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오늘, 이 노선에서 본 현실

미국의 국가 형성을 통해 본 공회

작성자
담당
작성일
2021.10.20
(성경에서 본 국가 형성)

* 국가의 발전 단계
성경으로 국가의 발전 단계를 볼 수 있다. 세상 나라들은 모두가 건국 신화로 미화를 해서 알기 어려우나 짐작하면 충분하다.
창세기의 아담과 노아는 가족 단위로 시작했다. 자손들이 천하 빈 곳으로 흩어 져 살면서 부족 단위로 곳곳에 자리를 잡았다.
아브라함의 가나안 행적을 통해 이제는 각 지방마다 부족 단위의 국가를 볼 수 있다. 교통의 불편으로 모두 소왕국 체제였다.
출애굽 때 이스라엘은 국가 형태를 갖추지는 않았으나 군인이 60만이다. 이스라엘과 맞서려면 비록 고대지만 국가라야 했다.
사사기의 마지막 때는 주변 이방들은 왕정 국가였으나 이스라엘은 늦어 지게 되어, 사무엘 때 왕을 가진 국가를 만들게 된다.

* 제국의 등장은 필연
다윗과 솔로몬 때는 점령하고 조공을 받는 규모를 보면 제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고 다윗 솔로몬 때의 편제를 봐도 그렇다.
아담도 노아도 가족 단위로 출발했다. 자녀가 많아 지면 흩어 지고 다시 볼 수 없게 되면 다른 지역의 다른 민족이 되어 산다.
바로 이 순간 주변의 가족이 단합하든 한 사람이 단합을 시키면 더 넓게 뻗어 나간다. 부족을 통일하고 국가를 형성하게 된다.
국가까지 형성한 뒤에는 국가끼리 평화롭게 살아야 한다는 참 철 없는 아이들도 있다. 국가로까지 뻗었는데 그칠 리가 있나?
한 사람이 부족을, 한 부족이 한 지방을 장악하게 되면 점점 세력을 키운다. 많은 국가를 삼키는 제국의 등장은 피할 수 없다.

* 제국까지 해야 안다.
구약 시대, 주님이 오시기 전에 이미 바벨론 제국이 등장했고 알렉산더의 제국에 이어 로마 제국이 이스라엘까지 점령했다.
제국을 만들어 놓고 보면 힘으로 장악 했고 좋은 것을 뺏어 오는 기쁨을 누리지만 제국을 유지하는 것은 어렵고 불가능했다.
가장 최근의 대영제국과 독일 일본 러시아 그리고 중국까지가 제국의 사례다. 결론은 제국은 만들 수 있으나 유지가 안 된다.
그래서 미국은 제국을 만들 수 있는데 만들지 않는다. 그리고 여러 방법으로 영향력만 가감하고 있다. 역사를 알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끝까지 가 보지 않고 미리 짐작하고 멈출 수 있다. 미련하면 끝까지 가 봐야 안다. 미국은 참 특이한 나라다.




(미국의 건국 과정의 특징)

보통의 나라는 대개 한 사람씩 가정을 일구고 부족이 되면 지방을 장악하고 세월 속에 국가로 등장한다. 대부분이 그렇다.
미국은 어느 날 영국에서 건너 간 사람들이 본국과 밀고 당기다가 어느 날 갑자기 회의를 통해 국가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이들은 영국과 유럽과 세계사를 통해 국가의 형성과 국가의 전쟁과 그 결론을 꿰뚫어 본 이들이다. 그리고 답을 만들었다.

- 독재 반대. 미국의 건국 첫 이념은 자유다. 한 사람이나 특정 사상 운동 집단을 따로 인정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라 한다.
- 균형 견제. 독재를 하지 않으려 해도 한 쪽으로 기울어 지면 독재가 된다. 그래서 사법 입법 행정의 3권 분립을 만들었다.
- 자본 주의. 삼권 분립에 의한 민주주의가 정치 체계라면 경제는 자본주의를 추구했다. 필연이며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다.

역사에는 더러 왕권을 견제하고 민주정을 했던 경우는 있다. 그들은 자연발생적 과정을 거치다 한 때 그렇게 했을 뿐이다.
미국이라는 국가는 처음 시작하면서 바로 훗날 세계가 부럽게 따라 오고 필연적으로 흉내내지 않을 수 없는 시작을 했다.
오늘의 세계는 과거와 아예 다른 세계다. 오늘 미국의 정치 문화 사회 경제를 정도 차이지 따르지 않는 곳이 있을까? 없다.




(총공회 노선의 배경과 형성)

미국은 보이는 물질계 세상의 국가니 그 나라의 성공 여부는 눈으로 볼 수 있다. 지도로 경제 지표로 모든 면으로 성공했다.
공회는 미국과 비슷한 면이 많다. 다만 이 노선은 타 교회와 달리 신령 면을 주력했기 때문에 쉽게 계량화하기는 어렵겠다.
세계가 부러워 하고 본을 받아야 하며 실제 모든 나라를 앞 서 가는 모습은 신령한 세계의 공회를 보는 듯하다. 자연계시다.

한 사람이 잘 믿으면 많은 사람을 붙여 주시고 여러 증거를 주신다. 빛이 되고 나면 교만해 지고 속화 되며 허무하게 된다.
모든 사사기가 그러했고 초대교회가 로마 교회가 될 때, 개혁교회가 이후 속화 되는 과정도 오늘 교계도 원리는 모두 같다.
주님만 바라 보고 나아 갈 때 주님은 동행한다. 시선이 집중 되면 주님은 없어 지고 인간이 교회의 주인 되고 통치를 한다.

세계 교회사의 끝에 한국의 선교사가 있고, 한국 교계의 역사도 이렇게 반복해 왔다. 해방 후 마지막으로 고신도 그러했다.
공회는 일제 신사참배 때도 6.25 점령 때도 교계의 숨은 보배였다. 그리고 고신 안에서 이 신앙을 지키려다 제명을 당했다.
일제 신사참배와 6.25 점령기를 완벽하게 승리한 한국 교회 유일의 노선이 하찮은 고신의 박해에 그 길을 중단할 리 없다.


1959년에 고신이 공회를 제명하자 백영희는 7년을 성경의 해석이나 교리와 함께 교회의 모습을 두고 기도했고 찾아 봤다.
미국이 유럽과 세계사를 통해 독재란 우선 좋으나 인간의 본질 때문에 삼권 분립을 통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가졌듯이
공회는 성경과 교회사와 한국사와 고신사를 통해 교회란 성경 외에 법은 없어야 하고 다수결 결정만은 무조건 피해야 하며

그리고 자본주의를 통해 삼권 분립의 민주주의를 지탱해 주듯 교회를 한 사람이 독권으로 주도하는 교권을 해체하게 된다.
성경만이 법이란 불문법이란 뜻이고, 다수결 금지는 전원일치가 되고, 독권의 금지는 회장은 회의의 사회자로 끝내야 했다.
고신에서 제명 된 후 교단 형성을 하지 않고 교회 운영의 근본을 찾다가 '총공회 3대 원칙'이라는 역사적 모습을 발견하였다.

만장일치든 전원일치든 뜻이 중요하지 표현은 바뀔 수 있다. 회장의 비상존이든 노소원이든 교권 배제가 운영의 중심이다.
미련하여 용맹스런 부공1과 4는 토씨 하나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말은 흔하게 뱉었으나 뜻을 모르니 허공을 베고 있다.
부공2나 대구공회는 유능한 분들이 많다. 그러나 속으로 뭔가 하나를 챙기려 드니 뻔한 길을 솔직하게 걸어 나가지 않는다.

조금 알면서 속으로 챙기려는 사심이 없는 연구소 직원들 몇만 부공3으로 이 길을 가고 있다. 사실상 총공회 유일의 단체다.
조금만 아니 유능하지 않다. 사실이 그렇다. 그런데 사심이 없으니 조금씩 자라 간다. 사심 없다는 말은 생명성이란 뜻이다.
부공3에 함께 있어도 아는 것이 전혀 없으면 어디 갔는지 찾을 수도 없다. 사심을 조금이라도 가진 이들은 하나만 물고 있다.




(제1. 성경법 유일주의, 교회법이란)
1966년의 총공회 제1회록에는 성경법만 법이라고 되어 있다. 지금은 상식이 되었으나 백영희 사후 법들이 참 난무했었다.
백 목사님 장례가 끝난 다음 주간에 첫 교역자회가 개최 되자 대구공회 측은 일제히 '헌법'을 만들자고 벌떼처럼 일어났다.
훗날 부공1, 4가 되는 이들은 단어를 몰라 침묵했다. 부공2와 대구공회는 속으로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지지 발언을 했다.

성경으로 처음 걸어 보고 처리한 사건, 그리고 다음에도 그런 식으로, 이렇게 쌓아 가며 다시 성경으로 모든 것을 처리한다.
이 것이 성경법 유일주의다. 쉽게 설명하면 불문법이며 관례다. 이렇게 설명하고 나면 마치 자기 설명처럼 써먹고 왜곡한다.
그런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설명하고 적어 놓는다. 어떤 자료든 모두 공개해 왔다. 악용을 해도 선용을 위해 적는다.

미국은 처음부터 관례법이다. 미국의 최초 헌법은 나라의 운영 방향만 정해 놓았다. 우리처럼 미주알 고주알 적지 않는다.
큰 방향만 적어 놓고 나머지는 발생하는 사건을 헌법적 정신으로 하나씩 처리해 나갔다. 이 것이 판례 중심의 불문법이다.
공회 역시 그렇다. 교회의 처리는 말씀으로 그 사건을 살핀다. 그 뒤에는 이전에 처리한 것을 참고한다. 이렇게만 나간다.

이 설명을 아는 사람, 그 사람만 공회 사람이다. 총공회장을 역임해도 이 뜻을 모르면 기록상 교인이지 총공회인이 아니다.
그렇다면 총공회의 노선과 신앙의 운동은 훌륭하지만 소속 교인은 손가락으로 헤아릴 정도다. 부공3에도 몇 없을 정도다.
대구공회는 1989년 12.12조처라는 이름의 헌법적 발표가 있었다. 부산공회들은 최근에 등기소를 통해 기록을 보게 되었다.

총공회가 뭔지 아는 사람이 단 1명이라도 있으면 대구공회의 길, 부산공회들의 그런 길 그런 조처 그런 결의는 하지 못한다.
부공3은 숫자가 적고 수준은 낮은 편이나 아는 사람이 더러 있다. 부공3 안에도 모르는 목회자들은 이미 엉뚱하게 되었다.
제대로 아는지 여부는 그의 이후 가는 길을 보면 된다. 처음은 동행을 하니 같아 보이지만 롯이라면 결국 소돔을 향한다.


(제2. 자유성 절대주의, 전원일치란)
백영희 사후 '전원일치'의 단어를 몰라서 부산공회 지도부조차 혼선이 극심했다. 지금은 최소한 표현과 논리는 알고 있다.
이 단어의 뜻을 정말 아는지 보려면, 힘을 가졌을 때 그 힘을 어떻게 쓰는지 보면 안다. 다른 공회들은 아직도 모르고 있다.
유리하면 항상 다수결을 주장한다. 불리하면 늘 전원일치를 주장한다. 이권 때문에 오가면 전원일치를 모른다는 뜻이 된다.

다 가졌을 때, 유리할 때, 손에 쥐고 장악을 항 상황에서, 인간적으로는 주지 않아도 되는데 내어 주는 것이 전원일치라 한다.
전원일치는 기술적으로 참석자의 전원 찬성을 말한다. 그러나 내면적으로는 회원 중 1명이라도 그가 싫은 일은 하지 않는다.
회원 1명이라도 그가 싫은 일을 하지 않는다는 말은 전부가 합치 되지 않으면 모두 알아서 개별적으로 해 나가라는 뜻이다.

학교에서 배우지 않아 무식한 것이 아니라 뻔히 알면서도 욕심에 눈이 멀어 전원일치를 악용하니 스스로 눈을 감은 것이다.
기술적으로는 회원 전체의 찬성이다. 최소한 반대자는 없어야 한다. 더 나아가 모두가 좋아 하게 해야 한다. 참으로 어렵다.
이런 어려운 길은 실제 할 수는 없다. 공회는 전체가 모여서 함께 하는 일이란 교회가 굳이 하려고 들지를 말라는 것이다.

세상의 단체는 뭔가 해야 생존하고 발전하고 점령한다. 교회도 그런다? 모든 교단들이 바로 그렇게 생각하니 다수결이다.
공회는 하나님께 붙들린 1명이면 충분하다고 본다. 모두가 함께 하면 더 좋다. 원치 않으면? 각자 해도 부족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공회의 전원일치는 모두가 찬성할 수 있는 의견만 의견이다. 그 의견은 의견이 아니라 이미 결론이 되어 버린다.

미국의 건국 정신은 모든 국민의 자유권을 보장한다. 총을 들고 자기를 지킬 권리까지다. 그리고 개별 주가 국가와 같다.
다수결로 하기로 미리 정해 놓은 다수결은 따른다. 그렇게 자기가 동의한 것이 아니면 거부한다. 인간의 본질이 아닐까?
바로 이런 분위기 때문에 우리는 코로나 방역 문제로 전국을 통제할 때 미국은 각자 버티고 싶은 사람은 버틸 수 있었다.

미국도 갈수록 미국답지 않게 가면 그 좋은 나라도 결국 무너 진다. 현재 미국은 제대로 된 미국인들이 비판하는 미국이다.
트럼프 현상을 국내 언론과 좌파가 그토록 싫어 하며 비판을 했는데 트럼프가 문제가 아니라 미국인의 본심을 말한 것이다.
미국이 미국다우면 주별로 한 국가처럼 움직이고 각 주가 연방 정부에 맡긴 것은 자기가 맡겼으니 당연히 자기가 지킨다.

한 교회가 다른 교회의 의견을 따르겠다고 한다면 다른 교회에게 얽매여 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결정이니 따르는 것이다.
한 교인의 교회 내 결정도 마찬 가지다. 원래 다수결도 그렇지 않은가? 그런 것처럼 보이는데 그렇지 않다. 공회는 다르다.
자기 혼자만이 걸어 가는 길, 자기가 걸어 갈 수 없을 때 하나님이 주신 지도를 찾아 본다. 그 것이 바로 그의 자유 의지다.




(제3. 교권배제주의, 비상존이란)
제1회 총공회록의 3 원칙 중 3번째가 총공회장 비상존이다. 회의가 끝나면 단체는 해산이라는 뜻이다. 타 교단도 그렇다.
파회라고 한다. 단체가 없어 지는 것이 아니라 단체를 운영하는 교회 위의 교권이 없다는 뜻이다. 전원일치의 귀결이다.
회장이든 대표든 총공회장이든 그 어떤 직책이든, 그 직책이 항상 가지는 권리가 있으면 총공회 노선은 무조건 배척한다.

그래서 목사가 되어도 매 2년 시무투표를 통해 다시 그를 평가한다. 교회에 따라 1년도 좋고 3년도 좋다. 교회의 자유다.
시무투표를 아예 하지 않겠다면 그 것도 그 교회의 자유다. 그러나 공회가 금지하는 교권 추구가 되니 공회 교회는 아니다.
성경법 외의 법을 가지든지, 다수결로 민주주의를 하든지, 교권을 추구하든지 3가지 중에 하나라도 문제가 되면 탈퇴다.


공회는 성경만 가지고, 모든 교인과 교회가 원하고 따라 오는 것만 공회와 교회 이름으로 노력했고 교권을 없애 버렸다.
이런 결과의 가장 처음이면서 세계적인 명품이 되어 오늘까지 세계교회사에 비할 것이 없게 된 사례가 바로 주일학교다.
홍순철 대학 신입생이 백영희의 서부교회 주교 반사가 되던 순간, 자기만은 전도해서 자기 학생을 따로 모으겠다고 했다.

부장도 모든 선배 반사도 그런 법이 없다고 했다. 백영희는 성경으로 맞으니 하라 했다. 다른 반의 학생을 손대지 않았다.
맨 몸으로 교회 밖에 나가서 한 학생씩 교회로 데려 왔다. 교회도 어느 반도 피해가 없고 손해가 없다. 반대할 일이 아니다.
단번에 홍 반사의 반이 제일 큰 반이 되자 앞다투어 다 따라 했다. 그리고 서부교회는 훗날 세계 기록을 세우게 된다.

성경에 맞고, 아무도 반대하지 않고, 전도의 신앙 선례에 따라 직접 불신 학생을 데려 왔다. 궁금한 이들은 지켜 보면 된다.
1년 2년이 지나면서 명확하게 옳은 것이 드러 났다. 모두가 그 뒤를 다 따랐다. 몇 년이 지나게 되자 저절로 개혁이 되었다.
누구를 밀어 내고 들어 가지 않았다. 누구 반의 학생 1명이 옮기지도 않았다. 다른 반을 간섭할 일도 없었다. 교권도 없다.


백영희, 서부교회의 기록은 역사적인 것이 참 많다. 그 내용을 들여다 보면 전부 이런 식이다. 교단을 만들지 않았다.
고신에서 제명 되자 혼자 나왔다. 지켜 보던 몇몇 교회가 그 길이 옳기 때문에 어려움을 막론하고 그 뒤를 따라 나왔다.
그리고 배울 것이 있어 그의 사경회에 자꾸 모여 들었다. 포스타도 없었고 프랙카드도 없었다. 그냥 모여서 모이게 됐다.

자꾸 모이게 되자 혹시 백영희 정도의 다른 강사를 원할지 몰라서 이인재 백영익 이진헌 김석준을 차례로 세워 보았다.
강사 선발 회의도 필요 없고 토론도 필요 없었다. 강사들부터 백영희를 원했다. 다른 사람이 서면 오는 교인이 줄었다.
저절로 백영희의 지도와 설교와 신앙이 좋은 사람만 모였다. 수십 명으로 시작했고 마지막 집회는 1만 5천여명 모였다.

박수 한 번 치는 일도 없었다. 나팔 불 일도 없었다. 시설도 출애굽 광야나 6.25 피난촌 정도로나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다.
배울 것이 있어 모였고 좋으니 모였다. 법과 체계가 선발을 통해 지명한 것이 아니다. 모두가 좋아서 그렇게 자라 갔다.
여기에 무슨 법이 있과 다수결이 있을까? 원하고 원하는 마음으로 좋아서 모이는 곳, 교회란 기본적으로 그런 곳이다.




(미국의 건국과 공회의 시작)
미국은 지금도 욕을 하는 나라가 부지기수다. 속으로는 죽자고 미국을 배끼고 있다. 공회의 내막을 알면 같은 현상이 있다.
미국은 세계를 제패하는 힘을 가졌다. 공회는 볼 수 없는 신앙의 세계를 향하고 있다. 이런 신앙은 반대할 수가 없는 법이다.
교권을 잡고 교주 노릇을 하는 그 교단 그 인물도 남이 교주 된다면 바로 반대한다. 속으로는 모두가 공회 신앙 노선적이다.

공회의 성경 해석과 교리 체계화의 길도 마찬 가지다. 누가 말해도 성경에 맞으면 따라 간다. 고칠 것이 바로 고쳐 버린다.
백영희의 발언이니 손을 대지 못하는 일이 없다. 주일학교 반사라도 직접 발언하여 고쳐 지고 반영 된 것이 한 둘이 아니다.
이런 일이 있으면 공석에 발언을 해서 모든 교인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백영희 그 자신이 먼저 부탁을 한다. 좋지 않은가?

시스템화 되어 있어 지도자의 실수가 가려 질 수 있고, 지도자의 약점이 장점처럼 선전 될 수 있게 되면, 바로 교황제가 된다.
시스템화가 되어 70세면 모세라도 퇴직하고 30세 전에는 다윗이라도 전쟁에 내보지 않는다면 이 것이 교회인가, 세상인가?
공회는 주일학생이라도 설교가 은혜로우면 강단에 세운다. 백영희도 죽는 날까지 매 2년의 신임투표를 통해 근무를 했다.

교회라면, 세계 어느 교회라도 본 받고 싶고 채택하고 싶은 것밖에 없다. 문제는 그렇게 하면 손해 보는 것이 많아 망설인다.
반면에 아무리 못나고 부족해도 바르게 믿어 보고 싶으면 공회는 출발하는 데 문제가 없다. 주님과 동행 외에는 보지 않는다.
장로가 되고 집사가 되고 반사가 되고 목사가 되고 사경회 강사가 되는데도 어떤 제한이 없다. 신앙적으로 이 정도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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