모두가 별별 비판을 해도 우리 면전에 거론하는 이는 아직 거의 보지 못했다.

우리는 백 목사님의 가족이라는, 우리가 지킬 가치를 빼고는 가장 큰 가치였던 그 분들의 부탁조차 결국 더 이상 기다려 주고 더 이상 배려하지는 못했다. 평생에 우리를 지켜 보는 분들이 모두 우리에게 사랑이 부족하고 생명을 아까지 않는다는 말을 했고 우리는 그런 말을 하는 분들께 직접 해명한 기억은 별로 없으나 그 때마다 한 사람을 아끼느라고 집단 학살을 하라는 말은 곤란하다며 중얼거렸다. 이런 우리의 비교 판단은 아마 앞으로도 거의 바뀌지 않을 듯하다. 최소한 1982년부터 40년을 지켜 온 한 가지 원칙이다.


(우리 교역자회 회원, 전부는 돌아 보시기 바란다.)
다른 공회, 우리의 훌륭했던 수 많은 선배와 우리 정도 되는 동료들이 모두 우리의 사명을 포기했을 때 그 분들이 모두 부모와 처자와 논밭 문제가 너무 지대했기 때문에 잠깐만 쉬다 간다고 하다가 결국 그렇게 되었다. 우리가 이 일에 늘 전념해야 할 이유는 단 1가지다. 이 것은 최고의 가치라는 것이다. 이 일을 하다 잠깐 쉬고 갈 이유는 수 십도 넘고 수 백도 넘는다. 그리고 드디어 이 일을 포기할 때가 되면 대개는 이유가 1가지다. 어떤 분은 아들 때문에 우리와 끊었다. 그 아들은 경제의 손익 계산을 할 때 우리보다 대구가 낫다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교역자들은 더 나은 교회로 이동할 수 있다는 희망이었다. 1998년까지는 목사 안수 문제 1가지 때문이었다. 어떤 분은 지금도 변치 않고 우리를 위해 정성을 기울이기도 한다. 가장 넓어 보였는데 세월 속에 끝을 보니 현재까지 우리 밖에 인물 중에서는 가장 오래 우리를 지지하고 있다.

연구소의 소식은 우리의 교계에 대한 입장 발표다. 교계는 이렇게 되어야 하고 저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을 소식에 담고 있다. 공회들에게 대한 우리의 지도는 말할 것도 없이 포함 되어 있다. 그런 소식 게시판을 읽어나 보시는지 사실 의문이다. 인터넷에 간단히 반복 되는 소식처럼 읽는 것은 여기에 포함하지 않는다. 문의답변은 우리가 교계와 공회와 이 시대를 백 목사님 자리에 서서 단정을 하고 방향을 지시하고 있다. 집회의 은혜는 공회 내부 문제이나 그 교재는 백영희 성경신학의 체계화다. 우리 중 한 분은 현재 교회의 업무에 옆 돌아 볼 여유가 없어 보인다. 교인의 숫자가 그렇고 교육전도사급 10여명이 최근에 교인으로 열심히 출석하는 상황에서 이 분들이 공회를 완전히 파악할 때까지는 다른 업무는 미룰 수밖에 없다. 또 한 분은 앞에 바쁜 1명과는 입장이 비슷해 보여도 그 관리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좀 다르다. 지금 적지 않은 분들이 공회 업무를 돕고 있다. 그 분만 마음 먹으면 이런 글의 지적은 받지 않을 여지가 있어 보인다. 그 외의 분들은 각자 자기의 급한 사안을 이유로 말씀을 하시려 한다면 암의 재발까지 맞아 가며 교회를 돌아 보는 분이 가장 할 말이 많을 듯하다. 치료를 받는 그 기간 외에는 아직 그 분은 다른 이유를 말씀하신 적이 없다. 그리고 맡은 교회에서 역할은 다 해 내고 있다. 다른 모든 분들의 경우, 이런 글이 다시 반복 되지 않았으면 한다.

아주 조용히 그리고 차분하게 이런 식의 글을 적을 때, 그리고 이런 글이 반복이 되면 마음 속으로 향후 물러 설 수 없는 결정을 하기 위해 돌아 보고 또 돌아 보는 순간이다. 하나님도 우리에게 미리 알리고 나서 역사를 하신다. 사람끼리 함께 일을 할 때 서로가 부족하기 때문에 여러 번 마음을 전하고 기회를 드리는 것이 맞다. 적이라면 불시 기습이 최고다. 한 몸이면 내가 오해를 받는다 해도 훗날 말을 하지 않아서 몰랐다는 말을 들어서는 안 될 듯하다. 사람이 큰 소리와 화 난 얼굴을 해야 비로소 '아! 참으로 중요한가 보다' 이렇게 되는 분들이 있다. 연구소를 운영하는 교역자들이라면 조용하게 전해도 내용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조용히 그러나 상대가 충분히 알 만큼 나의 마음을 먼저 꼭 전한다. 거리가 먼 사람이나 상대가 어린 경우는 더 많이 반복한다. 그러나 상대의 신앙이 나와 비슷하면 당연히 그 횟수를 줄인다. 상대방은 이렇게 진지하게 부탁을 해도 소리가 낮으면 쉽게 지나 친다. 그렇다고 동역자끼리 악을 쓸 수는 없지 않은가.


(진실을 가지고, 최근을 다시 돌아 본다.)
집회를 개최하는 내계는 장소적으로 20년 이상 우리 연구소와 공회의 지역적 중심지다. 공회와 연구소를 함께 운영하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분들이 수백 건으로 고소 고발을 하며 끝장을 향해 전력을 하고 있다. 백도영 목사님의 고소는 2013년에서 2018년으로 6년에 그쳤다. 그 고소에 스며 들어서 시작한 이들의 고소 고발은 2015년부터 시작하여 2022년의 8년을 지나 가고 있다. 아마 2년은 최소한 더 갈 듯하다. 이들이 외부적으로는 부산연구소의 고소로 기회를 잡았으나 내부적으로는 2014년 경 공회를 함께 운영한다는 것은 타 공회식이 될 듯하여 내계 집회 장소를 분할하고 각자 개교회를 강조하며 나가자고 제안을 한 적이 있었는데 이 제안을 그들은 결정적 기회로 명분으로 삼았다. 당시 나는 2013년 말까지 오늘의 글처럼 그런 글과 말을 반복해서 교역자 게시판과 교역자 회에서 거론했다. 한 사람이 지도자나 된 것처럼 또는 주인이나 된 것처럼 만사를 혼자의 사업처럼 다 하고 나머지는 지켜 보면서 덕이나 보고 뒤를 따르며 날아 오는 화살은 뒤에 숨어 피하고 나누어 지는 이익만 챙긴다면 이는 처세술이 좋은 것이 아니라 신앙으로 진실 없는 남의 복음에 기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식은 공회가 아니며 이런 식은 우리가 공회로 유지 될 상황이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더 늦어 지면 원래대로 살아 보려는 하나마저 매몰이 되겠다는 최후의 순간을 느끼고 분할을 부탁했다. 1백 평만 줘도 불편이 없고 주지 않으면 혼자 개별 교회 건물에서 그냥 해 나가도 된다고 했다.

바로 그 기회를 타고 수십 년을 맹목적으로 따르던 이들은 오늘까지 그 많은 고소고발을 벌이고 있다. 한 사람은 앞 장을 서고 두 사람은 그마저 뒤에서 지켜 보며 떨어 지는 것을 줏을 눈치다. 참으로 처세술은 대단하다. 그러나 그렇게 몸을 사린다면 십자가든 오판이든 최소한 종교계에 몸을 담는 것은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지켜 보던 이들은 평소 이 곳에서 지나 온 세월을 통해 다른 공회라면 얻기 어려운 혜택을 모두 챙겼고 자신들의 역량도 충분히 검증했다. 더 가질 것도 없는 상태에서 그 동안 챙겨 보던 그들의 재산을 마저 챙기면 되는 분들이다. 그 분들이 입에다 무슨 진리니 전원일치니 공회니 신앙의 노선이니 담는 것은 요즘 586? 무슨 민주화 떠들던 분들 같다. 민주화를 알기는 하나? 하기는 했던가? 남의 민주화로 자기들은 온갖 부귀영화만 쏘옥 빼 먹은 이들이다. 누가 기생충이라고 했던가? 한 사람은 나섰고 다른 분들은 뒤에서 응원하며 앞에서는 자기는 당사자가 아니라면서 발을 빼고 마지막에 가져 올 것만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땅에 것을 챙길 때 덕을 볼 듯하다. 그들은 이미 그들의 천국은 모두 갈아 엎고 있다.

그 분들을 보며 나는 내부의 10여 명 교역자회원들에게 다시 호소를 하고 있다. 백 목사님이 1988년 송용조 목사님의 탈퇴 후에 이 길이 자기 길이 아닌 사람은 당당하게 나가라고 했다. 그 것이 양심이며 그 것이 진실이라 하면서. 이제 우리와 딴 길을 택한 3 곳은 우리가 돌아 오기를 원해도 그들 스스로 돌아 올 수 있는 교량을 모두 파괴해 버린 듯하다. 지금 목회자로서 자기 앞에 두어 명을 앞에 놓았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그 두어 명도 이제는 마음 속으로 그냥 현상을 바꿀 수 없어 그냥 쳐다 보지 좋아서 쳐다 보는 것은 아닐 듯하다. 그렇게 좁아 진 자기, 그 것이 마5장의 영원한 옥이다. 오리 새끼는 연못으로 가는 것이 자연스럽고 닭은 뭍으로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 지금 닭장 안에 있는 분들은 그 분들처럼 되지는 않았으면 한다. 그렇게 되지도 않을 분들이다. 그러나 닭장 속에 있다 해서 해결 되는 것은 아니다. 총공회 울타리 안에 있으며 교계처럼 목회하는 분, 교계에 계시나 총공회 안에 있듯 하시는 분. 나는 전자가 더 낫다는 말을 쉽게 하지는 않는다.

이 노선의 가치를 나는 최고의 가치로 알고 있다. 이 노선의 가치란 계속해서 행동하지 않으면 속도를 줄인 자전거와 같아서 마지막에는 지켜 내지를 못한다. 우리가 수 년째 반복하는 고후8:12 말씀에 따라 자기가 할 수 있는 정도만 말한다. 그런데 그 할 수 있는 정도를 계산할 때 일반 교인이 자기를 매어 놓는 이런 저런 것에 자기를 다 매어 놓고 나서 계산을 한다면, 자기는 최선을 다했고 제가 볼 때는 최선을 다할 수 없도록 방향과 구조를 잘못 계산한 것이 문제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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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록 충성하라'를 왜곡해 버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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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신과 공회, 교계와 공회 - 인식의 출발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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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란의 성격에 따른 승리의 요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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