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 노선에서 본 현실
연구소 40년사
작성자
담당
작성일
2021.12.21
(연구소의 설립)
1982년 백 목사님은 '목회연구소'를 설립했다. 백영희 설교를 찾는 한국 교계의 지도자들 때문에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다.
얼마 전 돌아 가셨기 때문에 이제 실명을 밝힌다. 조용기 목사님은 1970년대 중반부터 사람을 파견하여 녹음을 직접 했다.
서부교회 맞은 편 조금 아래 쪽에 여인숙이 있었다. 숙식을 하면서 고정적으로 서울로 보내 졌고 설교 내용이 달라 졌었다.
당시 조 목사님의 설교는 순복음교회 등을 통해 외부에 나오고 있었다. 백 목사님의 설교를 아는 이들은 감지할 수 있었다.
서부교회의 일반 예배와 매 2년의 집회 때 녹음기가 설교 시간에 일반 좌석에서 복잡하게 돌아 가고 있었다. 내부는 늦었다.
경제도 없었고 감히 설교 시간에 녹음이라는 것은 뭔가 생각하지 못하는 금기였다. 외부에서 오는 분들은 이런 데 빨랐다.
대신 내부에서는 설교의 토씨 하나를 놓치지 않으려는 눈 빛과 필기하는 손이 속기처럼 움직였다. 너무 심해지지 결단한다.
예배에 지장이 되는 정도라면, 또 외부에 나가는 표현의 사소한 실수가 교계에 논란을 일으킨다면, 설교록을 출간해야 했다.
백영희의 설교는 한국 교계의 최고들의 최고들 사이에 정평이 있다. 그냥 우수하고 유명한 정도가 아니라 비교 불가이었다.
그 설교를 겪은 이들은 지난 날의 그 어떤 설교도 비워 버리고 또 이후로 다른 설교는 설교로 듣지 못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무식한 시골 노인부터 대신학자에 이르기까지 설명할 수가 없는 은혜에 빠져 든다. 김현봉도 그러했으나 깊이만은 달랐다.
연구소가 설립이 되면 그 설교를 매 순간 녹음하고 자료화하고 출간을 하게 된다. 그리고 전파와 함께 연구 전담을 맡는다.
1981년 총공회가 정식 결의를 하고 1982년에 시작이 되자 공회의 손꼽는 목회자들이 연구소의 이 자리를 자원하고 나섰다.
현재 대구공회나 부산공회2의 최고 인물들이 실제 목사님께 지원을 했으나 목사님은 20대 노동하던 교인들에게 다 맡겼다.
1957년 생, 고졸의 노동자가 먼저 시작했다. 그는 1998년까지 연구소의 책임자가 되었다. 같은 나이의 또 한 사람이 더했다.
연구소의 직원으로 말하면 연구소 역사 40년을 통해 대졸은 1명 나머지는 중퇴나 고졸이 전부다. 백영희 연구소는 이렇다.
(직원들의 사명감)
연구소를 지원하는 직원들의 일부는 월급은 최소 생계비 이하지만 그래도 교회 직원이라는 말 때문에 지원한 사람도 있다.
대부분 이 세상에 최고의 직장이라는 신념으로 들어 왔다. 신념과 각오와 노력은 자유다. 그러나 세월을 통해 증명이 된다.
이제 40년이면 성경으로도 한 세대다. 한 세대가 완전히 가면서 20대 중반의 직원은 60대 중반이 되었다. 통계를 내 본다.
첫 각오는 모두가 같았다. 10년이 지나면 거의 다 달라 진다. 20년이 지나면 남는 사람이 없다. 40년을 채운 것은 2명이다.
현재 30년을 넘긴 분이 1명 있다. 30년의 세월 속에 직원이든 아니든 늘 그 사명감으로 충성하는 이들은 여러 사람이 있다.
10년을 넘긴 이는 아주 많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80년대 초기 인원은 거의 다 없어 졌으나 지금은 갈수록 많고 오래 간다.
지난 날을 돌아 보면 너무 실망이 되지만 진행의 과정을 최근으로 오면서 보면 갈수록 역량도 실력도 모든 면도 깊어 진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몇 분이 공회에 새로 들어 왔고 이 분들은 평생을 함께 한 것처럼 느껴 진다. 2세대를 준비하는 듯 하다.
이제 40년이다. 모든 면으로 곧 일시 결산을 내 보면서 앞 날을 다져 보려고 한다. 흔히들 하나님이 하셨다며 공을 돌린다.
그런데 돌아 보면 하나님은 치장이었고 실제로는 그 사람이 다 했다. 연구소는? 아무리 봐도 사람이 한 것은 도저히 없다.
자료는 다 모았다 할 정도다. 정리는 거의 방향이 잡혔다. 출간은 중요 부분은 했다. 그러나 남은 것은 역시 더 중하고 많다.
그리고 40년을 맞으며 이제 이렇게 준비한 모든 것을 가지고 정말 제대로 된 이 노선 체계화의 마지막을 향할 시점이다.
당분간 이런 글로 좀 이어 가며 돌아 보고 싶다.
그 동안 공개하지 못한 여러 자료도 소개하고 싶다.
이 곳은 알려 진 몇 사람의 수고도 있지만 평생 소리 없이 움직인 분도 많다.
그 분들 중에는 끝까지 이름이나 주소 확인을 해 주지 않아서 그 분들이 알았으면 하는 내용들이 있기 때문이다.
1982년 백 목사님은 '목회연구소'를 설립했다. 백영희 설교를 찾는 한국 교계의 지도자들 때문에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다.
얼마 전 돌아 가셨기 때문에 이제 실명을 밝힌다. 조용기 목사님은 1970년대 중반부터 사람을 파견하여 녹음을 직접 했다.
서부교회 맞은 편 조금 아래 쪽에 여인숙이 있었다. 숙식을 하면서 고정적으로 서울로 보내 졌고 설교 내용이 달라 졌었다.
당시 조 목사님의 설교는 순복음교회 등을 통해 외부에 나오고 있었다. 백 목사님의 설교를 아는 이들은 감지할 수 있었다.
서부교회의 일반 예배와 매 2년의 집회 때 녹음기가 설교 시간에 일반 좌석에서 복잡하게 돌아 가고 있었다. 내부는 늦었다.
경제도 없었고 감히 설교 시간에 녹음이라는 것은 뭔가 생각하지 못하는 금기였다. 외부에서 오는 분들은 이런 데 빨랐다.
대신 내부에서는 설교의 토씨 하나를 놓치지 않으려는 눈 빛과 필기하는 손이 속기처럼 움직였다. 너무 심해지지 결단한다.
예배에 지장이 되는 정도라면, 또 외부에 나가는 표현의 사소한 실수가 교계에 논란을 일으킨다면, 설교록을 출간해야 했다.
백영희의 설교는 한국 교계의 최고들의 최고들 사이에 정평이 있다. 그냥 우수하고 유명한 정도가 아니라 비교 불가이었다.
그 설교를 겪은 이들은 지난 날의 그 어떤 설교도 비워 버리고 또 이후로 다른 설교는 설교로 듣지 못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무식한 시골 노인부터 대신학자에 이르기까지 설명할 수가 없는 은혜에 빠져 든다. 김현봉도 그러했으나 깊이만은 달랐다.
연구소가 설립이 되면 그 설교를 매 순간 녹음하고 자료화하고 출간을 하게 된다. 그리고 전파와 함께 연구 전담을 맡는다.
1981년 총공회가 정식 결의를 하고 1982년에 시작이 되자 공회의 손꼽는 목회자들이 연구소의 이 자리를 자원하고 나섰다.
현재 대구공회나 부산공회2의 최고 인물들이 실제 목사님께 지원을 했으나 목사님은 20대 노동하던 교인들에게 다 맡겼다.
1957년 생, 고졸의 노동자가 먼저 시작했다. 그는 1998년까지 연구소의 책임자가 되었다. 같은 나이의 또 한 사람이 더했다.
연구소의 직원으로 말하면 연구소 역사 40년을 통해 대졸은 1명 나머지는 중퇴나 고졸이 전부다. 백영희 연구소는 이렇다.
(직원들의 사명감)
연구소를 지원하는 직원들의 일부는 월급은 최소 생계비 이하지만 그래도 교회 직원이라는 말 때문에 지원한 사람도 있다.
대부분 이 세상에 최고의 직장이라는 신념으로 들어 왔다. 신념과 각오와 노력은 자유다. 그러나 세월을 통해 증명이 된다.
이제 40년이면 성경으로도 한 세대다. 한 세대가 완전히 가면서 20대 중반의 직원은 60대 중반이 되었다. 통계를 내 본다.
첫 각오는 모두가 같았다. 10년이 지나면 거의 다 달라 진다. 20년이 지나면 남는 사람이 없다. 40년을 채운 것은 2명이다.
현재 30년을 넘긴 분이 1명 있다. 30년의 세월 속에 직원이든 아니든 늘 그 사명감으로 충성하는 이들은 여러 사람이 있다.
10년을 넘긴 이는 아주 많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80년대 초기 인원은 거의 다 없어 졌으나 지금은 갈수록 많고 오래 간다.
지난 날을 돌아 보면 너무 실망이 되지만 진행의 과정을 최근으로 오면서 보면 갈수록 역량도 실력도 모든 면도 깊어 진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몇 분이 공회에 새로 들어 왔고 이 분들은 평생을 함께 한 것처럼 느껴 진다. 2세대를 준비하는 듯 하다.
이제 40년이다. 모든 면으로 곧 일시 결산을 내 보면서 앞 날을 다져 보려고 한다. 흔히들 하나님이 하셨다며 공을 돌린다.
그런데 돌아 보면 하나님은 치장이었고 실제로는 그 사람이 다 했다. 연구소는? 아무리 봐도 사람이 한 것은 도저히 없다.
자료는 다 모았다 할 정도다. 정리는 거의 방향이 잡혔다. 출간은 중요 부분은 했다. 그러나 남은 것은 역시 더 중하고 많다.
그리고 40년을 맞으며 이제 이렇게 준비한 모든 것을 가지고 정말 제대로 된 이 노선 체계화의 마지막을 향할 시점이다.
당분간 이런 글로 좀 이어 가며 돌아 보고 싶다.
그 동안 공개하지 못한 여러 자료도 소개하고 싶다.
이 곳은 알려 진 몇 사람의 수고도 있지만 평생 소리 없이 움직인 분도 많다.
그 분들 중에는 끝까지 이름이나 주소 확인을 해 주지 않아서 그 분들이 알았으면 하는 내용들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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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 제목 | 작성자 | 작성일 | 추천 | 조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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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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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 | 2018.04.11 | 0 | 24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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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 부공3, 우리의 파송 사례 1 (15일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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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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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a | 2022.05.15 | 0 | 1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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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송.. 이 노선이 결정할 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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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회의 산 역사가 바쁘게 사라진다. 그 뜻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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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이 되어 횡재한 사람, 폭망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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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a | 2022.04.19 | 0 | 1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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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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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을 추구한 백태영, 신앙을 추구한 백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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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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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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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역자의 기본 자세 - 연구소의 내부 사정 - 보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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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헌배 장로님, 훌륭한 공회 신앙의 미주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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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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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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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치기 소년의 3회 거짓말과 신앙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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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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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학교의 남녀 구분의 역사와 오늘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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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은혜 - 중생의 순간인가, 중생을 따르는 현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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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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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크게 바뀌면 지진이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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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찬송가 : 개인, 교회, 공회, 연구소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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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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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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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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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 | 2022.03.25 | 0 | 1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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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의 옹니에 걸렸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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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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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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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b | 2022.03.20 | 0 | 1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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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a | 2022.03.22 | 0 | 3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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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의 무형 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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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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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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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 | 2022.03.19 | 0 | 1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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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담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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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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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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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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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a | 2022.03.21 | 0 | 1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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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록 충성하라'를 왜곡해 버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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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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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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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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