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오늘, 이 노선에서 본 현실

하나님이 하시게 해야 하는데..

작성자
담당
작성일
2022.01.12
(성구를 제시할 때)
교회의 행사나 설교 중에 이런 말을 흔하게 듣는다.
인간이 자기 마음대로 다 해 놓고 마지막에는 '하나님이 다 하셨습니다.' 이렇게 포장을 해 버리면

1. 겸손해 보인다. 불신자라도 비판하기는 어렵다.
2. 신앙스러워 보인다. 교인이라면 '하나님' 이름을 직접 맞서기는 거의 어렵다.
3. 그리고, 참으로 위험한 것은 자기가 한 일에 하나님을 묶어 놓는다. 인질로 잡아 두는 셈이 된다.


이런 위험성이 많을 때 공회는 이런 표현은 내부적으로나 사용하지 외부인을 상대로 좀처럼 사용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공회는 찬반으로 격화 되는 논쟁에 성구 인용을 최소화 한다. 근거가 되면서 공격이 될 성구 한두 개로 그친다.
성경의 근거를 아예 밝히지 않는 경우도 많다. 덜 성경적이어서가 아니라 더 성경적이고 성경 지상주의여서 극히 조심한다.
교계든 어디든 신앙의 논쟁에는 성구가 넘쳐 난다. 지금은 검색 기능이 있어서 중국 쪽으로 가면 엄청 나게 쏟아 놓는다.
이런 모습을 두고 목사님은 '설사'라고 표현한다. 글을 적고 검토를 받아 본 적이 많다. 글부터 최소화 시킨다. 성구는 더욱..

이 곳은 논점을 가진 상대방과 둘의 대화가 아니어서 사연 자체를 모를 분들 때문에 글 자체는 적지 않게 적어 왔다.
그러나 성구 인용만은 늘 최소화 해 왔다. 사연 자체를 모를 사람들 때문에 적지만 글의 분량을 두고는 늘 자책한다.



(사람의 충성, 하나님의 주권)
역사적으로도 인간에게 자유 의지가 있다면 하나님에게는 주권이 없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면 사람은 할 일이 없다.
이 논쟁이 그친 적은 없다. 요즘은 논쟁 대상으로 삼지 않는 듯하다. 현장에서 실제 생활에서 주권을 고민하지도 않으니..
그래도 공회가 감사한 것은 어느 공회든 배운 것이 남 다르기 때문에 실제로는 인간이 다 하지만 그래도 주권을 말한다.
다른 교회보다 탈선의 정도가 덜 하다는 뜻이다. 도적질이 영광스러운 도적에 비하여 초보 도적은 늘 가책은 있을 듯하다.

공회 다른 사람들처럼 나 역시 함께 배운 그 깊고 깊은 은혜 때문에 만사를 두고 충성을 하면서 주권을 잊어 본 적은 없다.
이 정도에서 그쳐야 하나? 그렇다면 충성에 미진하지 않을까! 충성에 미진하지 않으려 하다 보면, 주권을 넘어 서지 않나!
충성과 주권에 맡기는 모순의 2 가지를 다 만족 시키려다 보면 늘 정확한 지점을 정하기 위해 고민한다. 끝 없이 고민이다.
2013년, 백도영 자녀분이 부친 설교는 무조건 호적의 자녀 재산이라고 고소를 할 때 부공3은 그 대응과 그 선을 고민했다.

연구소 이름으로 이 노선 연구와 실행에 매진해 온 30년 세월이 있어 시작할 때의 방향과 그 원칙을 정하는 것은 단호했다.
모두가 은혜 가운데 전원일치가 되었다. 꼭 같은 사상이니 두 말이 없었다. 심지어 극단적으로 내부 비판하던 이들까지도.
일부는 1년이 지나면서 교리와 각오와 약속을 변경했다. 먹고 살자면 방법은 없었을 듯하다. 이해를 앞 세우면 그리 된다.
나 개인 입장으로는 그 때도 복잡하지 않았고, 모두가 돌아 설 때도 복잡하지 않았고, 이제 열매가 다 나온 지금도 꼭 같다.


다만 중간에 한 번의 고비가 있었다. 대법관 출신으로 관련 판결만 전문했던 분이 막 퇴임하여 이 건을 적극 지원을 했다.
이 분이면 모두 해결된다. 다만 비용이 애매했다. 공회는 늘 1천 원 연보가 기본이다. 그 돈을 기준으로 하면 큰 돈이었다.
다른 교회라면, 공회라도 다른 곳이라면, 그리고 이 것이 저작권 문제가 아니었다면 돌아 볼 것 없이 이런 기회를 잡는다.
그런데 저작권이라는 가장 중요하고 큰 이 노선의 핵심 가치 문제였다. 그를 선임하면 인간으로서는 최상의 충성이 된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해결이 되면 누가 봐도 저작권 사건에 대한민국에 1명뿐인 기회를 잡았으니 그 분의 실력으로 끝난다.
그리고 우리로서는 큰 돈을 지출한 것이 충성이고 그런 분을 만나고 제안을 받도록 노력한 것까지만 충성에 포함이 된다.
그렇다면 이런 선택으로 이겼을 때 우리가 얻는 것은 '충성'이다. 이 노선의 핵심 가치에 대한 우리의 충성은 충분히 보인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 속에 우리에게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결정, 하나님께 정말 다 맡긴 주권에 대한 신앙은 어떻게 될까?

흐려 지고 애매해 질 듯했다. 참으로 많이 망설였다. 그리고 그냥 진행을 했다. 돈이나 충성을 아낀 것은 분명히 아니었다.
그 대신 이제는 더욱 분명해 지게 되었다. 관련 전문가이며 가장 최근에 퇴임했고 이후 대법관은 개업 자체가 금지 되었다.
이런 인물을 포기한다면 저작권의 최종 결정은 인간이 보면 고소인 측의 방법론과 판단이 옳다는 결과로 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직접 위에서 결정한 것을 보게 된다. 그 것을 보고 싶었다. 우리의 평생, 이 노선을 맡겨 보았다.


누가 봐도 현재 고소인은 고소의 목표를 달성해서 행복해 할 듯하다. 그 쪽의 내면을 아는 이들은 그 반대인 줄 잘 안다.
우리는 누가 봐도 평생을 바쳤고 또 총공회와 백영희를 독점적으로 전해 온 사업에 파탄이 난 것처럼 보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내면을 아는 이들은 저작권 때문에 땅을 배회하던 호랑이가 이제는 날개를 달고 비상을 한다고 보지는 않을까?
이런 상황 속에서 나 자신만을 돌아 본다. 이제 나이도 돌아 봐야 할 나이다. 인체가 중년과 노년 사이에서 표시를 한다.

거의 모든 면으로 남 모르게 혼자만 아는 변화를 느낀다. 그렇다면 젊은 날, 이 노선을 위해 나만큼 충성한 사람이 있을까?
다 알 수는 없지만 일반적으로 알려 진 것만 가지고 말하면 내가 제일 충성했을 듯하다. 그렇다면 주권에 관한한 부족하다.
충성을 더 했다면, 충성을 더 하려고 한다면, 이상하게도 그 반대편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주권을 기준으로 볼 때 부족하다.
인간이 혼자 설치고 하나님은 팽개 치고 살아 오지 않았는가? 이 것이 장로교, 개혁주의, 칼빈주의의 제대로 된 고민이다.


하나님의 주권을 크게 생각하고 강조하고 주권 앞에 떨게 되면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기준 앞에서는 여러 면에서 나아 진다.
그런데 그 주권이 클수록 많을수록 강조가 될수록, 그 반대처럼 보이는 충성의 기준으로 보면 게으르거나 불충이 아닌가?
누구라도 정확하게 했다 할 수는 없는 과제다. 어느 쪽을 더 노력했느냐에 따라 그 면은 덜하고 반대 면은 부족하게 된다.
이제 나이까지 고려하고, 이 노선 전체를 통해 내가 주력했던 충성의 면을 고려해 본다. 그리고 이제 주권을 노력해 보련다.

웬만하면, 하나님의 주권에 맡겨 보려 한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주권에 맡겨 보는 것일까?

이럴 때마다 가신 목사님을 떠 올리며 비교도 해 보고 그 분이면 이런 상황에서 그 때 어떻게 했던가? 그 때를 떠 올려 본다.
목사님 혼자 서부교회와 공회 전체를 이끌고 있을 때 좋았든 싫었든 그 분 외에는 그 어떤 짐도 분담한 인물이 전혀 없었다.
다만 기대하던 인물들은 있었다. 홍순철 서영준 추순덕 전성수 등의 성함은 목사님에게 늘 든든했고 또 훗날을 맡길 만했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이 분들을 젊은 나이에 모두 데려 가셨다. 목사님은 충성을 하셨고 이제 더 이상 맡길 사람이 없었을 때..

목사님은 총공회와 서부교회와 목회연구소라는 3가지 주요 기관에 대하여 그 사후를 조처했다. 어떻게 조처를 했을까?
더 이상의 글은 적지 않고 모두에게 적어 보시도록 과제를 드린다. 내가 적으면 많은 분들이 원래 그런 줄 알았다 할 듯하다.
내가 적지 않으면 알기 어려운 분들은 이 곳의 지난 글이든 앞으로의 글이든 접하다 보면 저절로 알 수 있을 정도의 답이다.
과거 많은 글을 적은 다음에 꼭 필요한 사안 때문에 과제로 돌린 적이 있었다. 이 글 이후에 어느 청년이 수시로 과제를 냈다.


아무에게나 누구에게나 선생 노릇을 했다. 자기가 개척 교인인 교회에 개척 연보는 1원도 하지 않으나 지금도 그럴 듯하다.
귀한 도를 적으면 부작용도 따른다. 성경 때문에 이슬람교로부터 천주교 유대교 등 각종 이단이 나왔다. 피할 수는 없다.
1명이라도 복이 된다면 복음은 전할 수밖에 없다. 복음에 따르는 부작용 때문에 1명의 생명성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전체 0

전체 492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공지
이용 ① 안내문 ② 취지
공지 | 담당 | 2018.04.11 | 추천 0 | 조회 2203
담당 2018.04.11 0 2203
11224
New 동물 구원, 동물 교회를 주장하는 상황
11224 | 담당b | 2022.01.16
담당b 2022.01.16 0 69
11220
연봉 1억원 교회의 세습? 그 비판의 실제는..
11220 | 담당b | 2022.01.13
담당b 2022.01.13 0 80
11219
하나님이 하시게 해야 하는데..
11219 | 담당 | 2022.01.12
담당 2022.01.12 0 95
11222
시대와 연령에 따른 설교록의 내용 변화
11222 | 담당b | 2022.01.14
담당b 2022.01.14 0 80
11223
New 신앙의 인도 3가지 - 현실을 통한 경우
11223 | 담당b | 2022.01.16
담당b 2022.01.16 0 77
11216
촉감보다 시각, 시각보다 느낌
11216 | 담당 | 2022.01.10
담당 2022.01.10 0 83
11203
생명 운동도 사망 운동도 세습으로 내려 간다.
11203 | 담당A | 2022.01.09
담당A 2022.01.09 0 82
11200
좌절과 열등감으로 얻은 복, 한 해와 함께 인생을 회고한다. (2)
11200 | 담당a | 2022.01.07
담당a 2022.01.07 0 106
11204
노화의 절대적 사명
11204 | 담당A | 2022.01.09
담당A 2022.01.09 0 87
11198
공회 설교, 조심하고 노력 할 방향
11198 | 담당 | 2022.01.06
담당 2022.01.06 0 122
11191
2022년. 또 한 해를 받으며
11191 | 담당 | 2022.01.01
담당 2022.01.01 0 115
11189
충성한 서부교회 '중간반사' 선생님들
11189 | 담당 | 2021.12.31
담당 2021.12.31 0 130
11165
최근의 좌향된 성탄 모습 (1)
11165 | 담당 | 2021.12.23
담당 2021.12.23 0 241
11177
백신 거부의 이유, 단일정부론 (1)
11177 | 담당 | 2021.12.26
담당 2021.12.26 0 191
11185
최종 시험, 장기간의 고문과 고형이 오면...
11185 | 담당 | 2021.12.29
담당 2021.12.29 0 101
11161
연구소 40년사
11161 | 담당 | 2021.12.21
담당 2021.12.21 0 87
11133
평생을 고정 시키는 어느 순간 - 설교자의 특성을 중심으로
11133 | 담당a | 2021.12.15
담당a 2021.12.15 0 137
11149
음식과 사랑에 배가 부르면 입맛에 고생한다.
11149 | 담당a | 2021.12.20
담당a 2021.12.20 0 104
11118
공회의 '개고기' 사랑
11118 | 담당 | 2021.12.13
담당 2021.12.13 0 199
11134
예산과 연말 정산 - 공회의 경우
11134 | 담당 | 2021.12.16
담당 2021.12.16 0 78
11138
일부일처 > 일부다처 > 일부일처 : 공회의 현실관
11138 | 담당 | 2021.12.16
담당 2021.12.16 0 126
11140
고운 말, 미운 말 - 동성 반대하는 교회에게
11140 | 담당 | 2021.12.17
담당 2021.12.17 0 134
11110
백영희 저작권이 문제 된 배경
11110 | 서기 | 2021.12.10
서기 2021.12.10 0 167
11076
공회의 경건 - 생활 속에 들어 온 수도원
11076 | 담당 | 2021.11.30
담당 2021.11.30 0 147
11077
건강을 위한 절제, 신앙을 위한 연단..
11077 | 담당 | 2021.12.01
담당 2021.12.01 0 147
11088
말로는 알 수 없었던 신28:1 '세계 모든 민족 위'
11088 | 담당b | 2021.12.04
담당b 2021.12.04 0 180
11103
신앙의 출발이 늦거나, 딴 길로 돌아 오는 경우
11103 | 담당a | 2021.12.08
담당a 2021.12.08 0 1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