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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백영희의 목회자 양성원 - 세계 제일의 신학교 수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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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7

세계 제일의 신학교 (목회자 양성원 a)

참으로 안타까운 것이 더러 있다. 하나는 교단 교회의 학생 청년 교인들이 본 교회를 떠날 때는 거의 다른 교단 교회로 가버린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목회자 지망생들이 양성원보다 다른 신학대학원들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목사들의 자녀들도 거의 그러하므로 이것이 이가봇의 현상이 아닌가 생각해 보기도 한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목회자 양성원 출신 목회자들이 학벌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여러 면으로 어디에서나 교단 교회에서까지 심한 무시를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근본적 개혁과 변화가 필요함은 다 느끼는 문제이다.

그러나 나는 목회자양성원 출신 목회자인 것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예로부터 평신도 목회자들이 복음의 선교와 교회의 성장 부흥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을 잘 알고 있다. 과거에 평신도 출신 별과 신학생들이 본과 정규 출신 목회자들보다 성공적 목회를 했다는 선배들의 이야기도 많이 들어 알고 있다.
초기 목회자양성원은 거의 평신도 출신 목회자를 단기 집중 교육시켜 하나님의 일꾼으로 양육 배출하기 위해 세워진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나는 1978년 3월 양성원에 입학하여 일년간 집에서 성경 공부를 하여 성경 과제물을 제출하고 2학년부터 4학년까지는 매년 3학기 양성원서 집중 교육을 받았다. 그러고도 과제물을 다 제출하여 학점을 따야 졸업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3기생으로 입학하여 84년 3월 5일 4기생으로 졸업을 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어려운 것은 성경을 100독을 해야만 졸업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입학할 때 거의 오랜 신앙생활을 한 학생들이므로 성경 20독을 한 것으로 인정 받았었고 과제물로 40-50독 하고, 나머지는 정독과 다독으로 반 반 나누어 읽으면 되었다. 그러므로 조금만 노력해도 할 수가 있었다. 요새는 하루(?)에 성경 1독 한다는 속독법도 개발된 것 같다.

성경100독 졸업은 비양심적인 목회자만 양산한다고 비판도 있으나 얼마든지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나 역시 큰 소리칠 만큼 양심적이지 못한 것도 사실이지만 百讀이 아니면 百見도 유익하고 가치가 있다고 본다. 보통 성경 읽는다고도 하고 본다고도 하는 것이다. 어디든지 제도가 문제가 아니라 비양심적인 사람이 문제인 것이다.

신학교는 신학자들의 학설을 공부하는 곳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공부하는 학교이라는 취지 하에 성경 100독을 하게 되었고 신학교란 이름 대신 목회자 양성원이라고 한 것으로 안다. 의미있는 일이지만 보편적인 이름과 다르므로 이질적으로 보이기 쉽다. 교단 명칭도 그러하다.

우리 양성원 교수들은 실력 있는 훌륭한 분들이었다. 나는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하였다. 초대교회사에서부터 한국교회사까지의 모든 교회사, 성경해석학,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 등 고전어, 교회 정치, 인문과학, 자연과학, 영어까지 열심히 하였다.

제일 중요한 조직신학은 벌코프의 교리사와 박형룡박사의 교의신학을 읽고 배웠으며 그보다도 백영희 목사님의 모든 설교는 위대하고 심오한 조직신학, 교리와 신조였다.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얼마나 들었는지 말씀대로 살지는 못하지만 구속 교리가 앵무새처럼 입에서 술술 나올 지경이다. 이만하면 참으로 훌륭한 학교를 나온 것이다.

예수님의 12제자가 3년 간 함께 먹고 자고 살며 주님을 배우고 진리 말씀과 기도와 전도를 배워 12사도가 된 것처럼 목사님과 함께 살며 설교 듣고 지도 받는 교육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산 교육이었다.

나는 외우는 과목은 잘했다. 고전어는 모범적이라고 박수까지 받았다. 그러나 자연과학 특히 내 몸덩어리인 인체 공부는 너무 어려웠다. 시험 문제도 주관적인 시험 문제 하나 뿐이다. 한 번은 쓸 말이 없어 큰 글자로 몇 줄 적어 냈더니 낙제점이 되어 다음 학기에 재시하여 겨우 낙제점을 면했다. 그것도 교수님이 봐주신 것이라 생각된다.
교회 정치 시험에는 우리 교단 정치에 대한 주관적인 답을 써라는 문제도 있어 간 크게 교황 정치와 비슷하다고 썼다가 겨우 낙제점을 넘기기도 하였다. 학생시절 수, 우(秀, 優)밖에 모르는 우등생이 재시까지 해야 했으니 얼마나 어려운 학교를 졸업한 셈이다.

나는 평신도 시절, 양성원 시절, 목회자 시절에도 백목사님을 가장 멀리서 보고 따르는 말단의 제자였음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지금까지도 이해하기 어려운 모르는 면이 많다. 인간이 하나님을 잘 모르고, 양이 목자를 잘 모르고, 백성이 지도자를 잘 모르고 감사보다 원망하며 따르는 격이랄까?

교역자들이 서부교회나 양성원에 가면 제일 두려운 것이 설교나 대표 기도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늦게 들어오기도 하고 키 큰 사람 뒤에 앉기도 한다. 80년 4월 9일 수요 저녁예배를 인도하라는 지시를 교학실장을 통해 받았다.
고민하다가 밖에서 들어오시는 목사님께 직접 이번에는 필기 노트도 하나도 가지고 온 것 없어 다음에 하겠다고 사정했으나 “어, 그 참 잘 됐어. 참 실력이 들어나는 좋은 기회다” 라며 들어가시고, 오후 공부 시간에 일부러 찾아오셔서 나를 불러내 오늘 저녁 설교를 깨달은 대로, 힘 있는 대로, 강하게 맘 껏하라고 부탁하고 가셨다.

그러나 준비도 할 수 없어 며칠 전 목사님이 하신 설교를 요약해서 조용 조용히 약 15분 정도 설교하고 시간이 많이 남은 것 같아 찬송을 두 장이나 부르고 내려 왔다.
목사님 부탁과는 정반대로 두려운 심정으로 서툴게 했는데도 세계적인 설교였다고 칭찬을 하시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동역자들이 그 설교 내용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것을 보면, 참 모를 일이다.

한번은 제일 키 큰 사람 뒤에 엎드려 숨어 예배 드리는데 대표기도를 시켜서 기도를 드린 적이 있다. 그 다음 주간에는 지난 주간 기도했으니 걱정 없다고 고개 들고 있는데 느닷없이 연속으로 기도를 시켰으니 그것도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설교, 기도 후에 평가, 책망이 무서워 두려워 하는데 나에 대해서는 언제나 한 마디도 없는 것, 그것도 모를 일이다.

어느 오후 목사님께서 한 조사와 나를 5층에서 부르신다기에 이상하게 여기면서도 한 번도 못 가본 5층 목사관을 방문한다는 기대감으로 올라갔으나 서운하게 문밖에 나와 계시며 양 팔에 신문지로 싼 꾸러미를 들고 계셨다. 이것 내가 입던 속옷인데 누구에게 주나 생각하다 두 조사에게 주는 것이 덕이 되겠다 싶어 준다며 내미셨다. 감사와 놀라움으로 어리둥절하게 받아보니 거기엔 내 이름까지 기록되어 있었다.

다른 조사들은 엘리야의 겉옷을 엘리사가 받은 것처럼 목사님의 후계자가 될 전조라고 해석하기도 하고 속옷보다는 겉옷 달라고 구하라지만 그것도 모를 일이다.
요새도 웃기는 사람들은 그 옷 잘 보관하고 있느냐고 묻는다. 목사님은 옷을 보관하라고 주신 것 아니고 입으라고 주신 것으므로 다 달아 떨어지도록 입었노라고 하면 그걸 입어 없앴느냐 하며 웃곤 한다.

그 후에도 5층은 한 번도 못 들어가 보고 천국 가신 후 문상 가서 까만 양복 입고 5층에 누워 계시는 화평한 모습을 본 것이 처음이고 마지막이었다.

점심 식사 끝나자 마자 몇 학생들과 함께 동대신동 시장 구석에 있는 탁구장으로 달려가 탁구 치고 시간 되어 돌아오곤 하다가 목사님께 보고가 되었다. 호통이 떨어질 줄 알았는데 양성원 뜰엔 목사님이 사 보낸 새 탁구대가 놓여 있어 모두 놀라며 기뻐했다. 참 알다가도 모를 놀라운 이변인 것이다.

어찌보면 너무 좁은 신본주의자, 어찌 보면 넓고 넓은 인본주의자 같아 뭐가 뭔지 모른다. 사자 같이 무섭기도 하고 비둘기 같이 유순하기도 하시다.

신풍교회로 이동되어 갔을 때 여러 선배를 두고 나를 호남지방 공회장으로 임명하시면서 내가 속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고 하셨으니 속을 줄 알면서도 나를 임명하셨는지 참 나는 모르겠다.

따져야 한다고 구별을 설교하므로 목회 잘하겠다고 당장 조사로 파송할 정도며, 시장 보고 온 단돈 몇 푼도 따지고 까다롭고 좁은 분이 거창 집회 후 기도원 회계 보고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도 목사가 돈 떼어 먹겠느냐며 넘어가시니 참 모를 일이다.

교단의 돈을 빌려 개척하다가 갚지 않고 다른 교단으로 가도 거기나 여기나 다 복음 운동하는 것이니 가만 두라 하시며 넘어가시니 놀라고 모를 일이다. 모르고도 믿고 따르는 것이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신령한 종들인 모양이다. 성인이 되어야 성인을 알고, 성화가 되는 만큼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이리라!

아무튼 나의 양성원 생활은 구도자의 행복, 만학도의 행복 그것이었다.
제 잘난 맛에 사는 인간인가. 나의 양성원 생활은 자랑스럽다. 조금도 부족하지도 부끄럽지도 않다. 어느 긍정적인 교수는 항상 세계 제일의 신학교라고 말하셨는데 지금도 그렇게 말하는지요?

그러나 알아주는 자 없으니 깊이 생각 좀 해야만 하리라. 종이 계시던 양성원과 떠나가고 계시지 않는 양성원은 너무 다르다는 것을 깊게 넓게 생각해야 하리라.
주님은 가셨어도 주님의 성령이 함께 하시지만, 종이 가신 교단 교회, 양성원은 …….

어떻든 천심도 인심도 돌아오게 해야만 한다.

내니이까? Is it I ? (양성원 b)

선배 양성원생들은 참으로 열심히 공부를 한 줄 알고 있다. 코피가 나고 쓰러지기까지 하여 목사님으로 부터 보신용 특식이 나오기도 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 주간의 과제를 다 마치지 못하면 집에 가지도 못하니 주일에 설교하러도 못오는 조사 망신이 얼마일까?

그러나 우리는 벌써 그 열심이 식었다. 장난도 심하고 떠들기도 너무 했다. 목사님이 사 주신 탁구대라고 마음 놓고 탁구 치며 떠들며 쉴 시간을 보냈다. 교회와 양성원의 예배 설교 회의 등 모든 발언이 5층에서 다 들을 수 있는 장치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조심 조심 떠들어도 다 들리는 모양이었다.

한 번은 목사님이 설교하시면서 떠들고 공부 열심히 하지 않는 자질이 나쁜 학생 하나를 퇴학을 시키라고 교학실장에게 책망조로 명하신 적이 있었다.
과연 하나의 퇴학 대상자가 누구일까? 큰 일이다. “내니이까?” 주의 제자들 처럼 생각하게 되었다. 그 하나는 틀림 없이 나일 것이란 생각을 하니 큰 일이었다. 퇴학 되어 교회와 집에 돌아가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고민이었다. 퇴학 맞는 날이 언제일까 염려하다가 그대로 끝나고 말았으니 다행이었다.

서부교회 3층을 양성원 교실로 사용할 때 씨름대회가 열렸다. 씨름 선수는 나와 가장 키 큰 조사와의 챔피언 전이다. 샅바도 없이 허리끈을 잡고 시작할려는데 벌써 겁에 질렸다. 그 쭉 뻗은 다리가 코끼리 다리 같아 아무리 달라 붙어도 꼼짝도 않는다. 큰 나무에 매미 한 마리 붙은 격이라고 옆에서는 말한다.
그는 괘씸히 여겼는지 나를 번쩍 들어 일본말로 도기다시 된 돌바닥에다 내부딪치고도 마음에 안 차는지 돌바닥 위에 몇 바퀴 돌려 버렸다. 아파 죽겠는데 모두는 넓은 강당이 떠나가도록 웃고 있었다.

그 후 두 번째 씨름은 최집사님과의 대결이었다. 병약하다는 말을 들어서인지 이길 줄 알고 도전을 하여 허리끈을 잡고 보니 큰 일이었다. 사람 몸이 강철 같이 딱딱했다. 해 볼 것도 없이 지고 말았다. 그 분은 몇 해 전 천국으로 가셨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씨름에 이긴 강철 몸인데도 앞서 가고 나는 씨름에 형편 없이 지고도 살아 있으니 가는 순서는 알 수 없나 보다.

양성원생 중에 제일 신사 어른이 한 분 계셨다. 연세가 높으면서도 아주 자상하시고 친절하시고 재미 있는 이야기도 잘하시며 친구처럼 공부를 하셨는데 시간만 나면 방에 가신다고 하셨다. 어느 방인가 따라갔더니 다방에 커피 마시러 가시는 것이었다. 방에 가지 않고는 못 사는 분인 것 같았다. 차마 다방 소리를 못하고 끝자를 따서 방이라고 한 모양이다.

참 존경하고 친했던 분으로 그 후 도평교회에 목회자로 오셔서 함께 거창에서 목회 한 적도 있었다. 그 어른도 일찍 천국으로 가셨다. 천국에도 방이 있고 그렇게 좋아하는 커피가 있을까? 만약 방이 있다면 내가 한 잔 사지요. 없다면 며칠 후 우리 함께 생명강수를 대신 마시며 맘껏 웃어도 보고 씨름도 합시다. 그땐 내가 이길 것이니까!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는 자가 많다니까.

‘방’ 말이 났으니 양성원 기간이 아니지만 ‘인사’ 이야기도 해야겠다. 묘산교회 집회에 참석했더니 어느 동역자가 인사간다며 몇 교역자와 함께 나가기에 어디 친족이 부근에 있어 인사차 가는 줄 알고 따라나섰더니 내리는 곳은 해인사 입구였다. 교역자들이 집회 기간 절에 가는 것이 뜨뜻하지 못해서 해인사 끝 두 자만 따서 인사 간다고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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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의 '전도사'는 이곳의 표현 경향에 따라 '조사'로 바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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