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오늘, 이 노선에서 본 현실

마지막 새해 인사, 특권을 가지고 싶은 마음..

작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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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2.01.30
* 백 목사님의 새해
공회는 주일만 날이고 생일, 환갑, 결혼 기념일, 명절 같은 세상 날들은 물론 개척 예배나 헌당식도 하지 않고 기념일도 없다.
개혁주의를 강조하는 이들은 없어야 한다고 해서 없애려 노력하나 공회는 원래 체질적으로 그런 겉 모습은 출발부터 없었다.
그런데 백 목사님은 1980년대에 들면서 1월 1일의 신년 인사를 받기 시작했다. 사연이 있으나 다른 기회에 설명하면 좋겠다.
주일학교로 전력을 다할 때 반사들의 신앙도 어렸고 불신 가정 학생들이 워낙 많이 오다 보니 명절은 어느 날 전쟁이 되었다.
불신 가정의 설날과 추석은 너무 철저하여 제사 때문에 분쟁이 많았고 주일과 겹치면 반사들은 학생들을 위해 정말 기도했다.

주교의 부흥 때문에 세상 명절을 감당하기 어려울 상황이 되기 전에는 교인과 반사가 가정 분위기를 봐 가며 명절을 지냈다.
주교 부흥으로 명절의 제사나 죄 짓는 분위기로 흥청 대는 상황에 신앙 어린 반사를 지도하기 위해 명절 기도회를 시작했다.
80년대에는 설과 추석에는 아침을 가족과 일찍 먹고 반사를 중심으로 동래의 양산기도원에 교회 차원에서 산 기도를 갔다.
서부교회는 한 번 시작하면 오래 간다. 웬만하면 중단이나 변경이 없다. 그러나 보니 예전부터 있어 왔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어쨌든 세상 명절에는 제사 등의 죄 문제가 많아서 세상 명절을 무시하기 위해 신년 1월 1일을 강조하여 세상 명절을 눌렀다.



<1989.1.1. 백 목사님의 마지막 새해>
목사님은 1988년 하반기부터 1989년의 순교를 미리 읽으며 모든 면으로 정리와 대비를 하고 있었다. 1월 1일도 특별했다.
80년대부터 세상 명절의 죄나 방종을 방지하려 신년 1월 1일의 인사를 받아 가고 있었으나 마지막 신년은 기다리신 듯했다.



사진의 왼 쪽 아이는 연구소 이민영 소장의 둘째 아들, 백영희 목사님, 그 다음 아이는 세배돈 1천원을 들고 있는 행정실장 딸
얼굴이 절반 보이는 운전기사 김성묵 집사님, 장영목 주교 총무, 제일 위에 김수진 수위실, 나머지 3명은 연구소 직원들이다.
연구부장과 연구소장 사이에 중간반을 재편하며 특수반으로 전환하던 이치영 특수부장. 여기는 서부교회 5층 목사님 방이다.
목사님의 한복은 평생 겨울이면 늘 생활 속에 입던 옷이다. 60년대까지는 강단에도 한복 입고 서셨다. 고무신에 한복이었다.


* 새해는 성찬과 한 해의 신앙 각오를 늘 가졌다.
백 목사님도 성탄이나 부활절 맥추절 추수감사절 때는 관련 설교를 잊지 않았다. 또 새해에는 한 해를 위한 말씀도 꼭 전했다.
1983년 1월 1일, 백 목사님은 반 년이 다 하도록 회복의 조짐이 없었고 이대로 장례를 치르게 되나 싶을 정도로 위중했었다.
총공회적으로는 백태영 목사님 등 공회 지도부가 목사님의 퇴진을 원하고 있었고 서부교회 내부에서도 그런 분위기는 컸다.
겉으로는 당시 아주 고령인 목사님을 쉬게 하자는 것인데 실은 어른이 물러 나야 모두에게 큰 자리와 역할이 생길 기대였다.
이 때 중간반만은 목사님에 대해 진심으로 회복과 복귀를 원하고 있었다. 중간반 여반 부장이 백명희 사모님, 막내 딸이었다.

1월 1일에도 위중하여 병수발하는 몇 사람 는 출입하지 못했다. 백 부장님은 중간반과 병 수발 때문에 출입이 자유로웠다.
2천 명 중고등 학생을 출석 시키며 6천 명 이상의 재적 학생을 관리하던 30 명 넘는 중간반 반사들에게는 격려가 필요했다.
백 부장님은 백 목사님께 특별히 부탁하여 중간반사 부부만 5층의 방으로 새해 첫 인사와 첫 기도를 받도록 주선을 했었다.
목사님의 중환 때문에 83년 1월 1일의 새해 인사는 엄금이 되었고 모두가 목사님의 건강 때문에 당연하게 받아 들였었다.
4시 30분의 새벽 예배가 끝나면 본당 옆 문에 붙은 편집실에서 새벽부터 설교 원고를 보던 나는 중간반 분위기를 느꼈다.

뭔가 소리 없이 눈치만 가지고 부산하다. 그리고 백 부장님의 손짓이 얼핏 보인다. 그렇다면 그 다음 행동은 그냥 알 수 있다.
중간반 반사들만은 특별한 사명을 위해 목사님께 새해 인사와 새해 기도를 받는 것이다. 나는 몇 분 거리의 집으로 빨리 왔다.
평생 고향에서만 신앙 생활하던 어머님에게 노년 마지막 생을 백 목사님 밑에서 다시 은혜 생활을 하시도록 부산에 모셨다.
중간반만 가는 자리에 어머님을 함께 모시고 가면 더 좋을 듯했다. 사과 한 상자를 급히 마련하고 편집실로 다시 올라 갔다.
원래 내 성향으로는 편집실 직원들 전부를 몰아서 중간반을 압도하며 가는 식인데 5층의 문을 통과하려면 시간이 없었다.


중간반사들이 새벽 예배 후 5층으로 가려면 옷을 입어야 했고 집까지 다녀 오려면 거리가 다양했다.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1월 1일, 새벽 예배 후인데도 날이 아주 어두웠다. 편집실에 도착하자 곧 바로 중간반사들이 숨을 죽이고 계단을 올라 갔다.
제일 뒤에 따라 붙어 함께 올라 갔다. 계단이 좁아서 두 사람이 함께 하기도 버겁다. 알려 지면 난리일 터이니 일사분란했다.
5층 앞에 이를 때쯤 낌새를 눈치 챈 중간반이 수군거렸고 한 분이 '중간반만 특별히 허락 받았으니 돌아 가라'고 막아 섰다.
서부교회와 총공회의 특권층, 그 자부심이 중간반의 힘이다. 백 목사님 신앙 세계에는 특권층이라는 개념이 아예 없었다.

나는 착하게 자라지 않았다. 그래서 이런 순간에는 나는 참 기특한 편이다. 막아 서는 그들에게 말 없이 손으로만 밀어 냈다.
새해 인사 가며 중환의 목사님께 소란을 낼 수 있을까? 내게 표시를 낸 그들의 잘못이고 어느 자리인데 내가 양보하겠는가?
중간반사들은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 서부교회 기준으로 다 선배며 특권층이다. 그러나 옳지 않을 때는 나는 막히지 않는다.
좁은 방에 모두가 들어 가다 보니 나와 어머님은 문짝에 닿는 제일 뒷자리에 앉았다. 백 목사님은 제일 뒤에 누군지 물었다.
표시가 날까 싶어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예리하게 짚어 냈다. 백 부장님은 누구와 누구입니다. 말씀과 기도가 진행 됐다.

목사님 병환이 걱정이라면 중간반사들부터 올라 가지를 말았어야 했고 한 팀만 올라 간다면 함께 간 사람 탓할 일이 아니다.
중간반만의 특권, 그들에게만 그냥 내려 지고 쥐어 진 그 특권의 틀, 그 것에 손상이 아팠던 것이다. 기득권의 공회의 원수다.
나는 체질적으로 좌파다. 기득권이 싫다. 특권층은 밉다. 그들이 훌륭하고 내가 못 나서 그렇다 해도 주어 지는 것은 싫었다.
백 목사님께 3개월 배우며 그런 성향을 깔끔히 털었다. 그런데 구조적으로 잘못 된 특권층이 있으면 그들에게 막히지 않았다.
서부교회 최고 엘리트 특권층, 그런데 중간반이라는 조직 때문에 그들에게 밀려 나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늘 이기며 살았다.

아마 그 다음 해 5월일까? 아니면 82년 5월일까? 전국 집회가 되면 앞 자리 수백 석은 자리 차지 때문에 정말 치열해 진다.
나는 항상 제일 앞 좌석을 잡았다. 가끔 2열로 갈 때도 있으나 거의 없었다. 내가 앉은 자리에 그 분들이 자리를 비키라 했다.
그냥 쳐다 보자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백 목사님이 이 번 집회에는 중간반사들이 전부 제일 앞 자리에 앉으라고 지시했단다.
'목사님이 제일 먼저 가서 자리를 잡으라는 것이냐, 놀다가 와도 먼저 앉은 사람에게 비키라는 특권이냐' 내 주지를 않았다.
한 사람이 못하니 여러 사람이 몰려 왔다. 백 목사님 지시란다. 이들은 목사님을 모른다. 특권이 아니라 그리 되라는 것이다.

주교 장영목 총무가 나와 같았다. 나와 장 총무 두 사람은 중간반 30명 넘는 전체를 대할 때 늘 만만하게 상대했다. 끝까지...
세상 싸움도 힘과 떼 싸움보다 기싸움이 강하다. 신앙의 세계는 신앙의 힘이 아니면 기싸움을 하는 곳이다. 숫자가 아니다.
이런 면 때문에 지금도 이 노선 하나로 지명도 높은 단체나 대표와 편하게 마주 한다. 이 노선이 너무 대단하기 때문이다.
이런 언행, 이런 자세, 이런 현장의 대처 방법과 표현까지 설교록에는 세세히 있다. 설교록을 연구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대부분 다 그렇겠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목사님께 감사가 한이 없다. 그 분이 아니었더면 지금과 정반대의 길에 섰을 것이다.


새해가 될 때마다, 그 분을 뵈러 5층을 갔던 때가 기억 난다. 행복해 진다. 혼자 천하를 다 가진 듯하다. 누가 무슨 말을 해도.
그 때는 그냥 좋았지 그 분과 그 신앙과 그 지도와 그 깨달음과 그 실행의 가치와 높이가 어느 정도인지 감을 잡지 못했다.
나는 평생 백영희와 그 신앙에 틀린 곳을 한 시도 빠짐 없이 살펴 본다. 그 것을 고치고 발전 시키면 그 것이 내게 복이 된다.
사소한 것은 많이 발견했다. 중대한 것은 아직도 발견하지 못했다. 다만 중도에 멈춘 것은 곳곳에서 중요한 것을 찾아 냈다.
주님 오실 때까지 교회는 고쳐 가고 자라 가야 한다. 또 배워야 한다. 중단이 되면 그 것이 오만이며 그 자리가 사망이 된다.

오늘의 내가 성경 하나만 가지고 34년을 설교할 수 있게 된 것. 주석이나 신학서나 세상 어떤 책도 보지 않게 한 것도 그 분..
오늘 내가 남들이 다 떠난다는 곳에서 오로지 한 길을 걸으면서도 이 것이 감사하고 감사해서 어쩔 줄 모르게 한 것도 그 분..
그 분 설교 안에 실수를 잡고 중단 된 것을 이어 가야 한다고 인식을 시키고 그렇게 갈 수 있게 한 것도 사실 바로 그 분이다.
교인의 출산, 진학, 취업, 결혼, 이 노선을 전부로 삼자고 살피게 된 것과 세상 어떤 흐름과 여파도 대처하게 한 것도 그렇다.
그 분 아니었더면 헬라어 히브리어 라틴어 무저갱을 헤맸을 것이고 나도 특권층 될 것이 있으면 그 이익을 철저히 뽑았다.

새해가 될 때마다 나는 인사를 피한다. 구정 추석은 아예 없다. 생일도 어떤 기념일도 가진 적이 없다. 기억은 하고 있다.
80년대와 너무 바뀌고 바뀌어 버린 세상, 설교록이 미처 그려 놓지 못한 상황이 쏟아 지나 아직은 파악에 불편은 없었다.
모두가 그 분에게 성경을 읽는 법, 신앙의 기본 자세, 그리고 자기를 먼저 돌아 보게 한 여러 가르침을 받은 은혜일 뿐이다.
서부교회 중간반, 백 목사님 평생에 구조적 특혜를 주며 미래를 약속한 집단. 그 중간반을 거치며 제대로 된 사람은 없다.
그 곳을 통과하면서 중간반의 그 조직이 아니라 충성의 기회로 삼은 중간반 반사들은 훗날 성공했다. 대부분은 다 실패자다.

새해 인사에 중간반의 착오를 지적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늘 긴장하며 조심하지 않으면 자기 주변에 기득권을 쌓는다.
범죄한 가인이 바로 놋이라는 성을 쌓았던 것처럼. 하나님의 안보와 은혜가 없어도 구조적으로 자기를 위해 뭔가를 쌓는다.
이 것이 우리며 인간의 본성이다. 심지어 부부끼리도 그렇다. 부모 자녀 사이도 그렇다. 인체 속에서도 장기끼리도 그러하다.
교회도 목사 장로 직분부터 당회 노회 총회 신학자 신학교 그 어떤 것도 그냥 두면 바로 세상이 된다.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칼빈은 이런 것을 개혁이라고 했다. 지금 교계의 좋은 교회들은 대부분 개혁을 간판에 걸어 놓았다. 개혁이 뭔지 모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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