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오늘, 이 노선에서 본 현실

옳은 것만 따른다, 백영희 가족들을 회상하며

작성자
담당b
작성일
2022.03.24
(성경만 안내한 분)
나는 백 목사님께 배웠다. 그 분을 배운 것이 아니라 그 분에게 성경을 배웠다. 그 분의 성경이 아니라 그냥 성경을 배웠다.
그 분께 배우면서 의심 나는 것은 하나도 빼지 않고 질문 했다. 이해가 된 것은 그 분의 성경이 아니라 나의 성경이 되었다.
아직도 몇 가지는 확정하지 않고 남겨 둔 것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모두 해소가 되었다. 신학이 아니라 성경을 배웠다.
그 분은 그 자신도 누구에게나 궁금한 것은 질문했고 이해 되지 않으면 따졌다. 그리고 모든 것의 최종 판단은 성경이었다.

자신이 걸어 간 대로 교인을 가르쳤고 그대로 걸어 간 사람은 백영희에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게 늘 배울 수 있었다.
내가 그 분을 존경하는 이유 중 제일 큰 것은 바로 이 대목이다. 성경이 성경이라면 최소한 신학은 신앙이 배제할 대상이다.
모두가 성경만을 강조하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의 평소 노력과 말과 행동을 보면 그렇지 않다. 성경은 그냥 참고만 한다.
그리고 성경을 성경 그대로 보려하지 않고 자기가 그 사람의 것을 뒷받침하든 자기가 보고 싶은 방향으로 성경을 이용한다.



(그 분의 가족들)
백 목사님이 위대하고 그 끼친 영향이 너무 강하다 보니 그 분께 지도 받는 분들은 초기에 그 분의 가족들을 천사인 줄 안다.
그 분과 그 가족을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 단언을 하면 그 분의 가족들은 확실히 위대하다. 그러나 단점도 있다.
그 가족분들은 일반인의 생각을 아득하게 뛰어 넘는다. 신앙적으로는 중간 이상은 된다고 본다. 최고 수준만은 아닌 듯하다.
세상적으로 위대한 것은 아버지 덕으로 본다. 신앙 면은 아버지를 봤기 때문에 크게 배운 것도 있고 피해를 입은 면도 있다.

가족 분들의 신앙은 가려 있어서 잘 모른다. 그 분들의 세상 실력은 잘 알려 져 있다. 아버지의 위대함 때문에 일단 존경한다.
그러나 생활 속에서 실제 접하게 되면 속으로 기대한 것이 너무 많기 때문에 실망을 한다. 지나친 기대도 실망도 다 문제다.
객관적으로 보면, 신앙의 아버지 때문에 모두가 복 받았고 아버지가 너무 엄하기 때문에 자녀로서는 역작용이 없을 수 없다.
그리고 차분히 전체를 종합해 본다면, 전반적으로 누구와 비교를 해도 귀한 하나님의 종에게 귀한 은혜를 주셨다고 보인다.

자녀 분들이 이 연구소를 고소한 사실과 내용은 그 분들의 고소 때문에 감출 수 없고 가릴 수 없다. 그 분들이 원했던 일이다.
그 내용만으로 보면 그 분들이 세상적으로 훌륭하다 해도 신앙적으로는 잘못이라고 지적을 받을 듯하다. 나는 그렇지 않다.
그 분들은 이 연구소를 고소하면서 한두 가지 오해한 것이 있다. 그 것까지 포함을 하면 그 분들의 행동을 십분 이해를 한다.
그 분들을 패륜이라며 사석에서 비판하고 평론하는 사람들, 바로 그들이 그 분들이 이렇게까지 하도록 만들었다. 원인이다.



(백영희 가족 분들의 오해)
백 목사님은 지도자로서 흠 잡을 데가 없다. 가족들은 참으로 우수하나 흠도 있고 점도 있다. 우리보다야 훨씬 우월 하다.
그런데 백 목사님께 열광하던 이들이 그 가족들에게도 마치 왕실에 충성하는 조선의 신하들처럼 자녀들에게도 열광했다.
백 목사님은 그 위험과 그런 위험이 끼칠 훗날까지 내다 보며 늘 조심을 시켰다. 그러나 따르는 사람들은 조심하지 않았다.
나는 백 목사님의 설교나 지시도 이해가 되지 않으면 질문했다. 직접 따졌다. 다른 사람들은 그 앞에서는 모두 입을 닫았다.

나보다 백 목사님을 아주 오래 또는 가깝게 겪은 분들은 많다. 그런데 백 목사님이 틀렸을 때 대하는 태도는 모두가 아쉽다.
백 목사님의 틀린 점이 나올 때 반응들은, 1. 틀리지 않았다고 무조건 옹호한다. 2. 틀렸지만 밉보일까 싶어 눈치만 살핀다.
이 둘은 맹렬 신도들이다. 3. 노아의 세째처럼 틀린 것을 광고하고 다닌다. 4. 사람이 다 그렇지 하는 실망감에 외면을 한다.
백 목사님은 평생 자기 틀렸을 때 대응을 상세히 부탁했다. 질문하면 된다. 따지면 좋아한다. 끝까지 따지면 희망 있게 본다.


참 아쉽다. 그 성경 해석과 교리 체계와 신앙 지도와 말씀의 은혜는 유례가 없다며 열광하던 분들이 왜 질문을 하지 않을까?
돌아 서서 투덜 대면 고라가 된다. 돌아 서서 맞서면 압살롬이 된다. 화 난다고 뛰쳐 나가면 여로보함이 된다. 뻔히 알면서도.
지적을 했다가 혼 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그런 사실을 들이 대며 백 목사님은 설교 때와 달리 실제 따지면 다르다 한다.
고개도 들 수 없도록 혼을 낼 때까지 사례를 세세히 들며 수도 없이 가르쳤다. 더욱 희망 있게 봤고 더 따져 보라는 환영이다.

교회와 공회와 교계를 걸쳐 그 분이 지도한 인물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한 사람씩 앉혀 놓고 원하는 대로 지도하지 못한다.
질문을 받을 때 무시를 해 버릴 때 물어 본 사람이 더 이상 말하지 않으면 그 질문에 대한 진실이 없거나 가치를 아지 못한다.
시간 낭비일 뿐이니 상대하지 않는다. 아주 중요한 문제라면 야단을 친다. 그 야단에 막히면 역시 같은 취급을 당하게 된다.
질문하는 사람이 틀렸든 말든 정말 해결을 해야 할 난제거나 중요하게 생각하면 막히지 말고 계속해야 한다. 그 것을 원했다.


물어 보는 사람이 백 목사님은 워낙 위대하다고 소문을 들어서 시험 해 보는 사람, 별 것 아닌데 그냥 한 번 질문을 하는 사람,
백 목사님께 배울 마음은 처음부터 없고 티를 잡기 위해 논쟁으로 또는 증거 채집으로 시비를 하는 사람, 별별 사람이 있다.
질문자에게 배우는 자세도 가르치고 또 목사님 자신의 시간도 아끼기 위해 냉담도 야단도 무시도 질책도 한다. 참 다양했다.
처음 믿는 사람이거나 아무리 어려도 꼭 알아야 해서 묻는다면 상대를 가리지 않았고 자신의 시간과 건강을 돌 보지 않았다.

이 정도까지 글을 읽으면서 성경에 기록 된 본문들이 잘 떠 올랐다면 성경을 읽은 분들이다. 설교록에도 다 나오는 말이다.
성경과 설교록에까지 세세히 다 나와 있는 사연을 가지고도 문제가 된다면 백 목사님이 더 이상 상대하지 않았던 유가 된다.
알면서 고의로 반복을 하는 경우를 말한다. 고범죄가 된다. 이런 분들과의 대화는 한두 번 권한 뒤에 그냥 그렇게 하게 둔다.
이 부분에서 총공회록이나 공회의 행정에 전원일치가 기억이 나야 한다. 세월을 두고 각자 생각대로 하면서 지켜 보면 된다.


(가족들에 대한 오해)
백 목사님에게 오해가 생기는 몇 가지를 살펴 봤다. 백 목사님께 오해가 생기면 갑자기 그 가족들을 마구 비판하기 시작한다.
이럴 때는 공사 구별이라는 말이 참 생각 난다. 동문서답이라는 말도 있다. 내키는 대로 다 뿜어 댄다. 속에 있던 것이 나온다.
백영희를 따른 이유가 제 마음에 어떻게 한두 가지 맞으니 나머지는 덮어 놓고 다 옳다는 식으로 막무가내로 따랐던 것이다.
이렇게 되면 딱! 조선 사람이다. 그냥 우리 한 민족이다. 냄비 끓듯 난리다. 식을 때는 금방 차가워 진다. 광우병 소동 때처럼..

그 어떤 사람이라도 백 목사님께 대해 비판하면 나는 막아 낼 수 있다. 지금까지 제기 된 반론과 비판은 막아 냈다 생각한다.
다만 가족에 대한 문제는 다르다. 원래 허점도 좀 있다. 단점도 없지는 않다. 여기에다 온갖 비판을 시작하면 막기가 어렵다.
그렇다 해도 대부분은 막아 왔다. 백 목사님의 가족에 대해 아직까지는 그 어떤 비판도 막아 보든지 최소한 해명은 해 왔다.
그 과정에 늘 아쉬운 부분이 있다. 목사님의 가족들은 그런 비판과 피해를 보면서 자신들도 모르게 쌓여 온 것이 하나 있다.


수 많은 가족 중 남녀 1 명씩 유독 심했다. 사람에게 충성을 요구한다. 다른 분들은 그렇지 않다. 신세 지는 것도 싫어 한다.
남에게 주는 것도 싫고 남에게 받는 것은 싫어 한다. 정당한 것을 모두가 좋아 한다. 두 분의 경우는 무조건 충성을 원한다.
나는 백 목사님에게도 틀렸다 싶으면 물어 봤다. 끝까지 물어 봤다. 주교와 연구소 책임자가 옆에서 말리고 나서도 물었다.
나를 말렸던 분들은 이후 그들이 말하던 공회를 떠났다. 가족 중 두 분은 처음 만날 때부터 '훗날 배신하지 않을까' 물었다.

내가 떠날 사람이면 떠나겠다고 하겠는가? 더욱 충성한다고 하지! 사실 그런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이 취급이었다.
한 편으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가족을 활용만 하고 떠났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할까 이해도 되었다. 그 때마다 대답한다.
나의 족보는 부친이 처음 믿을 때부터 제일 가깝게 평생을 알고 있을 것이고 체질적으로 남을 배신하지는 못한다고 했었다.
배신이 없는 족보가 있을까? 충신이 없는 족보가 있을까?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사람을 세월 속에 겪어 보라는 뜻이다.


나는 수 많은 그 가족 전부를 상대로 충성했다. 그 분들 중에 어떤 분은 그런 충성을 받을 기회도 기억도 없다 할지 모른다.
나는 세세히 기억하며 입증이 가능하다. 가족 전부도 나를 남 달리 그렇게 배려했다. 그 점에서는 평생 고맙고 자랑스럽다.
나는 백 목사님께도 옳은 것만 충성했다. 백 목사님에게 잘못이 보이면 나는 물어 보고 해결을 했다. 하물며 가족이겠는가?
백 목사님에게 충성한 것이 아니라 나는 옳은 것에게 충성했다. 백 목사님의 가족이 이런 옳은 것에 맞을 때는 충성을 했다.

가족 중에 딴 마음을 먹고 접근 해도 겉으로 옳은 말만 하면 나는 맞장구를 쳤다. 속을 다르고 행동만 그런 척을 해도 그랬다.
그러다 갈랫길이 나오고 둘 중에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경우, 가족이 자기를 위해 죄를 짓자고 부탁하면 나는 즉각 거절했다.
백 목사님 생전에도 그랬다. 생전에 백 목사님의 목회에 가장 크게 영향을 끼치던 6명과는 그런 문제로 다 맞선 적이 있었다.
나는 그 분들과 백 목사님 생전에도 늘 하나로 가다 떨어 지고 떨어 져 가다가 다시 하나가 되었다. 목사님 사후가 아니었다.

그 기준은 '옳은 것'이었다. 내가 워낙 충성을 했고 그 분들도 가족 이상으로 아끼고 믿다가 보니까 시키면 다 하는 줄 알았다.
나는 처음 인사 때부터 미리 말을 했고, 중간에 문제가 생기면 안면 몰수 하고 딱 잘라 말을 했다. 그리고 때가 되면 단절했다.
시도 때도 없이 그 분들을 안다면서 끝 없이 몰려 다니며 심지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교리와 성경의 죄를 짓는 분들..
그 분들이 나 없는 자리에서는 내 욕을 한다. 그런데 그 분들이 나와 마주 앉으면 그렇게 하지 못한다. 사정을 알기 때문이다.



불신자 세계에서도 가끔 한 사람씩은 충신이 있을 수 있다. 신앙의 세계는 신앙의 의리를 가지지 충성은 주님께만 바친다.
백영희, 그 성함은 이 노선에 특별한 은혜를 가진 사람이면 신앙의 의리만은 가지는 것이 맞다. 그러나 구별은 해야 한다.
그 분 앞에서 온갖 찬성을 하고 충신처럼 행동했던 이들, 뒤로는 함과 같이 했던 분들, 장례 후에 각자 지난 날을 돌아 보라.
오늘도 그 가족 분들이 또 다시 옳은 말을 한다면 나는 적극 지원한다. 다만 한 번 속인 사람들에게는 보장책을 요구한다.

한 번은 나를 걸레처럼 써 먹어도 나를 던져 준다. 백 목사님께 받은 은혜 때문에 백 목사님이 말 없이 부탁한 의리 때문이다.
그러나 반복을 하게 되면, 그런데 또 그렇게 해 주면 죄를 길러 주고 옹호하게 된다. 처음은 속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당한다.
백 목사님도 그 누구라도 한 번은 속일 수 있다. 속아 줄 수 있는 것은 알면서 속아 준다. 그 것이 목자의 심정에 대속성이다.
그러나 반복이 되면 고범죄가 된다. 작정하고 악용을 하려 들면 단호하게 잘라 버렸다. 모두가 깊이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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