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단에서

오늘, 이 노선에서 본 현실

증인 - 구약과 신약

작성자
help
작성일
2018.03.21
1. 구약의 경우
레5:1, '누구든지 그 본 일이나 아는 일을 진술치 아니하면 죄가 있나니' 구약의 의무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일을 보게 했고 알게 했을 때는 그냥 우연히 마주치게 한 것이 아니라, 뜻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구약의 속건제에서는 속죄제의 직접 범죄에 이어 그 주변을 속건제로 따로 정해 놓고 있습니다.


2. 신약의 경우
고전9:16,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우리에게 의무입니다.

무엇이 복음일까?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누구일까? 구원의 주님입니다. 무엇이 구원인가?
이렇게 따지다 보면 범위가 넓어 집니다. 좁은 의미의 복음과 넓은 의미의 복음을 함께 알아야 합니다.


전하도록 기회를 주실 때, 전하는 사람.
전할 기회를 주지 않을 때 참음으로 기다리는 사람.

자기 중심으로 개인의 이해관계로 두 가지를 취사선택하면 어느 것이든 죄가 됩니다.
자기가 아니라 주님이 원하는 것, 말하라 하면 하는 것이고 할 수 없게 막으시면 닫습니다.
결정은 주님이 합니다. 판단은 이 땅 위에서도 시간이 조금 지나면 열매로 나타납니다.
전체 6

  • 2018-03-22 11:11
    전도를 즐기는 삶, 날마다 설교를 준비하는 교인, 성령의 권능이 나타나는 기도의 증인.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80년대는 길거리에 나가면 주일학생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고,
    권면 한 마디로 교회로 쉽게 인도할 수가 있었는데
    2018년 지금은 전도가 어렵고 잘 안되고 힘든 시대가 되었다고들 말합니다.

    그러나 전도가 되든, 안되든, 전도해서 열매가 보이든, 안 보이든 시대가 어찌 되었든지.
    항상 언제나 어디서나 매일 말씀을 전파하라는 것이 주님의 명령인데
    성경 한장 읽는 것이나 전도 한명 하는 것이나 똑같은 노력과 수고인데 입이 잘 떨어지지 않습니다.

    성령의 임함이 없으니 권능을 못 받아 증인생활이 안되는 것일까요?
    제 삶에 전도가 없으니 주일학교 설교를 하는데 사람을 변화시키는 권능이 안 나타납니다.
    갈급이 없어 탄식이고, 받은 도는 깊으나 불쌍히 여기는 긍휼과 간절히 원하고 원하는 기도의 충성이 없으니...
    전도, 설교, 기도, 제 마음 한 구석엔 늘 연구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왜 안 될까? 왜 전도를 즐길 수 없을까? 왜 믿어지지 않을까? 왜 열매가 없을까? 왜 계속이 안될까?
    극한극진 - 인간의 힘과 능의 한계를 뛰어 넘어, 있는 힘 다하다 쓰러질 때, 비로소 하나님의 신으로 되는 오직 한길을 날마다 구하오며...


    " target="_blank"> 호주 시드니 무명의 전도자.

  • 2018-03-27 19:43
    자연을 사랑하는 부자가 외딴 섬을 아름답게 가꾸고 초원을 펼쳐놓았다. 그리고 토끼와 노루를 방목하여 자연 환경을 제공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섬은 천국이 되었다. 토끼와 노루의 생체 활동은 눈부시게 좋았다. 이 부자는 자기를 칭찬하며 흐뭇했다. 다음 해에는 다른 초식 동물도 풀어 놓으려 했는데 토끼와 누로의 털빛, 눈동자가 빛을 잃기 시작했다. 수의사들이 왔다 갔으나 해결책이 없었다. 이 부자는 다음 이야기를 듣고 해결을 했다.

    캐나다 북부의 주정부가 사슴을 위해 이리 사냥을 허락했다. 이리가 사라지면서 초원에는 사슴으로 넘쳐났다. 그런데 사슴들은 병약하여 집단 폐사가 잦았다. 이리라는 천적은 천적이 아니라 천혜의 자연환경의 필수품이었다. 이리를 다시 풀어놓자 예전처럼 사슴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활기찬 초원이 돌아 왔다. 이 부자는 이 이야기를 듣고 자기의 지상낙원에 사단이 없어야 하는 줄 알았던 실수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누구나 자유롭게 은혜롭게 한량 없이 이 노선의 푸른 초장과 잔잔한 시내를 풍미했다.
    그런데 자유와 은혜와 평화가 너무 넘치자 이 노선의 모든 이들은 말씀의 은혜와 노선의 복에 대한 감사가 흐려지고 안주하는 자세가 보였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편지풍파를 일으켜 다시 처음 자세로 돌아 가서 뛰어 다니게 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불행한 사람에게는 이 불행이 참화가 되지만, 복 된 사람에게는 이 불행이 큰 행복이 된다. 문제는 남의 일로 물 건너 불 구경하듯 하는 이들이다.

  • 2018-03-27 19:43
    네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

    네가 평안한 땅에서는 무사하려니와
    요단의 창일한 중에서는 어찌하겠느냐.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

    • 2018-03-27 19:44
      부탁드립니다.

      이곳은, 피와 땀과 눈물로, 이 노선의 일선에 서신 귀한 종들의 '작은 공간'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미 아래에서, 그분들이 양해를 부탁해주셨고, 또 혹시라도 실수할까봐 기능상으로도 조처를 취해주셨습니다.

      하고 싶으신 말씀은 '문답' '발언'이 따로 준비되어 있으니, 얼마든지 그곳에 가서 발언해주시고,
      이곳은 예전처럼 가만히 바라보고, 지켜보는 '남단'의 공간으로 남겨두어 주시면,

      한명의 독자로써 진심으로 감사드리겠습니다.

      • 2018-03-27 19:44
        예.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이전에는 댓글이 가능했으나 지금은 댓글이 안되고 답글만 되어 적어 보았습니다.
        남단에서 일어난 일들을 듣고 감사하며 나름 생각을 나누고 싶었는데, 제가 무례했나 봅니다.

        khr님의 말씀대로 예전처럼 가만히 바라보고, 지켜보는 '남단'의 공간이 되도록
        다음에 새로 방문하는 분들이 오해되지 않도록 댓글과 답글을 못 달도록 조처가 된다면... 싶습니다.

        늘 감사하며 늘 죄송하며.

        • 2018-03-27 19:44
          모두 좋은 뜻으로 적었다고 생각합니다.
          심정도 적으시고, 또 적다 보면 위치나 내용이나 표현에 실수도 있습니다.
          또 옆에서 부탁하는데 좋게 잘 받아 주시니 보기에도 좋습니다.

          잘 이해하셨다고 생각하며, 이번 두 분의 '답글'은 '댓글'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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