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공회 자료

정순환 – 서부교회 주교 부장

인물
작성자
서기
작성일
2021.02.19

일시: 2012.9.20.-28.
주소: 부산시 서구 서대신 3동

* 안내
정순환, 그 이름은 서부교회 주일학교 부장의 대표 이름입니다. 부장으로 임명 받은 1974년의 1천 명대 서부교회 주일학교를 평균 8천 명대로 부흥 시켰고 1986년 부장 사임까지 서부교회 주일학교 부흥기와 전성기의 가장 대표적인 이름입니다. 부장 전에도, 부장직 13 년 동안에도, 부장직 사임 후에도 늘 주일학교 반사였습니다. 백 목사님은 평생에 한 번도 그런 일이 없는 ‘충성장’이라는 상을 수여했습니다. 백 목사님은 자신과 모두에게 격려 대신 조심과 긴장과 두려움으로 복음의 앞만 보고 달리게 했습니다. 그러나 서부교회 주일학교의 이름은 하나님께서 주신 너무 특별한 역사였고 그 주일학교 부흥 기간에 정순환의 이름은 너무 특별했습니다. 왜 특별한지 어떤 면이 있었는지 등에 대해서는 앞으로 별도 소개하겠습니다. 우선 정 장로님을 직접 뵙고 주일학교와 관련한 대표 인물이라는 점에서 최소한 알아야 하는 일반 인적 사항과 경력을 잠깐 살펴 소개합니다.

백영희 목사님의 생애는 서부교회와 총공회의 역사이며 이 노선의 교훈 세계를 심층 분석하기 위해 살펴야 할 이유가 있어 1994년 1월부터 자료를 수집했습니다. 모든 자료와 모든 관련 인물을 다 살펴 볼 수는 없고 이제 마무리하며 일단 책으로 출간할 단계입니다. 출간 전에 면담하지 않으면 안 될 분들을 만나 뵙고 있습니다. 이 글은 /pkist.net/총공회/인물편/에 일단 소개하며 앞으로 백 목사님 전기에 반영 될 자료입니다. 반론이나 이견이나 보충이나 참고 의견을 가진 분들의 연락을 부탁합니다. (편집 註)

1. 신상
출생: 1943.10.2.

고향: 경남 함양 지곡면 개평리

부친: 정운현

2. 학교 생활
- 야구 선수

고향은 경남 함양이었지만 어릴 때부터 부산에서 살았고 동대신 3동에 있는 동신초등학교를 다니며 야구를 하며 캐처로 선수 생활.

- 유도 선수
서대신동의 대신중학교로 진학한 후에는 학교를 마치고 유도를 배웠는데 당시 서부교회 맞은 편 약간 아래 쪽에 있던 경남도청 부근에 ‘상무관’이라는 일제 때 경찰 유도관이 해방 후에도 계속 남아 있어 일제 때부터 내려 오는 정통 유도를 사범들로부터 제대로 잘 배우게 됨. 열심히 노력해서 유도 대회도 나가는 정도가 되었는데 경남상고의 유도부가 당시 유명했고 그 쪽으로 진학. 유도부에 부장까지 하게 되어 전국 체전의 부산 경남 대표팀으로 선발. 당시 부산이 분리 되지 않고 경남도에 포함 되어 있을 때였고 해동고등학교와 늘 선두 경쟁이 있었으나 3 - 4 년 정도 선배들이 계속 졌었는데 정순환이 3학년으로 부장이던 경기에서 이기고 부산 경남 선발로 전국 체전. 5 명씩 5 번의 시합이 있고 2:2 상태에서 정순환은 부장으로 마지막에 나섰고 양 팀의 주장의 마지막 시합에서 상대를 모두걸기 한판으로 승리. 전국 체전의 부산 경남 대표로 대구 전국체전에 나가서 전국 3위.

- 전국 우승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진학해야 할 때 부산의 동아대학교가 문리대에 체육학과를 개설하여 1963년에 장학생으로 1기 특별 입학. 집이 가난해서 원래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순천에서 안경점을 하던 삼촌에게 가서 장사를 한다고 생각했고 또 광성고교를 졸업한 형이 먼저 가서 있었음. 1964년에 전주 44회 체전에서 전국 우승. 당시 학교에 야구부 축구부가 있어도 단체전 전국 우승은 처음이어서 학교 차원의 대대적 환영. 선수 생활할 때 4단이었고 나중에 공인 7단 경력.

3. 신앙
- 첫 신앙

1964년 군 생활 중에 윤현조라는 먼 친척 여동생이 초등학교 교사였는데 편지를 써서 교회를 가라고 전도를 했고 그 편지 때문에 군 생활 중에 신앙 출발. 철원군 금화면 와수리 15사단 3대대 의무대 위생병으로 근무. 중대 본부에서 파견 나간 곳의 지대장이 중위 군의관이며 믿는 사람. 와수리 그 산골에 민간 교회로 출석하여 신앙 출발.

- 서부교회 출석
1967년에 2월에 제대하자 제일 친한 친구 집에 나다니다가 그 어머니가 서부교회 윤철우 권찰님으로 박정자 집사님의 구역이며 3월 경에 서부교회를 출석. 군에서 신앙생활을 좀 했고 제대 후에는 서부교회가 첫 교회. 서부교회 예배당이 2층 다다미 시절. 친구 어머니 따라서 서부교회를 와서 예배 보고 나간 기억이 선명. 목사님은 당시에 검정 두루마기 입고 머리는 빡빡 깎은 상태.

- 백 목사님과 첫 기억
교회를 몇 번 출석하며 잘 다니고 있던 11월 중순(3월?)이나 될 어느 주일날 그 날도 주일 오전 예배를 마치고 2층 예배당에서 계단을 따라 모두 내려 가는데 평소 목사님께서 계단 위에서 계단 밑으로 내려 가는 사람을 악수도 하고 그러셨는데, 워낙 백 목사님이 높게 보이시기 때문에 계단 밑만 보고 내려 가고 있었는데 누구의 손등이 위에서 정순환의 가슴을 살짝 막았고 얼른 위를 보자 목사님께서 악수를 하려고 손을 내 미셨고 황급히 두 손으로 그 손을 붙들고 악수를 받음. 굉장한 감격.

교회를 나오던 초기부터 좋았으나 그 때부터 새벽기도도 출발하여, 비록 신앙 출발은 늦었지만 열심을 더하였고 연일 설교의 은혜가 자신을 끌었고 신앙에 몰입. 설교를 듣다 보면 목사님의 설교 말씀 그대로만 살면 신앙도 물론이고 세상 생활도 다 성공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어 처음부터 은혜로웠고, 세상에서 말씀대로 산다는 것이 어려운데도 아무 것도 모르고 순종하며 나옴.

- 브니엘중고교
교사 순위고사 시험의 성적이 10위였고 잘 알고 있던 은사가 도교육위원회 학무국장이었으며 공립학교로 부임하라며 전화가 왔는데 부산의 유명 사립고교인 브니엘 중고교 설립자 박성기 교장 선생님이 브니엘로 와 달라고 전보. 학무국장 은사의 부탁이 있었지만 믿는 사람이어서 기독교 학교인 브니엘로 가겠다고 하여 1970년 3월 1일 체육 교사로 부임. 당시 박성기 설립자는 1954년에 최재현 목사님과 미국 유학을 함께 한 분으로 목사님이며 백 목사님을 아버지처럼 따르는 사이.

학교장은 미국 유학생 출신답게 선진국의 스포츠에 미리 눈을 떴고 1972년에 테니스부를 창설하고 감독으로 임명. 향후 브니엘은 전국 테니스의 명문이 되고 많은 대표 선수를 배출. 학교장은 영어로 된 월드 테니스 책을 제공하면 영어를 잘 몰라도 책의 사진이나 그림을 통해 자세를 보고도 배울 수 있었음. 박혜련 국가 대표는 주니어 세계선수권 대회 3위까지 했는데 그 분의 딸. 학교장은 올림픽과 서울아시안게임과 부산동아시아게임에서 선수촌장을 3차례나 역임. 아끼는 제자들 중에 최경미 박혜련은 브니엘중고교 출신으로 한국 테니스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박혜련 선수의 아버지는 당시 교장을 겸하고 있었던 박성기 목사님.

- 밤예배 후 결혼
결혼이 늦어 졌고 교회 내에서 노력이 많았으나 어렵던 중에 동아대 후배를 통해 신앙 생활에 철저하면 비슷한 사람을 소개한다면 구덕교회에서 주일학교 반사를 하던 이영자 선생님을 만나게 했고 서부교회 신앙생활을 따를 수 있는 경우라 생각하여 구역장님께 소개했고 이어 백 목사님께 말씀을 드리자 이미 성사 단계여서 좋은 이야기만 해 주시고 승낙하고 주례를 하시게 됨. 1973년 5월 9일 수요일 당시 7시 30분 저녁예배가 시작 되고 예배 후 예배당에서 백 목사님의 주례로 결혼식. 서부교회는 이미 결혼 간소화를 일찍부터 시행하였으나 당시 결혼에 대한 과도한 인사와 잔치와 선물로 번잡함이 많았고 백 목사님은 시대를 역항하여 더욱 간소화를 하기 위해 양가 친지와 축하하기 위해 오는 교인과 하객들에게 하루 일과를 마치고 밤 시간을 이용하여 예배도 참석하고 잠깐 축하하도록 하기 위해 밤 예배 후 결혼식을 생각하다가 그 첫 사례로 정순환 부부에게 적용. 가족이나 주변의 반대도 있을 것이고 특히 신부측이 타 교회여서 이해 문제 등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여 사전에 의견을 물었으며 정순환 부부가 순종하겠으며 자신이 있다고 대답하여 그렇게 함. 서부교회와 총공회의 밤 결혼식이 시작됨.

4. 주일학교 반사
- 감당할 수 없는 임명

당시 주일학교는 1970년에 부장이 된 장렬 선생님이 서부교회 주일학교를 처음으로 주일 오전에 1천 명의 출석대를 만들었고 1974년 7월에 청량리교회 조사님으로 목회를 출발하는 기간. 장렬 목사님은 교회 내 반사를 할 수 있는 분들을 권하고 있었는데 정순환이 눈에 띄임. 군대 제대 후부터 열심히 신앙 생활을 했고 브니엘 중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충직한 면 등을 봤고, 1973년부터 주일학교 반사를 시작함. 서부교회 주일학교는 남반의 경우 목회를 소망하는 청년들이 즐비했고 실제 당시 반사들 중에 유명한 공회 목회자들이 대거 배출 되는데, 주일학교가 1960년대 2백에서 3백여 명을 헤아리던 상태에서 1970년에 1천 명대에 첫 진입을 하고 이후 1천명 대를 중심으로 요동하며 가파르게 부흥하자 온 교회의 분위기가 뜨거웠는데 장렬 부장 선생님이 목회를 출발.

서부교회 주일학교 전체를 통해 가장 중요한 시기에 부장을 결정하게 되었는데 백 목사님은 부장 후임으로 중견 반사인 정영덕 선생님과 함께 반사 생활 1년 남짓 된 정순환 선생님을 명단에 올려 전체 반사에게 투표를 시켰고, 정순환이 3 표가 적었는데도 정순환을 후임으로 결정하고 임명(편집註). 그리고 생활 지도는 목회를 염두에 두고 배종일을 명단에 올려 유주열과 두 명의 선생님을 후보로 올려 배종일 선생님이 표가 많았고 그대로 임명하였으며 정영덕 선생님은 교육감이라는 자리로 보조하게 하여 주일학교 지도부를 임명. 처음에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고 정순환은 더욱 예상할 수 없었고, 모든 것은 주님에게 다 맡기고 목사님 지도에 순종한 것이 전부.

- 오로지, 충성
학교에서는 테니스부를 책임 졌고, 교회서는 주일학교 부장을 맡았는데 브니엘의 테니스부가 전국 1위를 유지하고 있을 때였고 서울처럼 먼 곳에서 자주 경기가 있고 1 년에 최소 몇 번은 경기가 있는데, 경기는 주로 월요일부터 시작하는데 그 때마다 다른 팀들은 일요일에 숙소를 잡을 때이나 정순환은 토요일에 미리 올라 가서 월요일 경기를 준비 시키고 주일을 지키기 위해 토요일 밤차로 내려 오면, 다음 날 새벽부터 주일학교 반사와 부장으로서 심방과 주일 하루를 지나고 월요일 경기에 임함. 주일학교가 가파르게 올라 가며 많은 미아가 발생하고 아이들이 넘어 지면 주로 팔이 삐는 탈골이 많은데 그 때마다 유도하면서 배운 실력으로 그 자리에서 바로 뼈를 맞춤. 또 기타 주일학교 학생 중에 사고 등으로 입원을 하게 되면 부장으로서 교회를 대표하여 불신 부모들을 달래야 하기 때문에 병원 심방 가는 일도 잦았고 주일 하루를 다 보내고 나면 밤차로 다시 올라 가서 월요일 경기를 지도. 학교에서 맡은 일이 일반 교사와 비교할 바가 아니었고 또한 맡은 팀이 전국 최정상급이어서 체력 소모도 많았고 주일학교는 늘 비상 상황처럼 초긴장 가운데 진행이 되었는데 양 쪽을 다 같이 열심히 할 수 있었던 것은 유도로 단련한 건강 때문이며 훗날을 위해 하나님께서 미리 연단을 시킴.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회고하면 목사님의 능력과 지도에 부장은 거저 순종한 것 외에는 달리 한 것이 없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음.

- 부장의 제1 업무
모든 것에 앞서 주일학교 부장은 주일 오전과 오후 예배가 마치면 백 목사님이 불러 주는 다음 주일의 주일학교 공과 내용을 받아 적는 일. 백 목사님은 주일 오전과 오후 예배 전체 내용을 요약하여 한 페이지 분량으로 공과를 불러 주는데, 오후 예배를 마치면 강단 밑에 앉고 부장은 피아노 쪽에서 그 의자에 앉아 공과를 받아 적는데 이미 장렬 부장 선생님 때도 그렇게 하였고 정순환의 부장 재임 기간 처음부터 한결 같이 내내 동일. 백 목사님의 매주 11회의 설교를 적는 일반 필기노트 외에 주일학교 공과를 받아 적기 위해 일반 대학 노트의 절반 크기에 스프링으로 묶여 진 전용 노트를 마련하고 받아 적음.

공과는 그 날 오전과 오후 예배의 요지가 되면서 동시에 그 내용들 중에 주일학생들에게 다음 주일 가르치기 위해 부장과 전체 반사가 미리 적고 외우고 그 말씀대로 한 주간을 살면서 학생들에게 전하도록 전심전력을 기울일 내용이니 사실상 전성기 1천여 명 주일학교의 반사와 보조반사 전체에게 말할 수 없이 소중한 말씀이며, 서부교회의 모든 것이 녹아 있는 내용을 받아 적는 순간이어서 늘 토씨 하나까지 신경 쓰며 적었고, 조금이라도 미심쩍은 부분이 있으면 몇 차례라도 바로 질문하여 확인을 받고 받아적음. 일반 설교 시간에는 속필로 적지만 이 때만큼은 불러 주시는 목사님께 죄송해서 반드시 정서로 한 자씩 뒤에 확인이 가능하도록 적었는데, 그 오랜 세월 그렇게 받아 적으며 다시 여쭙고 새로 적어도 한 번도 짜증 표시조차 내지 않은 것도 너무 감화적. 이 노트는 서부교회 바로 밑의 부용동에 살다가 현재 주소지로 이사하면서 이삿짐을 챙기는 중에 분실했고 이혼 말이 나올 만큼 부부가 함께 극히 애통.

공과를 다 받아 적으면 목사님은 하강단에 올라 가서 반사회를 주재하셨고 목사님이 내려 가시면 부장이 그 자리에 올라 가서 전체 반사들에게 받아 적은 공과를 다시 불러 주게 됨. 이 때가 서부교회 반사와 보조반사는 말할 것 없고 일반 교인들까지도 그 날 말씀의 요약이며 복습이며 한 주간에 암송할 만큼 들여다 볼 말씀이어서 일반 교인들의 방청과 필기도 많았으며 모두가 가장 긴장하며 한 토씨에 귀를 기울임.

- 부장의 기본 업무
부장은 공과의 전달 외에 주일학교 예배를 처음부터 끝까지 인도하며 모든 것을 책임 맡은 자리지만 주일학교의 실무 처리는 생활지도를 맡은 배종일 선생님이 주로 맡고 교육감을 맡은 정영덕 선생님이 돕고, 그리고 부장은 예배 인도와 함께 모든 반사 생활을 다른 평 반사들과 꼭 같이 소화. 부장이면서 개인적으로 예전부터 맡아 온 자신만의 반은 토요일 심방에서부터 주일 아침의 심방과 학생 인도와 집집마다 다니며 깨워 데려 나오는 일은 다른 반에 오히려 행동으로 모범이 되어야 했음.

살고 있던 동대신동 주변을 중심으로 전도하였고 3 남매가 자라 나가면서 친구들이 생기고 아이들이 착실하고 호평을 받는 편이어서 아이들의 친구 관계로 전도가 많이 됨. 친구들의 가정에서 저 아이들이 교회를 나가니 따라 다니면 좋아 지지 않겠나 그런 정도. 그러다 보니까 3 남매 아이들이 나중에는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보조반사 역할이 되었고 아내는 부장을 맡은 남편 때문에 예배 시간을 중심으로 모든 일에 수족이 되고 동역자가 됨. 토성동 부민동으로 전도를 하다가 송도 산복도로에까지 활동 범위.

- 주교부장 ‘충성장’

1986년 6월 22일 주일학교 부장을 후임 이영인 선생에게 넘기고 일반 반사로 여전히 충성하게 될 때 백 목사님은 ‘충성장’이라는 상장을 수여함. 아내의 제일 자랑이 ‘백 목사님께 받은 충성장’이며 서부교회의 전무후무한 일로 충성장의 내용은 ‘주일학교 부장 정순환,
‘귀하는 1974년도부터 본교회 유년 주일학교 부장직을 무보수로 담임하여 그간 주일학생을 1700명에서 8000여명선까지 성장시키고 주 안에서 맡은바 사명을 충성되어 질 감당하였기로 이에 충성장을 수여함. 1986년 7월 6일. 예수교장로회한국총공회 서부교회 당회장 목사 백영희’

백 목사님은 평생 칭찬에 인색했고 긴장과 조심과 두려운 자세로만 살았고 따라서 교인들에게도 그렇게 했으나 서부교회의 주일학교를 통해 역사한 결과는 복음운동의 역사에 너무 컸고 70년대 부흥기와 80년대의 절정기의 가장 중요한 기간 대부분을 흔들림 없이 충성하여 한 치도 헛점 없이 주일학교를 대표한 공로만은 이런 표시를 따로 하지 않을 수가 없었음. (편집 註)초기에는 1인 부장으로 그리고 후기에는 장소의 협소로 1층과 2층을 분리함에도 불구하고 선임 부장으로 주일학교를 대표한 정순환 선생님의 압박감은 1천여 명의 반사와 보조반사 전체와 8천여 명의 주일학생들이며 심지어 성경학교나 성탄절에는 1만 수천 명까지 참석하는 학생들의 주일과 예배와 그 눈빛 그리고 이를 맡긴 주님 앞에 떨지 않을 수가 없었으나, 우선 백 목사님이 숙소자 사무실인 5층에서 부장의 설교를 비롯하여 예배 진행 전부를 실시간으로 들으면서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으면 주일 예배 때나 반사회 때 바로 지적을 하게 되니 눈에 보이는 스승의 매 순간 지도가 실제로는 더 큰 압박감이어서 살든지 죽든지 충성한다는 일념으로만 계속.

5. 백 목사님의 순교일
- 해외 체류

브니엘은 중고등학교로 되어 있어 선수들은 6 년 동안 지도하게 되어 6 년의 담임 역할을 맡게 되는데 국가대표급 선수가 많아서 국가 대표팀을 이끌 때가 있었고, 1989년 8월 27일 백 목사님의 순교하던 그 주간에는 카나다에서 개최 된 세계 주니어 테니스 대회에 한국 대표팀으로 브니엘고교 여자 팀과 마포고교 남자 팀이 함께 해외 현지에 체류. 오랫동안 주일학교 부장을 맡아 왔던 관계로 주일 새벽기도회는 특히 제일 앞 자리에 앉게 되었고 늘 습관이 되었는데, 강단에 올라 가는 범인을 보았다면 평생 운동한 사람으로 그런 상황을 제압하는 것은 쉬웠고 그 칼은 백 목사님 가슴에 꽂히기 전에 자신이 먼저 받았을 신앙과 담력과 실력을 가졌는데, 이 순간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려....

- 지켜 드리지 못한 죄책감
순교 소식과 함께 그 내용을 들을 때 자신이 해외 경기 때문에 나온 것이 백 목사님을 지켜 드리지 못한 책임감으로 뜨거웠고 백 목사님은 평소 해외 경기 출전을 염려했던 면을 생각할 때 더욱 눈물에 가슴 미어짐. 한 편으로는, 자신이 해외 출전을 하지 않았다면 새벽예배를 빠질 리가 없고 주일 새벽예배에 앞 자리를 놓칠 리가 없으며 범인을 막을 것인데도 하나님께서 꼭 순교로 데려 가시려고 이런 일정까지 마련하고 순교의 그 길에 손을 대지 못하게 했음을 강하게 느낌. 특히 백 목사님은 1980년대 초반 신변의 위협을 느낄 때 직접 자신에게 위급 상황에 대처하도록 말씀한 적이 있었으니 더욱 애통하는 마음이 큼.

- 남은 평생 기도 제목
이 날 이후로때 오늘까지 기도할 때마다 ‘순교자 백영희 목사님, 서부교회 중심으로 이룬 예수교장로회 한국총공회에 기름 부은 종들과 성도들, 주일학교... (목이 매임) 기도 회개 생활 전심 전력하여 하나님 아버지 기뻐시게 하고 영광 돌리게 해 주옵소서’ 매일 아침 저녁의 30 분 기도 때마다 24 년째 계속. 이 기도를 하면 마음이 좋아지고 순교하신 백 목사님을 생각하며 기도 내용을 찾아 계속할 수 있는 것도 큰 은혜니 이 은혜 주심에 대한 감사에... (눈물)

6. 장로 안수
- 제11회 총공회

1982년 3월 2일, 제11회 총공회가 서부교회에서 개최 되었고 정순환은 총공회 모교회인 서부교회의 3차 장로 안수 5 명 중 선임 장로님으로 안수. 1973년에 이동근 장로님이 1차에 혼자 받았고, 1980년에 2차 7 명으로 김기수 강상영 손성준 이춘영 백도광 황길태 박영태 장로님. 1982년에는 정순환 홍종복 성정수 주덕원 이창수 장로님. 당시 총공회는 물론 서부교회의 규모와 의미로 볼 때 정순환의 장로 임직은 파격적인 조처였으나 주일학교를 맡은 부장으로 이미 그 신앙과 실력과 공로를 생각한다면 너무 당연한 상황(편집 註)

- 장로 임직 선물 문제
정순환 장로님은 월급으로 사는 교사였으나 나머지 홍종복 성정수 주덕원 이창수 장로님은 의사나 사업가들이여서 사회와 일반 교단의 상식에 좀 넓은 편. 장로 임직을 받았으니 선한 동기로 교회에 선물을 하기로 하고 백 목사님의 설교가 너무 유명한데 이미 당시에 보급 되기 시작한 비디오 촬영 장비를 연보. 비교적 고가품인 비디오 촬영기는 사업하는 4 명의 장로님들이 맡고 방송실에 비디오 촬영을 볼 수 있는 TV는 정순환 장로님이 분담. (편집註: 백 목사님은 장로 되었다고 교회에 선물하면 나중에 장로라고 교회에 권세 부릴 것이냐고 대책. 철거 문제가 심각히 고려 되다가 이왕 예배당에 설치 된 것을 철거할 정도까지는 아니며 서부교회의 장로에 대한 인식을 각인 시키는 정도에서 그침)

- 재독용 설교 자료
(백 목사님의 설교는 79년부터 본격적으로 녹음 되었고 1982년의 녹화 장비 때문에 오늘까지 600여 개의 설교가 자료로 남게 되는데 그 시작이 바로 82년의 제3차 장로 안수 5 명의 선물로 시작. 원래 백 목사님은 필기도 예배 은혜에 지장 된다고 금한 정도였으나 말씀을 제대로 깊이 묵상하는 데 필요하여 필기는 일찍부터 허락했고 79년부터는 녹음도 허락이 되었고, 정순환 장로님의 임직 때 선물로 인해 백 목사님 설교는 동영상 자료로 남겨 지게 됨. 편집 註)

7. 백 목사님 사후
- 지도자를 잃은 고통

1989년 8월 27일, 백 목사님의 순교로 정순환 장로님이 잃은 것 중에 가장 큰 것은 믿고 순종할 지도자를 다시는 만날 수 없었다는 점. 과거에는 명령 일하에 순종하고 훗날 돌아 보면 하나님의 인도가 지도자를 통해 역사했음을 알기 때문에 마음 놓고 달려 가기만 하면 되었으나, 이제 백 목사님의 갑작스런 순교로 서부교회와 공회는 모든 것이 극단적 혼란기를 맞게 되었고 정순환 역시 매 순간 최대한 양심적으로 그 동안 배운 것으로 판단한다고 했으나 돌아 보면 잘못도 있고 아쉬움도 있음.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전체적으로 남은 평생을 살아 갈 방향을 위해 한 걸음씩 주시는 인도라고 생각하며 지금도 아침 저녁으로 30 분씩 기도하며 백 목사님이 서부교회를 중심으로 공회와 복음 운동을 했던 여러 면을 두고 기도하며 스스로 신앙을 다잡으려 노력 중.

- 백 목사님 마지막 기간
1986년 6월에 부장직을 후임에게 인계했지만 주일학교 반사 생활은 그대로 했고, 한 편으로 장년반 예배에 설교 사회를 예전부터 보고 있었는데 이 기간에도 계속하고 있었으며, 사회를 겸하며 광고를 하게 되면서 백 목사님 사택의 전화비가 많이 나온 것을 가지고 언급한 것은 지금 생각하면 그럴 일은 아니어서 아쉬움.

- 서부교회 내부 갈등
백 목사님 순교 후 서부교회는 이재순 목사님을 모셨고, 거의 모든 예배를 백 목사님 생전의 설교 자료를 가지고 재독으로 대신하고 있었으며, 이 문제를 두고 훗날 남정교회를 개척하는 장로님들과 청년들은 정순환 장로님에게 백 목사님이 돌아 가셨으면 후임 목사님이 여호수아처럼 대를 이어 가야 하는데 재독만 하고 있는 것은 교회 권력을 잡는 방법이라고 집중적으로 설명할 때 생각이 같아서 그들과 행동을 함께 하며 때로는 앞장을 섬. 섬. 훗날 서부교회에서 남정교회를 개척하는 주도 장로님들이나 교인들이 정순환 장로님 댁을 지속적으로 방문했고, 집이 서부교회에서 제일 가까운 관계로 새벽까지 계속 되는 의논과 대책 마련으로 늘 부산하였으며, 아내 이영자 집사님은 식사나 기타 대접에 연일 고생.

한 번은 서울의 한국체육대학에서 테니스 코치를 위한 아카데미가 열려 교습 때문에 올라 갔으나 강상녕 장로님과 손기일 선생님이 교육 장소에까지 올라 와서 교회가 급하니 속히 내려 가자고 하여 따로 왔는데 부산에 오자 바로 엄궁으로 갔고 여기서 여러 의논과 지시도 있었음. 당시는 백 장로님이나 강 장로님이나 남정교회를 개척하는 분들의 뜻은 나와 달랐음.

- 남정교회 개척
서로의 생각과 가는 길이 달라서 이제 한 교회에 있을 수는 없게 되고 막상 개척이 진행 되고 실행 되자 정순환은 순수히 백 목사님을 극진히 존경하는 마음으로 교회를 위해 나선 자신과 다른 분들은 속 생각이 서로 달랐던 것을 느껴 남정교회에서 성광교회로 다시 개척하여 나옴. 남정교회를 개척한 장로님들은 건축이나 기타 여러 면을 잘 아시는 분들이었고 모든 처리가 세상 기관식으로 척척 진행 되며 은혜 중심이나 우리가 배운 교훈이나 신앙 유지와는 다르게 보였음.

성정수 장로님과 함께 정순환 장로님은 남정교회로 개척하는 쪽의 대표가 되어 서부교회에 남게 되는 분들의 대표로 나온 서문행 장로님 등과 협상에 나섰는데 예배당의 재산 분할이나 김해의 서부교회 묘지 사용 등에 대해서는 미리 생각하지도 못했고 할 수도 없었으나 개척의 주도 장로님들은 건축 등에 전문가들이어서 그런지 미리 생각을 다 해둔 듯이 일사천리. 서부교회로부터 받은 것 재산 중에는 서대신동에 서부교회가 막 마련해 두었던 큰 주택이 있었고 이 곳에서 예배를 드리며 앞으로를 계획하게 되었는데 정식 개척이 시작 되자 남정교회 측에서는 그동안 표현하지 않았던 여러 내용과 조처를 취해 나갔고, 이에 대해 신앙 원칙상 곤란하지 않느냐고 반대하는 교인들은 함께 있을 상황이 아니어서 서대신동의 주택에서 예배를 드리며 향후 예배당 마련을 계획하던 중에 정순환과 뜻을 같이 하는 분들은 성광교회를 개척하게 됨.

- 남정교회와 분리
남정교회의 개척이 진행 되면서 느꼈고 상황을 알았으나 서부교회로 돌아 갈 수는 없고 자연스럽게 뜻을 함께 하는 하영신 류주열 김용수 박장관 집사님 등과 함께 했고 식구는 박상이 집사님 쪽이 가장 많았음. 남정교회를 거쳐 성광교회를 개척하는 모든 과정에서 배경이나 전체 상황을 몰라서 판단을 실패한 경우는 있지만 마음만은 순수했기 때문에 남정교회의 대표가 되어 대표로서 등기를 하거나 서류 작성을 할 때도 누가 말하면 원하는 대로 해 줌. 남정교회에 백영익 목사님을 모시게 되었다면 대포 변경을 요구했고 주저 없이 허락. 바로 그 사택에서 남정교회가 출발했고 훗날 남정교회에서 서정교회가 다시 시작함.

- 성광교회 개척
남정교회에서 나올 때 교인은 50여 명. 예배 볼 곳이 없어 정순환 장로님의 집이 좋다는 말이 있어 그렇게 했고, 부용동 로타리에 당시 집을 사 놓았는데 1층에 방이 3 개였고 그 곳에 사람들을 앉히고, 아내의 고생이 많았고, 그 후에 그 집의 건너편에 물망초 수예점 하던 곳 2층의 50 평에 전세를 얻게 됨. 처음에는 달리 목회자 초빙이 어려워 정순환 장로님이 설교. 조금 지나자 연보가 모여 지고 이재순 목사님을 모시게 되었고 모두가 목사님을 좋아해서 은혜스럽게 잘 진행. 모두가 의견이 일치 되어 재미 있던 시기. 이재순 목사님은 백 목사님 설교와 비슷하여 은혜 받기 쉬움. 이후 길 건너 편에 7층 빌딩의 2층에 전세로 이전하여 있었고, 거기서 다시 보수동으로 이전.

- 성광교회에서 나옴
서부교회 주변에서 살다가 대티고개에 협성 아파트 단지로 이주하면서 교회와 거리나 향후 교회의 운영 등을 두고 서로의 의견이 달라 성광교회 출석을 포기. 임상렬 목사님 시기.

과거 백 목사님 생전에는 순종만 하면 되었으나 이제 책임도 무거워 지고 또 여러 사람들과 의논을 해야 하는데 서로의 생각이 다르지만 그들을 지도할 정도의 실력이 되지 않으니 혼자 자유롭게 알아서 신앙생활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부부가 영도를 비롯하여 부산 여러 곳을 다니다가 정필도 목사님의 수영로교회가 찬송도 옛날식이고 또 설교도 백 목사님의 설교를 참고한 듯하며 은혜 분위기가 있어 큰 아들 가정과 함께 출석.

- 공회 생활에 아쉬움
교회 분쟁 중에 한 번은 이탁원 행정실장님이 학교로 한 번 찾아 와서 우리 공회에서 장로님을 제명 시킨다고 통고한 적이 있었고, 제명 시키려면 알아서 하라고 답한 일이 있음. 당시를 생각하면 자신은 서부교회나 그 쪽 공회의 장로가 아닌 것. 그렇다 해도 사건 하나로 장로에 대한 제명을 쉽게 언급하는 것은 유감. 스스로 나갔다 해도 찾아 가서 돌아 오게 하면 좋겠고 우리가 주일학생 하나를 데려 오기 위해 부모에게 온갖 소리를 다 듣고 데려 오는데 수십 년을 함께 신앙생활한 사람들을 잘 나갔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행동한다면 아쉬움. 우리 서부교회와 공회는 신앙 지식은 높고 자랑할 것이나 용서와 권면이 필요할 듯.

8. 최근의 생활
- 퇴직

2006년에 학교에서 정년 퇴임, 62세

- 기도 생활
많이 하지는 못해서 새벽과 저녁에 꼭 30 분씩을 정해 놓고 입으로 소리를 내어 또박또박 기도하고, 또 기도할 때는 백 목사님께 배운 대로 내용을 짧게 끊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을 붙여 가며 기도생활. 기도를 할 때는 대한민국 대통령에서 시작해서 저 쪽에 백 목사님 총공회 서부교회 서영호 목사님과 내 가족 친척과 최근에 중국에 있는 조카 때문에 중국교회를 위해서도 기도하고, 미국교회나 호주교회를 위해서도 기도하며 그 모든 분들에게 ‘기도 회개 믿음 생활 잘 하게 해 주시고, 하나님 기쁘시게 영광 돌리게 해 주시도록’ 기도.

교사로 활동하면서 특히 체육계에서 활동한 관계로 평생 잊지 않고 연락하는 제자들이 많은데 동서대학 장재욱 총장도 브니엘 시절의 제자여서 한번 만난 적이 있는데 위해서 기도하겠다고 했고 약속한 기도 내용은 '부산에있는 동서대학 장제국총장 진리와 영감대로 총장직 잘 감당하여 세계적인 동서대학 장제국총장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였고 지금도 그대로 기도 계속. 테니스 제자들이 많고 국가대표 선수가 브니엘에서 가장 많이 나왔는데 그들을 위해 계속 기도하다 보니까 이름을 다 기억하게 됨.

제일 아끼는 제자 중에는 이성숙 선수가 있는데 아들이 정석영으로 최연소 데이비스컵 대표로 건국대 1학년 시기에 챌린저 대회에서 준우승. 그들의 신앙을 위해 기도하고 신앙이 있으니 성실과 열심히 믿음에서는 나오는 것. 선수생활에 모두 신앙으로 지도하려고 노력함.

- 가족 신앙

3 남매,
* 첫째 정기영(基永), 1973년

목사님께서 지어 주신 이름이고 동아대 출신. 부인이 정지향으로 교대 출신으로 신평 초등학교 교사. 모친이 괴정 성민교회권사이며 원래 보수동의 광복교회에서 분리했고 부친은 개인택시로 온 가정이 신앙적이며 초등 2년의 손자와 손녀 1 명씩으로, 주일이 되면 온 가족이 함께 수영로교회로 출석

* 둘째 정지영, 1975년

동아대 의대 졸업 후 레지던트를 서울보훈병원에서 하고 춘천에서 군의관으로 대위, 제대 후 서울대병원에서 근무하고 대학원 과정. 현재 부근 가까운 종합병원에서 정신과 근무하는데 신앙도 좋고 부민초등학교 때부터 친구들을 잘 데리고 왔고 정신과 환자 상담하며 신앙으로 적극 권면하며 크게 노력. 한국외대 나온 아내는 친정 부모님이 장로님 권사님 부부며 원래 신앙의 가정. 현재 손자 1 명.

* 셋째, 1977년

인하공대 졸업하고 현재 서울에서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음.

9. 주신 자연 은혜
백 목사님은 운동을 잘 아는 도인이어서 정순환 장로님의 운동 실력과 그 배경이 되는 성격과 여러 면을 남 다르게 인정하고 있었으며 자주 언급하심. 정 장로님은 일시 공회를 떠나 있으나 기도와 그 마음에 이 노선을 떠나 본 적이 없고 다른 교회를 생각할 수 없는 분. 공회 교인들의 내면과 생활을 잘 아는 분으로서 또는 기도 생활을 많이 하고 말씀 연구에 매진하는 공회 목회자들을 위해 실내에서 간단하게 할 수 있는 건강법을 기도 중에 생각하고 정리하여 소개. 이 노선은 육체의 건강법처럼 세상 것은 무시하다 시피 했으나, 정순환 장로님은 백 목사님이 인정하는 신앙과 정신과 운동까지 겸비한 분이 편집자에게 성의껏 소개해 주신 방법을 공회인 전체에게 전달할 사안으로 판단함. 백 목사님은 5층에 철봉과 건강 관련 몇 가지 도구를 가지고 계셨으며 주변에 건강 문제로 걱정 되는 사람은 구체적 방법까지 제시하며 지도하신 적이 있어 이를 참고함. (편집 註)

* 개요
헬스장이나 야외에서 활동량을 많이 하는 운동이 아니라 실내에서 가능. 교사 생활 중 학생들을 상대로 시행. 균형감과 근력 등 여러 면에서 좋고 반응도 좋고 다른 운동을 할 때도 잘 다치지 않는 여러 장점. 전체적으로 3 가지며 근육운동이고, 간단한 근육 자극을 통해 튼튼한 뼈를 확보. 학교 은퇴 전에는 출근하면 700회, 요즘은 500회, 몇주 전부터 자신이 있어 다시 700회.

1. 하체 운동
- 기마자세 다리는 45도

- 허리는 약간 숙이고

- 팔은 깍지 끼고 90도로 올린 다음

- 엉치 쪽에 중심을 두고 운동하며 많이 내려 갈 것

* 깍지 팔과 엉치에 힘을 함께 주며, 6개월 이상 넘어 가야 효과. 인내가 필요한 운동.

* 시작에는 30회가 어렵고, 고교생이 하루 300회, 처음 1백에서 2백으로 올리며 700회까지 올리면 좋을 듯

* 장로님은 현재 5백회 해야 땀이 시작

* 운동은 무조건 힘이 들어 가야 힘. 산을 탄다는 식으로 만보 걷기도 한다는데 500회 정도면 대신할 수 있음.

2. 팔굽혀 펴기
- 손바닥으로 시작하고

- 양 손의 손가락을 세워할 것

- 처음에는 무릎을 꿇고 하다가 나중에는 손가락만으로 할 것

* 10 회 정도에서 시작하여 늘릴 것. 현재 50 회하고 있고

* 손가락으로 인해 뇌 반응과 관절 등에 유익.

3. 윗몸 일으키기
- 가정의 거실 소파 중간의 턱에 발 끝을 걸고

- 올라 갈 때 몸을 좌우로 비틀되 귀 부근이 닿을 정도로 하고

- 머리 뒤통수가 꼭 바닥에 닿을 정도는 아니라도 3-40도까지 내려 갈 것

* 복부 운동

**
전체적으로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고 시작할 것

땀이 진득하게 날 정도가 될 것

40여 분이면 좋을 듯

공부하는 사람이나 자습으로 남아 있을 때 공간에 나와서 조금씩 그렇게 늘려 나갈 것. 연속할 것

**
나이가 많아 지면서 골반과 엉덩이에 문제가 생겨 몸 전체가 허물어 지는데 이런 점을 확실히 방지하는 중요한 운동.

균형, 근력, 골다공증, 뇌심혈관, 어지럼증 등 거의 모든 문제 해결.

2006년에 62세 정년 앞두고 시작했고 15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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