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오늘, 이 노선에서 본 현실

피할 길, 피난 길 : 신앙의 막 다른 순간

작성자
담당b
작성일
2022.04.07
(이중성과 절제력)
평소에는 말 잘 하는 사람이 잘 믿는 것으로 보여 진다. 속을 짐작할 수는 있다. 거의 알 수 있다. 그렇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평소 재주가 좋은 사람은 자기의 속과 겉을 따로 관리한다. 그래야 장사를 하고 정치를 하고 그래야 가정도 잘 꾸릴 수 있다.
겉과 속을 따로 관리할 때 야고보서 1장 19절에서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 했다. 성 내는 것도 관리해야 한다.
철 없거나 성급한 사람은 자기에게 불리하면 절제하는 인격자를 이중 인격자라고 쉽게 비판을 하게 된다. 판단은 쉽지 않다.



(신앙의 극한 상황)
나는 평소 신앙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주 쉬운 여러 사건을 통해 다른 사람들보다 확연하게 또 결과적으로 그렇게 살았다.
문제는 평소의 신앙이란 눈치만 좀 있어도 우수해 보인다. 최근 같은 혼란이 극심해 지면 눈치만 있어도 최고처럼도 보인다.
세상의 경제 정치 가정 인품 등의 문제는 속은 그렇지 않아도 겉 보기에 좋아 보이는 상태가 끝까지 자기를 포장해 줄 수 있다.
그러나 신앙의 세계는 모든 것을 지켜 보는 주님이 그렇게 놔 두지 않으신다. 겉 모습이 아니라 속에 든 것을 낱낱이 공개한다.

75년이 더 지난 일제의 신사참배 사건과 70년 전의 6.25 점령이란 한국 교계의 속 모습을 해부 시키며 낱낱이 공개를 하셨다.
최종의 순간, 우리를 기다리는 마지막 시험이 늘 우리를 기다린다. 진정한 학생이면 최종 시험을 전제로 평소에 공부를 한다.
시골에 초등 1년부터 고3까지 전교 수석을 다 차지하고도 예전에 대학을 진학하지도 못한 경우가 있다. 시골 수준이 그렇다.
고 3년까지 자기 반에서 20등에 머물고도 서울대를 들어 가는 학교도 있었다. 경기고는 1개 군에서 1명도 들어 가지 못했다.

오늘, 현재 상황에서의 신앙은 참 쉽다. 돈이 넘치고 시간이 넘치고 사회가 넘치고 있다. 나라 돈 받아 가며 믿어도 되는 때다.
노동법으로 주일을 보장한다. 저소득이라고 주는 돈으로 차를 사고 체중을 감당하지 못해서 따로 운동을 해야 되는 세상이다.
교계 최고 교단이라는 곳이 단체로 주일을 어기고 있다. 이럴 때 주일 날 빈둥빈둥 잠만 자고 있어도 성수 주일에 1등을 한다.
그런데 한국 교회 전부가 주일을 버리고 낙제를 한 상황에서 게을러 주일을 따로 범하지 않은 사람이 1등을 했다고 신앙일까?

주일을 지켜야 하는 이유만 제대로 알게 되면, 또한 신앙의 근본만 바로 깨닫게 되면, 오늘이라는 환경에 신앙 지키기는 쉽다.
이런 기본 자세와 방향을 잘못 깨닫게 되면 우리보다 열 배 훌륭한 신앙인이라도 그런 교회라 해도 알지 못해서 죄를 짓는다.
세상 학교도 학습에 집중하지 않고 세상 도덕도 도덕을 버린 상황에서 눈치로 대충 살며 1등을 한다고 그 것이 1등일 수 있나?
주님이 주실 시험은 남이 다 떨어 졌기 때문에 1등 하는 시험이 아니라 상대적 시험이다. 자기로서는 최선을 다해야 통과한다.


(피난인가, 피할 길인가?)
사람에 따라 주신 은혜가 다르고 그 은혜를 감안하며 따로 시험을 주시고 따로 평가한다. 일단 자기로서 최선을 다 해야 한다.
고전10:13에서 각자의 신앙을 봐 가며 감당할 시험만 주시고 시대 전체를 시험할 때 감당치 못할 시험에는 피할 길을 주신다.
6.25나 신사참배는 한국 교회 전체를 시험해야 했다. 손양원처럼 통과할 사람은 순교하지만, 피할 사람은 피할 길을 주신다.
손 목사님은 밀려 오는 인민군을 보면서 있던 곳을 지켰고 순교를 했다. 손 목사님처럼 했어야 한 많은 분들은 피난을 갔다.

손 목사님 정도의 신앙가들이 피난을 갈 때는 그냥 피난을 갔을까? 모두가 양심을 꺾고 자기 하나 살려고 무조건 피했을까?
그런 순간에 그들 속의 생애 애착욕은 고전10:13의 말씀으로 흔든다. 광명의 천사가 준 구원 길로 받아 들였지만 사단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전쟁에 같은 자리에서 광명의 천사가 고전10:13으로 피난을 시키고 어떤 사람은 사단이 그렇게 했다.
살 길과 죽을 길이 눈 앞에 닥치면 생의애착욕은 고전10:13을 치켜 들고 살자고 한다. 준비하지 못하면 자기에게 속고 당한다.

고전10:13뿐이겠는가? 예수님도 출생 후 처음 하신 일이 마2:13에서 피난이었다. 두려워 피할 때 피하게 하는 성경은 많다.
다윗은 삼상19:10에서 사울의 창을 눈 앞에서 피하여 도망 갔다. 사울이 죽을 때까지 늘 도망을 다녔다. 하나님의 은혜였다.
엘리야도 왕상 18장의 갈멜산에서 그렇게 큰 일을 하고도 19장 3절에서 그 생명을 위하여 도망했다. 그리고 큰 역사를 했다.
성경을 제대로 읽어 보면, 어려울 때 몸을 사리고 피하고 싶을 때 그렇게 할 수 있는 성구가 죽어야 할 성구보다 훨씬 많다.

예수님이 죽음을 피하지 않은 것은 최후의 만찬 이후 단 한 번이다. 그 외에 항상 위협이 있었으나 피했고 심지어 숨기도 했다.
요5:13에서는 이미 피했다고 했고 요8:59에서는 숨어 성전을 나갔다. 눅4:29에서도 순교할 길이 있었으나 그냥 살아 나왔다.
어떤 순교자도 마지막 한 번만 죽는다. 그 말은 그 이전에 살 길을 찾았고 그 것은 아직 때가 아니었다. 우리는 이런 틈을 본다.
한상동이 시작한 고려파, 그 고신은 말마다 순교 교단이라 한다. 그 한상동이 일제 때는 버텼으나 공산당에게는 도망을 했다.

그냥 도망을 한 것도 아니라 해방 후 밀려 드는 공산주의 세력 때문에 한국 최대의 산정현교회 교인을 두고 남하를 해 버렸다.
고신의 역사는 한상동이 모친의 장례식 때문에 왔다가 다시 올라 갈 길이 막혔다고 슬쩍 적고 지나 간다. 궁색하기 그지 없다.
일제보다 공산당이 더 두렵더라 이렇게 고백하고 회개했다면 회개한 다윗처럼 더욱 빛이 나고 한국 교회의 빛이었을 듯하다.
손양원이 밀려 드는 공산군을 보면서 현지를 사수하다 순교를 하게 되자 한상동의 생애에서 손양원의 이름을 유기해 버린다.

한상동의 생애를 가까이에서 냉철하게 지켜 본 사람들은 이런 상황과 이런 한상동의 단점 또는 아쉬운 점을 놓치지 않는다.
그러나 맹종적 한상동주의자들은 천주교가 마리아를 두고 원죄도 없을 것이라고 하듯이 한상동의 만사를 변호만 해 왔다.
백영희 제자가 백영희 문제점을 발전적으로 지적할 수 있어야 하듯이 고신도 그렇게 할 수 있을 때 다시 희망이 있을 것이다.
피할 길을 내셨기 때문에 피했는가, 도망을 가고 싶은데 핑계를 찾은 것인가? 성경의 성구까지도 양 쪽을 다 제공하고 있다.


총 한 방에 그냥 죽는다면, 나는 현재 신앙으로서는 기꺼이 순교를 할 듯하다. 그 비슷한 일을 몇 번을 거치며 느껴 본 일이다.
장기간 고문과 고형이 닥친다면, 지금 이 순간도 나는 자신이 없다. 이런 나에게 예수님과 다윗의 피난은 늘 피할 길이 된다.
역사적으로 또 객관적으로 평가를 할 때는 내가 감히 우르러 보기도 어려운 의인 한상동의 피난을 평생 지적하며 살아 왔다.
그러나 나만의 신앙 준비를 두고 고민할 때는 신사참배 환란에 내가 있었다면 국가 의식이라는 논리에 숨어 피했을 듯 하다.

시대적 환란을 이긴 이들은 일단 그 순간의 신앙은 일반 신앙이 우르러 볼 수 없는 세계다. 한상동은 무조건 최고의 의인이다.
오늘처럼 시대적 환란은 없고 어두운 시대에 세상이 넘치게 되면 알아서 죄를 짓는다. 이 때는 눈치만 있어도 신앙을 지킨다.
오늘의 이런 상황에서 신앙을 지키는 것은 학교로 말하면 평소에 숙제를 잘 하고 출제 범위를 알면서 준비하는 학생과 같다.
시대적 환란은 무한 시험이다. 출제의 범위와 한계를 모른다. 장기간의 고문과 고형까지를 각오해야 한다. 나는 자신이 없다.

이런 나에게 평소의 진리 지식은 그런 급할 때 피할 길을 내신 것이라는 사례가 사방에서 밀려 오게 된다. 그 때가 밤중이다.
오늘 상황에서 밤중을 미리 만난 듯이 방황을 하고 생의 애착욕은 커녕 잡다한 일상 문제에 붙들린다면 그 때는 무조건 진다.
가끔 평소 작은 환란에서 실패를 하고도 최후의 심판처럼 다가 온 시대적 환란을 이기는 이들도 있다. 이런 경우는 2가지다.
애국심처럼 다른 이유로 이기는 경우다. 독립운동, 민족주의, 공산주의 때문에 신사참배같은 일제 박해를 이긴 이들도 많다.

종류 별로 분류하면 신앙만을 위해 신사참배 환을 이긴 사람의 숫자보다 민족심이나 공산주의로 죽은 사람이 많지 않을까?
우리의 신앙이 이렇게 허무하다. 보이는 세상을 위해 죽는 자들은 싸워야 할 가치가 눈에 보이기 때문에 싸울 때 유리하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이 땅 위에서는 결과를 볼 수가 없는, 하늘의 것을 위해 싸워야 하기 때문에 막판에 가면 더욱 어렵다.
그냥 은혜를 구할 뿐이다. 그 날의 은혜를 오늘에 구하는 방법은 오늘 이 작은 시험, 이 작은 평소의 어려움을 이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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