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1122(13공과) 지극히 큰 우리의 구원
공과
작성자
주교
작성일
2021.01.27
설교 : 87-11-22(13공과)
본문:에베소서 1장 3절∼14절
제목:지극히 큰 우리의 구원
(원문)
원문은 공과책 및 구 게시판의 공과 원문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공과 원문은 부산연구소 측의 고소 때문에 무제한 제공이 중단 되었습니다.
(해석)
참고로,
원론적인 말이지만 기독교의 구원은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참되다고 마음으로 인정하는 것이 믿음인데, 참으로 인정하게 되면 말씀대로 행하게 되고 그러면 구원은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공과가 다 그러하지만 이번 공과 역시 무엇보다 내용을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지극히 큰 우리의 구원’ 을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관계로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지극히 크다는 말은 그 이상이 없이 가장 크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자존자시며 창조주시며 주재자시며 주권자시며 심판주이십니다. 하나님 전(前)도 없고, 하나님 후(後 )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최초며 최종이며 하나님이 전부입니다. 알파와 오메가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과 관계된 기독교의 구원은 ‘지극히 큰’ 구원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구원은 이렇게 크신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온전하게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성경에, 주님은 머리요 우리는 주님의 몸이라 했습니다. 주님은 남편이며 우리는 주님의 신부라고도 말씀했습니다. 주님은 주인이며 우리는 주님 계신 성전이라고도 말씀했습니다. 우리를 주님의 종이라고도 했습니다. 이런 말씀들은 다 주님과 우리의 관계를 여러 각도로 표현하신 것이며, 이것이 주님과의 관계로 우리가 이루어가야 할 구원의 모습들입니다.
이번 공과에는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로 말씀했습니다. 머리에서 지시하는 대로 그대로 따라 움직이는 것이 몸입니다. 자체와 모든 언행심사를 깨끗하게 구별하여 하나님이 항상 자기 속에 거하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주님 한 분으로 전부 삼고 주님만 바라보고 의지하고 순종하며 정절을 지킴으로 틈 없이 주님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것이 주님의 신부입니다. 주인의 명령이면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무엇이든지 순종하는 것이 주님의 종입니다.
‘아들’이라는 것은 아버지에게서 나와서 아버지를 닮고 아버지의 모든 것을 상속하여 계대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로 표현하신 것은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나왔고, 하나님 아버지를 닮아가며,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것을 상속 받아 계대할 우리들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지극히 큰 우리의 구원’입니다. 이번 공과는 이런 지극히 큰 우리의 구원을 성경에서 찾아서 설명하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 설명 드렸듯이 이런 말씀들은 무엇보다 말씀을 말씀 그대로 믿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이 믿음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지만 말씀을 많이 생각하고 새기면서 확신을 하는 데서 생겨지는 것입니다. 공과는 간단하지만 우리 구원의 전체를 담고 있는 내용이기 때문에 자세하게 설명하려면 끝이 없습니다. 따라서 공과를 바탕으로 말씀을 생각하고 새기는데 참고 되도록 간단하게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이 공과의 원문 설교는
87. 11. 11. 삼일 밤 예배이며, 공과에 대한 설명은 본 설교 중반 이후에 있습니다.
공과 설명
1.
‘우리’라는 것은, 영원 전 택함을 받아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주님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성도들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이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의 어떠함을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사람의 신인관계에서나 사람과 사람의 인인관계에서 그 어떤 말보다 가장 친밀하고 가까운 관계를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세상 인인관계에서 ‘누구’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느냐 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그 나라의 대통령과 조금 아는 정도, 대통령이 업무상으로 한 번씩 만나는 정도 이정도만 해도 그 나라에서는 제법 세력이 있습니다. 만약 ‘대통령’이 어떤 면으로든지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그 나라에서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사랑’을 받는다 해도 아무런 세력도 재력도 실력도 없는 평범한 사람에게 받는 사랑이라면 별로 특별할 것은 없을 것입니다. 상대방이 누구냐에 따라, 그와 어떤 관계에 있느냐에 따라서 그의 위상은 급격하게 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이라 했습니다. 모든 존재의 원인되신 자존하신 하나님, 없는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 모든 것들의 주인이시며 만왕의 왕이 되시는 대주재자 하나님, 모든 것을 주권하시는 주권자 하나님, 모든 존재를 최종적으로 심판하실 심판주 하나님 이 ‘하나님’이 가장 아끼시고 소중하게, 보배로 여기시는, 가장 친밀한 ‘사랑’하시는 아들이 바로 우리들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지극히 큰 우리의 구원입니다. 우리들의 입장이, 우리들의 위치가 어떠한지 새기고 새겨보면 참으로 형언하기 어려운 감사와 기쁨과 소망과 아울러 탄식이 나오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2.
아들이니까 아버지의 모든 소유를 상속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나님의 소유는 크게 말하면 영계와 물질계와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들입니다.
세계 지도를 펴놓고 대한민국을 찾아보면 한쪽 귀퉁이에 손톱만큼도 안될 만큼 조그맣게 붙어있습니다. 알고 보면 쉽게 찾으나 모르고 찾는다면 한참 찾아야 겨우 발견할 수 있을 만큼 작은 땅덩어리입니다. 그래도 대한민국 삼천리 방방곡곡을 다니려면 제법 오래 걸릴 것이고 구경하려면 제법 구경할 것이 있습니다. 지구땅덩어리를 대한민국에 비한다면 상당히 크고 넓습니다.
그러나 그런 지구도 우주 전체를 놓고 보면 눈에 보일까 말까 한 점 하나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주는 그렇게 광대합니다. 광활합니다. 지극히 크다 할 만큼, 무한은 아니지만 인간의 상상력으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우주는 넓습니다. 그 속에 있는 존재 하나하나의 면면을 살펴보면, 모든 존재와 존재의 상관관계들을 살펴보면 기이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참으로 신묘합니다. 그래도 그 모든 것은 어디까지나 물질계입니다. 영계는 물질계 우주와 비교할 수 없이 넓으며 광대하며 신비합니다. 영원히 가도 가도, 영원히 보고 봐도 끝이 없는 세계가 영계입니다.
이 모든 것을 다 우리 것으로 상속 받아 가지고 있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우리 것이 되어있습니다. 바로 내 것이 되어있습니다. 내 것 되어있는 이 모든 것들을 내 것으로 사용만 하면 됩니다. 내 것을 내 것으로 사용하는 이 실상을 이루는 것이 이 세상에서의 건설구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소유를 상속받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이 구원은 ‘지극히 큰 구원’ 이라는 말 외에는 달리 형언할 수 있는 단어가 없습니다. 인간의 어떤 언어로 어떤 수식어를 붙여도 실감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영감으로 깨달을 일입니다. 우리가 받은 지극히 큰 구원은 이런 구원입니다.
3.
‘역사(役事)’라는 것은 일을 말합니다. 목적을 가지고 그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이루어가는 모든 과정의 일들이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하시는 모든 일을 말합니다. 세상에서는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역사’는 영계에서 영원토록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역사를 계대하여 역사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이것은 이미 결정이 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역사를 계대 받아 가지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이미 계대 받은 하나님의 모든 역사를 영원토록 감당할 수 있는 자격을, 실력을 마련해 가는 것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 우리들이 이루어가는 건설구원입니다.
하늘나라는 하나님이 영원토록 왕이 되시고, 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모든 역사를 하나님 아버지 아들인 우리가 계대 받아 하나님을 대신하여 영원토록 통치하는 나라입니다. 영계와 물질계, 그 안의 모든 존재들, 모든 역사들을 역사할 우리들입니다. 이것이 지극히 큰 우리의 구원입니다.
4.
하나님의 영광의 찬미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우리를 보고 모든 존재, 모든 만물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반듯하게 잘 길러놓으면 자식도 복이지만 그 자식으로 인해서 부모가 영광스럽게 됩니다. 자식을 잘못 기르면 자식으로 인하여 부모에게 씻을 수 없는 흉이 됩니다. 모든 부모가 자녀를 잘 기르기 위해서 애쓰는 것은 본능적인 부모의 사랑도 있지만 그 자식으로 인한 부모의 영광과 수치가 그 속에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제자를 잘 기르면 제자로 인해서 스승에게 영광이 돌아갑니다. 전교 1등하는 학생, 일류대 수석으로 합격한 학생들을 자기 학교 학생이라고, 자기 학원 출신이라고, 자기 제자라고 서로 내세우는 것은 다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영광의 찬미와 같은 성격입니다.
없는 가운데 우리를 만드시고, 죄와 허물로 영원히 죽었던 우리를 피 흘려 구속하시고, 진리와 영감으로, 현실의 모든 섭리 역사로 우리를 양육하시는 하나님의 모든 섭리 역사는 바로 우리를 이런 영광의 찬미를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이 영원토록 영광을 받으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하심이라’(엡1:6, 12, 14절).
영광이란 억지로, 강제로 생겨지는 것이 아닙니다. 영광을 돌리는 제3자의 자유의사에서 생겨지는 것입니다. 은혜를 베푼 시은자에 대해서 은혜를 입은 존재들이 섞임 없는 진정한 마음의 감사에서 우러나는 찬송이 되어질 때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전지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인간을 강제하시 않으시고 수많은 과정, 말할 수 없는 큰 희생의 역사를 하시고, 인간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온갖 순서를 통하여 구원하시는 모든 구원의 역사가 바로 영광의 찬미가 되게 하시려는 이것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우리를 통하여 만유 주 하나님이 영원토록 영광을 받으시려는, 만유 주 하나님이 우리로 인하여 모든 만 존재들에게 영원토록 영광을 얻으실 수 있는 이런 존귀한 우리를 만드시는 것 이것이 바로 지극히 큰 우리의 구원입니다.
5.
영생은 생명이 영원히 활동하는 것이 영생입니다. 기본적으로는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이 영생이나 실제는 하나님과 연결된 생명이 하나님과 연결된 생명의 활동을 영원히 하는 것이 영생입니다. 이것은 다름 아닌 주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로 인해서 되어진 것이고 되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영이 영생하는 생명으로 중생된 것도, 우리 심신의 기능이 영생하는 기능으로 성화되는 것도 피와 성령과 진리의 능력으로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활의 대속이 아니면 진리와 성령이 우리에게 역사할 수 없고, 이 대속과 대속으로 인한 진리와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영의 중생도, 심신의 기능 영생도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피와 성령과 진리의 역사는 과거사가 아닌 현재 진행으로 영원토록 계속 역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의 역사가 중단되는 즉시 우리 영생은 중단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영원토록 신인양성일위로 계실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래서 주님의 부활의 희생은 죽음의 희생과 동일한 희생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주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로 영생하는 아들 된 이것이 지극히 큰 우리의 구원입니다.
6.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 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 속으로 탄식하는 것은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롬8:19-23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운영하시는 중심 주체는 ‘사람’입니다. 모든 만물은 사람의 어떠함에 따라 그들의 운명이 좌우됩니다. 사람에게 이용되는 모든 만물들은 그것을 이용하는 그 사람의 어떠함에 따라 구원도 멸망도 결정됩니다. 만물에게는 그것에 대한 선택의 자유가 없습니다. 의인이 의를 행하는 일에 이용되는 만물은 그 의인과 함께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죄인이 죄 짓는 일에 사용되는 만물은 죄인과 함께 멸망에 이르게 됩니다. 따라서 만물의 주인인 사람이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그들의 구원과 멸망이 결정되기 때문에 모든 만물은 하나님의 아들들에게 의롭게 사용되기를 고대하며 소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만물이 의롭게 사용해주기를, 우리들이 그들의 주인이 되어 하나님 뜻대로 사용해주기를 간절히 고대하고 소망하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이것이 지극히 큰 우리의 구원입니다.
7.
제사장 선지자 왕은 곧 그리스도 직입니다. 그리스도는 예수님의 신성의 이름인데 바로 이 3가지 직분을 감당하시고 우리를 이 3가지 직분의 사람을 만드시는 것이 그리스도 직책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은 이 3가지, 제사장 선지자 왕의 일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대제사장이며 대선지자며 대왕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이 3가지 직분을 계대해서 영원토록 감당하는 것이 영원한 하늘나라의 우리의 직책입니다. 영원한 우리의 할 일입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하나님 백성 사이를 조화시켜 화친케 만드는 이것을 위해서 자기를 다 바치는 직책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거리끼는 모든 죄를 장차 오실 어린양 예수님을 예표하는 짐승을 잡아 제사드림으로 사함 받는 모든 제사를 주관하는 여기에 자기 전부를 다 바치는 것이 제사장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죄 없는 자로 살아 하나님과 화친할 수 있도록 하는 이 일을 위하여 자기를 깨끗케 하고 백성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권면하고 가르치는 이것이 제사장입니다. 오늘날 반사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 주일을 조금이라도 바로 지킬 수 있도록 교회로 인도하는 그런 것들이 바로 제사장 직분입니다.
선지자는
인간이 모르는 하나님의 뜻을 본인이 하나님과의 밀접한 교제로 받아 알려주는 직책입니다. 사람들이 모르는 하나님의 뜻, 천국의 모든 실상을 말씀 연구로, 말씀대로의 실행에서 생겨지는 경험과 체험으로, 기도로 깨달아서 전해주는 직책이 선지자 직책입니다. 설교자의 바른 설교는 선지자 직분을 행하는 것입니다. 심방 가서 말씀을 바로 전하면 선지자 직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귀하게 여기시는 직책이 선지자 직책입니다.
왕은
하나님의 단일 통치에 복종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리시는, 통치하시는, 명령하시는 모든 명령에 조금도 어김이 없이 순종하는, 복종하는 이 일을 하며 하나님의 백성을 이런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자기 전부를 다 들이는 것이 왕의 직책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면서, 하나님의 아들인 우리들이 무궁세계에서 영원토록 하는 일은 바로 이 3가지 제사장 선지자 왕의 직분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게 한다는 말씀은 이런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극히 큰 우리의 구원입니다.
8.
천하에 사람이 많으나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함 받은 사람은 따로 정해져 있으며, 하나님께 기도와 믿음과 회개라는 것은 택함 받고 중생된 믿는 사람에게만 주신 특권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기도라는 것이 없습니다. 그들이 이방신들에게, 혹은 허무한 것들에게 기도한다고 하는 것은 말 그대로 아무런 실상 없는 허무한 것일 뿐입니다. 기도는 우리에게만 주신 특권입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14:14-15), ‘구하라 주실 것이요…’(마7:7)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찾으면 하나님은 언제든지 우리를 만나주십니다. 기도의 특권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큰 은혜를 새기며 감사할 수 있고, 자기의 모든 죄를 주님 피를 힙 입어 자복하고 용서를 구할 수 있고, 자기의 온갖 형편을 하나님 앞에 펴놓고 아뢸 수 있고, 주님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할 수 있는 이 기도는 우리들에게만 주신 특권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믿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믿음은 가장 큰 보배입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것이 없는,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신 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가 되어지는 이 믿음은 하나님의 아들 된 우리들에게만 주신 특권입니다.
회개라는 것도 연약한 우리들에게 주신 지극히 큰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루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회개할 수 있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말씀했습니다.
선악과 따 먹은 한 죄의 값으로 영원한 사망에 빠진 것이 범죄한 인생입니다. 영원토록 다시는 소망이 없습니다. 한 번의 범죄로 그냥 영원한 지옥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주님 대속으로 인하여 회개의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회개만 하면 주님이 언제든지 사해주십니다. 세상에 거하는 기간이 한정되어있기 때문에 무한정으로 회개만 하면 된다 할 수는 없지만 살아있는 동안에는 회개하면 되는 것이 우리에게 주신 특권입니다. 이는 지극히 큰 우리의 구원입니다.
9.
우리가 만나는 모든 현실은 어떤 것이든지 예외 없이 다 하나님의 섭리 역사입니다. 하나님이 섭리하지 않는 현실이 우리에게 만나지는 법은 절대 없습니다. 내게 부딪히는 모든 존재는 어떤 존재든지 예외 없이 하나님이 지으신 창조물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지 않으신 것이 내게 부딪힐 수는 절대 없습니다. 내 앞에 닥치는 모든 순서는 다 하나님의 예정대로 된 것이며, 예정에 없는 일이 우리에게 닥쳐지는 경우는 절대 없습니다.
따라서 기독자에게는 우연이나 돌발이나 갑작스럽다는 말들이 해당이 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영원 전 하나님의 예정대로,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존재들이, 하나님의 섭리로 내게 부딪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순서는 다 하나님의 목적인 우리 구원을 위해서 이루어지는 역사들입니다. 따라서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다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목적이요 예정이며 창조며 보존이며 섭리인 것입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의 궁극은 하나님을 위한 것입니다.
이런 말씀들을 믿음으로 새겨보면 넘치는 감사와 기쁨과 소망을 주체할 수 없게 되는 것이 정상입니다. 성경 역사에, 교회 역사에 예수에 미치고 복음에 미치고 인간 구원에 미쳐서 자기 소유와 몸과 생명을 초개같이 다 버리고 달려간 신앙의 승리의 선진들은 다 이런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그러한 것입니다. 이는 조금도 지나친 것이 아니며 지극히 정상적인 생활입니다. 이렇게 살지 못하는 우리들이 비정상인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은 이렇게 지극히 큰 구원입니다.
10.
삼위일체 하나님을 말한 것은, 우리와 동거동행, 상호내주 하시는 하나님은 언제나 삼위일체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은 동행하시는데 성자 하나님은 동행하지 않는 법은 없습니다. 성부 하나님과 동행이면 성자 성령 하나님과 동행이며, 성자 하나님과 동행이면, 성부 성령 하나님과 동행이며, 성령 하나님과 동행이면 성부 성자 하나님과도 동행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영원토록 하나님과 동거하며 동행하며 상호내주 하는 아들입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하나님과 함께 살고 하나님과 함께 행하며, 주님은 내 안에 나는 주님 안에 거하는 상호내주의 이 생활이 영원토록 계속됩니다. 이것이 우리 구원의 소망이며, 이 소망을 실상으로 이루어가는 것이 오늘 우리가 이루는 건설구원, 행위구원, 성화구원입니다. 이는 자기 현실생활에서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하나님과 동거동행해 보지 않은 사람은 무궁세계에서 하나님과 동거동행 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과 상호내주 하는 생활을 해 보지 않은 사람은 무궁세계에서 하나님과 상호내주 하는 생활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과 동거동행 하며 상호내주 하는 이 구원 지극히 큰 우리의 구원입니다!
본문:에베소서 1장 3절∼14절
제목:지극히 큰 우리의 구원
(원문)
원문은 공과책 및 구 게시판의 공과 원문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공과 원문은 부산연구소 측의 고소 때문에 무제한 제공이 중단 되었습니다.
(해석)
참고로,
원론적인 말이지만 기독교의 구원은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참되다고 마음으로 인정하는 것이 믿음인데, 참으로 인정하게 되면 말씀대로 행하게 되고 그러면 구원은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공과가 다 그러하지만 이번 공과 역시 무엇보다 내용을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지극히 큰 우리의 구원’ 을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관계로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지극히 크다는 말은 그 이상이 없이 가장 크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자존자시며 창조주시며 주재자시며 주권자시며 심판주이십니다. 하나님 전(前)도 없고, 하나님 후(後 )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최초며 최종이며 하나님이 전부입니다. 알파와 오메가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과 관계된 기독교의 구원은 ‘지극히 큰’ 구원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구원은 이렇게 크신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온전하게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성경에, 주님은 머리요 우리는 주님의 몸이라 했습니다. 주님은 남편이며 우리는 주님의 신부라고도 말씀했습니다. 주님은 주인이며 우리는 주님 계신 성전이라고도 말씀했습니다. 우리를 주님의 종이라고도 했습니다. 이런 말씀들은 다 주님과 우리의 관계를 여러 각도로 표현하신 것이며, 이것이 주님과의 관계로 우리가 이루어가야 할 구원의 모습들입니다.
이번 공과에는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로 말씀했습니다. 머리에서 지시하는 대로 그대로 따라 움직이는 것이 몸입니다. 자체와 모든 언행심사를 깨끗하게 구별하여 하나님이 항상 자기 속에 거하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주님 한 분으로 전부 삼고 주님만 바라보고 의지하고 순종하며 정절을 지킴으로 틈 없이 주님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것이 주님의 신부입니다. 주인의 명령이면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무엇이든지 순종하는 것이 주님의 종입니다.
‘아들’이라는 것은 아버지에게서 나와서 아버지를 닮고 아버지의 모든 것을 상속하여 계대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로 표현하신 것은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나왔고, 하나님 아버지를 닮아가며,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것을 상속 받아 계대할 우리들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지극히 큰 우리의 구원’입니다. 이번 공과는 이런 지극히 큰 우리의 구원을 성경에서 찾아서 설명하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 설명 드렸듯이 이런 말씀들은 무엇보다 말씀을 말씀 그대로 믿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이 믿음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지만 말씀을 많이 생각하고 새기면서 확신을 하는 데서 생겨지는 것입니다. 공과는 간단하지만 우리 구원의 전체를 담고 있는 내용이기 때문에 자세하게 설명하려면 끝이 없습니다. 따라서 공과를 바탕으로 말씀을 생각하고 새기는데 참고 되도록 간단하게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이 공과의 원문 설교는
87. 11. 11. 삼일 밤 예배이며, 공과에 대한 설명은 본 설교 중반 이후에 있습니다.
공과 설명
1.
‘우리’라는 것은, 영원 전 택함을 받아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주님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성도들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이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의 어떠함을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사람의 신인관계에서나 사람과 사람의 인인관계에서 그 어떤 말보다 가장 친밀하고 가까운 관계를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세상 인인관계에서 ‘누구’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느냐 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그 나라의 대통령과 조금 아는 정도, 대통령이 업무상으로 한 번씩 만나는 정도 이정도만 해도 그 나라에서는 제법 세력이 있습니다. 만약 ‘대통령’이 어떤 면으로든지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그 나라에서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사랑’을 받는다 해도 아무런 세력도 재력도 실력도 없는 평범한 사람에게 받는 사랑이라면 별로 특별할 것은 없을 것입니다. 상대방이 누구냐에 따라, 그와 어떤 관계에 있느냐에 따라서 그의 위상은 급격하게 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이라 했습니다. 모든 존재의 원인되신 자존하신 하나님, 없는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 모든 것들의 주인이시며 만왕의 왕이 되시는 대주재자 하나님, 모든 것을 주권하시는 주권자 하나님, 모든 존재를 최종적으로 심판하실 심판주 하나님 이 ‘하나님’이 가장 아끼시고 소중하게, 보배로 여기시는, 가장 친밀한 ‘사랑’하시는 아들이 바로 우리들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지극히 큰 우리의 구원입니다. 우리들의 입장이, 우리들의 위치가 어떠한지 새기고 새겨보면 참으로 형언하기 어려운 감사와 기쁨과 소망과 아울러 탄식이 나오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2.
아들이니까 아버지의 모든 소유를 상속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나님의 소유는 크게 말하면 영계와 물질계와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들입니다.
세계 지도를 펴놓고 대한민국을 찾아보면 한쪽 귀퉁이에 손톱만큼도 안될 만큼 조그맣게 붙어있습니다. 알고 보면 쉽게 찾으나 모르고 찾는다면 한참 찾아야 겨우 발견할 수 있을 만큼 작은 땅덩어리입니다. 그래도 대한민국 삼천리 방방곡곡을 다니려면 제법 오래 걸릴 것이고 구경하려면 제법 구경할 것이 있습니다. 지구땅덩어리를 대한민국에 비한다면 상당히 크고 넓습니다.
그러나 그런 지구도 우주 전체를 놓고 보면 눈에 보일까 말까 한 점 하나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주는 그렇게 광대합니다. 광활합니다. 지극히 크다 할 만큼, 무한은 아니지만 인간의 상상력으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우주는 넓습니다. 그 속에 있는 존재 하나하나의 면면을 살펴보면, 모든 존재와 존재의 상관관계들을 살펴보면 기이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참으로 신묘합니다. 그래도 그 모든 것은 어디까지나 물질계입니다. 영계는 물질계 우주와 비교할 수 없이 넓으며 광대하며 신비합니다. 영원히 가도 가도, 영원히 보고 봐도 끝이 없는 세계가 영계입니다.
이 모든 것을 다 우리 것으로 상속 받아 가지고 있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우리 것이 되어있습니다. 바로 내 것이 되어있습니다. 내 것 되어있는 이 모든 것들을 내 것으로 사용만 하면 됩니다. 내 것을 내 것으로 사용하는 이 실상을 이루는 것이 이 세상에서의 건설구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소유를 상속받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이 구원은 ‘지극히 큰 구원’ 이라는 말 외에는 달리 형언할 수 있는 단어가 없습니다. 인간의 어떤 언어로 어떤 수식어를 붙여도 실감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영감으로 깨달을 일입니다. 우리가 받은 지극히 큰 구원은 이런 구원입니다.
3.
‘역사(役事)’라는 것은 일을 말합니다. 목적을 가지고 그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이루어가는 모든 과정의 일들이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하시는 모든 일을 말합니다. 세상에서는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역사’는 영계에서 영원토록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역사를 계대하여 역사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이것은 이미 결정이 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역사를 계대 받아 가지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이미 계대 받은 하나님의 모든 역사를 영원토록 감당할 수 있는 자격을, 실력을 마련해 가는 것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 우리들이 이루어가는 건설구원입니다.
하늘나라는 하나님이 영원토록 왕이 되시고, 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모든 역사를 하나님 아버지 아들인 우리가 계대 받아 하나님을 대신하여 영원토록 통치하는 나라입니다. 영계와 물질계, 그 안의 모든 존재들, 모든 역사들을 역사할 우리들입니다. 이것이 지극히 큰 우리의 구원입니다.
4.
하나님의 영광의 찬미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우리를 보고 모든 존재, 모든 만물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반듯하게 잘 길러놓으면 자식도 복이지만 그 자식으로 인해서 부모가 영광스럽게 됩니다. 자식을 잘못 기르면 자식으로 인하여 부모에게 씻을 수 없는 흉이 됩니다. 모든 부모가 자녀를 잘 기르기 위해서 애쓰는 것은 본능적인 부모의 사랑도 있지만 그 자식으로 인한 부모의 영광과 수치가 그 속에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제자를 잘 기르면 제자로 인해서 스승에게 영광이 돌아갑니다. 전교 1등하는 학생, 일류대 수석으로 합격한 학생들을 자기 학교 학생이라고, 자기 학원 출신이라고, 자기 제자라고 서로 내세우는 것은 다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영광의 찬미와 같은 성격입니다.
없는 가운데 우리를 만드시고, 죄와 허물로 영원히 죽었던 우리를 피 흘려 구속하시고, 진리와 영감으로, 현실의 모든 섭리 역사로 우리를 양육하시는 하나님의 모든 섭리 역사는 바로 우리를 이런 영광의 찬미를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이 영원토록 영광을 받으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하심이라’(엡1:6, 12, 14절).
영광이란 억지로, 강제로 생겨지는 것이 아닙니다. 영광을 돌리는 제3자의 자유의사에서 생겨지는 것입니다. 은혜를 베푼 시은자에 대해서 은혜를 입은 존재들이 섞임 없는 진정한 마음의 감사에서 우러나는 찬송이 되어질 때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전지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인간을 강제하시 않으시고 수많은 과정, 말할 수 없는 큰 희생의 역사를 하시고, 인간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온갖 순서를 통하여 구원하시는 모든 구원의 역사가 바로 영광의 찬미가 되게 하시려는 이것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우리를 통하여 만유 주 하나님이 영원토록 영광을 받으시려는, 만유 주 하나님이 우리로 인하여 모든 만 존재들에게 영원토록 영광을 얻으실 수 있는 이런 존귀한 우리를 만드시는 것 이것이 바로 지극히 큰 우리의 구원입니다.
5.
영생은 생명이 영원히 활동하는 것이 영생입니다. 기본적으로는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이 영생이나 실제는 하나님과 연결된 생명이 하나님과 연결된 생명의 활동을 영원히 하는 것이 영생입니다. 이것은 다름 아닌 주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로 인해서 되어진 것이고 되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영이 영생하는 생명으로 중생된 것도, 우리 심신의 기능이 영생하는 기능으로 성화되는 것도 피와 성령과 진리의 능력으로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활의 대속이 아니면 진리와 성령이 우리에게 역사할 수 없고, 이 대속과 대속으로 인한 진리와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영의 중생도, 심신의 기능 영생도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피와 성령과 진리의 역사는 과거사가 아닌 현재 진행으로 영원토록 계속 역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의 역사가 중단되는 즉시 우리 영생은 중단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영원토록 신인양성일위로 계실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래서 주님의 부활의 희생은 죽음의 희생과 동일한 희생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주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로 영생하는 아들 된 이것이 지극히 큰 우리의 구원입니다.
6.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 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 속으로 탄식하는 것은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롬8:19-23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운영하시는 중심 주체는 ‘사람’입니다. 모든 만물은 사람의 어떠함에 따라 그들의 운명이 좌우됩니다. 사람에게 이용되는 모든 만물들은 그것을 이용하는 그 사람의 어떠함에 따라 구원도 멸망도 결정됩니다. 만물에게는 그것에 대한 선택의 자유가 없습니다. 의인이 의를 행하는 일에 이용되는 만물은 그 의인과 함께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죄인이 죄 짓는 일에 사용되는 만물은 죄인과 함께 멸망에 이르게 됩니다. 따라서 만물의 주인인 사람이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그들의 구원과 멸망이 결정되기 때문에 모든 만물은 하나님의 아들들에게 의롭게 사용되기를 고대하며 소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만물이 의롭게 사용해주기를, 우리들이 그들의 주인이 되어 하나님 뜻대로 사용해주기를 간절히 고대하고 소망하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이것이 지극히 큰 우리의 구원입니다.
7.
제사장 선지자 왕은 곧 그리스도 직입니다. 그리스도는 예수님의 신성의 이름인데 바로 이 3가지 직분을 감당하시고 우리를 이 3가지 직분의 사람을 만드시는 것이 그리스도 직책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은 이 3가지, 제사장 선지자 왕의 일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대제사장이며 대선지자며 대왕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이 3가지 직분을 계대해서 영원토록 감당하는 것이 영원한 하늘나라의 우리의 직책입니다. 영원한 우리의 할 일입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하나님 백성 사이를 조화시켜 화친케 만드는 이것을 위해서 자기를 다 바치는 직책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거리끼는 모든 죄를 장차 오실 어린양 예수님을 예표하는 짐승을 잡아 제사드림으로 사함 받는 모든 제사를 주관하는 여기에 자기 전부를 다 바치는 것이 제사장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죄 없는 자로 살아 하나님과 화친할 수 있도록 하는 이 일을 위하여 자기를 깨끗케 하고 백성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권면하고 가르치는 이것이 제사장입니다. 오늘날 반사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 주일을 조금이라도 바로 지킬 수 있도록 교회로 인도하는 그런 것들이 바로 제사장 직분입니다.
선지자는
인간이 모르는 하나님의 뜻을 본인이 하나님과의 밀접한 교제로 받아 알려주는 직책입니다. 사람들이 모르는 하나님의 뜻, 천국의 모든 실상을 말씀 연구로, 말씀대로의 실행에서 생겨지는 경험과 체험으로, 기도로 깨달아서 전해주는 직책이 선지자 직책입니다. 설교자의 바른 설교는 선지자 직분을 행하는 것입니다. 심방 가서 말씀을 바로 전하면 선지자 직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귀하게 여기시는 직책이 선지자 직책입니다.
왕은
하나님의 단일 통치에 복종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리시는, 통치하시는, 명령하시는 모든 명령에 조금도 어김이 없이 순종하는, 복종하는 이 일을 하며 하나님의 백성을 이런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자기 전부를 다 들이는 것이 왕의 직책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면서, 하나님의 아들인 우리들이 무궁세계에서 영원토록 하는 일은 바로 이 3가지 제사장 선지자 왕의 직분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게 한다는 말씀은 이런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극히 큰 우리의 구원입니다.
8.
천하에 사람이 많으나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함 받은 사람은 따로 정해져 있으며, 하나님께 기도와 믿음과 회개라는 것은 택함 받고 중생된 믿는 사람에게만 주신 특권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기도라는 것이 없습니다. 그들이 이방신들에게, 혹은 허무한 것들에게 기도한다고 하는 것은 말 그대로 아무런 실상 없는 허무한 것일 뿐입니다. 기도는 우리에게만 주신 특권입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14:14-15), ‘구하라 주실 것이요…’(마7:7)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찾으면 하나님은 언제든지 우리를 만나주십니다. 기도의 특권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큰 은혜를 새기며 감사할 수 있고, 자기의 모든 죄를 주님 피를 힙 입어 자복하고 용서를 구할 수 있고, 자기의 온갖 형편을 하나님 앞에 펴놓고 아뢸 수 있고, 주님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할 수 있는 이 기도는 우리들에게만 주신 특권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믿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믿음은 가장 큰 보배입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것이 없는,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신 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가 되어지는 이 믿음은 하나님의 아들 된 우리들에게만 주신 특권입니다.
회개라는 것도 연약한 우리들에게 주신 지극히 큰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루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회개할 수 있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말씀했습니다.
선악과 따 먹은 한 죄의 값으로 영원한 사망에 빠진 것이 범죄한 인생입니다. 영원토록 다시는 소망이 없습니다. 한 번의 범죄로 그냥 영원한 지옥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주님 대속으로 인하여 회개의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회개만 하면 주님이 언제든지 사해주십니다. 세상에 거하는 기간이 한정되어있기 때문에 무한정으로 회개만 하면 된다 할 수는 없지만 살아있는 동안에는 회개하면 되는 것이 우리에게 주신 특권입니다. 이는 지극히 큰 우리의 구원입니다.
9.
우리가 만나는 모든 현실은 어떤 것이든지 예외 없이 다 하나님의 섭리 역사입니다. 하나님이 섭리하지 않는 현실이 우리에게 만나지는 법은 절대 없습니다. 내게 부딪히는 모든 존재는 어떤 존재든지 예외 없이 하나님이 지으신 창조물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지 않으신 것이 내게 부딪힐 수는 절대 없습니다. 내 앞에 닥치는 모든 순서는 다 하나님의 예정대로 된 것이며, 예정에 없는 일이 우리에게 닥쳐지는 경우는 절대 없습니다.
따라서 기독자에게는 우연이나 돌발이나 갑작스럽다는 말들이 해당이 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영원 전 하나님의 예정대로,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존재들이, 하나님의 섭리로 내게 부딪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순서는 다 하나님의 목적인 우리 구원을 위해서 이루어지는 역사들입니다. 따라서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다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목적이요 예정이며 창조며 보존이며 섭리인 것입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의 궁극은 하나님을 위한 것입니다.
이런 말씀들을 믿음으로 새겨보면 넘치는 감사와 기쁨과 소망을 주체할 수 없게 되는 것이 정상입니다. 성경 역사에, 교회 역사에 예수에 미치고 복음에 미치고 인간 구원에 미쳐서 자기 소유와 몸과 생명을 초개같이 다 버리고 달려간 신앙의 승리의 선진들은 다 이런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그러한 것입니다. 이는 조금도 지나친 것이 아니며 지극히 정상적인 생활입니다. 이렇게 살지 못하는 우리들이 비정상인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은 이렇게 지극히 큰 구원입니다.
10.
삼위일체 하나님을 말한 것은, 우리와 동거동행, 상호내주 하시는 하나님은 언제나 삼위일체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은 동행하시는데 성자 하나님은 동행하지 않는 법은 없습니다. 성부 하나님과 동행이면 성자 성령 하나님과 동행이며, 성자 하나님과 동행이면, 성부 성령 하나님과 동행이며, 성령 하나님과 동행이면 성부 성자 하나님과도 동행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영원토록 하나님과 동거하며 동행하며 상호내주 하는 아들입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하나님과 함께 살고 하나님과 함께 행하며, 주님은 내 안에 나는 주님 안에 거하는 상호내주의 이 생활이 영원토록 계속됩니다. 이것이 우리 구원의 소망이며, 이 소망을 실상으로 이루어가는 것이 오늘 우리가 이루는 건설구원, 행위구원, 성화구원입니다. 이는 자기 현실생활에서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하나님과 동거동행해 보지 않은 사람은 무궁세계에서 하나님과 동거동행 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과 상호내주 하는 생활을 해 보지 않은 사람은 무궁세계에서 하나님과 상호내주 하는 생활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과 동거동행 하며 상호내주 하는 이 구원 지극히 큰 우리의 구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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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 제목 | 작성자 | 작성일 | 추천 | 조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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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8월 집회교재 - 솔로몬 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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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직, 김치선 후계자(백석교단, 대신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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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용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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