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공회 자료

김기수 - 서부교회의 대표적 교인, 전도의 생애

인물
작성자
"
작성일
2022.04.03

참고 [서부] 김기수 장로님 별세(총공회/소식/11506)



1. 가족

이름: 나병재 조사님(62.8.4), 김인선 사모님(66.9.15)

부모: 김기수 장로님(28.1.15 - 22년 97세 별세) 이동연 집사님(1930년)

자녀 - 1. 김순봉(김용모) 서혜경(서혜향) 집사님 2. 김인순 마호인 목사님 3. 김인옥 김영환 목사님 4. 김인선 나병재 목사님 손주 - 마화영 마지영, 김화신 김화영 김화경 김영숙 김진숙 김진삼, 나은상 나은희

 

  1. 김기수 장로님

① 고향과 신앙 출발

경남 거제도 사등리 출신. 6.25 전쟁에 입대하여 군 생활을 했으며, 제대 후에 결혼한 상태에서 교회를 먼저 다니던 친구 조재하가 전도를 열심히 했는데도 거부했으나, 한 번은 그 친구와 논길에서 만났고 그에게 왜 교회를 다니는지를 물었는데 그 친구는 천국을 간다면서 믿는 사람은 영생한다고 말을 했고 그 말을 듣고 크게 감명을 받았는데 그 뒤로는 머리속에서 계속하여 예수님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으며,  술을 즐기는 분인데 한 번은 일하던 술도가의 모든 술이 시뻘건 피로 보였고 더 이상 교회 출석을 미룰 수 없게 되고 사등교회를 출석하기 시작하였고 서부교회를 오게 된 연유는 부산에 초량부근에 정조공장에 다니시기 때문에 부산에 자주오시면서 서부교회를 오셨는데 그때 백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이말씀이 바로 생명의 말씀이다 해서(1960년경, 33세 쯤) 부산으로 이사를 오셨고 서부교회에 출석을 시작했다.

② 부산과 서부교회

부산으로 처음 이주한곳은 서대신동으로 이주하여 단칸방에 살았고, 이동용 목마를 가지고 생업으로 살던 때도 있었으며 친척의 소개를 받아 초량초등학교의 소사로 근무하시다가 성북초등학교 전근 감천초등학교 근무할 기회가 왔고 감천에(감초등학교내 사택1동 212번지) 살면서도 신앙생활은 변치 않음. 소속은 김현찬 집사님 구역이며 중간 구역장이 없었으므로 이동연 집사님은 직할 식구였고 권사님이 직접 심방 오셨고, 백 목사님께서는 자주 집에 심방 오셨음

③ 생활

감천에 살면서 감천초등학교를 출근했던(1966년경) 김기수 장로님은 가족들이 문방구를 3 곳에 하게 되었고 감천의 현금이 다 그 쪽으로 간다 할 만큼 되었는데 막내가 어릴 때 본 기억으로는 장사한 돈을 자기 집의 방에 바닥에 쌓아 두었을 때에 너무 많아 얼마나 벌었는지 모를 정도. 또 집에서는 연보용 통을 하나 따로 두고 빳빳한 새 돈은 다 모았다가 연보. 새벽기도는 교회까지 3km 정도였기 때문에 주일에는 걸어 다녔고 평일은 새벽기도를 갈 때는 택시를 이용하고 돌아 올 때는 버스를 타고 왔는데 평생 버스를 타면 꼭 차 안에서 전도함.

④ 교회 문제

김현찬 구역에서 홍종복 장로님 등은 서부교회와 반대 행동이 있었으나 김기수 장로님은 신앙에만 주력하고 전도만 하는 분이어서 구역의 별도 성향에 가족들이 영향을 받지 않았고, 막내는 어릴 때 권사님이 본당 2층 출입구 옆에 살 때 그 방에 들어갔던 기억.

⑤ 자녀 교육

백 목사님은 세상 지식을 조심 시키는 설교를 많이 했는데 막내가 중학교를 졸업한 후 김기수 장로님은 남성여고에 입학이 예정 된 상태에서 진학 포기시킴. 막내는 학교가 가고 싶은데 아버지가 반대하는 것은 백 목사님의 말씀 때문이라고 생각하여 ‘목사님 딸들은 대학을 보내며 왜 나는 고등학교도 못 가게 하는가?’라고 마음 때문에 백 목사님께 직접 전화를 했는데 백명희 사모님이 전화를 받아 직접 통화는 못했음.   

⑥ 김인선 사모님

* 목회연구소 근무

1966년생, 아버지 김기수 장로님 때문에 고등학교 진학 포기했고, 성격이 밝은 편이고 어릴 때부터 교회서 자랐기 때문에 양산동 기도하러 갔을 때 목사님께서 텐트에 기도 하고 계셨는데 인사는 했고, 그 뒤에 목회연구소에서 전화가 왔다하고 1985년경 편집실 근무 시작.

당시 편집실에는 김선진 김선영 자매(연경회 담당으로 초기 편집실 소속으로 잠깐 있다 연경회는 바로 독립), 최순련, 한 살 많은 류승연 선생님 등이 근무하고 있었고

* 중간반사

1989년 5월집회 갔다 와서 목사님께서 직접 전화가 와서 연구소 그만 하고 중간반사로 가라 했는데, 김인순 언니의 중간반사 하는 것을 보고 내키지 않았고 또 중간반사는 심방을 많이 해야 하는데 관절이 좋지 않아서 아버지께 못한다 했는데 백 목사님께서 직접 전화가 와서 하라 하셨고 ‘연구소는 집회 마치고 일이 많아서 안 된다’고 말씀 드리자 ‘집회 마치고 바쁘니까 더 잘 됐네, 얼른 이 쪽으로 오라’해서 가겠다고 대답. 당시 연구소는 새 건물 짓고 있었으며. 강호경 이경화(이경숙 선생님 동생) 정임이(감천에서 오는 분), 이영택 유주성 고삼룡 선생님 등이 함께 근무, 고삼룡은 편집실 시절부터 있었고, 김희준, 지익호씨 아들도 함께 근무했던 분들.

편집실 근무는 사무실 분위기지만 중간반사는 심방이 많은데 학생을 배정 받고 다녀 보니까 이상하게 다른 선생님들은 높은 곳에 학생들이 있었고, 김인선 학생들은 산복도로 중간에 도로가 있어 신선초등학교나 감천처럼 버스에서 내리면 크게 무리가 없었음. 산복도록 중간쯤에 학생들이 많았음.

어릴 때에도 집에 심방 오면 목사님 회를 준비하는데 직접 들고 들어가서 드렸고 목사님이 어렵지 않았는데, 중간반사 최재숙 이경숙 선생님들과 함께 양산동에 갔다가 텐트에서 기도하는 목사님 앞에서 목사님 앞을 날아가는 모기를 딱 잡았는데 허물없는 모습을 보며 옆에 반사들은 아주 놀란 정도.

 

  1. 나병재 조사님

① 신상

1962년생, 1990년 3월 2일 김인선 반사와 결혼식.

누나 부부가 중간반사 서용오 나복희 선생님. 나복희씨는 현재 괴정교회에 다니시고 서용오씨는 지금은 용두산 쪽 어느 교회 집사님으로 충성.

서울이 고향이며 오남순 모친이 가정 문제로 부산에 이사 온 후 동대신동 살 때에 추순덕 구역의 백말년 집사님에게 전도를 받음. 어릴 때에 서울에서도 교회는 좀 다녔으나 부산에 와서는 출석하지 않았는데 먼저 다니신 어머니를 따라 교회를 갔고 백익인 집사님의 반 학생이 됨.

1973년경 초등학교 5학년이 되는 시점에 주일학교를 출발하면서 바로 8명 정도 학생들을 맡아 보조반사 역할.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하던 시절에 윤정숙 집사님이 야학인 상록학교 교사였기 때문에 중등 과정은 공부를 했고,

② 생활

야간학교를 다니며 제조업 직장을 다니고, 배우자는 마음이 있다 보니까 뭔가 기술을 배우지 않으면 늘 공장만 있겠다. 해서 자격증 공부를 해서 고압가스 냉동관리사 등 당시에 부산경남에 몇 개만 나오는 자격증을 4개를 취득하였음 당시에는 자격증 대여만 해도 월급만큼 나올 정도. 중간반사 들어 올 때는 그 자격증들을 다 버리고 출발하였음

③ 신앙생활

주일학교를 졸업할 때는 중간반이 없어서 바로 장년반에 출석했고, 당시 장년반에는 학생들 별로 없을 때 목사님이 설교 시간에 질문을 하면 꼭 나 조사님에게 했고 대답도 잘 하고, 스스로 대답을 하기도 해서, 손성준 이동근 장로님 등의 눈에 띄었으나, 중간반 제도가 없어 잡아 주는 사람이 없다 보니 교회를 오가다 6-7년간 세상적으로 방황을 함. 나중에 신앙생활하면서 그 때 중간반 반사의 중요성을 실감 했고 누나 부부가 반사하는 것을 볼 때에, 중간반 반사들은 반사를 하다가 목회를 나갔고 목회를 나갈 때 마다 당시에 학생들은 반사가 바뀌면 교회 출석까지 요동치는 것이 좋지 않다 생각 하였고 될 수 있으면 반사가 바뀌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했는데 백목사님도 그와 관련된 평생직 중간반 제도를 말씀 하셨고 마침 1989년 김춘도 목사님이 찾아 와서 평생직 중간반사를 해 보자고 권유함. 생각하고 있던 차에 추천이 있어 하겠다 했고, 후에 김춘도 목사님께 누가 추천했는지 물으니까 이치영 목사님이 했다고 말함.

중간반사 등용 때 5층 백 목사님께 김춘도 목사님 없이 4명이 직접 올라가서 면접을 봤는데, 학력 등을 물어 보면서 학생들 지도하는 데는 세상지식도 좀 필요한데 라고 말씀하셨다 당시 면접을 본 유주열(남해 출신. 경남대 법학과) 선생님과 홍순호(부산대 국문학과) 선생님은 학벌이 좋았고 나 조사님은 공부를 많이 못하였고. 또 집안 사정을 물어 보시면서 장남이니까 다른 사람들은 넉넉한데 장남으로서 집안을 돌봐야 하지 않겠나 라고 물어 보셨다, 이어 나 조사님은 주님 부르시면 순종하겠다고 했으나 속으로는 여러모로 등용되지 않겠다고 생각을 하던 중, 며칠이 지나 김춘도 목사님께서 전화 와서 반사로 허락이 나왔다 해서 그 순간 온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음.

④ 중간반사

1989년의 중간반 재구성 때 반사는 사례가 13만원, 가 감봉을 적용하되 80명 기본수에 월 평균 1명이 증가하면 1,500원의 월급이 추가 되었고, 김인선 선생님은 편집실 근무 때와 비교하면 중간반사를 하면서 100만원을 모아서 결혼할 때 아버지께 드렸고, 나병재 조사는 이미 당시 사회생활을 하면서 월 60만원을 벌고 있었음.

1989년에 재구성한 중간반은 평생계약서 조건으로 등용되었고 60세를 정년으로 하되 마지막 3개월 치 월급을 평균으로 정하고 직분을 그만두지 않는 한 종신 지급하는 평생직을 보장하였으며 계약서는 남녀 부장에게 제출했으나 전체를 백명희 부장 선생님이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됨. 백 목사님은 ‘너희는 결사대’라 하셨고, 백 목사님 사후에 서부교회를 원래 노선으로 지킬 사람들이라는 사명을 주심.

 

(마호인 김영환 목사님 가정은 추후 별도 보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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