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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옥, 권신자 - 여산교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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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1.02.19

제목: 여산교회와 백영희 신앙 노선
일시: 2012.1.10.

이름: 권신자 권사님, 1945.1.31.생

남편: 권오옥 장로님, 1939,4,18.생

주소: 여수시 여서동

현재: 여수 은파교회

1. 성장
권오옥 장로님은 여수 경찰서 주변의 공화동에서 200여 평 여인숙을 했고, 권신자 권사님은 구례읍 출신으로 6세에 구례읍 중앙교회에서 예수님의 일대기를 보고 감동을 받아 교회를 출석했는데

2. 교직권신자는 1963년 초등교사 과정의 사범학교를 졸업. 졸업 당시 초등학교 교사 양성이 교육대 체제로 전환하던 시기. 교육대 첫 졸업생들이 1961년에 교육대 입학하고 1963년에 사범학교 마지막 졸업생들과 함께 배출. 1965년 구례초교 근무 중에 두 분이 만나 결혼하고 함께 신앙생활을 했는데

3. 공회 신앙

(공회 소개)
여수 동국민학교에 근무하던 시기에 아이를 출산했고 여전히 학교로 출근하던 시기인데, 공회 소속 박은석 목사님의 사모님이 권신자와 구례에서 신앙생활을 함께 했던 연고로 여수 근무 소식을 듣고 물어물어 학교로 찾아 왔고, 이 재회에서 신앙 안부와 함께 그 사모님이 알게 된 백영희 목사님을 소개.

(백영희 목사님)
백영희 목사님은 박 목사님 부부가 함께 말씀을 접하게 되었는데 너무 좋아서 이런 말씀을 들어 보지 못했다, 너무 묘하고 신비하다 하며 적극 소개, 함께 신앙 생활을 하자고 권면. 당시 신앙생활은 했는데도 여수에서는 교회를 정하지 않은 상태였고 아마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시기인 듯.

(박은석 목사님)
박은석 목사님은 관문동에 부모님 댁이 있었고 여수수산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원래 순복음 교회 신앙, 박은석 목사님의 사모님도 구례에서 권신자 주변에 살며 그 사모님이 순복음교회를 다니며 권신자와 학교를 다닐 때부터 서로 알게 되었는데 사모님은 후에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를 다니면서 신학까지 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순복음교회의 전도사였던 박은석 목사님을 만나 결혼. 두 분이 강원도에서도 목회를 한 적이 있는데, 함께 백 목사님 집회에서 말씀에 붙들림. 이때는 이미 목사 안수를 받음.

4. 여산교회 개척

(1) 박은석 목사님
(가정 교회)

박은석 목사님은 관문동 모친 댁에 여산교회 간판을 붙이고 가정집에서 개척. 이 가정집에 개척하여 예배를 드리던 시기에 출석. 현재 여산교회 공화동 예배당과는 길 하나 건너는 정도. 권신자는 백 목사님의 교훈을 접하며 큰 충격. 그 날 이후 오늘까지 백영희 목사님의 교훈에 붙들려 살며 현재 통합 교회를 출석하지만 ‘백영희 목사님의 제자’라는 입장을 분명하게 먼저 밝히고 출석. 박은석 목사님은 이 가정집에서 5 년 정도 여산교회 개척 1대 목회를 하심.

(예배당 마련)
개척 후 3 년 정도 되었을 때 박은석 목사님은 모친 댁 전체를 예배당으로 사용해야 할 정도가 되자 교회는 모친의 방 얻을 정도의 돈만 마련해서 드리고 그대로 교회로 사용함. 그 댁 전부를 교회로 연보한 것과 같음. 가정집을 예배당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개조했고 25 평 정도가 될 듯. 박 목사님 계시던 시기 교인은 30 -40여 명으로 기억.

(2) 신용인 목사님
(뜨거운 은혜)

박은석 목사님이 순천 순산교회를 개척하여 이동하고 후임으로 2대 목회자 신용인 목사님이 부임. 신용인 목사님은 백 목사님 교훈에 철저했고 신본에 확실했으며 은혜가 넘쳤고 매사 인격자로서 아주 말씀 그대로 사셨던 분. 반면에 사모님은 인본이 좀 있는 듯해서 목사님과 사모님 사이에 맞지 않는 면이 보였으나 사모님의 열심은 대단했고 권신자를 데리고 매일 전도를 계속하였으며 교회는 은혜와 부흥이 함께 있었음.

(부흥과 건축)
교회는 장년반이 100여 명으로 부흥이 되었고 주일학교도 150 - 200여 명을 헤아리는 정도가 되므로 가정집을 개조한 관문동 예배당으로는 비좁았는데, 백태영 목사님이 집회 인도차 오셨고, 교회는 모두 크게 은혜를 받았으며, 집회 기간 중에 백태영 목사님은 여인숙을 하던 권오옥 장로님 댁에 숙소를 정했는데, 집회 중에 교회 건축이 필요하다 하자 말씀 은혜를 크게 받던 권오옥 장로님은 백태영 목사님을 찾아 이 집을 다 연보하겠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이 말을 들은 백태영 목사님은 교회에 그냥 내 놓는 것보다 돈을 약간이라도 쳐서 매매 형식으로 하는 것이 좋겠다 하심. 그래서 돈을 조금만 받고 210여 평의 여인숙을 예배당으로 내놓았고, 교회는 여인숙을 헐고 예배당을 건축.

신용인 목사님은 청량리교회에서 오셨는데 건강이 좋지 않아서 온다 하셨으나 여수 시절에는 건강에 문제가 없었고 잘 계셨으며, 권신자는 이 시기에 자신의 평생 신앙의 모든 기초를 다 닦게 됨. 목사님께는 말씀의 은혜를 받아 성경 말씀 그대로 믿기 위해 죽기를 각오하게 달렸고, 사모님과 전도하는 열심에 매일 계속하여 명절 때도 전도를 했으며, 매사에 목숨 걸고 믿고 나감. 신 목사님 시기부터 교회 회계를 맡아 교회 경제를 잘 알게 됨.

(백영희 목사님 지도)
신앙 면에서는 부족함을 느낄 수 없이 충만한 은혜 가운데 계속 되었으나 남편과 부부 문제를 두고는 갈등이 있었으므로 신 목사님 부임한 지 1년 반이나 지났을까, 신 목사님께 부탁해서 부산 목사님께 지도를 직접 받아 보고 싶다고 말씀을 드렸고, 신 목사님은 새벽 6시에 전화를 하면 목사님께서 전화를 받을 수 있는 시간이며 미리 말씀을 드렸다 하심. 권신자는 권찰이고 남편 장로님은 신앙 초기여서 아직 신앙이 어린 시기. 그 시간에 전화를 드렸고, 목사님은 ‘권 집사님이요?’라고 하셨는데 아직 집사가 아니라 하자 ‘앞으로 집사가 되어야지요’라고 하셔서 예 하고 대화를 이어 갔음. 남편 문제로 말씀을 드리자 목사님은

첫째, 세월이 해결하고

둘째, 남편에 대한 것을 자신에게 힘쓰고

셋째, 눈물 어린 호소이어야 하고

넷째, 죄를 방임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렇게 간단히 또렷하게 마치 불러 주듯 하심. 전화로 지도를 받는 그 순간 그렇게 말씀하는 내용은 평생 잊지 않도록 기억하게 되나 그 말의 뜻은 사실 잘 모르는데도 전화로 들려 오는 그 소리에 성령은 권신자의 마음을 열었고, 백 목사님의 말씀이 끝날 때 ‘감사합니다’ 라고 하자 바로 ‘그러면 잘해야 돼요.’라고 말하며 바로 전화를 끊음.

(새로운 세계)
그 날부터 바로 성경을 붙들고 마구 읽었고, 읽는 대로 그 때부터 모든 것이 열림. 그 때까지는 열심만 가지고 다녔고 성경을 따로 읽는 것도 몰랐는데 말씀이 열리기 시작함. 나중에 성경을 읽으니까 첫째로 부탁하신 ‘세월이 해결한다’라는 말씀도 전도서 4장에 있었고 또 창12장 복에 근원이라는 말씀도 들어왔음. 그래서 나를 꺾고 내가 먼저 순종하니까 남편이 그 때부터 열심을 내기 시작. 답답할 때는 백 목사님께 전화도 드렸고 편지도 적었으며 답장도 받았으며 전화할 때 들리는 그 소리가 쟁쟁. 자녀가 5 명이며 모두가 새벽예배로 하루를 시작.

(이동)
서울 동문교회로 이동하게 될 때는 온 교회의 슬픔은 컸고 학교 문제로 위의 두 아들은 고등학교와 중학교 학생이었고 전학 문제가 있어 각각 1 - 2 학기 더 하게 되어 집에 데리고 있었음

(3) 김응도 목사님
(비교, 평가)

3대 교역자, 솔직하고 열심도 있고 바른 말도 잘 하시며 역시 말씀에 은혜도 특별하신 분. 그래도 신 목사님에 대해 기울어 짐이 더함. 김 목사님은 다른 교회에서 더러 큰 소리가 있었다는 말을 들었으나 여산교회에서는 권 집사님 부부가 힘써 섬겨 어떤 불편한 말도 나오지 않았음. 김 목사님도 여산교회를 떠난 후에도 한 번씩 찾아 오셨으나 늘 아쉬운 것은 품어 주고 베풀어서 아듬고 가는 면이 약함.

(성령 세례)
38년된 병자를 베드로가 일으키시는 설교말씀을 들을 때, 잘 아는 말씀인데도 다시 한번 말씀에 크게 붙들렸고, "아! 내가 과연 예수님이 더 절실히 필요한 38년 된 앉은뱅이로구나!" 하고 깨닫게 됨. 성령께서 제 믿음의 위치와 정체성을 일깨워주시고 새로 일어서게 하심. 그 시간 예배가 끝나고 성도들이 다 돌아간 후에도 저 혼자 몸부림치고 회개하도록 하심. 그 시간부터 오직 주님을 위해서 일어서게 되고 과거에는 김명자 사모님과 함께 전도했다면 이제는 혼자서도 매일 호별전도에 들어가게 됨. 평생 어느 장소에서 누굴 만나든지 전도를 하게 됨. 이 은혜가 천국 가는 순간까지 이어지기를 기도할 뿐.

(부흥 발전)
그래도 신 목사님이 닦아 놓은 터 위에 교회는 좀 더 발전을 했고 교인은 120 - 130여 명이 되었으며 명절까지 전도하는 열심은 계속.

(연보 헌신)
이 시기에 시내에서 목욕탕을 하고 있었는데 관문동에서 제일 큰 목욕탕을 주일에 문을 닫으니까 시청에서 공무원 집이 휴일에 문을 닫으려면 폐업을 해야 하지 않느냐며 다그쳤으나 그대로 버티며, 토요일 12시면 무조건 문을 닫고 주일 밤 12시가 지나야 보일러를 넣기 시작하여 영업을 준비함. 이 시기 연보는 성경 그대로 십일조를 하고 싶어서 매일 들어오는 수입을 무조건 10 분의 1씩 떼어 십일조를 바로 드렸는데 석유 파동이 나던 76년인가 79년이어서 비용이 많이 들 때인데도 일단 들어오는 돈에 10분 1을 떼어 다음 날 매일 새벽 강단에 올렸고, 그 십일조는 목사님의 개인구좌로 갔으며 지금도 당시를 후회하지 않고 누가 뭐라 해도 이것은 성경이다, 십의일은 하라 했고 제사장을 위해 사용했으니, 누가 뭐라 해도 목사님께 갔는데 그 것이 서울 목회 중에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짐작함.

(장악력)
김 목사님은 지혜롭다고 해야 할까, 어쨌든 사람을 휘어 잡는 분. 후에 수원 수산교회에 계실 때 서울교대로 진학한 딸을 맡겨 달라고 자꾸 말씀을 하셔서 인정을 벗지 못해 수원으로 보냄. 수원에서 서울로 학교를 다니게 했는데 새벽예배를 빠지면 자꾸 야단을 쳤고 이런 상처 때문에 딸도 ‘엄마! 이 것이 믿음이야!’라고 하는 정도.

(이동)
. 이사를 하던 날, 짐은 먼저 보내고 목사님을 모시고 식사 대접. 그 자리에서 남편 권 집사님께 이제 발언을 좀 하시라 했고 부인 집사님에게는 바로 듣고 바로 보는 은혜를 받았으니 할 말은 해야 한다고 교회를 위한 역할을 주심.

(4) 김병춘 목사님
(비교, 평가)

인간적으로 좋은 분이었고 말씀도 잘 전함. 그러나 신용인 김응도 목사님과 비교하면 김병춘 손오영 목사님은 은혜 면에서 좀 약함. 인간적으로 좋은 분이어서 그런지 매사 사람의 행위면을 더 보는 듯하여 아쉬움. 신화식 집사님이 이 시기에 양성원 공부를 다녔는데 신 집사님을 신임했고 권 집사님 부부는 별 이유가 없어도 좀 경계한다고 느낌.

(장로 안수)
한 번은 금요일 부산을 갔다 오시자 백 목사님께서 양성원 공부하는 전체 자리에서 권오옥 집사님을 안수하도록 안수 고시 준비를 말씀하셨다고 전언. 준비하였고 1987년에 총공회 안수. 이 시기 권 장로님은 안도라는 섬의 학교에 근무. 토요일에 나와서 본 교회 예배를 드리고 주일 오후 3시 배로 섬으로 들어 갈 때인데, 신화식 집사님이 주일을 어기는 분을 장로 장립할 수 없다고 해서 반대를 했고, 목사님은 오히려 주일을 본 교회에서 지키기 위해서 나오는 것이므로 주일 범한 것이 아니며 토요일 나와서 주일 지키고, 주일 3시 배로 들어 간 것은 예배 때문이니 주일 어긴 것이 아니라고 했다 하는 말을 뒤에 들음.

김병춘 목사님 시기에 다시 예배당 모양까지 갖춘 건축을 함. 전체 규모는 그대로지만 모양을 갖추고 지붕도 새로 함.

(5) 손오영 목사님
1987년 5대 목회자로 부임, 모든 면에서 무난했던 목회자, 3년쯤 계셨던 기억. 교회는 그대로 유지 되었고, 교인들은 각자 자기 신앙을 지켰고 백 목사님께 한 번 받은 그 은혜는 변할 수 없는 것. 손 목사님의 이 노선 말씀 전달은 아쉬운 면이 많았음.

(6) 천석배 목사님
1989년 3월에 6대 목회자로 오셨고, 천 목사님이 부임하자 교회를 출석할 수 없는 상황. 더 이상 교회를 다닐 수도 없고 그렇다고 다른 교회는 가 봐야 들을 수가 없어 6년을 가정에서 예배 드리고 교회 출석을 중단.

천 목사님 부임 시기에 교회 헌금은 100만 원 정도인데 교회 공과금을 빼면 모든 연보가 목회자 사례로 지출. 부임하자 말자 어느 교회는 목사님 양복을 새로 해 주더라면서 새 양복을 요구, 어떻게 대처할 수가 없어 아무 말 없이 그냥 있었고 순종하지 않는다고 여러 압박이 시작되었으나, 우리는 성경대로 하나님의 종은 직접 대적하지 않고 하나님께 맡긴다는 원칙만 지킴. 교인은 50 - 60명에 불과.

어떻게 백 목사님께 함께 배우고도 이렇게 설교를 돌려서 자기 위해서만 할까? 더 이상 듣고 있을 수가 없어 새벽기도를 중단했고, 뒤에는 밤 예배를 포기했고, 최종적으로 고기와 과일을 사서 사택을 방문하고 목사님께 ‘저희가 힘들어서 집에 쉬겠다’고 했으며 목사님도 아무 말씀 없었고 우리도 더 이상 교회를 출석할 수 없던 상태가 되어 6 년을 교회 출석 중단.

(7) 여산교회 출신
- 조태훈 목사님

아주 신실한 분, 그 사모님은 동문교회에서 오신 분이며 역시 아주 신실하신 분. 엿 장사를 하면서도 매일 전도한 분, 목숨 걸고 믿은 분

- 신화식 목사님

- 김창원 목사님

대구 어느 목사님 따님과 결혼, 김병춘 목사님 시기, 전도사로 나감

- 이강철

김정순 집사님이 부인, 권집사님 부부가 중매

5. 공회를 떠남

(1) 여산교회를 떠남
목회자가 아무리 잘못해도 직접 맞상대하는 것은 피하는 것이 성경이라고 깨닫기 때문에 교회 출석을 포기했고, 시내에 좋다는 교회를 다 다녀 봐도 말씀이 전혀 들어오지 않아서 출석할 수 없었음. 6년을 가정에서 예배 드리고 있으니 여러 사람들이 와서 교회를 다시 세우자 했는데 다니던 여산교회 천 목사님이 계실 만큼 계시다가 떠나면 다시 그 곳에 가서 시작을 할지라도 그 전에는 다른 곳에서 새로 세우고 시작하지는 않겠다 하며 거절.

(2) 은파교회 출석
집에서 예배를 드리던 시기에 찾아 온 분 중에는 권 장로님이 안도 섬에서 근무할 때 경찰 한 분이 계셨고 권 집사님이 섬을 방문하여 그 부인을 전도하여 신앙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남편이 여수 경찰서로 발령을 받고 와서 신 집사님과 유 집사님 부부가 권 장로님 부부를 새로운 교회를 다니게 하려고 주변 목사님 7 명을 차례로 소개하여 만나게 하고 식사를 대접했지만 목회자로 모시고 싶은 분도 없고 또 이 나이에 옮기는 것도 그렇다며 거절.

그러다 자기들이 다니는 여수 은파교회로 출석하자며 권유하여 한 달 동안 새벽예배를 다녔는데 부인 권사님은 예배당에 들어 갔고 남편 장로님은 그 시간에 차 안에서 계속 대기만 함. 그러다 차 안에 계신 장로님을 담임 목사님이 만나게 되고 그 목사님 때문에 따라서 예배당 안으로 들어오게 됨. 다른 분들과 비교할 때 말씀이 좋아서 출석하게 됨.

교회를 정식으로 다니게 되면서 ‘우리는 백영희 목사님의 제자입니다.’라고 소개하자 그 몫나님은 ‘백 목사님은 우리 나라의 성자입니다.’라고 했고 여러 모로 아신다면서 존경의 뜻을 표시하였으며, 은파교회 장로로 다시 임직을 받음. 고시도 새로하고 안수도 새로 받음. 은파교회 출석 15년.

은파교회를 다니며 몇 가지 일을 겪음. 교회 건축하면서 한 번 썼던 사람을 버리는 일은 목회자가 할 일이 아님.

(3) 신앙 식구들
한 번 전도하여 맡은 식구는 평생 잊지 않고 기도하고 연락. 호남정유 자재과장을 지냈고 지금은 하청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김경덕 집사님의 자녀가 2012년 1월 14일에 결혼식을 하게 되는데 12일에 서울을 올라 감. 서울 번동교회로 소개했던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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