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오늘, 이 노선에서 본 현실

미국의 청교도 운동이 지나 간 자리

작성자
담당a
작성일
2022.03.22
한국의 건전한 교회는 '미국의 청교도'를 그리 강조한다. 미국 교회가 선교하고 길렀고 지금도 뜨겁게 교류하다 보니 그렇다.
몇 분이 모이면 서로 한국의 최고 청교도, 최후의 청교도, 이 시대의 청교도 등 호칭을 붙여 가며 끝 없이 반복하고 가르친다.
공회는 무식해서 청교도라는 단어를 세상 학교에서 들어 본 정도만 알고 있다. 최근 청교도에 대한 몇 가지를 들을 수 있었다.
듣고 보니 80년대 잠깐 듣고 지나 갔던 기억이 새롭다. 듣고 보니 그 때는 청교도의 고민과 다른 문제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영국에서 건너 온 이야기는 세상 상식이다. 미국의 초기 건국의 어려움도 그렇다. 그 과정에 그 신앙가들의 절박함이 있었다.
땅은 넓고 개척 과정은 험했고 주님을 향한 뜨거움은 기본인데 세월 속에 퇴색 되고 돈 때문에 이민자들이 대거 몰려 들었다.
신앙만 전부로 삼고 왔던 청교도 핵심과 그 신앙을 이어 온 분들은 2세대와 3세대로 이어 가며 속화 되는 후손들을 걱정했다.
오늘 기준으로 보면 별 것도 없고 오늘 기준으로 보면 모두 다 뜨거운 신앙인들이지만 그 시대 기준에서는 크게 걱정을 했다.

누구 한 사람이 깨우 치도록 설교를 해서가 아니라 17세기의 1세대를 이어 가던 18세기와 19세기의 미국 교회의 분위기였다.
요즘 아동 출산 때문에 온 나라가 모두 고민을 하듯이 또 온 나라가 너무 오래 사는 문제로 노후의 걱정이 저변을 자리 잡듯이
청교도가 개척한 미국 사회가 급격히 세상으로 물이 들어 가게 된 것은 미국 교회 전체의 기도 제목이 되었고 큰 배경이 된다.
이런 배경에 회개의 물결이 미국 전역을 몰아 쳤다. 모이면 눈물이요 설교가 시작 되면 통회 자복으로 부흥의 불길이 넘쳤다.



이 시기에 미국의 대각성 1차와 2차에 중심이 되거나 훗날 청교도의 회심과 진정한 신앙을 촉구하는 많은 기록들도 나온다.
조나단 에드워드를 비롯하여, 수 많은 이름들이 오늘까지 전해 진다. 전체적으로 이 분들의 고민은 진정한 크리스챤이었다.
조상 때부터 모두가 믿는 가정이고 믿는 사회다 보니 모두가 타고 난 교인들이었다. 실제 자신들의 신앙은 전혀 없어 보였다.
교회에는 이름만 올려 놓았고, 교회의 출석과 의무는 한 눈에 봐도 그냥 대충이었으며, 그들 마음은 세상에 매진하고 있었다.

이 것을 어떻게 신자라 하겠는가, 이들이 어떻게 천국을 가겠는가, 이들을 그냥 둔다면 모두 영원한 불 구렁 지옥이 아닌가..
18세기의 1차와 19세기 2차 대각성은 교회의 역사를 그 전과 그 후로 나눌 만큼 위력이 대단했다. 당대의 순복음적이었다.
이런 기록을 대할 때마다 나는 공회의 구원론으로 지켜 봤다. 일단 식어 지고 죽어 있는 신앙을 일깨운 것은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당시에 부흥사 청교도 지도자들, 그 설교와 그 기록들이 지옥에 갈 사람이라고 외쳤던 이들이 정말 미중생자였을까?

당시 기록으로 오늘의 교회와 우리를 평가한다면 우리는 그 때 미중생자라는 비판을 받은 교인들보다 훨씬 심각한 상태다.
천국과 지옥, 중생과 미중생을 분류하는 기준은 진리에 속했으니 늘 동일하다. 그 때 기준이면 지금은 중생자가 거의 없다.
당대 기록에 감명을 받고 오늘도 그렇게 살고자 하는 분들은 자기들을 기준으로 자기들만 못하면 미 중생으로 쳐 버린다.
공회 출신 중 현재 한국 교계에서 한국의 최고 또는 최후의 청교도라는 이름으로 미국 청교도 운동을 연구하는 이들이 많다.

이들이 대체로 타협 없이 잘 믿으려 하는 것은 확실하다. 또한 신앙이 1등은 아닐지라도 2등 이하로 내려 갈 것 같지도 않다.
그런데 이 분들이 제시하는 미국의 각성 운동 때 나오는 각종 중생과 미중생의 분류로 본다면, 이 분들도 미 중생일 듯하다.
청교도의 이 부흥은 신앙의 운동이었다. 교리 정립이 아니었다. 기본구원만 알던 때다. 건설구원을 알면 참 간단해 보인다.
중생 여부는 사람이 알 수 없으니 일단 그 판단을 좀 미뤄 두고, 중생은 되었으나 믿는 행동이 늦은 사람이 있다. 그 문제다.

도저히 믿는 사람이라 할 수 없는 사람이 있을 때, 우리는 그를 두고 믿는 사람이 믿는 사람답지 않다 라고만 말하면 어떨까?
중생이 된 사람은 죽는 날까지 늘 믿는 사람다운 행동을 하게 되고 모두가 인정하도록 그렇게 만드는 것일까? 아닐 듯 하다.
갈2:11에서 바울이 베드로의 외식을 면책했다. 베드로의 겉 모습만을 두고 볼 때 중생 된 교인이 이럴 수가 있느냐는 문제다.
바울이 면책을 잘못했다고 바울이 미 중생이라 그런 것도 아니며 베드로가 외식을 했다 하여 미 중생자라 그런 것은 아니다.



세계 교회사와 미국 교회사와 한국 교회사만을 놓고 봐도 역사적으로 중요한 순간마다 구원론 문제는 빠지는 수가 없다.
중생 후 신앙은 중생 그 자체와 성격이 전혀 다르게 진행 된다는 것만 알았다면 교회사의 거의 모든 분쟁은 막을 수 있다.
자기와 다르면 바로 자기 머리 속에 저 쪽 저 사람들은 과연 천국 갈 사람들일까, 참 교회일까, 형제일까, 아니면 가라지?
이렇게 되다 보니 열심을 가질수록 더욱 천국과 지옥을 두고 곡식과 가라지를 두고 목숨을 걸고 싸웠다 할 만큼 심했다.

진리 연구를 대충 하자는 것이 아니다. 믿는 가정에 태어나 생각 없이 경험 없이 수십 년도 교회를 다니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다고 직접 중생의 경험이 없으면 미중생이며 신앙 경험이 특별히 없는 상태로 죽으면 모두 영원히 지옥에 갈 사람일까?
표시를 잘 내는 사람이 있고 깊은 마음에 묻어 두고 표시를 잘 내지 안는 사람도 있다. 표시를 냈으나 남들이 모를 수도 있다.
어느 시대, 어느 교회, 어떤 모임이 인준을 해야 중생일까? 그래서 될까, 그렇게 하려고 나설 수 있는 일일까? 구원론 문제다.

최근에 좋은 자료를 접했다. 내가 말하는 좋은 자료는 알기 쉬워야 하고 간단해야 한다. 그리고 최대한 객관적이라야 한다.
이 자료를 이 곳의 연구 게시판에 올려 놓고 구체적으로 평가해 보려 한다. 이런 표현, 이런 대목, 이 것은 분명히 문제라는..
청교도의 부흥 운동 과정에 나타 난 감정주의는 이미 반론이 많다. 그 것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구원론의 본질 문제다.
한 사람은 이럴 수 있고 다른 사람은 저럴 수 있다. 중생은 기본적으로 사람이 파악할 수가 없다. 느낄 수는 있는 주관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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