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 노선에서 본 현실
아리랑 곡에 삼위일체 찬양을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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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06
사랑의교회가 설 연휴였던 1월 31일 주일 오전 예배 때 아리랑에 삼위일체 가사를 담고 천정과 옷까지 구정을 반영했다.
한국의 자유주의 좌경 신학과 종북의 세력과 온 사회가 지난 몇 년간 한국교회를 목표로 우선 사랑의교회를 매도했었다.
한국의 일반 교회 전부가 함께 맞아야 할 매를 홀로 당하듯 고생을 했기 때문에 연구소는 늘 애정과 애틋함을 보내 왔다.
그렇다고 해서 그 교회의 노선과 교리와 그 교회의 애국심의 표현 방법까지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와는 아주 다르다.
다르기도 하고 틀린 것이 있다 해도 한국교회 때문에 그 교회가 평소 당할 고생 이상을 겪을 때 외면하지 않는 것이 맞다.
최근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그 교회에 흠이 될 수 있는 것은 항상 조심해 왔다. 후원하는 입장에서. 그러나 이 것은 아니다.
(순복음교회)
1970년대 백 목사님은 순복음교회와 조용기 목사님을 종종 비판했다. 80년대는 비판 호평을 번갈아 가며 사안마다 달랐다.
기도를 많이 해야 한다는 점을 말할 때 조용기 목사님을 좋은 혜로 들었고 방언이나 교회 밴드 등의 문제에는 주로 비판했다.
김현봉 목사님에 대해서는 평생 극히 좋게 평가 했고 가끔 담담하게 소개한 적도 있다. 그리고 드물게 한 번씩 비판도 했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비판과 다행스러운 면을 섞으며 소개했다. 분명한 것은 자기에게 대해서는 비판적인 소개가 참 많았다.
한 사람을 두고 왜 비판과 호평을 번갈아 할까? 사안에 따라 다르다. 기도를 해야 한다거나 많이 해야 한다는 말은 분명 맞다.
그런데 그 기도가 땅에 것을 전부로 삼고 돌진한다면, 그 것도 첫 신앙의 사람이 아니라 교회적으로 단체로 거의 그렇게 되면?
(사랑의교회)
순복음교회든 사랑의교회든 공회의 일반 기준으로는 교계의 이런저런 교회로 접한다. 교회다운 교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기독교를 치려고 순복음교회를 타깃으로 삼는 상황이라면 순복음의 교리와 행위가 다 옳아서가 아니라 후원을 한다.
역시 사랑의교회를 치면서 한국의 교회를 치는 방법으로 삼게 되면 사랑의교회를 최대한 호평하고 그 수고를 늘 감사한다.
공회 교회는 찬송의 표시가 늘 아쉽다. 가사의 깊이에 곡이 우리를 끌어 가는 바람에 매몰이 되면 소리가 나지 않을 수 있다.
찬송을 건성으로 또는 그냥 별 생각 없이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공회의 찬송 상대 자세가 높다 보니 파생 되는 단점이다.
백 목사님은 이런 분위기 때문에 그 노년의 전국 집회에 피아노 담당에게 재즈풍으로 건반을 부서질 만큼 뚜드리라고 했다.
사랑의교회가 설날 연휴에 강단에 오른 분들이 한복을 입고 찬양대는 색동 리본을 하고 예배당 천정은 색동 조명을 돌렸다.
그리고 찬송은 아리랑 곡에 삼위일체 하나님을 넣고 한 맺힌 가사를 감사의 가사로 바꾸어 모두 손을 들고 민속 춤을 췄다.
애양원의 병원 벽화에 한복 입은 예수님이 한복 입은 환자를 치료하는 모습이 있다. 한국적 민속적 전통적 요소를 가미했다.
진리가 상황 논리로 가면 신앙의 자유주의가 되어 탈선이지만 설날의 한국교회가 민속풍의 상황 찬송은 좋은 것이라 한다.
한국에 있는 교회의 한국적 예배 풍속, 그 목사님의 고향 사랑 민족 사랑 가족 사랑은 모두 이해한다. 좋은 분이라 그렇다.
이 교회는 광복절이나 삼일절이나 국가에 특별한 일이 있으면 애국가도 예배 시간에 합창한다. 죄 된다고 하지는 않겠다.
애국가에 '하나님' 가사가 있으니 가능하다. 한국에 살다 보니 한국 말을 하듯 한국의 요소가 보이는 것은 주신 현실이다.
그런데 한국적을 굳이 마음에 담고 한국적이기를 노력하게 되면 이 것은 이야기가 달라 진다. 예배는 하나님이 기준이다.
가인이 농사 짓는 환경 때문에 자기 형편에 맞춰 제사를 드렸다. 그러나 자기가 더욱 강조 되며 결국 자기 중심이 되었다.
곡식으로 제사 드리는 것은 레2장에 소제도 있고 또 다른 제사에도 돈이 없으면 곡식으로 대신할 수 있게 훗날 허락을 했다.
주신 현실을 하나님께서 정해 주셨다고 받으면 그 현실은 내게 준 위치며 사명이 된다. 그런데 그 현실에 피동 되면 실패다.
기독교를 치려고 사랑의교회를 표적으로 삼는데도 서울 한복판에서 버텨 주니 참 고맙다. 그렇다고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공회도 그 노선과 교리가 우수하지 그 곳의 사람과 생활과 표정과 그들의 개개인이 우수한 것은 아니다. 혼동하면 안 된다.
공회의 노선과 교리가 옳다면 그 장점을 앞 세우며 다른 것이 돋아 나고 스며 드는 것을 늘 조심해야 한다. 어디든 같다.
아리랑이 주는 감상은 하나님 없던 미신과 증오와 좌절이다. WCC 세계 대회 때 성찬의 잔에 막걸리가 들어 간 적도 있다.
(영상 자료)-회원용
한국의 자유주의 좌경 신학과 종북의 세력과 온 사회가 지난 몇 년간 한국교회를 목표로 우선 사랑의교회를 매도했었다.
한국의 일반 교회 전부가 함께 맞아야 할 매를 홀로 당하듯 고생을 했기 때문에 연구소는 늘 애정과 애틋함을 보내 왔다.
그렇다고 해서 그 교회의 노선과 교리와 그 교회의 애국심의 표현 방법까지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와는 아주 다르다.
다르기도 하고 틀린 것이 있다 해도 한국교회 때문에 그 교회가 평소 당할 고생 이상을 겪을 때 외면하지 않는 것이 맞다.
최근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그 교회에 흠이 될 수 있는 것은 항상 조심해 왔다. 후원하는 입장에서. 그러나 이 것은 아니다.
(순복음교회)
1970년대 백 목사님은 순복음교회와 조용기 목사님을 종종 비판했다. 80년대는 비판 호평을 번갈아 가며 사안마다 달랐다.
기도를 많이 해야 한다는 점을 말할 때 조용기 목사님을 좋은 혜로 들었고 방언이나 교회 밴드 등의 문제에는 주로 비판했다.
김현봉 목사님에 대해서는 평생 극히 좋게 평가 했고 가끔 담담하게 소개한 적도 있다. 그리고 드물게 한 번씩 비판도 했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비판과 다행스러운 면을 섞으며 소개했다. 분명한 것은 자기에게 대해서는 비판적인 소개가 참 많았다.
한 사람을 두고 왜 비판과 호평을 번갈아 할까? 사안에 따라 다르다. 기도를 해야 한다거나 많이 해야 한다는 말은 분명 맞다.
그런데 그 기도가 땅에 것을 전부로 삼고 돌진한다면, 그 것도 첫 신앙의 사람이 아니라 교회적으로 단체로 거의 그렇게 되면?
(사랑의교회)
순복음교회든 사랑의교회든 공회의 일반 기준으로는 교계의 이런저런 교회로 접한다. 교회다운 교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기독교를 치려고 순복음교회를 타깃으로 삼는 상황이라면 순복음의 교리와 행위가 다 옳아서가 아니라 후원을 한다.
역시 사랑의교회를 치면서 한국의 교회를 치는 방법으로 삼게 되면 사랑의교회를 최대한 호평하고 그 수고를 늘 감사한다.
공회 교회는 찬송의 표시가 늘 아쉽다. 가사의 깊이에 곡이 우리를 끌어 가는 바람에 매몰이 되면 소리가 나지 않을 수 있다.
찬송을 건성으로 또는 그냥 별 생각 없이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공회의 찬송 상대 자세가 높다 보니 파생 되는 단점이다.
백 목사님은 이런 분위기 때문에 그 노년의 전국 집회에 피아노 담당에게 재즈풍으로 건반을 부서질 만큼 뚜드리라고 했다.
사랑의교회가 설날 연휴에 강단에 오른 분들이 한복을 입고 찬양대는 색동 리본을 하고 예배당 천정은 색동 조명을 돌렸다.
그리고 찬송은 아리랑 곡에 삼위일체 하나님을 넣고 한 맺힌 가사를 감사의 가사로 바꾸어 모두 손을 들고 민속 춤을 췄다.
애양원의 병원 벽화에 한복 입은 예수님이 한복 입은 환자를 치료하는 모습이 있다. 한국적 민속적 전통적 요소를 가미했다.
진리가 상황 논리로 가면 신앙의 자유주의가 되어 탈선이지만 설날의 한국교회가 민속풍의 상황 찬송은 좋은 것이라 한다.
한국에 있는 교회의 한국적 예배 풍속, 그 목사님의 고향 사랑 민족 사랑 가족 사랑은 모두 이해한다. 좋은 분이라 그렇다.
이 교회는 광복절이나 삼일절이나 국가에 특별한 일이 있으면 애국가도 예배 시간에 합창한다. 죄 된다고 하지는 않겠다.
애국가에 '하나님' 가사가 있으니 가능하다. 한국에 살다 보니 한국 말을 하듯 한국의 요소가 보이는 것은 주신 현실이다.
그런데 한국적을 굳이 마음에 담고 한국적이기를 노력하게 되면 이 것은 이야기가 달라 진다. 예배는 하나님이 기준이다.
가인이 농사 짓는 환경 때문에 자기 형편에 맞춰 제사를 드렸다. 그러나 자기가 더욱 강조 되며 결국 자기 중심이 되었다.
곡식으로 제사 드리는 것은 레2장에 소제도 있고 또 다른 제사에도 돈이 없으면 곡식으로 대신할 수 있게 훗날 허락을 했다.
주신 현실을 하나님께서 정해 주셨다고 받으면 그 현실은 내게 준 위치며 사명이 된다. 그런데 그 현실에 피동 되면 실패다.
기독교를 치려고 사랑의교회를 표적으로 삼는데도 서울 한복판에서 버텨 주니 참 고맙다. 그렇다고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공회도 그 노선과 교리가 우수하지 그 곳의 사람과 생활과 표정과 그들의 개개인이 우수한 것은 아니다. 혼동하면 안 된다.
공회의 노선과 교리가 옳다면 그 장점을 앞 세우며 다른 것이 돋아 나고 스며 드는 것을 늘 조심해야 한다. 어디든 같다.
아리랑이 주는 감상은 하나님 없던 미신과 증오와 좌절이다. WCC 세계 대회 때 성찬의 잔에 막걸리가 들어 간 적도 있다.
(영상 자료)-회원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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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은혜 - 중생의 순간인가, 중생을 따르는 현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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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크게 바뀌면 지진이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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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찬송가 : 개인, 교회, 공회, 연구소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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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의 옹니에 걸렸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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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의 무형 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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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록 충성하라'를 왜곡해 버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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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WCC의 논리는 이스라엘식 옷만이 전부냐, 유대인식 노래만 찬송이냐, 나라마다 풍습이 있으니 존중할 일이라고 했다. 무당 굿을 해도 할 말이 있다. 그들이 처음부터 그렇게 무당 굿을 하지 않았다. 한 걸음씩 슬금슬금 허물어 갔다. 그 때마다 저런 식이었다. 10년을 양보해도 결과적으로는 한 걸음 더 나아 갔다. 그러다 보니 착시 현상이 일어 난다. 평소 절대 성경 중심, 타협 절대 불가를 외치며 아주 가끔 한 걸음만 넘겨 준다. 그리고 그 누적이 오늘 교계의 모습이다. 오늘 교계의 보수는 어제 기준으로 보면 진보 중에서도 핵심들이었다. 통합은 WCC의 중심이다. 그 통합이 오늘 보수의 보루니 중심이라고 평가 받고 있다. 기준 자체가 좌측의 중심까지 갔다. 어느 날 또 더욱 좌측으로 간다. 그러면서 그들이 보수라 한다. 보수는 쳐 죽일 사이비가 되어 가는 것이다. 그렇게 분위기를 만드려고 한 쪽에서는 십자군 운동에 칼을 들자면서 장단을 맞춰 주고 있다. 한 길 원래의 바른 길을 고수하는 교회의 목에는 좌측의 중심에 서서 보수 중심이라는 세력의 칼이 왼 쪽에서 노려 보고, 그들과 맞서 칼을 들자는 극우인 척 하는 이들이 맞짱구의 칼이 오른 쪽에서 겨누고 있다.
불신 조상 이 장군도 4백 년 전에 죽자고 하면 살 것이요 살자고 하면 죽을 것이라 했다. 필사즉생 필생즉사.. 마16:25에서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주님을 위해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하신 말씀을 굳이 꺼내지 않아도 불신자조차 아는 상식이다. 현재 코로나에 동성 문제까지 나오며 차별금지법으로 분분하다. 이 문제를 두고 교회를 위해 대신 싸우며 막아 서는 이들, 이들이 어느 날 우리 목에 좌우로 칼을 겨눌 이들이다. 현재까지 활동한 궤적이 그렇다. 그래서 공회는 교계의 기독교 수호 운동에 나서지 못하는 또 하나의 이유를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