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적인 성도라면, 마땅히 맞을 순간
평소 로마 경기장에서 맹수에게 순교 당하는 순교자들의 모습을 실감 있게 보고 싶었습니다. 영화 장면은 너무 순식간에 지나 가 버리며 또 너무 과장이 되어 있고 사진으로는 볼 수 없으므로 그림을 원했습니다. 오늘 이 그림을 찾았습니다. 많은 맹수 앞에서의 두려움보다 이제 막 올라 오기 시작하는 이 순간이 더욱 숨 막히는 순간입니다. 바로 이 순간, 이 순교자들은, 어떤 자세였을까? 나는 이런 순간이 내게 닥칠 때 어떤 모습일까? 어떤 면을 준비해야 할까…
성도는 잘 먹고 잘 쉬고 화평 가운데 웃고 편하게 사는 생활이 복을 받은 생활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정상적인 생활은 아닙니다. 철 없는 아이가 엄마 품에 행복한 날을 보내는 순간입니다. 그 성도가 진정한 성도가 되었다면 그는 악령에 붙들린 이 세상 전체를 상대하며 혼자라도 끝까지 가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하며 실제 그렇게 걸어 갈 준비와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어느 날 그런 순간을 주십니다. 시뻘건 풀무에서 녹아 지는 순간을 얼마나 순종함으로 많이 겪고 나왔는지! 그리고 천하가 맹수 되어 자신을 삼키려는 순간을 얼마나 어떻게 마주 쳤는지!
이 홈이 소개하는 이 노선은, 제대로 은혜 받고 제대로 믿어 보려는 첫 순간, 바로 그 순간부터 이 세상 끝 날까지 늘 이 자세, 이 각오, 이 상식에 철저합니다.
그 날을 기억하라!
그 날을 준비하라!
그 날이 왔었습니다. 초대교회 시절, 믿는 사람이면 누구나 이 자리에 섰습니다. 서야 했던 날!
그 날은 올 것입니다. 이 노선을 참으로 지키는 사람이면 누구나 서야 할 그 날! 우리의 준비는!
화면의 왼 쪽으로 울부짖는 사자 한 마리가 올라 옵니다. 그 뒤를 따라 줄줄이 나오고 있습니다.
화면의 오른 쪽에는 한 사람이 하늘을 향해 주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초연히, 온유함으로, 맡긴 채.
그를 둘러 싸고 남녀노소 모든 교인들이 최후의 순간을 붙들어 주시라고 간절하게 기도합니다.
경기장 가장자리에는 주님 못 박히신 십자가에 못 박힌 교인들을 마지막 화형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화면 오른 쪽의 4번째까지 불을 붙여 오고 있습니다. 먼저 붙인 곳은 불꼿이 먼저 오르고 있습니다.
경기장은 5만여 명이 들어 선 규모로 보입니다. 2천 년 전에 오늘 현대식 경기장에 비할 시설입니다.
말씀 하나만 버리면 이 곳에 들어 가지 않습니다. 가끔 주일을 한 번만 잊으면 이렇게 되지 않습니다.
단 한 말씀도, 단 한 번만이라도, 잊지 않고 어기지 않고 범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에 이렇게 되었습니다.
초대교회는 교인이면 전부가 다 그렇게 믿었습니다. 오늘은 교단 지도부와 성직자들도 그렇지 않습니다.
이 노선은 이 노선의 교인 전부가 이 날에 이렇게 될 사람이기를 소망하기 때문에 어렵게 믿습니다.
이렇게까지 믿을 필요가 있겠는가? 그렇다면 이 노선에서 믿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쉽게 믿으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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